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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김영삼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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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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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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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46: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제목|땡삼이}}&lt;br /&gt;
{{역대 머한민국 머통령}}&lt;br /&gt;
{{정치인 문서 작성주의}}&lt;br /&gt;
{{고인드립애매}}&lt;br /&gt;
{{심플/고인}}&lt;br /&gt;
{{심플/0}}&lt;br /&gt;
{{심플/3}}&lt;br /&gt;
{{보수주의}}&lt;br /&gt;
{{상남자}}&lt;br /&gt;
{{심플/꿀잼}}&lt;br /&gt;
ㄴ 노무현, 이명박 못지 않게 입담이 좋다.&lt;br /&gt;
{{잘생긴 남자}}&lt;br /&gt;
{{존잘}}&lt;br /&gt;
ㄴ 3김이 잘생긴 외모로 유명했다. 특히 김영삼은 요즘 세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무쌍 존잘인 듯.&lt;br /&gt;
{{콘돔필수}}&lt;br /&gt;
{{원흉}}&lt;br /&gt;
{{적반하장}}&lt;br /&gt;
{{민주화운동}}&lt;br /&gt;
{{이중적}}&lt;br /&gt;
{{낚시}}&lt;br /&gt;
{{마법}}&lt;br /&gt;
{{심플/빛과어둠}}&lt;br /&gt;
{{필요악}}&lt;br /&gt;
{{심플/헬조선경제그자체}}&lt;br /&gt;
{{심플/보수 비밀당원|민주정의당}}&lt;br /&gt;
:{|class=&amp;quot;wikitable floatright&amp;quot; border=&amp;quot;1&amp;quot; table align=middle style=&amp;quot;border:2px solid #005ba6&amp;quot;&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background-image: linear-gradient(to right, #00467F 0%, #005BA6 20%, #005BA6 80%, #00467F)&amp;quot;	 colspan=2| &amp;lt;big&amp;gt;&amp;lt;big&amp;gt;&amp;#039;&amp;#039;&amp;#039;김영삼&amp;#039;&amp;#039;&amp;#039;&amp;lt;/big&amp;gt;&amp;lt;/big&amp;gt;&amp;lt;br&amp;gt;金泳三 | Kim Young-sam&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colspan=2|[[파일:김영삼 초상화.jpeg|400픽셀]]&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출생일&amp;#039;&amp;#039;&amp;#039;&lt;br /&gt;
!{{출생일|1927|12|20}}&amp;lt;ref&amp;gt;호적상이고 실제로는 1928년 12월 4일이라고 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데뷔&amp;#039;&amp;#039;&amp;#039;&lt;br /&gt;
!{{사망일과 나이|2015|11|22|1927|12|20}}&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출생지&amp;#039;&amp;#039;&amp;#039;&lt;br /&gt;
![[파일:경상남도의 휘장.png|20픽셀|링크=경상남도]] [[경상남도]] [[거제시]] &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장지&amp;#039;&amp;#039;&amp;#039;&lt;br /&gt;
!국립서울현충원&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국적&amp;#039;&amp;#039;&amp;#039;&lt;br /&gt;
!{{KOR}}&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신체&amp;#039;&amp;#039;&amp;#039;&lt;br /&gt;
