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사 History of Yuan | |
|---|---|
| 언어 | 한문 |
| 분류 | 24사 |
| 저자 | 송렴, 왕의(王禕) 등 |
| 분량 | 210권 |
| 관련 역사서 | 《신원사》 |
개요
원사(元史)는 중국 정사인 24사 중 하나로, 몽골 제국과 원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기전체 역사서이다.
명나라 초대 황제 주원장의 명령으로 송렴과 왕의(王禕) 등이 편찬했으며, 1370년에 완성되었다.
총 21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한 1206년부터 원나라 마지막 황제인 원 순제가 사망한 1370년까지의 역사를 주로 다룬다.
그런데 이 책은 진서, 요사와 함께 편찬 상태가 좆같은 역사서로 악명이 높다.
오류와 중복 서술, 누락이 상당하고 몽골인과 그들의 관직·인명·지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편찬 기간이 고작 331일이었다는 사실이 유명하다.
210권짜리 역사서를 1년도 안 되는 기간에 만들어버린 것이다.
ㄴ 210권을 331일 만에 완성했으면 하루에 평균 0.63권씩 만들어낸 셈이다.
ㄴ 물론 여러 명이 분업해서 편찬했지만 그래도 존나 빠르다.
문제는 이렇게 급하게 완성한 책이 무려 중국의 정사인 24사에 포함되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후대의 역사학자들은 원나라 역사를 연구할 때마다 《원사》의 오류와 싸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조건 쓰레기 취급하기에도 곤란하다.
원나라의 공식 기록 가운데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 자료가 《원사》에 대량으로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다.
내용은 엉성한데 안 보면 안 되는 역사서.
이것이 《원사》의 가장 큰 특징이다.
편찬
명나라의 원나라 멸망
같은 해 명나라 군대가 원나라의 수도 대도를 점령하자 원 순제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이 사건을 일반적으로 중국 본토에 대한 원나라의 지배가 끝난 시점으로 본다.
중국의 전통적인 역사서 편찬 관례에 따르면 새로운 왕조는 이전 왕조의 역사를 정리하는 정사를 편찬했다.
당나라의 《수서》나 원나라의 《송사》 등이 이러한 전통에 따라 제작되었다.
명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다.
주원장은 원나라를 멸망시킨 뒤 곧바로 원나라의 공식 역사서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때 명나라 군대가 대도에서 확보한 원나라의 역사 기록들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었다.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원나라가 아직 완전히 멸망한 것이 아니었다.
원 순제는 대도를 포기했지만 황제의 지위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북쪽으로 도망친 뒤에도 원나라 황제로 활동하고 있었다.
그런데 명나라는 벌써 원나라가 끝난 왕조인 것처럼 역사서를 편찬하기 시작한 것이다.
ㄴ 아직 전직 황제가 살아 있는데 전직 왕조의 역사책을 쓰고 있다.
ㄴ 심지어 그 황제는 북쪽에서 여전히 군대를 지휘하고 있었다.
1차 편찬
1369년 명나라 정부는 본격적으로 《원사》를 편찬하기 시작했다.
당시 좌승상이었던 이선장이 편찬을 감독했다.
실제 편찬 작업은 송렴과 왕의(王禕)가 총괄했다.
그 외에도 여러 학자들이 참여했다.
원문에는 이선장이 1368년부터 1369년까지 직접 집필했다고 되어 있었지만, 정확히는 이선장이 편찬 감독을 맡았고 송렴 등이 실무를 주도했다.
1369년 2월 명나라의 수도 응천부에 있는 천계사에서 편찬 작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불과 188일 만에 1차 편찬을 마쳤다.
기록에 따르면 첫 번째 편찬에서 본기 37권, 지 53권, 표 6권, 열전 63권을 작성했다.
총 159권에 해당한다.
그런데 너무 급하게 만들었는지 원 순제 시기의 기록이 부족했다.
당연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원 순제는 1333년 황제에 즉위해 1370년까지 생존한 인물이다.
