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novawiki.app/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9%80%EC%A7%80%ED%95%98</id>
	<title>김지하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novawiki.app/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A%B9%80%EC%A7%80%ED%95%98"/>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A%B9%80%EC%A7%80%ED%95%98&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18T05:07:2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41.1</generator>
	<entry>
		<id>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A%B9%80%EC%A7%80%ED%95%98&amp;diff=24600&amp;oldid=prev</id>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A%B9%80%EC%A7%80%ED%95%98&amp;diff=24600&amp;oldid=prev"/>
		<updated>2026-01-08T08:06: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문과}}&lt;br /&gt;
{{오늘만}}&lt;br /&gt;
{{고인}}&lt;br /&gt;
{{위백복붙}}&lt;br /&gt;
&lt;br /&gt;
과거에는 오늘만 살고자 하였던 시인이었지만 좌파에게 조리돌림을 당하고 이후 강경 우파가 되었다.&lt;br /&gt;
&lt;br /&gt;
본명은 김영일(金英一)이다. 「[[토지]]」로 알려진 소설가 [[박경리]]의 사위고, 70년대 윾신 시대를 대표하는 문인이다. 1980년부터는 동서양의 철학과 대한민국의 전통 사상을 아우르는 &amp;#039;생명 사상&amp;#039;을 제창하였으며 유명한 시집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등이 있다.&lt;br /&gt;
&lt;br /&gt;
==오늘만 살던 시절==&lt;br /&gt;
반인반신이 추진하던 한일회담이 굴욕적인 외교 회담이라고 판단한 그는 서울대학교 후배 김덕룡, 고려대의 2MB, 2JO 등과 함께 6.3 항쟁에 참여했다. 학생 시위에 앞장섰다가 체포되어서 4개월 간 수감되었다가 풀려났다.&lt;br /&gt;
&lt;br /&gt;
1970년에 부패한 헬조선 윗분들을 비판한 시 「오적(五賊)」을 써서 《사상계》 5월호에 실었는데, 이것이 신민당 기관지인 《민주전선》에 실리면서 문제가 되었고 국보법 위반 혐의로 100일 동안 옥살이를 했다.&lt;br /&gt;
&lt;br /&gt;
1974년엔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서 7월 9일 결심 공판에서 긴급조치 4호 및 국가보안법 위반, 그리고 내란선동죄 등의 죄목으로 사형을 선고 받았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었다. 2013년 1월 4일, 이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 받았는데 김지하는 판결 선고 후 &amp;quot;보상금을 받으려 재심을 신청했다. 완전히 무죄를 선고하지 않은 이유는 돈을 적게 주려는 것.&amp;quot;이라며 1월 10일에 재심 판결에 항소했다.&lt;br /&gt;
&lt;br /&gt;
==전향==&lt;br /&gt;
{{엑윽보수}}&lt;br /&gt;
{{불쌍}}&lt;br /&gt;
ㄴ 분신정국 까다가 깨시민들에게 양념당함&lt;br /&gt;
{{논란중인 인물}}&lt;br /&gt;
&lt;br /&gt;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의 사망 이후 항의로 분신 자살하는 학생들이 늘어나는, 일명 &amp;#039;[[분신정국]]&amp;#039;에서 5월 5일에「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라는 글을 써서 운동권의 분신자살을 비판하여 변절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이때 좌파들에게 말도 못하게 까인 김지하는 하도 좆같았는지 완전한 엑윽보수로 전향해버린다.&lt;br /&gt;
&lt;br /&gt;