!168cm 63kg AB형&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임기 기간&amp;#039;&amp;#039;&amp;#039;&lt;br /&gt;
![[1993년]] [[2월 25일]] ~ [[1998년]] [[2월 24일]]&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학력&amp;#039;&amp;#039;&amp;#039;&lt;br /&gt;
![[서울대학교]] [[철학과]]&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병역&amp;#039;&amp;#039;&amp;#039;&lt;br /&gt;
![[육군]] [[병장]] 만기제대([[학도병]])&amp;lt;ref&amp;gt;복무기간 1951년 2월 ~ 1951년 10월&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호&amp;#039;&amp;#039;&amp;#039;&lt;br /&gt;
!거산(巨山)&amp;lt;ref&amp;gt;본인의 고향인 거제와 정치적 기반인 부산을 합친단어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가족관계&amp;#039;&amp;#039;&amp;#039;&lt;br /&gt;
!아버지 김홍조 어머니 박부련&amp;lt;br /&amp;gt;배우자 [[손명순]]&amp;lt;br /&amp;gt;아들 김은철, 김현철&amp;lt;br /&amp;gt;딸 김혜영, 김혜정, 김혜숙&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직업&amp;#039;&amp;#039;&amp;#039;&lt;br /&gt;
!前 국회의원, 前 대통령&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종교&amp;#039;&amp;#039;&amp;#039;&lt;br /&gt;
![[개신교]](예장합동)&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 #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별명&amp;#039;&amp;#039;&amp;#039;&lt;br /&gt;
!YS, 03, 땡삼&lt;br /&gt;
|-&lt;br /&g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ffc224; background-color:#005ba6; text-align:center&amp;quot;|&amp;#039;&amp;#039;&amp;#039;취미&amp;#039;&amp;#039;&amp;#039;&lt;br /&gt;
!버르장머리 고치기&amp;lt;br&amp;gt;[[칼국수]] 먹기 &lt;br /&gt;
|}&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 전직 국회의원이자 제14대 대통령이었던 대마법사이다. [[칼국수]]가 그의 마력의 원천이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lt;br /&gt;
&lt;br /&gt;
그의 마법 실력에 머글들이 놀랐는데 하루아침에 [[하나회|반란군]]의 [[불명예 제대|군복이 벗겨지는 마법]]을 보여줬으며 마법진을 그려서 [[전두환|크라켄]]과 [[노태우|아쿠아맨]]을 법원에서 소환하는 소환술도 보여줬다.&lt;br /&gt;
&lt;br /&gt;
또한 [[금융실명제|하루아침에 부자들의 검은 돈이 사라지는 마술 쇼]]도 보여줬으며 [[조선총독부 청사|광화문 뒤편에 있던 커다란 건물]]이 순식간에 사라져서 [[일본|데스 이터]]의 버르장머리가 고쳐지는 쇼도 보여줬다.&lt;br /&gt;
&lt;br /&gt;
그러나 마법을 남발하는 바람에 흑화하여 흑마법사가 되었고 그 흑마법으로 [[서해훼리호 침몰 사고|여객선을 침몰시키는 걸 시작으로]] [[성수대교 붕괴 사고|한강에 있던 다리를 무너뜨리고]] [[삼풍백화점|서울 한복판에 있던 또 다른 큰 건물]]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게 하는 흑마법도 보여줬다. 게다가 [[대구지하철 공사장 폭발사고|대구에서는 지하철 공사장을 터트리더니]] [[대한항공 801편 추락사고|괌에 날아가던 비행기도 추락시켰다]]. [[당산철교|한강에 있는 다른 다리 하나도 무너트리려고 했으나 실패로 끝났다]]. 그러다가 마침내 마력을 다 썼는지 마지막 남은 모든 마력을 동원해 [[1997년 IMF 외환 위기|국가의 외화가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마술 쇼]]를 보여주고 박근혜 이전 최저 지지율인 6%를 기록하며 장렬하게 마계에서 물러났다.&lt;br /&gt;