그러나 1차 편찬에 사용할 수 있는 그의 재위 기간 자료는 충분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당시에는 원나라 잔존 세력이 북쪽에서 명나라에 저항하고 있었다.
결국 명나라 정부는 부족한 기록을 더 수집하기로 했다.
2차 편찬
1370년 2월 명나라는 다시 역사서 편찬 작업을 시작했다.
이번에도 송렴과 왕의 등이 편찬을 주도했다.
주로 원 순제 시기의 부족한 기록을 보충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추가로 본기 10권, 지 5권, 표 2권, 열전 36권을 편찬했다.
이후 1차 편찬 결과와 합쳐 전체 210권으로 정리했다.
2차 편찬에 걸린 기간은 143일이었다.
따라서 실제 편찬 작업에 투입된 기간은 다음과 같다.
- 1차 편찬 - 188일
- 2차 편찬 - 143일
- 합계 - 331일
1370년 7월 최종 완성되었다.
중국 역대 정사 가운데서도 매우 빠른 속도로 완성된 역사서였다.
그런데 빠르게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보다 더 큰 문제는 그 속도 때문에 발생한 오류와 누락이었다.
ㄴ 역사책을 만드는 게 아니라 납기일 맞추려고 보고서를 찍어낸 것 같다.
명나라의 정치적 의도
당시 명나라는 원나라를 몰아내고 새 왕조를 세운 상태였다.
따라서 명나라 입장에서는 이전 왕조가 왜 몰락했는지 설명하고 자신들의 통치 정당성을 확립할 필요가 있었다.
주원장은 역사서 편찬 과정에서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고 장점과 단점을 숨기지 말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새 왕조가 이전 왕조의 역사를 편찬한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원문에서는 명나라 사관들이 원나라에 쌓인 게 존나게 많아서 악담이란 악담을 다 적어놨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원사》 전체가 원나라에 대한 악담으로 채워졌다는 주장은 정확하지 않다.
오히려 《원사》는 원나라의 공식 기록들을 비교적 그대로 옮긴 부분이 많다.
또 다른 정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관의 논평인 '논찬(論贊)'이 거의 없다는 특징도 있다.
따라서 《원사》의 가장 큰 문제는 무조건적인 원나라 비난보다는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급하게 편찬한 것에 가깝다.
물론 편찬 주체가 명나라였다는 점을 고려해 기록의 정치적 배경을 비판적으로 살펴볼 필요는 있다.
특징
편찬 속도
가장 큰 문제는 역시 편찬 속도다.
원나라가 중국을 지배한 기간만 해도 약 100년이다.
여기에 칭기즈 칸이 몽골 제국을 건국한 1206년부터의 역사까지 다룬다.
즉 160년이 넘는 역사를 기록한 것이다.
그런데 이 방대한 역사를 정리하는 데 실제로 걸린 기간이 고작 331일이었다.
그 결과 이미 존재하던 기록을 깊이 검토하거나 서로 비교하지 않고 가져다 사용한 부분이 많았다.
물론 국가에서 편찬 인력을 동원했기 때문에 혼자서 210권을 작성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동시에 편찬하면 오히려 서술 방식이나 용어가 통일되지 않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원사》에서는 실제로 이러한 문제가 발견된다.
인명과 지명 오류
원나라는 몽골인이 세운 국가였기 때문에 중국식 이름뿐 아니라 몽골어와 여러 중앙아시아 언어에서 유래한 인명·지명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데 명나라의 사관들이 이러한 이름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경우가 있었다.
같은 사람의 이름이 서로 다른 한자로 기록되거나 한 사람을 별개의 인물로 착각하는 사례가 발생했다.
어떤 경우에는 동일한 인물의 열전이 중복으로 수록되기도 했다.
원문에 실린 몽골어 인명의 한자 음차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이러한 문제는 후대 학자들이 《원사》를 비판한 대표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다.
중복 서술
같은 사건을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서술하는 문제도 있다.
