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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심히 일해서 주인님을 기쁘게 해 드리자 새끼들아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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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너도나도 일어나 새마을을 가꾸세 |
” |
틀딱들이 반인반신을 빠는 이유 2
새벽 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 이거 박정희가 작사했다.
ㄴ 작사만 한 게 아니라 작곡도 박정희가 했다. 국가기록원 기록에 따르면 「새마을 노래」는 박정희가 직접 작사·작곡했고 처음에는 3절까지 만들었다가 1973년 4절을 추가했다.[1]
1970년에 반인반신 시절 시행한 소득 증가 캠페인. 이를 통해 갓-한민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땅크가 인식을 안 좋게 만들기도 하였다.
ㄴ 정확히는 단순한 소득 증가 캠페인이라기보다 농촌 생활환경 개선+소득 증대+의식개혁을 묶은 농촌개발운동이었다. 1970년 4월 22일 박정희가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새마을가꾸기'를 언급한 것을 시작으로 정부가 전국 33,267개 마을에 시멘트 336포씩을 배분했고, 마을길 확장·공동우물·빨래터 같은 공동사업을 주민들이 선정하게 했다. 이후 실적이 좋은 16,600개 마을에는 시멘트 500포와 철근 1톤을 추가 지원하면서 성과에 따라 차등 지원하는 방식이 자리잡았다.[2]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함께 진행된 경제개발 프로젝트다.
ㄴ 맞다. 다만 한국 전체의 산업화를 새마을운동 하나의 효과로 보는 건 무리다. 새마을운동은 특히 농촌개발과 도농격차 완화에 초점이 있었고, 전체 경제성장에는 수출산업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 교육 확대, 도시화, 외자 도입 등이 함께 작용했다.
이 시대에 살았던 틀딱들이 이 운동을 좋아하며 '나때는'으로 말로 시작해서 이 이야기가 꼭 나온다.
근데 이것만은 틀딱이 아니라 갓플란트라고 불러야 한다. 이때 틀딱들이 노예처럼 일해서 세계 최빈국이었던 한국이 OECD까지 등극할 수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다.
ㄴ 당시 한국이 매우 가난한 저소득국이었던 것은 맞지만 새마을운동 때문에 OECD에 들어갔다고 직접 연결하면 과하다. 한국의 OECD 가입은 1996년이고, 새마을운동은 1970년대 농촌 근대화와 소득격차 완화에 기여한 여러 정책 중 하나였다. 다만 새마을운동 관련 기록물이 2013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을 정도로 한국의 개발사에서 중요한 사례로 평가받는 것은 사실이다.[3]
박정희가 독재든 뭐든 이 운동에 기여한 건 딱 하나다. 당시 패배주의에 찌들었던 국민들에게 "할 수 있다."라는 멘탈개조를 해준 것이다.
ㄴ 정신개조만 한 것도 아니다. 중앙정부가 시멘트·철근·융자·전기·도로 등을 직접 지원하고 지방행정조직을 동원했으며, 성과가 좋은 마을에 자원을 더 주는 경쟁 방식까지 설계했다. World Bank 자료에서도 근면·자조·협동이라는 정신교육과 함께 정부 지원+마을 자체 노동+성과에 따른 차등지원이 핵심 구조였다고 설명한다.[4]
밑에서도 얘기하고 있는데, 누가 초가집을 다 때려부숴서 전통문화와 관광자원을 다 박살냈다고 깠는데 한국에서 전통문화, 관광자원이라 할 것들은 마사오가 집권하기 훨-씬 전인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 때 90%가까이가 개작살이 난 상황이었다. 이 두 헬게이트를 거친 대한민국에는 다쓰러져가는 초가집, 피난민들이 만든 판잣집과 벙커, 그리고 거기서 살면서 초근목피로 연명하는 개돼지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김돼지와 왜놈들 탓이지 이쪽에서 마사오는 억울한 게 좀 많을 거다. 오히려 마사오가 실시한 새마을운동때 농촌경제가 좋아지고 농촌들이 이때 모은 돈으로 파괴된 전통문화를 복구한 일이 많았다.
ㄴ 일제강점기와 6.25로 문화재와 전통경관이 크게 파괴된 것은 사실이지만 전통문화와 관광자원의 90%가 파괴됐다는 수치는 근거가 불분명하다. 반대로 새마을운동의 지붕개량사업이 전통 농촌경관을 크게 바꾼 것 역시 사실이다. 1970년대 정부가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등으로 강하게 교체하면서 1978년까지 약 261만 8천 채의 초가지붕이 개량됐다는 연구도 있으며, 이 과정에서 초가 건축과 전통 이엉 기술이 급격히 줄어들었다.[5][6]
└ 애초에 그딴 소리하는 놈들이 초가집에서 살라고 하면 절대 못 살 얼치기 좌파넘들이다. 빈대랑 이 벼룩 쥐 구렁이 굼벵이랑 동거해야하는데 퍽이나 관광자원이겠네. 오히려 일본놈들이 몰려와서 이렇게 살던거 사람 만들어줬다고 헛소리나 지껄이게 할건데 없애버려야지.
