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창식 Song Chang-sik | |
| 생년월일 | 1985년 3월 25일 (41세) |
|---|---|
|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
| 국적 | |
| 학력 | 서원초등학교 - 세광중학교 - 세광고등학교 |
| 신체 | 183cm, 104kg |
송창식(宋昌植, 1985년 3월 25일 ~ )은 KBO 리그 한화 이글스에서 활동했던 대한민국의 전직 야구 선수이다. 현역 시절 포지션은 투수로,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활약했다. 버거씨병으로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를 극복하고 마운드에 복귀한 인간승리의 상징이자,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를 몸으로 버텨낸 선수 가운데 하나이다.
경축!!! 2억!!
형도 힘들면 좀 못하겠다 하고 더 쉬다 와요 이제 감독도 바뀌었잖아요 ㅜㅜ
칰팬으로서 형 욕먹는 거 보면 마음이 아파요 ㅜㅜ 저는 욕하고 싶지 않으니까 쉬세요 제발
아니 1점차에서 내야안타에 만루홈런을 맞으면 어떡해요 제발 서산 좀 가겠다고 하세요 이제 서산 가서 드러누워도 욕할 사람 없으니까!!!
- 솔직히 성근이가 존나게 굴린 건 맞다. 하지만 그전에 세이콘이 망가트리기보단 걍 얜 망가진 투수였어. 3김이 다 굴려대다 또 다른 김이 존나게 혹사시켜서 묻힌 거지...
ㄴ 이승엽 450호 홈런을 허용했다.
개요
2004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여 2020년 은퇴할 때까지 한 팀에서만 선수 생활을 이어간 우완 투수이다. 2008년 버거씨병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했으나 2010년 기적적으로 복귀했으며, 이후 선발과 중간계투,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한화 마운드를 지탱했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 많은 경기에 등판하면서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다.
송창식은 화려한 개인 성적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선수이다. 2004년 고졸 신인으로 8승을 거두며 기대를 모았지만 팔꿈치 부상과 혈관 질환으로 선수 생활이 중단되었고, 어렵게 재기에 성공한 뒤에도 팀 사정 때문에 여러 보직을 오가야 했다. 특히 한화의 성적이 좋지 않았던 시기에 부족한 투수진의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자주 맡으면서 팬들의 동정과 지지를 동시에 받았다.
KBO 리그 통산 성적은 431경기 43승 41패 22세이브 51홀드, 707⅓이닝, 평균자책점 5.31이다. 2013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20세이브를 기록했고, 2015년부터 3년 연속 60경기 이상 등판하며 불펜의 핵심 자원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잦은 등판과 팔꿈치 부상이 겹치면서 2018년 이후 출전 기회가 크게 줄었고, 결국 2020년 7월 15일 은퇴를 발표했다.[1]
팬들 사이에서는 실력에 대한 평가와 별개로 오랜 기간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특히 버거씨병을 극복한 선수에게 지나치게 많은 투구를 요구했다는 점에서 당시 감독들의 선수 기용 방식에 대한 비판이 상당했다.
~~야구를 하라고 데려왔더니 마운드에서 산업재해를 당할 뻔한 선수.~~
선수 경력
2004~2007년: 입단과 부상
2004년에 한화 입단했는데, 하필 이때 버거씨병에 걸리게 된다.
정확히는 2004년 입단 당시부터 버거씨병이 발병했던 것은 아니다. 송창식은 청주 세광고등학교 시절 최고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공을 던지는 유망주로 주목받았으며, 200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한화 이글스의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 지명을 받았다. 당시 계약금은 2억원이었으며, 한화의 미래 선발진을 이끌 기대주로 평가받았다.[2]
데뷔 시즌인 2004년에는 26경기에 등판해 140⅓이닝을 던지며 8승 7패, 평균자책점 5.13을 기록했다. 고졸 신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히 많은 이닝을 소화했으며, 즉시 전력감으로서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팔꿈치 인대 부상으로 수술을 받으면서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이후 2006년에는 21경기에 등판했으나 2007년에는 단 2경기 출전에 그쳤다. 데뷔 당시 기대를 받았던 선수가 계속되는 부상으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면서 선수 생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2008~2009년: 버거씨병과 첫 은퇴
송창식은 2008년 버거씨병으로 인해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다. 버거씨병은 혈관에 염증과 폐색이 발생하여 손발의 혈액순환에 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투수에게 손가락의 감각과 혈액순환은 공을 잡고 던지는 데 필수적인 요소이므로 선수 생활을 계속하기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병 때문에 2008년부터 2009년까지 세광고등학교 코치로 일했다.
당시 송창식은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한 뒤 모교인 세광고에서 지도자 생활을 하며 재활을 병행했다. 일반적으로 프로선수가 은퇴한 뒤 현역으로 복귀하는 것만 해도 쉽지 않은 일인데, 송창식은 선수 생명과 직결되는 질환까지 겪고 있었기 때문에 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본인은 완전히 야구를 포기하지 않았다. 치료와 재활을 이어가면서 다시 공을 던질 수 있는 상태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손가락의 감각이 회복되면서 프로 무대에 복귀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2010~2012년: 기적적인 복귀
그러나 2010년에 기적적으로 재입단 뒤 마무리로 전향했는데...
2010년 3월 한화 이글스로 복귀했으며, 같은 해 다시 1군 마운드에 올랐다. 복귀 첫해에는 12경기에 출전하여 17⅔이닝, 평균자책점 4.08을 기록했다. 과거의 부상과 질환을 고려하면 다시 프로 무대에서 공을 던질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상당한 의미를 가진 복귀였다.