특히 기존 자료들을 충분히 통합하지 않은 상태에서 편찬하면서 앞뒤 내용이 서로 맞지 않는 사례가 나타났다.
어떤 인물의 행적이 서로 다른 열전에 반복되기도 하고, 특정 사건의 연도와 경위가 다른 부분도 존재한다.
이 때문에 《원사》만 읽으면 같은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한 것처럼 오해할 가능성이 있다.
ㄴ 한 사람이 두 번 등장한다고 분신술을 사용한 게 아니다.
ㄴ 역사서 편찬하면서 중복 제거를 안 한 것이다.
연대 오류
일부 기록에는 사건의 발생 연도가 잘못 기재되어 있다.
대표적으로 인물 열전의 사건 연대가 60년이나 어긋난 사례가 지적되기도 한다.
또 황제와 인물의 활동 시기를 혼동하는 문제도 존재한다.
이러한 오류는 단순한 오탈자보다 심각하다.
역사학자는 사건의 선후관계를 통해 원인과 결과를 설명해야 하는데 연도가 잘못 기록되어 있으면 역사적 사건 자체를 잘못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원사》를 연구할 때는 다른 기록과 교차 검증하는 작업이 중요하다.
누락된 내용
《원사》에는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이 제대로 기록되지 않은 사례도 있다.
특히 몽골 제국의 초기 역사와 여러 칸국의 활동이 충분히 서술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다.
몽골 제국은 유라시아 대륙의 광대한 지역을 정복했지만 《원사》는 주로 중국을 지배한 원나라의 역사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킵차크 칸국, 일 칸국, 차가타이 칸국 등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칭기즈 칸과 후계자들의 서방 원정 역시 몽골 제국 전체의 역사에 비해 간략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러한 점에서 《원사》는 몽골 제국의 완전한 통사라기보다 원나라 왕조를 중심으로 편찬된 중국 정사에 가깝다.
북원과의 관계
이 책이 완성될 당시 원나라는 아직 북쪽에서 살아 있었다.
1368년 명나라가 대도를 점령한 뒤 원 순제는 북쪽으로 도망쳤다.
이후 몽골 고원과 그 주변 지역에서 원나라의 황제 계통이 이어졌다.
이를 일반적으로 북원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원사》는 1370년에 완성되었다.
그리고 역사서에 기록된 마지막 황제인 원 순제 역시 1370년에 사망했다.
그러니까 원나라의 후계 왕조가 계속 존재하는 상황에서 역사서를 완성한 것이다.
1368년이냐 1370년이냐
원나라가 멸망한 시점을 설명할 때는 두 가지 연도가 자주 등장한다.
- 1368년 - 명나라가 대도를 점령하면서 원나라의 중국 본토 지배가 끝남
- 1370년 - 북쪽으로 도망친 원 순제가 사망함
1368년을 원나라 멸망 연도로 보는 것은 중국 본토에서의 왕조 교체를 기준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몽골 제국 황실의 계승 자체가 이때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원 순제가 사망한 뒤에는 아들인 아유시리다라가 황제 지위를 계승했다.
따라서 《원사》의 기록 범위가 1370년까지 이어진다고 해서 북원의 모든 역사를 기록한 것은 아니다.
1388년 문제
원문에는 북원이 1388년에 멸망했다고 서술되어 있었다.
1388년에는 북원의 황제 토구스 테무르가 명나라 군대에 패배한 뒤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북원 세력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래서 1388년을 북원의 중요한 단절 시점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몽골 고원에서 칭기즈 칸 계통의 대칸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1388년 이후에도 몽골의 여러 세력이 대칸의 지위를 둘러싸고 경쟁했다.
또 '북원'이라는 명칭을 어느 시기까지 적용할지도 역사학자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일부는 1388년이나 1402년을 기준으로 삼고, 일부는 이후 몽골 대칸 체제까지 넓게 포함한다.
따라서 북원이 1388년에 완전히 사라졌다고 단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1634년과 1924년
원문에는 북원 이후 몽골 대칸의 계통이 1634년까지 이어졌으며, 대칸 계승의식은 1924년에야 사라졌다고 설명되어 있었다.
