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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아젠니.jpg
드와이트 데이비드 아이젠하워
Dwight David Eisenhower
국적 미국 천조국
직업 군인, 정치인
소속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1953년 1월 20일 ~ 1961년 1월 20일)

←이전 대통령다음 대통령→

정당 공화당
표방이념 기독교 민주주의

소개

I Like Ike - 대선 캠페인 당시의 아이젠하워 캠프의 선거구호

제2차 세계대전영웅이자 미국의 제34대 대통령.

2차대전 당시 연합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유럽을 나치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결정적으로 공헌한 인물이다.
소련 최고 등급의 무공훈장전승훈장을 유일하게 받은 미국의 대통령.

사관학교 시절 성적은 하위권으로 영 좋지 않았다. 100명 기준이면 한 73등? 77등? 이런 수준이었다. 전교 1등인 맥아더와 비교되었다.

ㄴ 근데 장교훈련과정은 요상한 부분이 있다. 사관학교야 전원 장기니까 드러나지 않는데 학사장교ROTC는 이상하게 상위권은 방공헌병수송부관정훈같은 기행병과로 빠진 뒤 의무복무만 하고 나가고 하위권이 죄다 보병포병으로 빠져서 그 중 일부가 장기복무한다.

군 생활 중 9년을 맥아더부관으로 있었다. 아이젠하워가 자신의 상관인 맥아더를 좋아했는지 싫어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맥아더의 경우에는 아이젠하워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필리핀 깡촌(당시 기준 미국에 비해)으로 굳이 아이젠하워를 지명해서 끌고 간 것을 보면.


당시 민주당의 지나친 독주(프랭클린 D. 루즈벨트 3선, 해리 S. 트루먼 2선)를 막기 위해 공화당 당적으로 출마했다.

방한

대한민국을 처음 방문한 미국 대통령 주인니뮤이다.

1960년 방문 당시 니뽕으로부터 한국을 해방을 시켜주시고, 한국 전쟁 때 한국을 가호하셨으며, 잿더미가 된 국토에 쇼 미더머니를 쳐주신 천조국의 최고존엄이 오시기에,

국민이 이에 감격하여 당시 인구 200만이던 서울의 길거리로 100만명의 인파가 쏟아져 나와 종족특성인 떼창을 시전함에 마음씨가 비단결 같던 아이크는 감동을 받아 눈물을 글썽였다고.

업적

대통령 시절에는 파이브스타 짬밥으로 군이 쓸데 없는 예산을 타먹으려던 시도를 전부 차단하고 그 돈을 교육과 인프라 건설에 돌림으로써 1950년대 미국을 현재를 기준으로 봐도 매우 살기 좋은 나라로 만들었다. 공화당 소속으로 대통령이 되었지만 본인이 FDR 행정부의 전시 경제 정책으로부터 수혜를 입었던 입장인 만큼 대통령 재임 중에도 뉴딜 정책을 완전히 폐기하기 보다는 보다 현실적으로 지속가능한 방향으로 개선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미국이 지금까지도 매달려 살고 있는 인터스테이트 고속도로 체계를 이 분이 완성시켰으니... 전임 대통령과 전전임 대통령의 정책과 시스템을 이어받되 그걸 보완하면서 전후 미국의 최전성기라 평가받던 1950년대 미국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그리고 리틀록 사건이라는 업적도 남겼다. 남부 리틀록에서 흑인 대학생들이 등교를 거부당하자, 101공수부대원들이 등교하는 흑인 학생들을 보호한 것. 물론 드와이트 본인이 인종차별 철폐주의자라기보단 남부 주정부 나부랭이들이 연방을 거역하는 꼴을 못 본 탓이긴 하지만, 여하튼 리틀록 사건 덕분에 흑인 민권운동이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는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서도 다루어지는 미국 현대사의 주요 장면 중 하나다.

이런 훌륭한 정책을 2010년 이후에 공약으로 내놓았으면 아마 네오콘과 티 파티로부터 좌빨이라고 욕을 먹었을 것이다. 아니, 지금도 좌빨이라고 욕을 먹고 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엄 촘스키 선생이 한 말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의 정계가 레이건과 아들 부시 이후로 융통성 없이 정체성 정치,프레임 정치가 심화 되며,얼마나 막장이 되었는지를 간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다.