2011년에는 34경기에 등판해 4승 3패를 기록하며 점차 출전 기회를 늘렸다. 같은 해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는 약 6년 9개월 만에 승리투수가 되면서 인간승리의 상징으로 주목받았다. 당시 송창식의 사연은 여러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으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승리를 거둔 선수로서 팬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2012년에는 47경기 74⅓이닝을 소화하며 4승 3패, 12홀드, 1세이브, 평균자책점 2.91을 기록했다. 복귀 이후 가장 안정적인 성적을 보여준 시즌 가운데 하나로, 한화 불펜의 중요한 자원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다만 이 시기부터도 송창식은 특정 보직에 고정되기보다 팀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올랐다. 선수 개인의 재기를 생각하면 성공적인 시기였지만, 훗날 심각한 논란으로 이어지는 불규칙한 투수 기용의 시작이기도 했다.
2013~2014년: 마무리 투수와 부진
2013년부턴 킬끼리에 의해 굴려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부터는, 그리고 2015년...
2013년에는 김응용 감독의 지휘 아래 마무리 투수로 기용되면서 57경기에 등판해 20세이브를 기록했다. 평균자책점도 3.42로 비교적 안정적이었으며, 본격적으로 한화의 핵심 불펜투수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마무리 투수임에도 여러 이닝을 소화하거나 많은 공을 던지는 상황이 적지 않았다. 일반적으로 현대 야구의 마무리 투수는 1이닝 정도를 책임지는 것이 기본적인 운용 방식이지만, 당시 한화는 투수진의 사정이 좋지 않아 송창식에게 더 많은 부담을 지우는 경우가 있었다.
2014년에는 26경기에서 평균자책점 7.45를 기록하며 크게 부진했다. 부상과 구위 저하 등으로 이전 시즌만큼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주지 못했으며, 한화의 불펜 운영 역시 계속해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였다.
결과적으로 송창식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하기 전부터 이미 상당한 투구 부담을 안고 있었던 선수였다. 따라서 이후 발생한 부상과 성적 하락을 전부 한 감독에게만 돌리는 것은 단순화된 해석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 선수의 상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많은 이닝을 맡긴 것이 적절했는지는 별도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2015 시즌
안타깝게도, 그는 50년 선수생활의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가네바야시 세이콘에 의해 기쁨조보다도 무섭다는 살려조로 불려나간 것이다.
2015년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에 부임하면서 송창식의 역할은 더욱 복잡해졌다. 팀의 선발과 불펜 사정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선발 등판과 구원 등판을 오가는 일이 많았으며, 특정 보직을 유지하기보다 경기 상황에 따라 투입되는 스윙맨에 가까운 역할을 맡았다.
선발투수를 하고 싶다고 했으나... 가네바야시 세이콘이 송은범 방어율을 챙겨주기 위해 등판시켰다.
다음날에도 구원으로 등판했다.
첫 번째 핏챠로 117구 던지고 3일 쉬고 또 선발하다 퀵후크당하기도 했다. 아마 3이닝도 못 먹고 그대로 졌을 거다.
ㄴ 이전에도 3연투 후 하루 쉬고 선발등판한 적 있었다 ㅅㅂ 10선발-40불펜 ㄷㄷ
칰의 로저스-탈보트-안영명-송창식-김민우의 15시즌 5선발 체제가 순식간에 무너진 덴 다 이유가 있었다.
이 시즌 송창식은 64경기에 등판해 109이닝을 던졌으며 8승 7패 11홀드, 평균자책점 6.44를 기록했다. 구원투수가 주된 역할이었음에도 100이닝이 넘는 투구를 소화했다는 점에서 등판 부담이 상당했다. 특히 선발과 구원을 오가는 방식은 선수의 준비 과정과 휴식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팬들 사이에서 혹사 논란이 발생했다.
여기에서 한화 팬들이 사용하기 시작한 표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살려조이다. 원래 야구에서 중요한 경기 후반 상황에 등판하는 불펜투수들을 '필승조'라고 부르는데, 한화의 경우 이기는 경기든 지는 경기든 일부 불펜투수들이 계속 등판하면서 팬들이 제발 좀 살려달라는 의미로 사용한 별명이다.
송창식은 권혁, 박정진 등과 함께 살려조의 대표적인 선수로 거론되었다. 팀이 이기고 있을 때는 승리를 지키기 위해, 지고 있을 때는 더 이상의 실점을 막기 위해, 선발이 일찍 내려갔을 때는 긴 이닝을 처리하기 위해 등판하면서 투수들의 부담이 누적되었다.
~~필승조도 아니고 추격조도 아니고 그냥 감독이 부르면 나오는 호출조.~~
2016 시즌
올해도 살려조 편입이 유력하다... 아니 살려조 수준을 넘어 벌투까지 시키고 있다. 세이콘 이 새끼 노망난 게 확실함. 참고로 지금 작성자는 작년 시즌 중반까지 노리타였음을 밝힌다. 애도.
2016년에도 송창식은 선발과 구원을 오가며 많은 경기에 출전했다. 특히 시즌 초반부터 연속 등판과 보직 변경이 이어졌으며, 4월 14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는 KBO 리그 역사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논란이 큰 투수 기용 사건을 겪었다.
4월 14일 두산전: 12실점 벌투 논란
2016 4/14 미친 킬성근 또라이새끼가 12실점을 할 때까지 놔주지 않았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액션빔.
창식이형ㅠㅠㅠ 오래오래 뛰셔야 할 텐데ㅠㅠ
시발 보다 못한 우리혐이 매너 삼진으로 일단 쉬게 해줬다. 우리혐 인성 재평가가 시급하다.
2016년 4월 14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선발 김용주가 1회 초를 마치지 못하고 강판되자 송창식이 구원 등판했다. 그러나 송창식은 이후 4⅓이닝 동안 무려 90개의 공을 던지면서 9피안타, 4피홈런, 12실점(10자책점)을 기록했다.