1634년에는 몽골 차하르부의 지배자였던 릭단 칸이 사망했다.
릭단 칸은 칭기즈 칸 계통의 대칸 권위를 계승한 중요한 인물이다.
그의 사망과 이후 후금에 대한 차하르 세력의 복속은 몽골 대칸 체제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다.
다만 1924년은 별개의 역사적 사건이다.
1924년에는 몽골의 군주였던 복드 칸이 사망했고 몽골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복드 칸은 종교적 지도자 출신의 군주였으며, 원나라 황실의 대칸 지위를 그대로 계승한 인물이 아니다.
따라서 1924년까지 원나라의 대칸 계승의식이 이어졌다고 설명하면 서로 다른 몽골의 군주제를 혼동하게 된다.
원사의 한계
《원사》가 완성된 1370년에는 북원의 후속 역사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다.
따라서 편찬자들이 그 이후 역사를 기록하지 못한 것은 당연하다.
이 부분은 단순히 편찬을 잘못했기 때문에 생긴 문제가 아니다.
역사서가 너무 이른 시점에 작성되면서 기록 대상 왕조의 후속 역사가 빠져버린 것이다.
ㄴ 아직 역사 끝나지도 않았는데 역사책부터 완성해버렸다.
ㄴ 원나라 입장에서는 자기네가 아직 살아 있는데 옆 나라가 멋대로 부고를 써버린 셈이다.
사료적 가치
그런데 《원사》가 단순한 불쏘시개라면 역사학자들이 지금까지 이 책을 사용할 이유가 없다.
실제로 《원사》는 원나라 역사를 연구할 때 매우 중요한 자료다.
그 이유는 편찬 당시 사용했던 원나라의 공식 기록 가운데 상당수가 현재 소실되었기 때문이다.
원나라의 공식 기록
명나라가 원나라의 수도를 점령하면서 확보한 자료 가운데는 황제들의 행적을 기록한 실록과 여러 행정문서가 있었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기록들이 사용되었다.
- 《원십삼조실록》(元十三朝實錄)
- 《경세대전》(經世大典)
- 황실과 관료에 관한 기록
- 비문과 인물 전기
- 행정제도 관련 문서
《원십삼조실록》과 《경세대전》의 상당 부분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원사》는 이러한 기록의 내용을 대량으로 옮겨 적었다.
따라서 《원사》에는 오늘날 다른 곳에서 확인하기 어려운 원나라의 행정과 정치에 관한 정보가 남아 있다.
특히 본기와 지, 표에 수록된 내용은 역사학적으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자료를 그대로 옮긴 것이 장점?
원래 역사서는 여러 자료를 비교하고 정리하여 일관성 있는 설명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원사》는 너무 급하게 만들어서 자료를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가져다 사용한 부분이 많다.
당연히 이는 편찬상의 문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분에 원래 자료의 표현이 비교적 많이 남아 있다.
즉 편찬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일부 사료를 보존하는 데 도움이 된 셈이다.
다만 편찬자들이 원문을 임의로 축약하거나 잘라 붙인 경우도 있으므로 모든 문장을 원래 자료 그대로라고 볼 수는 없다.
ㄴ 역사서로서는 불완전한데 사료 보존창고로서는 쓸모가 있다.
ㄴ 편집을 대충 해서 원본이 보존됐다는 기묘한 장점.
모두 소실된 것은 아니다
원문에는 원나라의 1차 사료가 모두 소실되었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과 다르다.
원나라의 공식 실록과 일부 국가 편찬 자료가 소실되었을 뿐, 원나라 시대의 문헌과 비문, 행정문서가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원전장》(元典章)과 여러 법률·행정 관련 자료, 묘지명, 비문 등이 남아 있다.
또 몽골비사와 페르시아어로 작성된 《집사》(集史) 같은 기록도 몽골 제국 연구에 활용된다.
