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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다부동전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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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14:10:1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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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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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41:4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 상위문서 [[한국전쟁]]&lt;br /&gt;
{{신의한수}}&lt;br /&gt;
{{성전}}&lt;br /&gt;
{{승리}}&lt;br /&gt;
&lt;br /&gt;
{{youtube|XLyRDqPklmU}}&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해전에는 [[인천상륙작전]]이 있다면 지상전에서는 이 전투가 있다. 북괴 주력군 대부분을 궤멸시켜 국군과 미군이 북괴군을 평양까지 털어버리는 기반을 마련해준 전투&lt;br /&gt;
&lt;br /&gt;
== 전투 전개 ==&lt;br /&gt;
=== 배경 ===&lt;br /&gt;
[[국군]]은 해방직후 미국의 원조도 제대로 못받고, 군수공장도 종범이었기 때문에, 소련의 원조를 존나게 받고 군수공장이 드럽게 많았던 북한에게 너무나도 밀렸다. 거기에 [[신성모|좆성모]], [[유재흥|좆재흥]]같은 똥별들이 군부를 쥐고 있었던 상황이라 국군은 북괴군에게 밀리고 밀리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호남에서 개쳐맞고 온 마산 인근 북괴군은 [[미군]]성님들의 참교육으로 완전히 뒤져버리고 동해안을 따라 내려온 북괴군의 경우는 [[손원일|갓원일]]니뮤가 [[백두산함]]으로 참교육을 시전하셔서 해군전멸, [[포항시|포항 시가지]]를 겨우 뺏었지만 포항 전투에 투입된 3개사단이 시망상태에 이르면서 육군들이 개병신이 되었다. 그 결과 북괴새끼들은 남은 주력군을 대구로 쒜리붓게 된다.&lt;br /&gt;
&lt;br /&gt;
게다가 천하의 악당 [[김일성|좆일성]] 돼지새끼는 [[광복절|8월 15일]]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적화통일|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며]] 북괴군을 닦달하였고 이에 북괴군은 8월 총공세를 실시하였다.&lt;br /&gt;
&lt;br /&gt;
=== 다부동 전선 구축 ===&lt;br /&gt;
구미-왜관에서 북괴군을 존나게 두들겨 패던 [[1사단]]과 구미-의성에서 북괴군과 싸우던 [[6사단]]은 8월&lt;br /&gt;
11일, 국군 사령부의 지령을 받고 다부동으로 이동했다. &lt;br /&gt;
&lt;br /&gt;
=== 왜관 융단폭격 작전 ===&lt;br /&gt;
1950년 8월 16일, [[미군]]의 [[B-29]] 폭격기 98대가 [[대구광역시|대구]]로 밀고들어오는 인민군을 막기 위해 [[왜관]] 일대를 융단폭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민군들은 가산으로 침투하기 위해 기를쓰고 741고지에서 다부동 바로 서쪽에있는 466고지를 공격함으로써 [[1사단]]은 인민군에 의해 돌파되느냐 다부동을 고수하느냐의 기로에서 놓여 있었다.&lt;br /&gt;
&lt;br /&gt;
따라서 미 8군은 [[1사단]] 병력만으로는 도저히 다부동 고수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서 8월 17일 예비병력인 미 제25사단 제27연대를 다부동으로 투입하였다. 8월 18일 새벽에는 가산에서 인민군이 발포한 박격포탄이 [[대구역]]에 낙하하는 등 [[대구광역시|대구]]는 함락 직전까지 몰렸다.&lt;br /&gt;
&lt;br /&gt;