한화는 결국 두산에 2:17로 대패했으며, 경기 도중 송창식의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졌음에도 장시간 교체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논란이 발생했다. 더구나 송창식은 4월 10일 선발 등판으로 69구를 던졌고, 바로 전날인 4월 13일에도 구원 등판해 15구를 던진 상태였다.
당시 중계를 맡은 해설진도 송창식의 계속된 투구에 우려를 나타냈으며, 팬들 사이에서는 이미 큰 점수 차이가 벌어진 경기에서 무리하게 투구를 이어가게 한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송창식은 과거 버거씨병과 팔꿈치 부상을 겪었던 선수였기 때문에 선수 보호 문제가 더욱 크게 부각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기용을 선수가 부진한 데 대한 일종의 벌투로 받아들였으며, 김성근 감독의 선수 운용 방식에 대한 비판도 거세졌다.[3]
송창식 개인의 부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미 정상적인 투구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태로 보이는 선수에게 90구를 던지도록 한 판단이 적절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특히 선발투수가 아닌 구원투수에게 이전 등판 간격을 고려하지 않고 장시간 투구를 맡겼다는 점은 투수 관리 측면에서 비판받을 만한 부분이다.
이 사건은 이후 한화의 혹사 논란을 대표하는 사례로 계속 거론되었으며, 김성근 감독의 야구 철학과 투수 운용에 대한 평가에서도 빠지지 않는 사건이 되었다.
4월 19일~23일
4/19 연장 10회 말 무사만루 상황에 세이콘이 등판시켰다. 2아웃까지 잡으시다가 마지막에 연속 4볼로 밀어내기 ㅠㅠ
세이콘 이 새끼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ㅅㅂ 솔직히 2아웃 잡고 스트레이트 볼넷이면 태업 아니냐? 12실점에 대한 복수 ㅇㅈ?
4월 19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송창식은 연장 10회 말 무사 만루라는 매우 어려운 상황에 등판했다. 앞서 12실점 사건을 겪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팬들의 우려가 컸으며, 결국 끝내기 밀어내기 볼넷을 허용했다.
물론 이를 고의적인 태업이라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무사 만루에서 등판한 구원투수가 연속으로 아웃카운트를 잡아낸 뒤에도 결국 실점할 수 있는 것이 야구이며, 선수 개인의 의도를 추측하기보다는 당시의 기용 상황을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4/21 팀이 1:3, 1회 말 무사 1, 2루 상황에서 등판했다. ㅅㅂ 세이콘 이건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 주자 두 명을 불러들이는 고급 분식회계를 했지만 3이닝을 막고 내려갔다.
4/23 4말 2:3으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다. 또 1이닝을 잘 막고 내려갔다. 진짜로 잘 던지는 건지 타자들이 봐주는 건지..
불과 며칠 전 대량 실점과 90구 투구로 논란이 발생했음에도 계속해서 구원 등판이 이어졌다는 점에서 팬들의 불안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6월 이후
6월 3, 4일 삼성과의 경기에 연속 등판하여 한국시리즈보다 꿀잼인 한화-삼성 시리즈를 이끌어주셨다. 만루를 두 번이나 막는 갓창식센세.
어찌어찌 8월까지 버티며 8승까지는 해주셨다만 정우람도 8승...
결국 팔이 갈려서 일본으로 치료받으러 갔다. 세이콘이 숨기려고 1군 엔트리에서 안 뺐는데 딱걸렸다.
결국 레전드께서도 세이콘의 갈갈을 버티지 못하고 수술대에 오르셨다. 인간승리의 아이콘이자 애국자를 도대체 얼마나 보내야 이 백정은 정신 차릴지 모르겠다.
실제로 송창식은 2016년 8월 팔꿈치 통증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고, 같은 해 10월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다만 수술의 원인이 특정 경기나 감독 한 사람에게 전적으로 있었다고 의학적으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전부터 이어진 부상 이력과 누적 투구 부담 등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2016시즌 송창식은 66경기에서 97⅔이닝을 던지며 8승 5패 8홀드, 평균자책점 4.98을 기록했다. 시즌 중 부상으로 이탈했음에도 상당한 이닝을 소화했다는 점에서 혹사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6시즌 구원진 중 승계주자 및 분식 부분에서 3위(60명 승계, 20명 분식회계)라는 슬픈 기록의 주인공이 되셨다. 1, 2위는 예상대로 박정진과 권혁이다.
솔까 저 셋은 내년에 피부샵 가고 네일샵 가든 그냥 3군에서 누워만 있든 연봉 줘도 되는 수준이다... 광광 우럭따 ㅠㅠ
결국 송창식과 권혁, 박정진은 한화 팬들에게 팀의 부진을 상징하는 선수들이면서도 동시에 암흑기를 버텨낸 희생자들로 기억되었다. 특히 송창식은 이미 한 차례 선수 생활을 중단해야 했던 질환을 극복하고 복귀한 선수라는 점에서 더욱 많은 동정을 받았다.
2017 시즌
수술한 선수를 또 땡겨 쓰는 그분 덕에 개막전 1구 0.1이닝 던지고 다음 날 2이닝 또 던졌다 ㅜㅜ 슬슬 불안함.
별로 안 던진 거 같은데 13경기인가 나왔다. 심지어 13점 앞서고 있는데도 구원등판... 이래도 안 혹사입니까?
결국 17년 4월 17경기로 출장 단독 1위(2위는 박시영 16경기) 찍으셨다 ㅠㅠ 창식이형을 위해 그분이 빨리 짤리길 빌어드리자.
2017년에도 송창식은 팔꿈치 수술 이후 복귀했음에도 많은 경기에 등판했다. 4월부터 등판 횟수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팬들 사이에서는 다시 혹사가 반복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특히 수술을 받은 선수가 회복 이후 충분한 관리를 받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컸다.