[[2009년]]에는 촛불 시위 반대와 노무현 추모객들을 맑스 주의자라고 비판했으며, [[2012년]] 대선 땐 [[박근혜|ㄹ혜]]를 지지하면서 문재인과 간철수를 비판했고, [[백낙청]]과 [[리영희]]를 매도해 인터넷에서 깨시민들에게 &amp;quot;자신에게 씌워졌던 &amp;#039;빨갱이&amp;#039;란 누명을 거꾸로 다른 사람에게 씌우고 있다.&amp;quot;, &amp;quot;유신 독재와 박근혜의 나팔수가 됐다.&amp;quot;라고 욕 먹었다. 근데 후술하듯이 김지하가 이 꼴이 된 건 좌파들의 탓도 좀 크다.&lt;br /&gt;
&lt;br /&gt;
[[2008년]]에 띵박이를 지지해 깨시민들에게 조리돌림 당하던 [[황석영]]을 2009년 5월 1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여 &amp;quot;시비 걸지 말라.&amp;quot;라고 일침을 가했다. &amp;quot;작가가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그럴 자유는 있어야 한다.&amp;quot;라고 주장하며 기억력이 나쁠수록 좋은 작가라는 논리를 제시했다.&lt;br /&gt;
&lt;br /&gt;
당시 리즈 시절이었던 [[진중권|진메갈]]이 황석영은 일관성이 없다고 비판하기 위해 금붕어에 비유한 것에 대해서 그는 &amp;quot;작가라는 게 아침마다 변한다. 기억력이 강한 작가일수록 엉터리다.&amp;quot;라며 쉴드를 쳤다. 진메갈은 진보신당 당원 게시판에 &amp;quot;기억력이 나쁜 작가일수록 좋은 작가라는 미학 이론은 들을수록 해괴하다. 그렇다면 최고의 작가는 금붕어겠다. 금붕어의 눈앞에는 2초마다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amp;quot;라고 김지하를 비판했다.&lt;br /&gt;
&lt;br /&gt;
== 왜 엑윽보수가 되었나 ==&lt;br /&gt;
사실 김지하가 이렇게 저항 시인에서 [[박사모]] 틀딱으로 흑화한 것에는 사연이 좀 있다. 저항 시인 시절에는 감옥에서 &amp;quot;저항시를 더 써서 박정희가 빡돌아서 당신을 사형 시키도록 만들어라.&amp;quot;라는 [[시체팔이]] 권유를 받지 않나, [[고은]]이 김지하 장모인 [[박경리]]에게 손자를 업고 1인 시위하라는 권유를 거절 당하자 [[리영희]], 백낙청과 있던 사석에서 &amp;quot;과부년이 말을 안 들어 ㅋㅋ&amp;quot;라고 욕했다는 사실을 간수에게 전해 듣는 등의 일을 겪었다. 그래서 이미 이때부터 진보 세력에게서 정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딱히 6공 정권 옹호도 아니고 그냥 &amp;quot;민주화를 위해 목숨까지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amp;quot;라고만 주장했다 존나게 조리돌림 당한 죽음굿판 사건으로 변절 해버린 것이다. 이건 인터뷰에서 본인이 한 말이라서 신빙성이 좀 의심되고 변명이 아닌가 싶지만, 고은의 인성을 생각해보면 과부 얘기는 사실인 거 같다.&lt;br /&gt;
&lt;br /&gt;
인터뷰를 보면 사실 저항 시인 시절에도 사회를 강도 높게 비판하고 민주주의를 추구해서 저항 시인이라고 불린 거였지, 혁명 투쟁 외치는 적극적인 민주 투사까진 아니었다. 박정희의 서거 소식을 듣고 &amp;quot;인생무상&amp;quot;이라고 회한에 잠겼다는 걸 보면 말이다. 김지하가 이렇게 엑윽보수 틀딱이 된 것에 대해서 깨시민들은 &amp;quot;박정희 때 하도 고문 당해서 후유증으로 미친 거다.&amp;quot;라고 주장했지만 그냥 지들 흑역사를 덮으려는 개소리로 보는 것이 정론이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컨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루아침에 좌파들에게 역적으로 몰린다는 건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자신이 민주화계의 거물이나 되는 인물이니 우익으로 전향해서 개같은 좌파들 정신 좀 차리라고 컨셉 잡은 것으로 보인다. 그토록 불타는 열정으로 싸웠던 걸 하루아침에 부정하겠냐? 게다가 우익으로 활동하면서도 자기의 민주화 운동 시절은 한 번도 부정한 적이 없는 것을 보면 후유증은 절대 아니고 자기를 양념한 좌파들에게 엿먹이기 위해 우파 컨셉을 잡았던 것으로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최근에는 박사모 시절을 반성하고 몇몇 진보적 이념에 대해 지지선언까지 했는데 하필이면 미투운동을 지지했다. 여전히 우파로 활동 중이지만 말이다. 깨시민들의 양념만 없었다면 이렇게까지는 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사망==&lt;br /&gt;
{{고인}}&lt;br /&gt;
&lt;br /&gt;
2022년 5월 8일날 사망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