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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고상돈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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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2T23:07:4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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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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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02:4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고인}}&lt;br /&gt;
{{강철체력}}&lt;br /&gt;
{{산잘알}}&lt;br /&gt;
{{전설}}&lt;br /&gt;
{{파워후}}&lt;br /&gt;
&lt;br /&gt;
 {{인용문|여기는 정상, 여기는 정상, 더 이상 올라갈 곳이 보이지 않는다}}&lt;br /&gt;
&lt;br /&gt;
&lt;br /&gt;
1948~1979&lt;br /&gt;
&lt;br /&gt;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등반에 성공한 사람. &lt;br /&gt;
&lt;br /&gt;
국가로는 8번째, 개인으로는 56번째로 이름을 올렸다.&lt;br /&gt;
&lt;br /&gt;
== 비하인드 스토리 ==&lt;br /&gt;
&lt;br /&gt;
원래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1차 정상 공격조가 아니었다. &lt;br /&gt;
&lt;br /&gt;
등반팀의 대장인 김영도는 정상 등반 마지막 캠프인 5차 캠프에서 정상에 도전할 최종후보들을 추려놓았다. &lt;br /&gt;
&lt;br /&gt;
운동선수 출신으로 8000m 고지에서도 산소통없이 활보하던 박상열을 1차로, 돌을 아령삼아 운동하고 남들보다 많이 먹어 체력이 뛰어난 고상돈은 2차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고조의 컨디션을 보여주던 박상열이었지만 간밤에 산소를 충분히 공급받지않은 박상열은 결국 정상을 100m 남겨두고 돌아오게된다.&lt;br /&gt;
&lt;br /&gt;
아깝게 왜 100m만 남기도 돌아오느냐 하겠지만 저때 박상열은 죽지않고 돌아온게 기적인 수준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1차 공격에서 쓰디쓴 참패를 맛본 김영도 대장은 작전을 바꾸어 고상돈 단독에 경험많은 셰르파인 펨바 노르부를 메이트로 붙혀준다.&lt;br /&gt;
&lt;br /&gt;
오전 5시, 정상에서의 사진 효과를 고려해 빨간 옷을 입은 고상돈이 20kg의 짐을 메고 캠프를 나섰다. &lt;br /&gt;
&lt;br /&gt;
&lt;br /&gt;
4시간 만에 남봉에 도착한 고상돈은 산소통을 갈아끼웠다. 앞에는 50m 길이의 칼날 능선이 버티고 있었다. &lt;br /&gt;
&lt;br /&gt;
좌우는 끝이 안 보이는 벼랑이고 능선은 너무 뾰족해 도저히 통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lt;br /&gt;
&lt;br /&gt;
앞장섰던 펨바가 ‘되돌아가자’는 눈빛을 보냈다. &lt;br /&gt;
&lt;br /&gt;
&lt;br /&gt;
그러나 고상돈은 앞으로 나서 오른팔로 커니스(눈처마)를 껴안듯이 하고 스텝을 만들며 한 발 한 발 전진했다. &lt;br /&gt;
&lt;br /&gt;
천신만고 끝에 칼날 능선을 통과하자 직벽에 가까운 9m 빙벽 ‘힐러리 침니’가 앞을 가로막았다. 2시간 30분 사투 끝에 힐러리 침니를 올라섰다.&lt;br /&gt;
&lt;br /&gt;
&lt;br /&gt;
작은 언덕 세 개를 넘으니 또 하나의 봉우리가 보였다. &lt;br /&gt;
&lt;br /&gt;
정신력에 의존해 간신히 봉우리에 오른 고상돈은 다시 올라갈 정상을 두리번거리며 찾았다. &lt;br /&gt;
&lt;br /&gt;
뒤따라오던 펨바가 “미스터고 우리 정상에 온것같아요!”라 소리쳤다. &lt;br /&gt;
&lt;br /&gt;
&lt;br /&gt;
반신반의하고 있는 고상돈의 발에 뭔가가 걸렸다. 눈을 헤쳐 보니 카메라 삼각대였다. &lt;br /&gt;
&lt;br /&gt;
순간 김영도 대장의 말이 떠올랐다.&lt;br /&gt;
&lt;br /&gt;
“정상에는 1975년 중국 원정대가 세워 놓은 삼각대가 있을거다. 그게 정상이라는 명백한 증거다.”&lt;br /&gt;
&lt;br /&gt;
&lt;br /&gt;
1977년 9월 15일 낮 12시 50분이었다. 동시에 그 유명한 무전이 탄생하는 순간이기도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고상돈은 에베레스트 등반을 목표로 설악산에서 훈련하다 숨진 최수남·송준송·전재운 대원의 사진을 에베레스트 정상에 묻었다.&lt;br /&gt;
&lt;br /&gt;
사실상 기적과 다름없는 등반이었던 셈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 여담 == &lt;br /&gt;
&lt;br /&gt;
고상돈이 등반성공한 후 거의 십몇년 동안 에베레스트 등반을 한 한국인이 없었다. &lt;br /&gt;
&lt;br /&gt;
사실 1970년대 등반도 정부에서 홍보 및 사기진작 목적으로 강하게 푸시해줬기에 가능했던것이었다. &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성대한 환영 속에 각종 행사에 참여하며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lt;br /&gt;
&lt;br /&gt;
에베레스트 등정 기념우표와 주택복권이 발행됐고, 기념담배도 출시됐었다. &lt;br /&gt;
&lt;br /&gt;
김포공항으로 개선한 원정대는 신촌∼서소문∼창경궁으로 이어진 카 퍼레이드를 펼쳤다. &lt;br /&gt;
&lt;br /&gt;
그 장면을 보며 ‘나도 산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한 소년이 있었으니 훗날 한국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한 고(故) 박영석(1963∼2011)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하지만 1979년, 매킨리산 등반 후 하산 중에 목숨을 잃고만다.&lt;br /&gt;
&lt;br /&gt;
만약 이 안타까운 사건이 없었다면 향후 대한민국 산악계의 대부가 됐을텐데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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