ㄴ 노엄 촘스키 대표적인 극좌파 학자인 거 모르노 공화당 분열 조장하려는 정치적 의도 ㅇㅇ 버니 샌더스 따위 좌좀 홍어 쉐리가 아이젠하워한테 비비노 아이젠하워는 샌더스랑 다르게 자본주의와 대기업을 적대시한 적도 없고, 사회주의를 옹호한 적도 없다. 세금 많이 거두어서 공공 지출 대폭 늘린 것도 1950년대 당시로는 워낙 민간경제가 호황인 반면 교육이나 인프라 투자가 이에 비해 뒤쳐진 상황이라 세금 많이 걷고 지출 늘릴 여건도 충분하고 필요성도 충분하기 때문에 그랬던 거다. 지금 미국 봐라. 트럼프가 법인세 35%에서 21%로 낮추고 소득세같이 가계에서 내는 세금들도 낮추니까 미국 경제가 살아난 건데 그거 샌더스가 주장하는 것처럼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올려버리면 민간 투자랑 소비 다 얼어붙는다 이기야

당대에 매카시가 좌빨 색출한답시고 어그로 끌다가 드와이트한테까지 불똥튈 뻔한 걸 생각하면, 공화당이 먼저 매카시 안 조졌으면 진짜 좌빨 소리 나왔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임기 내에 스푸트니크 쇼크가 발생하자 외계인 고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는 DARPA와 NASA를 창설했다. 니들이 이 글을 보는 데 쓰고 있는 인터넷이란 것이 DARPA가 개발한 ARPANET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결론적으로 니들은 전부 자애로운 아이크의 은혜를 입고 있는 것이다. 이상하게 언급이 자주 안되는데 똑똑히 기억하자.

정말 많은 걸 한 위대한 인물이지만 나는 귀찮아서 여기까지만 쓰겠다.

ㄴ 디시위키치고 충분히 많이썼다 ㅇㅇ

한국 입장에서도 한국전쟁 당시 남한을 지원한 영웅이지만, 동남아나 중남미에서는 그저 무력으로 독재 정권을 지원해 국민들을 학살한 씨발새끼다. 인도차이나 공산정권이 꼴뵈기 싫어서 식민정권들을 밀어주다 동남아인들 많이 죽게 했고, CIA를 내세워 과테말라 군부를 지원했다. 특히 과테말라에서는 군부의 쿠데타로 2달만에 8천여 명의 노동자와 농민들이 잔인하게 몰살당했다. 또 보수적 역사가 중에서도 케네디와 더불어 베트남 개입의 불씨가 될 동남아 반공정책의 책임을 묻는 경우도 많다.

심슨가족 에이브 할배가 이 사람을 지지한다.

군인 시절

아이젠하워가 명장으로 불리는 이유를 단순히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지휘해서"라고 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이 양반의 진짜 사기 스탯은 전술 천재라기보다는 성질머리 하나같이 개같은 연합군 장성들을 한 방에 모아놓고 싸움 안 나게 굴리는 능력이었다. 당장 주변만 봐도 버나드 몽고메리는 자존심이 존나 세고, 조지 패튼은 입만 열면 사고치고, 샤를 드골은 프랑스 자존심 챙기느라 계속 삐지고, 영국군과 미군은 서로 자기네가 더 잘났다고 으르렁댔다. 여기에 각국 정부의 정치적 요구까지 다 들어오니 최고사령관 자리가 겉으로는 별 다섯 개 달고 폼 잡는 자리 같아도 실상은 국제연합 프로젝트 PM + 정치인 + 군인 + 유치원 교사를 한 몸에 해야 하는 개헬보직이었다. 아이젠하워는 여기서 특정 장군 편을 노골적으로 들기보다는 계속 중재하고, 각국의 체면을 적당히 세워주고, 전체 작전이 굴러가게 만드는 데 특출난 능력을 보였다. 그래서 전투 하나를 보고 "아이젠하워가 전술적으로 천재였다"라고 평가하기보다는, 연합군이라는 거대한 조직 자체를 작동시킨 능력이 그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쉽게 말하면

몽고메리 : 내 계획이 맞다.
패튼 : 닥쳐라 영국놈아 내가 베를린까지 간다.
드골 : 프랑스의 명예는 어디 갔는가?
처칠 : 영국의 국익도 챙겨주세요.
루즈벨트 : 미국 정치도 생각해야지.

