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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당포함 격침 사건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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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9T03:07:3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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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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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40:0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북괴 도발}}&lt;br /&gt;
{{영웅}}&lt;br /&gt;
{{불쌍}}&lt;br /&gt;
== 개요 ==&lt;br /&gt;
1967년 1월 19일, 대한민국 해군 소속 초계함 당포함이 동해안에서 북한군의 집중 해안포 포격을 받아 격침된 사건. 휴전 협정 이후 처음으로 [[NLL]]에서 북괴가 도발한 사건이다.&lt;br /&gt;
&lt;br /&gt;
==전개==&lt;br /&gt;
1967년 1월 19일, 어선들은 생계 유지를 위해 명태를 좀 더 많이 잡으러 [[명태]]가 많이 서식하는 NLL 북쪽으로 항해한다. &lt;br /&gt;
&lt;br /&gt;
당포함은 어민들을 지키기 위하여 NLL을 넘어 어선들을 저지하려는 그때, 갑자기 북한 경비정 2척이 출현했다. 당포함은 순간적인 직감으로 &amp;#039;북괴가 어부들을 납북하려고 한다&amp;#039;고 판단해 경비정 두 척에 위협을 가하며 내쫓았다.&lt;br /&gt;
&lt;br /&gt;
어선들을 끌고 다시 남쪽으로 향하던 13시 55분, 북한 육군이 해안가 포진지에서 기습적으로 122mm 해안포를 난사하기 시작했다. 약 10여 문의 해안포가 당포함을 향해 다굴을 하여 당포함은 기관실을 시작으로, 스크류, 기관포탑 등이 가격으로 전투 능력을 상실하며 당포함은 매우 빠른 시간에 항행 불능에 처한다. &lt;br /&gt;
&lt;br /&gt;
마지막 저항으로 당포함도 급히 대응 사격을 했으나 당포함의 무장은 3인치(76.2㎜) 포 1문, 40㎜ 6문, 20㎜ 4문에 불과하여 북한군에게 전혀 타격을 입히지 못하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사거리가 짧았던 40㎜와 20㎜ 기관포는 북한군 포대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동해 바다에 힘없이 낙하하고, 그나마 쓸 만한 3인치 함포는 북한군의 집중 사격에 힘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lt;br /&gt;
&lt;br /&gt;
게다가 북한군 해안포의 대다수가 위장색과 자연 지물에 둘러싸여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곳에서 포탄이 잔뜩 날아오는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상황까지 벌어졌다.&lt;br /&gt;
&lt;br /&gt;
북괴군이 계속해서 시끄럽게 굴자, 타지에서 작전 중인 다른 해군 함정들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달려와 당포함을 보호하였고 쫄아버린 북괴는 단번에 포격을 멈췄다. 함정들은 당포함을 끌고 가서 수리를 시키려 했으나,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망가져 버렸기 때문에 모든 선원이 당포함에서 퇴함하였고 결국 14시 30분경 당포함은 결국 침몰하고 만다.&lt;br /&gt;
&lt;br /&gt;
다음날 오전까지 해군의 구조 작업이 있었고 승조원 79명 중 51명이 구조되었으나  그 중 11명은 후유증에 시달리다 사망했고, 11명은 중상을 입었으며, 28명은 시신을 찾지 못해 미수습으로 남았다. 침몰 장소가 NLL 근처여서 북괴의 공격이 우려되어 제대로 된 조사를 할 수 없었던 데다가, 당포함이 210m의 깊은 바다 밑에 가라앉았기 때문에 인양도 불가능했다.&lt;br /&gt;
&lt;br /&gt;
==사건 이후==&lt;br /&gt;
*이 사건은 우리군에 과실이 넘어가게 끔 북괴가 치밀하게 계산해 실행한 사건이다. 형식상 먼저 [[NLL]]을 넘어온 우리 해군에 과실이 있지만 악의가 없던 당포함에 과잉 대처를 한 북한의 책임이 훨씬 크다. 실제로도 남한은 제 1, 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등에서 북괴군에게 실사격을 가하기 전에는 경고를 하였기 때문이다.&lt;br /&gt;
*당시 월북했던 어민들을 중 일부는 자기 때문에 죽은 당포함 승조원들에게 미안하다며 자살하는 사건도 벌어졌다.&lt;br /&gt;
*1월 20일 남북이 이 사건에 대한 공동 조사를 진행하겠다고 하였으나, 이튿날 북괴가 바람을 선언하면서 무산되었다.&lt;br /&gt;
*격침된 당포함을 대신하기 위해 미국으로부터 PCE-50함을 사들여와, 거진함으로 명명하였다. 이름의 유래는 이 당포함이 침몰된 거진읍에서 따온 것이다.&lt;br /&gt;
*당시 박정희 정부의 미온적이고 수동적인 대처가 논란이 된 바 있다.&lt;br /&gt;
*정부는 어로 보호 업무를 대한민국 해군에서 농림부와 내무부로 이관했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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