짤렸다 쑤아리질렀ㅆㅆㅆㅆㅆㅆㅆㅆㅆㅆ 회장니뮤 술친구께서 이길 때만 쓰신다 약속하셨다 광광우럭따ㅜㅜ
2017년 5월 23일 김성근 감독이 한화 이글스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팀은 이상군 감독대행 체제로 전환되었으며, 선수 기용 방식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오늘(28일 말하는 거임)도 송은범이 불펜 나와서 싸지른 설사를 친히 병살로 청소해주셨다 캬 갓창식센세 ㅠㅠ 퐈 4년 84억은 센세가 드셨어야 하는데.
솩전에서 백투백으로 전사하심. 영감님 그렇게 갈아처마시고 도망가시니 속이 시원하십니까?
그래도 이젠 확실히 승리상황만 나온다. 그래도 평자 5점대...
노리타들이 자꾸 저러는데 더 굴려야 한다 대가리 총맞은 소리하는데, 느그 영감님이 부순 팔 또 부수라고? 양심이 있냐 너네가?
17시즌 들어 확실히 덜 구르는 편이다. 6.20 승 먹고 벌써 4승... 그렇다고 연투가 없는 건 아니다. 워낙 칰투수들이 노답이라.
김재영에게 귀브를 전수해줬는데 생각 외로 잘 써먹더라. 물론 kt전이긴 했다만.
요새 탓동이 말을 뒤집고 지는 경기에도 자주 등판시켜서 얻어맞고 있다 ㅠㅠ
휴식 좀 주다 3연투인가 시키니까 급격하게 처맞는다. 방금도 1아웃 잡고 투런 맞아서 승리 처날림.
그렇게 휴식 줬는데 방어율 6점대는 좀 너무하잖아요 형 아프면 그냥 쉬어요 쉰다고 뭐라 할 사람도 이제 없으니까 ㅠㅠ
이처럼 김성근 감독이 물러난 이후에도 송창식의 등판 빈도와 성적을 둘러싼 논쟁은 계속되었다. 일부 팬들은 혹사에 따른 후유증을 우려했지만, 다른 팬들은 투수의 성적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계속 출전시키기 어렵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했다.
2017년에는 63경기에 등판해 73⅓이닝을 던지며 5승 6패 15홀드, 평균자책점 6.63을 기록했다. 출전 경기 수는 여전히 많았지만 이전보다 평균자책점이 크게 악화되었으며, 경기마다 투구 내용의 기복도 나타났다.
이승엽의 450호 홈런
평생 영상에 남아 우려먹힐 예정이니 불쌍하게 여겨주세요.
2017년 5월 21일 삼성 라이온즈의 이승엽에게 KBO 리그 개인 통산 450호 홈런을 허용했다. 이승엽은 이 홈런으로 KBO 리그 역사상 최초로 450홈런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으며, 송창식은 그 역사적인 기록의 상대 투수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4]
물론 위대한 타자의 대기록에 상대 투수로 이름이 남는 것이 선수 개인에게 반드시 반가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승엽이라는 한국 야구의 전설적인 타자에게 허용한 홈런이었다는 점에서 야구팬들에게는 오래 기억되는 장면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이승엽은 역사에 남을 홈런을 쳤고 송창식은 역사에 남을 홈런을 맞았다.~~
9월
9월 8일 역전 만루홈런;;
회장님 제발 내년엔 2억 쥐어주고 그냥 안식년 좀 주세요 ㅠㅠ
9월 초부터 아예 공도 안 만지고 쉬었다고 한다.
아마 은퇴할 때까지 승부조작이나 음주 같은 것만 안 한다면 까이지 않을 몇 안 되는 선수일 것이다.
2017년 커리어 로우인데 항암물질 있는 건 말 안 해도 알 거다 ㅇㅇ
내리면 니 애미애비 노리타 인증.
실제로 2017시즌 송창식은 많은 등판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좋지 않았으며, 결국 시즌 후반에는 휴식과 재정비가 필요하다는 평가가 많아졌다. 그러나 이미 오랫동안 팀을 위해 헌신한 선수였기 때문에 한화 팬들 사이에서는 성적보다 건강을 먼저 걱정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다.
2018 시즌
깨어나세요, 용사여!
그냥 서산에 박고 푹 쉬다 후반기에 나왔으면 좋겠다. 아님 내년.
일단 25일 삼진 하나만 잡고 내려갔다.
28일 0.2이닝 막고 시즌 첫승 ㅊㅋㅊㅋ
다행히 확실히 관리받아서 정말 필승상황이 아니면 안 올라오고 있다.
근데 팀이 제대로 이긴 적이 없네... 이 형도 실업자행인가.
구위가 덜 올라와서 서산으로 휴가 갔다. 아 이 형 3년간 던진 거 때문에 욕할 수도 없고...
꾀부린다 버거씨다 이 지랄하는 새끼들 느그들도 똑같이 팔에 병 걸려서 개고생하길 앙망한다 개만도 못한 새끼들아.
2018년에는 이전 시즌들과 달리 출전 기회가 크게 줄었다. 팔꿈치 수술과 장기간의 투구 부담 이후 구위 회복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1군보다 2군에서 몸 상태와 투구 밸런스를 조정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2군에서 등판 중인데... 음 안타깝다. 평자가 8점대다. 컨디션이 아직도 많이 안 좋나...
평속이 135 정도인데 밸런스가 안 잡혀서인지 일단 선발로테를 돌고 있지만 불안한 편이다. 시즌 끝나고도 특별프로그램을 구단에서 마련해주겠다고 할 정도로 많이 지친 듯하다. 가을점퍼 입을 즈음이라도 좋으니 안 아플 때 돌아오세요.
2군에서 루틴대로 선발등판 중이지만 1군에서는 필승불펜으로만 쓰겠다고 한다. 음 지금 봐선 윤규진보다 나을 거 같은데 구속만 오르면.