아이젠하워 : 아 씨발 일단 다 앉아봐.

이걸 몇 년 동안 해낸 인간이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이었으며, 실제 상륙 개시 여부를 최종적으로 승인한 것도 아이젠하워였다. 당시 기상 상태가 개판이라 작전을 연기할지 강행할지를 두고 고민이 컸는데, 결국 짧게 열린 기상 호전을 믿고 6월 6일 작전을 강행했다. 그리고 만약 작전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실패의 책임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있다는 내용의 발표문까지 미리 써놨다. 보통 높은 놈들은 일이 망하면

현장 판단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면서 밑에 놈 목부터 날리는데, 이 양반은 반대로

병사들은 최선을 다했다. 실패했다면 책임은 내 것이다.

를 준비해놓은 셈이다. 이 문서는 실제로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유는 간단하다. 작전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으로서

아이젠하워는 공화당 대통령이었지만 요즘 미국 정치 기준으로 보면 꽤나 실용주의적인 중도보수에 가까웠다. 뉴딜을 모조리 뒤엎지도 않았고 사회보장제도를 유지했으며, 연방정부가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하는 데에도 거리낌이 없었다. 가장 유명한 것이 인터스테이트 하이웨이 체계다. 미국 전역을 연결하는 고속도로망을 대규모로 건설했는데, 아이젠하워 본인이 군인이던 시절 미국을 횡단하는 군 수송이 얼마나 좆같이 느린지 직접 체험한 적이 있었고,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아우토반 체계도 봤기 때문에 도로망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덕분에 미국은 물류, 통근, 군사 이동, 교외 개발이 전부 폭발적으로 성장했고, 지금도 미국인들이 인터스테이트 없으면 생활 자체가 안 돌아갈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까 미국인이 오늘날

I-5 타고 출근해야지.
I-95 타고 뉴욕 가야지.

하고 있는 것도 어느 정도는 아이크의 유산이다.

군산복합체

아이젠하워가 대통령에서 물러날 때 남긴 가장 유명한 경고 중 하나가 군산복합체(Military-Industrial Complex)다. 웃긴 점은 이 말을 한 사람이 어디 반전운동가나 히피가 아니라 미 육군 원수 출신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아이젠하워는 냉전 때문에 강력한 군사력이 필요하다는 점 자체는 인정했지만, 군대와 방산업체, 정치권이 서로 이해관계로 엮여서 필요 이상으로 무기를 만들고 예산을 끌어가는 구조가 민주주의를 잠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쉽게 말하면

나 군인 출신이라 이 새끼들 어떻게 예산 뜯어가는지 다 안다. 조심해라.

라는 말이다. 그리고 수십 년 뒤 미국 국방예산을 보면 아이크 : 내가 뭐랬냐. 가 되어버렸다.

핵무기와 냉전

아이젠하워는 군 출신답게 무조건 병력을 늘려 소련과 맞붙기보다는, 오히려 재래식 군비를 지나치게 확대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핵무기를 통한 억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를 흔히 뉴 룩(New Look) 전략이라고 하는데, 대규모 재래식 군대를 계속 유지하면 돈이 너무 많이 드니 핵전력을 강화해서 소련을 억제하고 필요할 경우 압도적인 보복을 가한다는 발상이었다. 말만 들으면

군비 줄이겠습니다.

인데 실제 내용은

대신 핵폭탄 존나 많이 만들겠습니다.

에 가까웠다. 덕분에 재임 기간 동안 미소 간 직접적인 전면전은 피했지만 핵전쟁 위험은 계속 커졌고, 냉전 특유의 미친 군비경쟁도 본격적으로 굳어졌다.

우주개발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미국 사회가

소련놈들이 우리보다 먼저 우주 갔다!!! 미국 망했다!!!