따라서 《원사》만으로 원나라의 역사를 복원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 역사학자들은 여러 언어로 작성된 자료를 비교하여 《원사》의 오류를 보완하고 있다.
신원사
《원사》의 오류가 많다 보니 후대에는 이를 다시 작성하려는 시도가 계속되었다.
특히 청나라 시기에는 원나라와 몽골 제국의 역사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졌다.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작성된 몽골 제국 관련 자료도 점차 알려졌다.
이런 연구를 바탕으로 새로운 원나라 역사서가 제작되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신원사》(新元史)다.
편찬
《신원사》는 청나라 말기와 중화민국 시기의 역사학자 커사오민(柯劭忞)이 편찬했다.
커사오민은 수십 년에 걸쳐 기존 《원사》의 내용을 정리하고 여러 자료를 추가했다.
1920년 무렵 편찬이 이루어졌으며 이후 수정과 간행 작업이 계속되었다.
1921년에는 중화민국 정부에 의해 정사로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기존 24사에 《신원사》를 추가해 25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전통적인 24사에는 여전히 《원사》가 포함되어 있고 《신원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구성
《신원사》는 총 257권이다.
- 본기 - 26권
- 표 - 7권
- 지 - 70권
- 열전 - 154권
기존 《원사》의 210권보다 분량이 늘어났다.
커사오민은 원나라와 몽골 제국의 역사를 더욱 체계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새로운 자료와 연구성과를 반영했다.
특히 기존 《원사》에서 빠진 인물과 사건을 보충했다.
또 몽골 제국 초기의 역사를 설명하는 서기(序紀)를 추가했다.
다만 《신원사》 역시 완벽한 역사서는 아니다.
사용한 자료의 출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은 부분이 있으며, 기존 《원사》의 오류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북원 역사
원문에는 《신원사》가 1388년까지의 북원 역사를 새로 작성했다고 되어 있었다.
하지만 《신원사》가 북원의 역사를 1388년까지 모두 체계적으로 기록한 것은 아니다.
《신원사》의 마지막 본기인 제26권에는 원 혜종과 그의 후계자인 원 소종의 행적이 수록되어 있다.
원 소종은 1370년부터 1378년까지 재위한 인물이다.
따라서 기존 《원사》보다 원나라 황실의 후속 역사를 일부 더 다루지만, 1388년까지의 모든 북원 역사를 완전히 정리한 것은 아니다.
특히 원 소종 이후의 몽골 대칸들과 명나라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다른 자료도 함께 살펴보아야 한다.
원사와 신원사 비교
| 구분 | 《원사》 | 《신원사》 |
|---|---|---|
| 편찬 시기 | 1369~1370년 | 청말~중화민국 시기 |
| 편찬 국가 | 명나라 | 중화민국 성립 전후 |
| 주요 편찬자 | 송렴, 왕의 등 | 커사오민 |
| 분량 | 210권 | 257권 |
| 본기 | 47권 | 26권 |
| 지 | 58권 | 70권 |
| 표 | 8권 | 7권 |
| 열전 | 97권 | 154권 |
| 특징 | 원나라 공식 자료를 대량 보존 | 후대 연구성과를 이용해 수정·증보 |
| 주요 문제 | 성급한 편찬, 오류와 중복 | 출처 표기 부족, 일부 오류 잔존 |
둘 다 장점과 단점이 있다.
《원사》는 편찬이 엉성하지만 원나라의 공식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신원사》는 후대의 연구성과를 반영했지만 기존 《원사》를 완전히 대체하지 못했다.
따라서 원나라 역사를 연구할 때는 두 책을 비교해 활용하는 것이 좋다.
구분
《원사》는 총 210권으로 다음과 같이 구성된다.
본기
47권
황제들의 행적을 기록한 부분이다.
특히 쿠빌라이 칸의 행적을 다룬 세조 본기는 총 14권에 달한다.
반면 초기 몽골 제국의 여러 대칸에 관한 기록은 상대적으로 짧다.