전라도도 마을 회관에는 새마을 깃발이 달려 있고 전남 지역도 할배들이 새마을 모자 쓰고 다니는 것을 볼 수 있을 정도로 새마을 운동을 주도한 반인반신에 대해 호의적이다. 전라도가 '빨갱이' 성지가 된 건 5.18 유혈진압을 저지른 전땅크, 빨갱이와 어울리면서 여러 병크를 저지른 슨상님 두 병신의 책임이 크다.
ㄴ 마을회관에 새마을 깃발이 있거나 새마을 조직이 활동한다는 사실만으로 특정 지역 주민 전체의 박정희에 대한 정치적 평가를 추론할 수는 없다. 호남의 정치적 성향이 형성된 원인 역시 5.18 민주화운동 하나나 특정 정치인 한 명으로 환원하기 어려우며 산업화 과정의 지역격차, 권위주의 정권과의 갈등, 정당정치의 지역구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1972년에 발매된 새마을 노래도 띵곡인데 제3~4공 시절을 다루는 드라마라면 꼭 나오는 노래이다. 야인시대 마지막회에서도 김두한이 타던 자동차에서 흘러나왔다.
실제 사업
초기 새마을운동은 마을마다 똑같은 시설을 정부가 전부 지어주는 방식은 아니었다. 정부가 시멘트와 철근 등의 자재를 제공하고 주민들이 마을회의를 통해 사업을 선정한 뒤 노동력과 일부 자원을 부담하는 구조였다. 첫해 실적이 좋은 마을에는 다음해 더 많은 자원을 배분했다.[7]
대표적인 사업은 마을길 확장과 포장, 지붕 개량, 주택 개량, 교량과 하천 정비, 공동우물과 빨래터 설치, 농업기반시설 개선 등이었다. 이후에는 농가소득 증대와 농촌공장 같은 사업으로 범위가 넓어졌고 도시·공장·학교 등으로도 새마을운동이 확장됐다.
농촌소득이 실제로 크게 증가한 것도 사실이다. World Bank가 당시 한국 정부 통계를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농가의 월평균 소득은 1967년 도시근로자가구의 약 60% 수준이었지만 1973년 87%, 1976년에는 도시근로자가구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갔다. 다만 이것을 전부 새마을운동의 효과라고 볼 수는 없고 농업생산성 향상, 쌀 수매가격을 높인 정부의 곡가정책, 농업투자 확대 등의 영향도 컸다.[8]
비판
그 2가지 측면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과와 별개로 군사독재 시절의 국가 주도 대중동원운동이라는 한계도 있었다. 새마을운동은 정부가 시작하고 내무부를 비롯한 행정조직이 전국적으로 집행한 사업이었으며 World Bank의 당시 평가에서도 권위주의적이고 관료적인 행정체계를 통해 추진됐다고 설명한다.[9]
주민 참여가 전부 자발적이었다고 보기도 어렵다. 국가기록원에 남은 1972년 민원에서도 무리한 환경개선사업 과정에서 개인 소유 토지를 강제로 사업에 편입해 주민 갈등이 발생했다는 내용이 확인된다.[10]
정부 자료상으로도 주민 부담은 상당했다. 1971~1974년 새마을사업 투자 가운데 정부 예산이 차지한 비중보다 주민들이 노동력과 현물 등으로 부담한 비중이 훨씬 컸고, World Bank 당시 보고서는 주민들의 노동투입을 2억 일이 넘는 규모로 집계하기도 했다.[11]
또 1970년대 후반으로 갈수록 단순 농촌개발을 넘어 정치적·국민동원운동의 성격이 강해졌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반대로 마을 단위 의사결정과 성과에 따른 지원이라는 구조는 이후 개발도상국의 지역공동체 개발정책에서 연구 대상으로 활용되고 있다.[12]
재미있는 점
당시 시대는 반공주의였는데 새마을 운동은 오히려 사회주의에 딱 맞는 운동이었다.
ㄴ 공동체 노동과 국가주도 계획이라는 외형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새마을운동 자체를 사회주의 정책이라고 분류하기는 어렵다. 토지와 기업의 사유재산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정부가 농촌 공동사업을 지원하고 주민을 동원한 개발정책이었으며, 공식적으로는 근면·자조·협동을 강조했다.
정확히는 이스라엘 키부츠도 참고했는데 키부츠란게 유대인 사회주의자덜이 하자고 하던거라 사회주의 냄새 나는게 당연하다.