&lt;br /&gt;
== 생애 ==&lt;br /&gt;
6.25 이후 조병옥의 비서로 활동하다가 1954년 이기붕의 권유로 자유당에 입당 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당선 당시 그의 나이가 25세라서 최연소 국회의원 타이틀을 거머 쥐었고 이 타이틀은 깨지지 않고 있다. 이후 5~10대, 13, 14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대통령이 되기 직전까지 국회의원 9선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이 기록은 [[김종필]]과 국회의장을 지낸 박준규 의원만이 가지고 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사사오입 개헌]] 당시 런승만 찾아갔다가 조봉암 뒤따라갈 뻔했다.&lt;br /&gt;
&lt;br /&gt;
대한민국 정치사에 한 획을 그은 삼김 중 한 명이다. 나머지 두 명은 [[김대중|슨상님]]과 [[김종필]].&lt;br /&gt;
&lt;br /&gt;
박정희 정권 하에서 모진 꼴 많이 당했다.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집에 가다가 비닐봉지를 투척 당했는데]] 비닐봉지 맞은 자기 차는 그날 폐차 처리됐다. &lt;br /&gt;
&lt;br /&gt;
[[신민당 각목 테러 사건|기껏 당 총재로 뽑혔으나]] [[이철승|탈락한 새끼]]가 [[김태촌|깡패]]에게 시켜서 습격을 하는 바람에 구두도 못 신고 양말 바람으로 3층에서 뛰어내려 도망쳐야 했다. 이때 김영삼은 나만 당하고 앉아있진 않겠ㄷ면서 사재를 털어 깡패를 사다가 [[김태촌]]의 깡패들과 맞붙게 했다.&lt;br /&gt;
&lt;br /&gt;
YH 무역사건 당시 박정희와 공화당, 유신정우회에 의해 제명 당하지만 얼마 안 가 [[10.26 사태|박정희가 사망하고]] [[12.12 사태|신군부가 나타나자]] 정권 장악을 막으려 김대중에게 도움을 청했다. 그러나 김대중이 거절하면서 서로 실랑이만 벌이다가 김대중은 내란음모 혐의로 깜빵 간 뒤 사형 선고를 받고 김영삼은 반강제적으로 정계에서 은퇴한다. 이후 전두환이 물러나자 다시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여기서 [[김대중]]과 서로 눈치를 본 게 화근이 되어 민주당으로 향할 표가 분열되었고 이로 인해 노태우가 당선되는 사건이 벌어졌다.&lt;br /&gt;
&lt;br /&gt;
김영삼에게는 천만다행으로 노태우는 박정희나 전두환과는 달리 사람이 존나 물렁했다. 그래서 박정희 같으면 또 비닐봉지를 얻어맞을 판이었지만 노태우가 물러터진 놈이라서 김영삼에게 먼저 합당하자고 손을 내밀었다. 김영삼도 당시 선거에서 김대중에게 지는 바람에 위기 상황이었고 약 2년 전 슨상님에게 통수 맞은 걸 복수도 할 겸 [[3당 합당|말랑말랑한 노태우, 박정희 잔당 김종필과 손을 잡았다]]. 이 과정에서 김영삼은 본인이 처리해야 할 대상과 연합하게 된다.&lt;br /&gt;
&lt;br /&gt;
군정 종식이 인생의 유일한 목표였던 김영삼은 군정을 끝장내기 위해 노태우의 밑으로 들어가서 노태우의 열렬한 후계자를 자처했다. 하지만 이는 함정으로, 김영삼은 노태우의 후계자로 확정되어 제14대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당선되자마자 싹 안면몰수하고 2년 후 전두환과 노태우를 체포해버린다. 당시에도 잘했다는 의견이 다수였으나, 지지율 살리겠다고 정치적으로 이용한 거 아니냐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건 완전히 아르헨티나 같은 상황인데 [[라울 알폰신]]이 [[호르헤 비델라]], [[레오폴도 갈티에리]], [[레이날도 비그노네]] 등에게 사면을 해주겠다면서 친한 척했다가 당선되니까 갑자기 안면몰수하고 싹 체포한 것에 비견된다.&lt;br /&gt;
&lt;br /&gt;
이렇게 김영삼은 스스로의 적과 손까지 잡아가며 기어이 군부정권을 끝내버렸다.&lt;br /&gt;
&lt;br /&gt;
대통령 된 후 지방자치제, 금융실명제 등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해 노력해왔으나 임기 말인 1997년 한보 사태로 촉발된 IMF 사태가 터지면서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IMF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지지율은 거의 5퍼센트밖에 안 됐는데 이는 ㄹ혜 탄핵 때와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 국민들에게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천벌 받을 인물로 전땅크를 제치고 당당하게 1위에 올랐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수많은 정치인들을 발굴하였는데 이들 중 대부분은 거물 정치인으로 많이 성장하였다. 거물들만 잠깐 언급하자면 [[김동영]], [[최형우]] 2명이고 그 외로는 [[서석재]], [[김덕룡]], [[이회창]], [[김광일]], [[노무현]], [[이명박]] 등 이외에도 수많은 정치인이 김영삼으로 인하여 정계에 들어왔다.&lt;br /&gt;