요새 또 똥칰이 똥칰하면서 다시 꼬라박을 분위기가 되자 평자 5점대인 투수가 잠시라도 주목받았으니 좋았던 거 아닐까요 지랄하는 새끼들이 몇몇 보인다. 제에발 남의 팀 선수한테 지랄 좀 그만 하고 알아서 메이쟈든 머만이든 좀 꺼지라고.
- ㄴ "그 새기들"이야 원래 그러니까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냄비 칰키워들이 더 문제. 지금 정도면 올 시즌 한화는 팀 실상에 비하면 '우주의 기운을 받은' 시즌인데 그걸 잊어버린 듯.
6월
6.17 올라와서 범타 후 최주환에 생애 첫 10홈런을 맞았지만 다시 범타-안타-범타로 1이닝 1실점. WHIP, FIP가 각각 2.25, 7.09라 도저히 필승조로는 못 써먹을 것 같지만, 그간 구른 게 있었으니... 다시 잘 돌아오셨어요. 퐈자격요건까지 건강하게 야구합시다 형 ㅜㅜ
6.22 5점차인 9회 말 나와서 1이닝 무실점했다. 하지만 구위가 썩 좋은 모습은 아니었다.
6.26 1이닝 4자책으로 핵실험을... 평자 역시 9점대까지 폭등. 역시 올해는 확실히 재활만 시켜야 하나. ㅅㅂ 댓글창 노릿노릿해지는 꼬라지 보니 구역질이 난다. 퉤퉤.
6.28 김범수가 9회 초 2사 1루 7점차 상황에서 러프한테 투런 쳐맞자 교체되어 등판, 내야 뜬공으로 경기를 끝냈다.
7월 이후
7.3 김민우가 겜을 터뜨리자 5회 1사부터 나와 2.2이닝 1실점으로 어느 정도 버리는 이닝을 먹어줬다. 근데 공이 계속 쭉쭉 뻗는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나마 계속 실전감각 느끼게 해주는 걸 보면 아직 팀을 위해 쓸모가 있다고 판단한 듯. 본인도 러닝하고 쉐도우피칭하면서 구위회복에 힘쓰고 있고.
하지만 다음날 다시 서산 갔다. 안영명이 회복돼서 그런 듯. 좀 쉬셔도 되니까 혁이형 정진이형이랑 완벽한 모습으로 돌아오는 거 기다릴게요.
구단도 아직 회복이 더 필요한 걸 아는지 시즌 끝나고 특별관리프로그램도 보내주고 (성적과 크게 상관없이) 연봉도 보전해줄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다. 15시즌 조금만 덜 굴렀어도 올해 퐈신청할 수 있었을 텐데 등록 일수 미달로 아쉽게 날아갔다.
9.8 다시 1군으로 왔지만 올라올 상황이 도무지 안 생기고 있다.
그리고 칰이 13시즌 모드로 회귀하며 오나전 오합지졸이 되자 그제야 등판기회가 생겨나는 중. 직구구속이 130중반밖에 안 나오지만 주무기인 포크볼을 3번 떨어뜨려 삼진을 잡고 정교한 제구로 뜬공을 잡는 등 가비지 이닝을 먹어줄 수준은 되는 듯.(표본은 적지만 평자가 4점대) 직구 구속 조금만 더 올랐으면 퓨쳐스에서 했듯 땜방 선발로라도 써먹었으련만...
9.18 불규진이 연소되어 완전히 NC쪽으로 기운 8회 나왔으나 1이닝 1자책을 기록했고, 다음날 다시 말소됐다. 순위싸움에 여유가 좀 있었으면 땜방 선발로라도 올려봤겠지만...
"해준 게 얼만데" 운운하는 분탕들 극혐하는 그린일베조차 송창식 퐈대박을 바라는 거 보면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 수 있다. 허나 현 단장이 정으로 마구 퍼주는 타입이 아니라...
- ㄴ 그 이전에, 올해 FA 일수 못 채웠다. 그냥 마무리 훈련 잘 해서 내년에 보란듯이 일어서길 바랄 수밖에...
2018년 송창식은 1군에서 단 12경기에 출전하여 12⅔이닝을 던졌으며, 1승 1홀드, 평균자책점 4.97을 기록했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3년 연속 60경기 이상 등판했던 것과 비교하면 출전 기회가 크게 감소했다.
특히 구속이 이전만큼 올라오지 않고 투구 밸런스가 안정되지 않으면서 1군에서 꾸준히 활약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한화가 2018년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하면서 오랜 암흑기를 끝냈지만, 정작 그 암흑기를 버텨낸 송창식은 팀의 상승세를 마운드에서 충분히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2019 시즌
깨어나세요, 용사여!
2억 받는다.
작년 12월에 쌍둥이 아빠가 됐다. '애들 분유값' 때문에라도 올해 재기해야 된다는 동기를 강하게 어필했다.
솔직히 몇몇 얼라들보다도 선발진 넣으면 잘 던질 것 같다. 4이닝까지는 그럭저럭... 할 거 같지 않나?(하지만 후보군에는 김민우 박주홍 김성훈 장민재 등 거의 20대들인 걸로 보아 선발로 쓰일지는...)
3.14 9회 2사 1루서 등판해 직전 이닝 쓰라린을 친 김강민을 2구만에 내플로 돌려세우며 세이브를 기록했다.
참고로 3월 14일의 기록은 정규시즌이 아니라 시범경기에서 나온 것이다. 정규시즌과 달리 시범경기에서 기록한 세이브는 공식 통산 기록에 합산되지 않는다.
그리고 이태양이 홈런왕이 될 조짐이 보이면서 슬슬 그리워하는 칰갤럼들이 생기고 있다. 언제 오는 겁니까...