ㄴ 키부츠와 비슷한 협동농장 실험이 당시 한국 농촌정책에 영향을 준 사례는 확인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증평협업농장을 구상한 안동준은 이스라엘 키부츠와 일본 야마기시즘을 모델로 삼았다는 연구가 있다. 다만 전국 새마을운동 자체가 키부츠를 직접 모델로 만들어졌다고 단정할 근거는 부족하다. 새마을운동의 공식 설명에서는 한국 농촌의 향약·계·두레·품앗이 같은 공동체 전통도 주요 배경으로 언급된다.[13][14]
그러니까 틀딱들의 생각에서 알 수 있듯 막연히 공산&사회주의가 뭐하는건지, 왜 나쁜건지(왜 망한건지가 옳겠지만) 안 알려주고 맹목적으로 공산권 국가들과의 이데올로기 싸움+우민화, 기득권 유지, 명분때문에 반공을 사이비 종교마냥 세뇌시킨거다. 그러면서 하는 짓은 공산&사회주의의 좆망한 현실이든 이론, 즉 순수한 면이든 똑같이 했다.
세계기록유산
2013년 새마을운동과 관련해 1970~1979년에 생산된 대통령 연설문, 정부문서, 마을 기록, 편지, 교재, 사진과 영상 등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됐다.[15]
ㄴ 새마을운동 자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는 뜻은 아니다. 새마을운동의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것이다.
이후 한국의 새마을운동 경험은 여러 개발도상국의 농촌개발 연구 대상으로도 활용됐다. World Bank도 아프가니스탄·미얀마·네팔·케냐·필리핀 등의 농촌개발 관계자들을 한국에 초청해 새마을운동의 지역공동체 개발 경험을 살펴보는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다.[16]
교과서에서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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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새마을운동이 삭제된다고 한다. 띠요옹?
2015 개정 과정으로 나와있지만 역사 교과서 한정으로 국정교과서 사태 때문에 과정이 수정되어서 숫자만 2015이고 실질적으로 문재앙 정권 하에서 수정된 교과서이다. 당연히 교육과정 반영도 더 늦다.
ㄴ 이 부분은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2015 개정 교육과정 자체는 2015년 9월 박근혜 정부에서 확정됐다. 이후 국정 역사교과서 정책이 폐기되면서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8년에 역사·한국사 교육과정과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이 다시 일부 개정된 것은 맞다.[17][18]
ㄴ 그리고 새마을운동이 교과서에서 삭제된 것은 아니다. 2018년 집필기준 시안에서 '새마을운동'이라는 구체적인 표현이 별도 학습요소에서 빠진 것은 맞지만, 이는 집필기준을 세세한 사건목록 대신 큰 주제 중심으로 단순화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평가원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등의 학습요소 속에서 새마을운동이 다뤄질 것으로 봤으며, 이전 2009 개정 집필기준에도 새마을운동이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았지만 당시 고교 한국사 8종 모두 이를 서술하고 있었다.[19]
ㄴ 오히려 2017년 박근혜 정부가 만든 검정교과서 집필기준에는 새마을운동의 성과뿐 아니라 한계점을 지적하는 견해도 함께 서술하라는 내용이 들어가 있었다.[20]
재앙매직 씨발련아
각주
- ↑ 국가기록원 - 새마을교성곡 제작 및 연주회 개최계획
- ↑ 국가기록원 - 새마을운동 개요
- ↑ UNESCO - Archives of Saemaul Undong
- ↑ World Bank - Saemaul Undong
- ↑ 김성조, 「The Political Economy of the Roof: The New Village Movement in 1970s South Korea」
- ↑ 「초가이엉이기의 다양화와 사회문화적 배경」
- ↑ 국가기록원 - 새마을운동 개요
- ↑ World Bank - Korea: Managing the Industrial Transition
- ↑ World Bank - The Saemaul Movement
- ↑ 국가기록원 - 새마을 운동에 관한 진정 보고
- ↑ World Bank - The Sae Maeul Movement
- ↑ World Bank - Rural Community-Driven Development Knowledge Exchange
- ↑ 「자격 있는 자들의 공동체: 박정희 정부 시기 증평협업농장을 통해 본 ‘협업’의 구성」
- ↑ 국가기록원 - 기록으로 만나는 대한민국: 새마을운동
- ↑ UNESCO - Archives of Saemaul Undong
- ↑ World Bank - Rural Community-Driven Development Knowledge Exchange
- ↑ 교육부 - 2015 개정 교육과정 총론 및 각론 확정·발표
- ↑ 교육부 고시 제2018-162호
- ↑ 연합뉴스 - 교육부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관련 설명
- ↑ 연합뉴스 - 검정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