&lt;br /&gt;
본인이 IMF 구제 금융을 [[1997년|요청한]] [[11월 22일|날로부터]] [[2015년|정확히 18년 만에]] 사망했다.&lt;br /&gt;
&lt;br /&gt;
== 포퓰리즘 ==&lt;br /&gt;
[https://www.kci.go.kr/kciportal/ci/sereArticleSearch/ciSereArtiView.kci?sereArticleSearchBean.artiId=ART002261899 현대 한국 민주주의의 실태에 대해 다루는 논문]인데 김영삼 당시의 포퓰리즘에 대해서도 지적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김영삼은 50년대부터 정치를 시작했으나 실질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초 40대 기수론이 신민당의 주 여론이 되면서부터였다. 이 때문에 김영삼은 국민들의 지지를 기반으로 활동했고, 민심 없이는 김영삼의 정치 생명도 있을 수 없었다. [[부마민주항쟁]]도 국민들에게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더욱이 경남 쪽에서 더 강력한 지지를 받았던 김영삼이 1979년에 국회에서 제명을 당하자 경남 지역의 민심이 폭발한 것이 원인 중 하나로 꼽힐 정도다.&lt;br /&gt;
&lt;br /&gt;
여차저차하다가 1992년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되자 김영삼은 정책을 &amp;#039;국민들이 호응할 만한&amp;#039; 정책 위주로 짰는데, 이때부터 그는 개인적 리더십에 대해 집착하기 시작했다. 공직자 재산 공개 같은 제도들도 먼저 민심부터 본 다음에 만들고 법적 근거는 한참 후에 마련되었다.&lt;br /&gt;
&lt;br /&gt;
서양과 다르게 민심이 최고의 가치로 여겨지는 한국에서는 이런 김영삼의 통치 방식을 많은 후임 대통령들과 대통령 후보들이 답습했고 이는 한국식 포퓰리즘의 형성에 기여했다.&lt;br /&gt;
&lt;br /&gt;
== 성격 ==&lt;br /&gt;
심성이 나쁜 건 아니지만 당하고는 못 사는 성격이었다. 빚은 뭐든지 간에 확실하게 갚았다.&lt;br /&gt;
&lt;br /&gt;
[[이철승]]에게 사주를 받은 [[김태촌]]에게 기습을 당하자 이후 김영삼도 깡패를 사다가 김태촌에게 맞불을 붙여 버리니 이를 신민당 각목사건이라 한다.&lt;br /&gt;
&lt;br /&gt;
[[박정희]]가 사망하고 난 이후 그의 수제자 [[전두환]]이 물러나자 박정희의 차제자 [[노태우]]에게 친한 척해서 [[3당 합당]]을 추진했다. 하지만 [[노태우]]의 [[민주자유당]]의 당권을 장악하고 있다가 노태우가 퇴임하고 그의 후임 대통령이 되자마자 귀신같이 전두환과 노태우를 잡아들였다. 그리고 그 두 사람에게 싹 다 중형을 때렸다. 하지만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대중]]이 대통령이 되자 석방된다...만 이건 본인이 퇴임 전에 풀어주려고 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 명언 ==&lt;br /&gt;
{{명언충}}&lt;br /&gt;
수많은 명언을 남기셨다.&lt;br /&gt;
&lt;br /&gt;
{{인용문|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기어이 고쳐놔야겠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김대중]] 씨는 숨 쉬는 것 빼고 다 거짓말}}&amp;lt;br&amp;gt;&lt;br /&gt;
{{인용문|[[전두환|전두화이]]는 와 불렀노? 그노마는 대통령도 아이데이. 디져서도 국립묘지는 몬 간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전두환|니]]는 술 처마시러 청와대에 왔나?}}&amp;lt;br&amp;gt;&lt;br /&gt;
{{인용문|[[노무현]]이는 [[3당 합당|의리가 없는 놈이다.]] 평가의 가치도 없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로 들어가야 한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린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이카면 되겠제?}}&amp;lt;br&amp;gt;&lt;br /&gt;