=== 위기에 처한 다부동 ===&lt;br /&gt;
[[백선엽]] 장군은 이러한 전선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적진으로 정면돌파작전을 선택했고 미 27연대와 함께 적진으로 돌파작전을 실시했다. 제15연대 또한 328고지에서 수류탄 공방전을 벌여가며 필사적으로 쟁탈전을 벌였으며 제12연대는 8월 19일 수암산을 적에게 피탈당하기도 하였으나 대체적으로 적의 남하를 저지하였다.&lt;br /&gt;
&lt;br /&gt;
이날 미군 제8군 명령에 따라 미군 2사단 제23연대를 후방인 두전동에 배치하여 방어종심을 증가하였으며 국군 육군본부에서도 [[8사단]] 제10연대를 [[1사단]]에 배속시켜 가산 일대에 배치하였다. 이처럼 다부동의 전황은 국군 1개 연대와 미군 2개 연대가 추가지원될 만큼 바람앞의 등불과도 같았고 미군과 국군은 필사적으로 인민군의 남하를 막고 있었다.&lt;br /&gt;
&lt;br /&gt;
=== 국군의 역습 ===&lt;br /&gt;
8월 20일, 인민군이 [[1사단]]과 미군의 필사적인 저항때문에 다부동 전선의 돌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여 인민군 15사단을 [[의성군|의성]]쪽으로 이동시켰고 여기서 국군 [[8사단]]을 공격하여 [[영천시|영천]]쪽으로 돌파 시도를 하였다. 이로써 인민군은 3사단 일부가 수암산 일대에, 13사단이 유학산 우측면을 담당하게 되어 공격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1사단]]에게 이는 기회였다.&lt;br /&gt;
&lt;br /&gt;
다음날인 8월 21일 새벽에는 [[한국전쟁]] 최초의 전차전이 다부동 계곡에서 벌어졌다. 이날 인민군의 [[T-34]]와 미군의 [[M26 퍼싱]]이 다부동 계곡을 사이에 두고 서로 포탄을 주고받는 모습이 마치 볼링경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하여 이 전투를 볼링장(Bowling Alley) 전투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게다가 이날 오전에는 인민군 13사단의 정봉욱 중좌가 11연대 지역의 작전지도를 갖고 국군으로 귀순하여 적의 사기가 꺾였고 이 지도에 따라 인민군의 포진지를 유엔군 전폭기들이 융단폭격하여 적의 화력을 무력화시켰다.&lt;br /&gt;
&lt;br /&gt;
이 폭격으로 인민군의 화력이 급격하게 약화되었으며 마침내 8월 28일 국군은 다시 수암산을 탈환하였고 끝내 인민군의 남하를 저지하였다.&lt;br /&gt;
&lt;br /&gt;
이처럼 [[1사단]]은 인민군의 8월 대공세를 끝끝내 막아내며 328고지-수암산-유학산-741고지의 방어선을 확보하고 다부동-대구 접근로를 방어하여 [[대구광역시|대구]] 고수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lt;br /&gt;
&lt;br /&gt;
== 다부동 전투의 의의 ==&lt;br /&gt;
다부동 전투는 [[백선엽]] 장군이 이끄는 대한민국 국군 제1사단이 미 8군과 육군본부에게 병력 지원을 받아가며 밤낮없이 싸워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는데 성공한 전투다. &lt;br /&gt;
&lt;br /&gt;
결국 열심이 싸운 [[백선엽]]의 대한민국 국군 제1사단은 북괴군을 몰아내고 낙동강 전선을 지키는데 성공하였다. &lt;br /&gt;
&lt;br /&gt;
북괴군은 이 전투에서 다량의 병력과 화력을 잃고 사기가 꺾였으며 이후 [[인천상륙작전]]으로 완전히 박살나게 된다.&lt;br /&gt;
&lt;br /&gt;
이전까지는 계속 밀리기만 했던 국군이 이 다부동 전투에서 북괴군의 남하를 저지함으로써 낙동강 전선을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이 덕분에 6.25 전쟁이 끝난 후에도 [[백선엽]] 장군은 살아생전에 미군에서 생일 잔치를 자주 열어주고, 존경한다고 할 정도로 미군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lt;br /&gt;
&lt;br /&gt;
[[분류:전투]]&lt;br /&gt;
[[분류:6.25전쟁]]&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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