그러다가 5.4 드디어 1군 무대에 첫 등판했으나 전 동료였던 이준수에게 안타를 내주는 등 겨우 1타자만 잡는 동안 3피안타를 내주고 2실점하여 아직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는 것만 보여줬다. 어떤 색기들은 털덕이가 선수 갈아먹고 남탓하네 송버거네 헛소리들 해대는데 느그들 손가락 버거씨 걸려서 절단나기 싫으면 아가리 닥쳐라.
다음날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박윤철과 자릴 맞바꾸며 1군에서 말소되었다. 아니 안 그래도 혹사당해 세심한 관리 필요한 선수를 뭐 하러 올린 거여 하아...
암흑기 때 기대받으며 뼈빠지게 던졌는데 퐈보상은 올해도 못 받게 생겼다. 하아...
2019년에는 결국 정규시즌 1군 등판이 단 한 경기에 그쳤다. 5월 4일 경기에서 ⅓이닝을 던지며 3피안타 2실점을 기록했고, 평균자책점은 54.00으로 남았다. 이후 더 이상 1군 마운드에 오르지 못하면서 사실상 선수 생활의 마지막 등판이 되었다.
2018년 시즌 종료 이후 쌍둥이 아들을 얻으면서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커졌지만, 계속된 부상과 구위 저하로 이전과 같은 활약을 보여주기는 어려웠다. 특히 한화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선수였음에도 충분한 등록 일수를 채우지 못해 자유계약선수 자격을 얻지 못했다는 점도 아쉬운 부분으로 남았다.
2020 시즌: 은퇴
현역 은퇴하신다고 한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2020년에는 스프링캠프를 거치면서 구위 회복을 시도했으나 결국 1군에서 한 경기도 등판하지 못했다. 이후 7월 15일 한화 이글스 구단을 통해 공식적으로 은퇴를 발표했다.
송창식은 2004년 한화에 입단한 뒤 2008년 한 차례 선수 생활을 중단했다가 2010년 복귀했으며, 2020년까지 한화 이글스 소속으로만 활동했다. 프로 데뷔로부터 은퇴까지 17년이 흘렀지만 실제 1군 경기에서 기록을 남긴 시즌은 13시즌이다.
한화 구단은 송창식의 오랜 헌신과 공헌을 고려하여 은퇴식을 마련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일반적으로 통산 성적이 화려한 스타 선수들에게 은퇴식이 마련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송창식은 개인 성적 이상의 의미를 인정받은 선수라고 할 수 있다.
은퇴 당시 송창식은 가족들과 떨어져 생활한 시간이 많았기 때문에 앞으로는 아내와 쌍둥이 자녀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겠다는 뜻을 밝혔다. 특히 마지막까지 마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점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버거씨병이라는 치명적인 위기를 극복하고 복귀했으며, 이후 한화의 암흑기 동안 부족한 투수진을 위해 여러 보직에서 활동했다는 점에서 팬들에게는 단순한 성적 이상의 의미를 가진 선수로 남았다.
~~드디어 더 이상 감독이 부른다고 마운드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혹사 논란
세이콘이 망가뜨린 투수 박철순박정현정명원최창호김성길김현욱신윤호이동현이상훈장문석전병두정우람 송은범 이승호고효준 김광현 마데이박정진 윤규진 이태양 장민재 김민우 안영명 권혁 송창식이동걸
송창식의 선수 생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혹사 논란이다. 특히 김응용 감독 시절부터 많은 이닝을 소화했고, 김성근 감독 체제에서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불규칙한 등판이 이어지면서 팬들과 언론의 비판을 받았다.
송창식은 일반적인 불펜투수처럼 일정한 보직에 고정되기보다 경기 상황에 따라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선발투수가 조기에 강판되면 긴 이닝을 소화했고, 승부가 중요한 경기에서는 필승조로 등판했으며, 때로는 큰 점수 차이로 지고 있는 경기에서도 마운드에 올랐다.
특히 2015년 64경기 109이닝, 2016년 66경기 97⅔이닝, 2017년 63경기 73⅓이닝을 소화했다. 3년 동안 합계 193경기에서 280이닝을 던진 것으로, 불펜투수를 주로 맡았던 선수라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부담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선수 운용
김성근 감독은 승리를 위해 적극적으로 불펜을 활용하는 야구로 알려져 있었으며, 한화에서도 주축 불펜투수들을 자주 등판시키는 방식을 사용했다. 당시 팬들은 권혁, 박정진, 송창식 등 반복해서 마운드에 오르는 투수들에게 '살려조'라는 별명을 붙였다.
특히 2016년 4월 14일 두산전에서 송창식이 12실점을 하는 동안 90구를 던지게 한 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논란으로 남았다. 이미 경기의 승패가 크게 기울어진 상황에서 부진한 투수를 계속 마운드에 남겨둔 판단은 선수 보호와 경기 운영 양쪽에서 비판을 받았다.
다만 송창식의 선수 생활이 김성근 감독 부임 이후에만 어려웠던 것은 아니다. 2004년부터 부상과 질환을 겪었으며, 김응용 감독 시절에도 상당한 투구 부담을 안고 있었다. 따라서 은퇴 원인을 단순히 김성근 감독 한 사람에게만 돌리는 것은 선수의 전체 경력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해석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이미 부상 이력이 많은 선수에게 무리한 등판을 요구한 것이 적절했는지, 특히 명백하게 구위가 떨어진 상황에서 계속 투구하도록 한 판단이 정당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송창식 본인의 입장
흥미로운 점은 송창식 본인이 김성근 감독에게 공개적으로 강한 원망을 나타내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2020년 은퇴 기자회견에서 송창식은 김성근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현했으며, 당시 선수로서 많은 경기에 출전할 수 있었던 시간을 긍정적으로 회상했다. 또한 정말 힘들 때에는 감독에게 휴식을 요청했고, 실제로 며칠 쉬었던 적도 있었다고 설명했다.[5]
이는 당시 한화 팬들이 바라보았던 모습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팬들은 혹사로 인해 선수의 몸이 망가졌다고 분노했지만, 정작 당사자는 감독과 함께했던 시절을 자신의 선수 생활에서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물론 선수가 자신의 등판 경험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고 해서 투수 운용 방식에 대한 비판이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선수는 경기에 출전하고 싶어 할 수 있지만, 감독과 구단은 선수의 장기적인 건강까지 고려해야 할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팬들의 혹사 비판이 곧바로 송창식 개인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선수 본인의 인터뷰와 팬들이 평가하는 당시의 투수 기용은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혹사와 선수 보호
현대 야구에서는 투수의 부상 위험을 줄이기 위해 투구 수와 등판 간격, 구속 변화, 피로도 등을 종합적으로 관리한다. 특히 선발투수와 불펜투수는 경기 준비 과정이 다르기 때문에 보직을 자주 변경하면 충분한 회복과 준비가 어려워질 수 있다.