{{인용문|부익부 빈익빈, 정경유착의 왜곡된 경제 구조와 오늘의 IMF 사태도 박 정권의 잘못된 경제 경책 탓이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IMF 맞은 책임의 65%는 DJ에게 있다.}}&amp;lt;br&amp;gt;&lt;br /&gt;
{{인용문|달러가 없어? 달러가 없으면 어떻게 되는데?}}&lt;br /&gt;
&lt;br /&gt;
== 다른 대통령과 관계 ==&lt;br /&gt;
이승만 - 처음 정계 입문 당시만 해도 서로 우호적이었으나 사사오입 개헌으로 인해 갈라졌다. 그러나 이승만을 국부라고 칭하던 걸 보면 생각 외로 나쁘지 않게 평을 내린 듯하다. 애초에 YS는 자유당의 병신짓에 빡쳐서 자유당을 탈당한 거였지, 이승만의 행정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봐서 탈당한 것은 아니었다.&lt;br /&gt;
&lt;br /&gt;
윤보선 - 장면과 함께 쿠데타 대처도 못한 무능한 인간이라면서 존나 깠다.&lt;br /&gt;
&lt;br /&gt;
박정희 - 민주주의 후퇴의 역적, 용서 받지 못할 놈, 총 맞아도 싼 인간이라며 까댔고 없어도 나라 성장에는 문제 없었을 거라며 못을 박았다. 실제로 박정희한테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비닐봉지를 맞은 적이 있다.]]&lt;br /&gt;
&lt;br /&gt;
전두환 - 이승만과 박정희의 관계 수준과 맞먹을 정도로 안 좋았다. 그걸 넘어 아예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평했고 치졸하고 뻔뻔한 새끼라고 말했다. 이후에도 서로 만날 때마다 디스를 존나 해댔다. 김영삼 장례식에 전땅크가 조문을 오긴 했지만 딱히 화해한 것 같진 않다.&lt;br /&gt;
&lt;br /&gt;
노태우 - [[전두환|친구]]빨로 대통령이 됐다며 깠고 나랏일은 안하고 자기 견제만 하는 무능한 인간이라 평했다. 다만 [[3당 합당|노태우 당선 이후 친한 척했다.]] 김영삼이 노태우와 친한 척한 이유는 스스로가 독초가 되어 노태우에게 먹여 다 부수고 군부정권의 종식을 이루기 위함이었다.&lt;br /&gt;
&lt;br /&gt;
김대중 - 원래 서로 친한 사이였으나 13대 대선에서 김대중이 통수를 갈기는 바람에 사이가 틀어졌고 이후 1990년 노태우와 손잡으며 역통수를 갈겼다. 그러다가 김대중이 죽을 때 가서 화해를 시도하고 김대중의 장례식에 갔다.&lt;br /&gt;
&lt;br /&gt;
노무현 - 본인이 국회의원 당선 도움까지 줬으나 3당합당 당시 반발하며 탈당하자 의리 없는 놈이라며 평가의 가치조차 없다고 했다. 노무현 사망 이후 장례식에 오긴 했으나 이명박에게 국민장까지 해줄 놈은 아니라며 깠다. 노사모들은 이 말을 듣고 당연히 김영삼한테 지랄했다.&lt;br /&gt;
&lt;br /&gt;
이명박 - 유일하게 서로 사이가 좋다. 위의 노무현과 같이 국회의원 당선에 도움을 줬다. 그 때문인지 김영삼 사망 당시 특히 슬퍼한 사람이 이명박이었다.&lt;br /&gt;
&lt;br /&gt;
박근혜 - 박정희 보다야 훨씬 낫다고 하지만 당연히 좋진 않다. 근데 [http://www.bbsi.co.kr/HOME/radio/radio_onair_board_view.html?leftPos=&amp;amp;ProgramCode=96&amp;amp;REF_TBN=INTERVIEW&amp;amp;GroupIDX=INTERVIEW&amp;amp;MODE=INTERVIEW&amp;amp;IDX=10574&amp;amp;Page=276&amp;amp;SearchCombo=Title&amp;amp;txtSearch= 18대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lt;br /&gt;
&lt;br /&gt;
문재인 - 13대 총선 당시 노무현과 함께 정계 입문에 도움을 주려고 했으나 그때 거절한 것 외에는 딱히 접점은 없다.&lt;br /&gt;
&lt;br /&gt;
== 같이보기 ==&lt;br /&gt;
*[[1997년 IMF 외환 위기]]&lt;br /&gt;
*[[김영삼 질산 테러 사건]]&lt;br /&gt;
*[[하나회]]&lt;br /&gt;
*[[금융실명제]]&lt;br /&gt;
*[[삼풍백화점]]&lt;br /&gt;
*[[성수대교 붕괴 사고]]&lt;br /&gt;
*[[조선총독부 청사]]&lt;br /&gt;
*[[칼국수]]&lt;br /&gt;
&lt;br /&gt;
== 각주 ==&lt;br /&gt;
{{정치인|B}}&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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