하고 집단 패닉에 빠지자 아이젠하워 정부는 과학기술과 우주개발에 대한 투자를 크게 늘렸다. 이 과정에서 1958년 NASA가 창설되었고 같은 해 DARPA의 전신인 ARPA도 만들어졌다. 따라서 우주개발, 첨단 군사기술, 컴퓨터 네트워크의 발전을 거슬러 올라가면 아이젠하워 행정부가 상당히 중요한 위치에 나온다. 다만 아이젠하워 본인은 처음부터 우주에 환장한 사람이 아니라, 소련에게 기술력에서 밀린다는 정치적 충격 때문에 움직인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소련이 위성을 하나 쏘니까 미국에서 NASA와 ARPA가 튀어나왔다. 냉전이 과학기술 발전에 얼마나 미친 연료였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민권운동

아이젠하워는 흑인 민권운동을 적극적으로 이끈 대통령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개인적으로도 인종 문제에 대해 오늘날 기준으로 진보적인 인물은 아니었고, 남부의 반발을 자극하는 것도 상당히 꺼렸다. 하지만 연방정부의 권위에 대놓고 도전하는 것은 더 싫어했다. 1957년 리틀록에서 아칸소 주정부가 연방 대법원의 학교 인종분리 철폐 판결을 사실상 씹고 흑인 학생들의 등교를 막자, 아이젠하워는 결국 연방군을 투입해서 학생들을 보호했다. 이때 투입된 부대가 제101공수사단이다. 남부 주정부:

흑인은 학교 못 들어온다.

아이젠하워:

연방정부 명령인데?

남부:

그래도 안 됨.

아이젠하워:

101공수 보내.

말 안 들으니까 공수사단이 학교 앞에 서는 나라. 본인의 동기가 순수한 인종평등주의였든 연방권력 수호였든 결과적으로는 미국 민권운동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되었다.

CIA와 어두운 면

문제는 해외로 나가면 얘기가 존나 달라진다는 것이다. 아이젠하워 행정부는 냉전 시기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 아래 CIA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친미 정권을 세우기 위해 다른 나라 정치에 개입하는 일을 여러 번 벌였다. 대표적으로 1953년 이란에서 모하마드 모사데그 정부를 무너뜨린 쿠데타에 미국과 영국 정보기관이 개입했고, 1954년에는 과테말라의 하코보 아르벤스 정부를 전복하는 작전도 진행했다. 당시 미국 입장에서는

공산주의 퍼지기 전에 막는다.

였지만 현지 주민들 입장에서는

왜 미국이 우리 대통령을 갈아치우냐?

였다. 특히 과테말라는 이후 장기간 군사독재와 내전에 빠졌고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아이젠하워 정부의 중남미 정책은 지금까지도 강하게 비판받는다. 한국이나 서유럽에서는 공산주의를 막아준 자유세계의 영웅 으로 보일 수 있지만 중남미나 중동 일부 국가에서 보면 CIA 보내서 우리나라 뒤집어놓은 미국 대통령 이 되는 이유다.

베트남

베트남 전쟁도 아이젠하워와 완전히 무관하다고 할 수 없다. 프랑스가 디엔비엔푸 전투에서 패배하고 인도차이나에서 철수한 뒤 미국은 남베트남의 응오딘지엠 정부를 지원했고, 군사고문과 경제원조를 늘리면서 점점 깊게 개입하기 시작했다. 아이젠하워는 동남아시아 국가 하나가 공산화되면 주변 국가들도 차례로 공산화될 수 있다는 이른바 도미노 이론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대통령이기도 했다. 다만 본격적으로 수십만 명의 미군을 집어넣은 것은 후임 린든 B. 존슨 시기였기 때문에 베트남 전쟁을 전부 아이젠하워 책임이라고 하는 것도 과장이고, 그렇다고

나는 아무것도 안 했는데요?

라고 하기에도 이미 기반을 꽤 많이 깔아놓았다. 불은 뒤에 크게 났지만 장작은 어느 정도 쌓아놨다.

맥아더와의 관계

더글러스 맥아더 밑에서 오래 근무했지만 두 사람의 관계는 시간이 갈수록 상당히 미묘해졌다. 맥아더는 아이젠하워를 능력 있는 참모로 높게 평가했지만, 아이젠하워는 맥아더의 지나친 자기과시와 정치적 행동을 좋게 보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필리핀 시절 맥아더 밑에서 오랫동안 일하면서 그의 장단점을 아주 가까이서 봤기 때문에 나중에는 상당히 냉소적인 평가를 남기기도 했다. 재밌는 것은 군 경력 초반에는 맥아더 밑에서 일하던 듣보잡 참모 였던 아이젠하워가 결국 2차대전 연합군 최고사령관이 되고 나중에는 대통령까지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맥아더는 대통령이 못 됐다. 최종 승진전은 부하가 이겼다.

