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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국풍 81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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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16:26:2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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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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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53:0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국뽕}}&lt;br /&gt;
{{쓸모없음}}&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2.12 사태로 혼란의 정국을 안정화시킨 전두환에겐 갑작스런 쿠테타에 분노한 시민들의 눈을 다른 데로 돌릴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때 [[일뽕]]에 거하게 취한 전두환의 측근 [[허문도]]가 가미카제 정신을 본따서 &amp;#039;국풍&amp;#039;이라는 말을 오지게 밀어붙였다.그 정신을 상징하듯 유니폼을 입은 젊은이들의 행렬이나 배의 노를 합심해서 젓는 등 국뽕적인 벽화들을 많이 그려놨다.허문도는 이 병신같은 국뽕축제에 무려 1000만이라는 구경꾼을 동원할 계획을 세웠고 이건 분명히 나라 경제에 큰 타격을 줄 것이었지만 걍 밀어붙였다.국가정기 회복이네 뭐네 거창한 말들을 많이 붙이지만주된 원인은 전두환의 [[3S]]정책에 의거한 &amp;#039;&amp;#039;&amp;#039;&amp;#039;5공화국의 태평성대&amp;#039;&amp;#039;&amp;#039;&amp;#039;를 자랑하기 위해서였다.&amp;lt;ref&amp;gt;김종찬-&amp;lt;6공화국 언론조작&amp;gt;&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국풍이라는 건 원래 [[헤이안 시대]]에 있던, 당나라 문화를 배척하고 다시 일본의 문화를 숭상하자는 운동을 말한다. 이걸 무려 1000년 만에 일본도 아닌 한국에서 부활시켰다.&lt;br /&gt;
&lt;br /&gt;
==축제 준비와 시작==&lt;br /&gt;
그래도 정부가 돈 쓰긴 싫었는지 이젠 정권의 따까리가 되어버린 한국신문협회와 MBC등의 방송사들과 치열한 충성경쟁을 벌이고 있던 KBS가 축제 관리를 도맡았다.&lt;br /&gt;
신군부는 시민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여의도의 통행금지를 풀어주었고 국풍81개시 첫날에만 100만의 시민들이 운집했으며 3일 만에 1000만이라는 숫자를 채우며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amp;lt;ref&amp;gt;이범경-&amp;lt;한국방송사&amp;gt;&amp;lt;/ref&amp;gt;&amp;#039;전국대학생 민속국악 큰잔치&amp;#039;라는 부제 아래 이루어진 이 축제는 개막행사,민속제,전통예술제,젊은이 가요제,욘국재,국풍장사 씨름판,팔도굿,남사당놀이의 본행사와 &amp;#039;팔도 명물장&amp;#039;등을 여는 등 다양한 컨텐츠를 시민들에게 제공했다.&lt;br /&gt;
&lt;br /&gt;
==화려하게 막을 내린 국풍81과 그 이면==&lt;br /&gt;
문화평론가 신현준은 이러한 국풍 81이 &amp;quot;상업적이고 퇴폐적인 왜래문화에 불가하다.&amp;quot;라고 논평했다.&amp;lt;ref&amp;gt;신현준-&amp;lt;1980년대 문화적 정서와 민족문화운동&amp;gt;&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국풍 81축제에선 현실을 가리는 신군부의 명치를 강타하는 한양대생 정오차의 &amp;lt;바윗돌&amp;gt;&amp;lt;ref&amp;gt;걍 굴러라/굴러라/굴러라 굴러라 바윗돌 이라는 별 이상한 가사지만 충성경쟁에 미쳐버린 조선일보가 &amp;#039;이건 사실 광주에서 죽은 폭도들을 뜻하는거노 이기야!ㅇㅈㄹ해서 코렁탕을 먹었다.근데 이게 정말로 광주혁명때 죽어나간 사람들을 뜻하는 것인진 확실치 않다.&amp;lt;/ref&amp;gt;과 같은 노래에겐 상을 안 주고 국민들을 레밍쥐로 만들어서 &amp;quot;독재든 뭐든 잘살면 되는겨!&amp;quot;라는 생각을 하게 해주는 현란한 댄스풍의 노래들에게 상들을 몰아줬다.이때 이후로 대부분의 신곡들이 신나는 댄스곡으로 바뀌었으며,그 개성을 잃어버렸고 유명한 가수들을 배출해내던 대학가요제는 이제 그들만의 리그로 변모했다.&lt;br /&gt;
&lt;br /&gt;
참고로 이때 상을 받은 가수는 &amp;lt;갤럭시&amp;gt;라는 팀그룹으로,&amp;lt;학&amp;gt;이라는 노래를 통해 금상을 받았다.그러나 이때 이후 서울대 축제 때 노래를 부르려던 갤럭시를 향락축제 거부운동을 벌이던 학생들이 둘러싸고 &amp;quot;애국가를 불러봐라!&amp;quot;라고 말하자 애국가를 부르지 못했고,그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무대를 때려뿌쉈다.&lt;br /&gt;
&lt;br /&gt;
[[엑윽보수]]들이 보기에 이건 &amp;#039;성난 빨갱이들의 반달질&amp;#039;로 보이겠지만,국뽕을 강요하는 현 정권의 몰지각하고 뻔뻔한 태도를 다른 방향으로 비판한 것이다.&lt;br /&gt;
&lt;br /&gt;
==결론==&lt;br /&gt;
사실상 국민들에게 배부른 돼지로나 살아가라는 3S정책의 일환으로 시작된 축제였기에 정권을 비판하거나 국가를 비판하는 행위는 일절 허용되지 않았고,그렇게 한 사람들은 [[코렁탕]]을 먹어야 했다.결국 이 축제는 국뽕과 정권 찬양으로 도배된 &amp;#039;[[그들만의 리그]]&amp;#039;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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