송창식의 경우 이미 팔꿈치 수술과 버거씨병을 경험한 선수였으며, 많은 이닝을 소화한 뒤에도 다시 연투하거나 선발로 등판하는 상황이 있었다. 이러한 운용이 선수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확히 평가하려면 의료 기록과 당시의 몸 상태를 함께 살펴봐야 한다.
다만 2016년 두산전처럼 구위가 눈에 띄게 떨어지고 대량 실점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교체를 늦춘 것은 당시에도 매우 논쟁적인 판단이었다. 송창식의 사례는 경기의 승패뿐 아니라 선수 보호가 감독의 중요한 책임이라는 점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 사건으로 평가할 수 있다.
플레이 스타일
구종과 투구 특징
송창식은 우완 정통파 투수로, 고등학교 시절에는 최고 시속 150km에 육박하는 빠른 직구를 던지는 유망주였다. 그러나 프로 데뷔 이후 팔꿈치 부상과 버거씨병을 겪으면서 구속이 떨어졌고, 복귀 이후에는 변화구와 제구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투구 스타일을 조정했다.
대표적인 구종으로는 직구와 포크볼, 커브, 슬라이더 등이 있다. 특히 포크볼은 타자의 헛스윙을 유도하거나 땅볼을 만들어내는 데 사용한 주요 변화구 가운데 하나였다. 전성기에는 공의 움직임과 제구를 활용해 타자를 상대했으며,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도 위기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다만 구위가 일정하게 유지되는 투수는 아니었으며, 구속이 떨어지거나 제구가 흔들릴 때는 장타를 허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특히 2015년에는 피홈런이 29개에 달할 정도로 많은 홈런을 허용했다.
보직
원래 선발투수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지만 복귀 이후에는 중간계투와 마무리, 임시 선발 등 여러 보직을 맡았다. 2013년에는 20세이브를 기록하면서 마무리 투수로 활약했으며, 김성근 감독 시절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의 역할이 더욱 강해졌다.
이러한 다재다능함은 팀에 도움이 되었지만 동시에 선수 본인에게는 상당한 부담이 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선발로 등판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불펜으로 다시 등판하거나, 긴 이닝을 소화한 뒤 충분한 휴식 없이 출전하는 상황은 팬들이 혹사를 우려하는 주요 원인이 되었다.
결과적으로 송창식은 특정한 역할에서 압도적인 능력을 보여준 투수라기보다, 팀이 필요로 하는 상황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한 선수에 가까웠다.
통산 성적
| 연도 | 경기 | 이닝 | 승 | 패 | 세이브 | 홀드 | 평균자책점 |
|---|---|---|---|---|---|---|---|
| 2004 | 26 | 140⅓ | 8 | 7 | 0 | 0 | 5.13 |
| 2005 | 1군 기록 없음 | ||||||
| 2006 | 21 | 17 | 0 | 0 | 0 | 1 | 5.29 |
| 2007 | 2 | 4 | 0 | 1 | 0 | 0 | 13.50 |
| 2008~2009 | 선수 생활 중단 | ||||||
| 2010 | 12 | 17⅔ | 0 | 0 | 0 | 0 | 4.08 |
| 2011 | 34 | 61 | 4 | 3 | 0 | 0 | 6.34 |
| 2012 | 47 | 74⅓ | 4 | 3 | 1 | 12 | 2.91 |
| 2013 | 57 | 71 | 4 | 6 | 20 | 0 | 3.42 |
| 2014 | 26 | 29 | 1 | 3 | 1 | 3 | 7.45 |
| 2015 | 64 | 109 | 8 | 7 | 0 | 11 | 6.44 |
| 2016 | 66 | 97⅔ | 8 | 5 | 0 | 8 | 4.98 |
| 2017 | 63 | 73⅓ | 5 | 6 | 0 | 15 | 6.63 |
| 2018 | 12 | 12⅔ | 1 | 0 | 0 | 1 | 4.97 |
| 2019 | 1 | ⅓ | 0 | 0 | 0 | 0 | 54.00 |
| 2020 | 1군 기록 없음, 은퇴 | ||||||
| 통산 | 431 | 707⅓ | 43 | 41 | 22 | 51 | 5.31 |
KBO 리그 정규시즌 기준 기록이며, 통산 탈삼진은 548개이다. 선수 생활 중단 기간을 제외하고 실제 1군 기록을 남긴 시즌은 총 13시즌이다.
성적만 보면 리그 정상급 투수라고 평가하기는 어렵지만, 부상과 질환을 극복하고 13시즌 동안 431경기에 등판했다는 점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특히 2008년 사실상 선수 생활이 끝날 위기를 겪었던 선수가 복귀한 뒤 10시즌 동안 더 활동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평가
송창식은 한화 이글스의 암흑기를 상징하는 선수 가운데 하나이다. 데뷔 초기에는 유망한 선발투수로 기대받았으나 반복된 부상과 질환으로 어려움을 겪었고, 복귀 이후에는 팀 사정으로 인해 여러 역할을 맡아야 했다.