평가

아이젠하워는 재임 당시에는 너무 조용하고 별 특징 없는 대통령이라는 평가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평가가 상당히 올라간 인물이다. 전후 호황기 미국 경제를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했고, 뉴딜 체제를 전부 뒤엎지 않았으며, 대규모 인프라를 건설했고, 냉전 중에도 미소 직접전쟁을 피했다. 동시에 군인 출신임에도 과도한 국방비와 군산복합체를 경계했다는 점도 높게 평가받는다. 반대로 해외정책에서는 CIA를 이용한 쿠데타 개입, 친미 독재정권 지원, 베트남 개입 확대 등 훗날 미국이 존나게 고생하게 될 문제의 씨앗을 여러 개 심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을 한 줄로 요약하면

미국 국내에서는 존나 잘했고, 해외에서는 이것저것 많이 건드렸다.

정도가 적당하다. 빛과 어둠 둘 다 존나 큰 대통령.

기타

애칭은 아이크(Ike)이며 선거구호 I Like Ike는 미국 정치사에서 가장 유명한 선거 슬로건 중 하나다. 육군 원수 계급인 General of the Army까지 올라간 뒤 대통령이 된 인물이다. 골프를 존나 좋아했다. 재임 중에도 자주 쳤고 백악관에 퍼팅 그린까지 만들었다.

요리에도 관심이 많았으며 직접 요리하는 것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원문 위의

경고. 이 문서는 요리를 존나 잘하는 갓-요리사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부디 이 요리사들의 심기를 건드려 요리사분의 식재료가 되지 않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미 늦었군요, 너님의 띵복을 액션빔.

도 완전히 뜬금없는 틀은 아니다.

원래 이름은 David Dwight Eisenhower였는데 웨스트포인트 입학 과정에서 Dwight David Eisenhower로 기록되면서 이후 그 이름을 사용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미국은 한국전쟁 휴전, 수에즈 위기, 스푸트니크 쇼크, 쿠바 혁명 등 냉전사의 굵직한 사건을 계속 겪었다. 퇴임 뒤에도 미국에서 인기가 상당히 높았으며, 오늘날 대통령 평가 조사에서도 상위권에 자주 들어가는 편이다. 미국의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 USS Dwight D. Eisenhower가 이 사람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같이 보기




미국(USA)의 현임 대통령
조 바이든
Joseph Robinette Biden Jr.
(제46대 대통령)
2021.01.20~2025.01.20


천조국의 역대 주인니뮤 (제 31대 ~ 40대)
역대 취임연도 이름 영어 이름 정당
제 31대 1929년 3월 4일 ~ 1933년 3월 4일 허버트 후버 Herbert Hoover 공화당
제 32대 1933년 3월 4일 ~ 1945년 4월 12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Franklin D. Roosevelt 민주당
제 33대 1945년 4월 12일 ~ 1953년 3월 4일 해리 S. 트루먼 Harry S. Truman 민주당
제 34대 1953년 3월 4일 ~ 1961년 1월 20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Dwight D. Eisenhower 공화당
제 35대 1961년 1월 20일 ~ 1963년 11월 22일 존 F. 케네디 John F. kannedy 민주당
제 36대 1963년 11월 22일 ~ 1969년 1월 20일 린든 B. 존슨 Lyndon B. Johnson 민주당
제 37대 1969년 1월 20일 ~ 1974년 8월 9일(사퇴) 리처드 닉슨 Rechard Nixon 공화당
제 38대 1974년 3월 4일 ~ 1977년 1월 20일 제럴드 포드 Gerald Ford 공화당
제 39대 1977년 1월 20일 ~ 1981년 1월 20일 지미 카터 Jimmy Carter 민주당
제 40대 1981년 1월 20일 ~ 1989년 1월 20일 로널드 레이건 Ronald Reagan 공화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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