기록 분량이 지나치게 불균형하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지
58권
원나라의 제도와 사회, 경제, 행정 등을 기록한 부분이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포함된다.
- 천문과 역법
- 지리와 행정구역
- 제사와 예악
- 관직제도
- 인재 선발과 과거제도
- 식량과 재정
- 군사제도
- 형벌과 법률
- 하천과 수리사업
특히 원나라의 행정제도와 사회경제사를 연구할 때 중요한 자료다.
표
8권
황실 계보와 주요 관료의 재임기간 등을 정리한 부분이다.
본기와 열전만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인물관계와 정치적 변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열전 ===
97권
원나라에서 활동한 주요 인물들의 전기다.
정치가와 장군, 학자, 관료, 종교인 등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다만 인물의 행적이 중복되거나 기록이 누락된 사례도 있다.
일부 인물의 출신과 관직, 사망 시기 등이 다른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 문제도 발견된다.
또 종교인에 관한 석로전(釋老傳) 등이 수록되어 원나라의 종교정책과 사회적 특징을 파악하는 데 도움을 준다.
평가
중국 정사 가운데 편찬 상태가 가장 좋지 않은 축에 속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210권을 331일 만에 편찬했으니 오류가 많은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청나라의 역사학자 전대흔(錢大昕) 등은 《원사》의 성급한 편찬과 부실한 서술을 강하게 비판했다.
현대 역사학계에서도 동일한 인물이 두 차례 등장하거나 사건의 시기와 내용이 어긋나는 등 여러 문제를 지적한다.
하지만 《원사》가 무가치한 역사서라고 보지는 않는다.
특히 소실된 원나라의 공식 기록을 보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사료적 가치가 높은 본기와 지, 표가 상당한 분량을 차지한다.
원나라의 행정과 군사제도, 경제, 관료제 등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참고해야 하는 자료다.
따라서 《원사》에 대한 평가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 편찬 완성도 - 낮은 편이다.
- 오류와 중복 - 상당히 많다.
- 사료 보존 가치 - 매우 높다.
- 원나라 연구에서의 중요성 - 지금도 크다.
즉 제대로 다듬지 않은 초고에 가까운 부분이 많지만, 그 안에 현대에는 소실된 귀중한 원나라 기록들이 들어 있는 것이다.
불쏘시개라고 욕하면서도 버릴 수 없는 역사서다.
여담
- 명나라가 건국된 직후인 1369년부터 편찬되었다.
- 총 210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 실제 편찬기간은 두 차례 합계 331일이다.
- 《원사》는 24사 가운데 하나다.
- 원나라 황실의 행적을 기록한 본기는 47권이다.
- 1370년에 완성되었지만 당시 북원은 여전히 존재했다.
- 북원의 존속기간은 역사학자마다 구분 기준이 다르므로 1388년이나 1402년을 절대적인 종말 시점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 편찬 당시 사용했던 원나라의 공식 기록 가운데 상당수가 오늘날 소실되었다.
- 오류가 많다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원나라 연구의 중요한 기본 사료로 활용된다.
- 청말~중화민국 시기에는 커사오민이 《신원사》를 편찬했다.
- 《신원사》는 총 257권으로 기존 《원사》보다 분량이 많다.
결론
원나라가 아직 완전히 멸망하지도 않았는데 명나라가 331일 만에 만들어버린 210권짜리 역사서.
편찬 속도가 지나치게 빨라 오류와 중복, 누락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중국의 24사 가운데서도 완성도가 낮은 역사서로 자주 비판받는다.
하지만 오늘날 소실된 원나라 공식 기록의 내용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는 매우 높다.
후대의 《신원사》가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려 했지만 원래의 《원사》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했다.
역사서로서는 허술한데 역사 연구에서는 없어서는 안 되는 책.
ㄴ 명나라 사관들아, 좀 천천히 쓰지 그랬냐.
ㄴ 그런데 천천히 썼으면 지금은 사라진 원나라 기록들이 더 많이 없어졌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