선수 개인의 실력만 평가하면 장점과 단점이 명확했다. 전성기에는 다양한 변화구와 경험을 바탕으로 위기 상황을 막아낼 수 있었지만, 구속과 제구가 안정되지 않을 때는 장타를 많이 허용했다. 또한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기용 방식 속에서 꾸준한 성적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송창식이 팬들에게 오래 기억되는 가장 큰 이유는 통산 성적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고 마운드에 복귀했다는 사실에 있다. 버거씨병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한 뒤 다시 프로 무대에 돌아왔고, 이후 한화가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던 동안 주요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2015~2017년의 혹사 논란은 송창식이라는 선수의 이미지를 결정적으로 형성했다. 많은 한화 팬들이 송창식의 부진을 비판하면서도 동시에 충분히 쉬지 못한 채 계속 마운드에 올라야 했던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송창식 본인은 은퇴 이후 김성근 감독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밝혔지만, 당시 선수 기용에 대한 비판은 별개로 남아 있다. 선수와 감독의 관계에 대한 당사자의 평가와 투수 보호를 둘러싼 객관적인 논쟁은 서로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화 이글스가 2018년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을 때 정작 송창식은 전성기의 구위를 회복하지 못해 충분히 활약하지 못했다는 점 역시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오랜 시간 팀의 어려움을 함께한 선수가 팀이 성적을 내기 시작한 시기에 건강하게 함께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더욱 안타깝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송창식은 반드시 대단한 기록을 남긴 선수는 아니더라도 한화 팬들이 쉽게 잊지 못할 선수로 평가받는다.
~~팀이 암흑기에 빠졌을 때 가장 많이 불려 나온 선수인데, 정작 팀이 가을야구를 할 때는 건강이 허락하지 않았다.~~
여담
- 한화 이글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한 원클럽맨이다. 2008년 버거씨병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한 시기를 제외하면 프로 경력 전체를 한화와 함께했다.
- 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1라운드 전체 2순위로 한화에 입단했다. 당시 계약금은 2억원이었으며, 고졸 신인으로 상당한 기대를 받았다.
- 데뷔 시즌인 2004년에는 140⅓이닝을 던지며 8승을 기록했다. 이후 부상과 질환 때문에 성장세를 이어가지 못한 것이 아쉬운 부분이다.
- 2008년 버거씨병으로 선수 생활을 중단했지만 모교 세광고에서 코치 생활과 재활을 병행한 끝에 2010년 복귀했다. 이러한 경력 때문에 인간승리의 상징으로 불린다.
- 2011년 4월 29일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약 6년 9개월 만에 승리를 기록했다. 버거씨병을 극복한 이후 거둔 승리였기 때문에 상당한 주목을 받았다.
- 2013년에는 마무리 투수로 20세이브를 기록했다. 이는 송창식의 선수 생활에서 가장 많은 세이브를 올린 시즌이다.
- 2015년에는 64경기에서 109이닝을 던졌으며,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스윙맨으로 활동했다. 2016년에도 부상으로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음에도 66경기에서 97⅔이닝을 소화했다.
- 2016년 4월 14일 두산전에서는 4⅓이닝 90구를 던지며 12실점했다. 당시 김성근 감독의 투수 기용 방식에 대한 대표적인 비판 사례로 남아 있다.
- 권혁, 박정진과 함께 한화 이글스의 '살려조'를 대표하는 선수 가운데 하나로 거론되었다. 팬들이 투수들의 잦은 등판을 걱정하면서 붙인 별명이다.
- 2016년 시즌 종료 후 팔꿈치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후에도 선수 생활을 이어갔지만 이전과 같은 구위를 회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 2017년 연봉 2억 2천만원을 받았다. 전년도 연봉 1억 6천만원에서 37.5% 인상된 금액으로, 선수 생활 중 처음으로 연봉 2억원을 돌파했다.[6]
- 2017년 5월 21일 이승엽에게 KBO 리그 최초의 개인 통산 450호 홈런을 허용했다. 훗날까지 기록으로 남을 역사적인 홈런의 상대 투수가 된 셈이다.
- 2018년 시즌 종료 무렵 쌍둥이 아들을 얻었다. 이후 2019년에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언급하며 재기를 위해 노력했다.
- 2018년 한화 이글스가 정규시즌 3위로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지만, 송창식은 부상과 구위 저하로 1군에서 12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 2019년에는 1군에서 단 한 경기에만 등판했으며, 2020년에는 1군 경기에 출전하지 못한 채 은퇴했다.
- 은퇴 당시 통산 기록은 431경기 43승 41패 22세이브 51홀드, 평균자책점 5.31이었다. 통산 700이닝 이상을 투구했다.
- 2020년 은퇴 기자회견에서 김성근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현했다. 팬들 사이에서는 혹사 논란이 크게 일어났지만 정작 송창식 본인은 해당 시기를 긍정적으로 기억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선수로서 대기록을 남긴 것은 아니지만 한화 이글스 구단은 그동안의 헌신을 고려해 은퇴식을 마련하기로 했다. 송창식이 한화 팬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선수였는지 보여주는 사례이다.
- 별명 가운데 'The Jessica'는 이름의 영어 표기인 Chang-sik을 이용한 언어유희에서 비롯된 것으로, 팬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다.
- 같은 이름의 가수 송창식이 매우 유명하기 때문에 인명 검색에서 혼동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만화나 야구 관련 패러디에서 가수 송창식의 노래 제목을 이용한 드립이 등장하기도 한다.
- 한화 팬들에게는 화려한 개인 기록보다 병마를 극복한 재기와 오랫동안 팀을 위해 던졌던 모습으로 기억되는 선수이다. ~~야구팬들이 감독에게 제발 선수를 좀 쉬게 해달라고 빌게 만들었던 투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