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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궁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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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11:29:0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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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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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27:2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무기}}&lt;br /&gt;
한복 한글 김치 태권도와 더불어 한민족의 자랑거리.&lt;br /&gt;
&lt;br /&gt;
이 문서에서 국궁이라함은 고대 한반도 및 만주 일대에서 생활하던 예맥-한 계통의 민족으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 활과 그 활을 이용하는 궁술을 총칭한다. &lt;br /&gt;
&lt;br /&gt;
현재 일반적으로 통하는 &amp;#039;국궁&amp;#039;은 조선 후기 양식의 각궁을 이르나, 각궁의 모양을 본따 만들어진 개량궁 역시 국궁이라 부른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한민족이 사용하던 활은 목궁, 죽궁, 복합목궁, 목장궁 등 다양한 양식이 존재했으나, 그중 가장 유명하고 현재까지 &amp;#039;국궁&amp;#039;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활은 &amp;#039;각궁&amp;#039;이다. &lt;br /&gt;
&lt;br /&gt;
각궁은 전형적인 북방민족식 합성궁이다. 대나무와 뽕나무를 기반으로 한 활채에 수우각 (물소뿔), 어교 (물고기부레풀)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탄력을 한계까지 끌어내어 높은 성능을 보였다. &lt;br /&gt;
&lt;br /&gt;
몽골활과 유사한듯보이나 외형, 크기나 성능면에서 차이가 있다. 크기는 시위를 걸지않았을때 110cm 가량에서 125cm내외이고 시위를 걸었을때 100cm~115cm 정도로 휴대성이 좋다. 또한 활채 탄력성이 좋아 크기에 비해 비거리가 긴 편이다.&lt;br /&gt;
&lt;br /&gt;
일반적인 국궁 과녁은 145m의 사각형 과녁이다.&lt;br /&gt;
&lt;br /&gt;
==단점==&lt;br /&gt;
&lt;br /&gt;
[[각궁]]의 경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탓에 온도차가 크거나 습기가 찰 경우에는 각 (물소뿔 부분)이 틀어지거나, 어교가 풀어져서 활이 망가지는 일이 잦아 &amp;#039;마누라 윗목에 재워도 활은 아랫목에 재운다&amp;#039;는 말이 있을정도로 관리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amp;#039;적이 화창한 날에만 오냐?&amp;#039;며 조선의 각궁을 비판하기도 했다. &lt;br /&gt;
이 문제는 위화도회군의 명분중 하나가 될 정도로 심각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군이 조총을 사용하기 힘든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조선군의 난기였다.&lt;br /&gt;
 &lt;br /&gt;
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장에서는 &amp;#039;정량궁&amp;#039;(혹은 육량궁)이라는 활을 사용했다. 활채를 끈으로 감아 마무리하고 체간 (활의 두께)을 아주 두껍게 설정하였으며 크기를 160cm 이상까지 키운 활로, 여섯냥 (6냥을 기준으로 정량이라 부름), 즉 정량의 화살을 쏜다하여 [[정량궁]]이라 하였다. &lt;br /&gt;
&lt;br /&gt;
또한 조선에는 살지도 않는 물소뿔이 주재료로서 생산단가와 자재 수급이 대단히 어려웠다. 몽골활의 경우에는 본디 유목민족이기에 그들이 기르는 아이벡스의 뿔을 쓰면 되지만 조선은 저 멀리 동남아, 유구 (오키니와)까지가서 수입을 해야했다. &lt;br /&gt;
&lt;br /&gt;
[[분류:무기]]&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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