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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도굴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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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12:58:2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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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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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51:3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범죄}}&lt;br /&gt;
{{하지마}}&lt;br /&gt;
누군가의 [[무덤]]을 파내서 부장품을 스틸하는 행위. 주로 무덤 스케일이 ㅎㄷㄷ 한 중국에서 많이 있을것 같지만 도굴꾼은 어디에나 있었다. 물론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lt;br /&gt;
&lt;br /&gt;
[[중국]]이나 [[이집트]] 같은데는 여러가지 장치를 해놨지만&amp;lt;ref&amp;gt;그런데 둘다 온갖 장치를 만들었는데도 꼼꼼한 도굴꾼성님들한테 탈탈 털렸다. &amp;lt;/ref&amp;gt; [[한국]]의 [[고구려]]나 [[백제]]는 친절하게 입구를 만들어놔서 도굴꾼들 눈에 띄는 족족 털렸다. 백제나 고구려 유물이 잘 없는 이유 중 하나.&lt;br /&gt;
&lt;br /&gt;
== 누가 도굴하는가? ==&lt;br /&gt;
&lt;br /&gt;
돈 없는 거지들이 우연히 얻어걸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로 프로도굴꾼들이 클랜을 만들어 과거 문헌들을 분석해 가며 전문적으로 무덤을 털었다.&lt;br /&gt;
&lt;br /&gt;
진시황릉 뿐만 아니라 꽤나 많은 왕, 황제들의 무덤에 도굴방지를 위해 각종 방어장치가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들어갔다간 죽기 딱 좋은 날이 될 뿐이어서 보통 짱꼴라 도굴꾼들은 전문가들이었다.&lt;br /&gt;
&lt;br /&gt;
2015년 5월엔 중국에서 10개 175명이나 되는 도굴꾼들을 검거했다. 이쯤 되면 다들 도굴전문가들이다.&lt;br /&gt;
&lt;br /&gt;
http://www.ytn.co.kr/_ln/0104_201505271157334298&lt;br /&gt;
&lt;br /&gt;
이처럼 수많은 묘가 발굴,도굴된 현재에도 도굴이 성행하는데 빈틈이 많았던 옛날은 어땠을지 상상도 안 간다.&lt;br /&gt;
&lt;br /&gt;
참고로 니가 대한민국에서 발견된 [[유물]]을 문화재청에 신고하지 않고 가져가거나 훼손하는 경우도 도굴의 범주에 포함되어서 처벌받는다 조심하자&lt;br /&gt;
&lt;br /&gt;
== 도굴을 막을 순 없을까 ==&lt;br /&gt;
&lt;br /&gt;
네임드 황제들은 도굴을 막으려고 별 짓을 다 했다. 잘 알려진 진시황릉 외에도 측천무후나 칭키즈칸의 무덤등이 여기에 해당된다.&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1. [[측천무후]]의 건릉&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보물을 500t이나 무식하게 넣어둔 건릉은 일단 지금은 발견했다. 1960년대에 도로공사중에 발파작업을 하던 중 우연찮게 입구를 발견했는데 그 전까지 이 무덤은 17차례의 공식 도굴을 방어했고 황소의 난때는 40만 병력이 산을 파냈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중화민국때도 군벌 쑨롄중이 폭약을 이용해 산을 깎았으나 실패했다.&lt;br /&gt;
&lt;br /&gt;
무덤 자체는 안 털렸고 정부에게 발견됐으니 다행. 그러나 혹시 모른다. 어떤 도굴킹이 이미 파놨을지도?&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2. 칭키즈칸의 무덤&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사실 칭키즈칸의 묘는 어떻게 되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현재도 탐사가 진행중이고.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언제 묻었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왜냐? 무덤을 만든다고 동원한 애들을 모조리 다 죽여버려서 찾기가 힘들다.&lt;br /&gt;
현재 동아시아를 주로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가장 찾고싶어하는 무덤이라는 카더라가 있다.&lt;br /&gt;
무덤 안의 부장품 보다는 상징적인 의미인 무덤이긴 하다.&lt;br /&gt;
&lt;br /&gt;
ㄴ사실 몰라서 못찾는것도 있지만 몽골사람들 대부분이 저주걸릴까봐 차라리 안찾는게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카더라&lt;br /&gt;
&lt;br /&gt;
== 우리에게 유명한 사건 ==&lt;br /&gt;
&lt;br /&gt;
===오페르트 도굴 사건===&lt;br /&gt;
&lt;br /&gt;
정확하게는 오페르트 도굴 &amp;#039;&amp;#039;&amp;#039;미수&amp;#039;&amp;#039;&amp;#039; 사건이 맞다. 그런데 다들 도굴사건이라고 부른다. 파긴 팠으니까.&lt;br /&gt;
&lt;br /&gt;
&lt;br /&gt;
조선말기 오페르트 라는 [[유대인]](독일계 유대인:아슈케나지)이 당시 한반도의 집정자였던 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판 사건이다. 당연히 당시 조선사회는 뒤집어졌다.&lt;br /&gt;
&lt;br /&gt;
[[윾머인]]이 또;;&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1. [[유대인]] 오페르트는 왜 도굴을 했는가?&lt;br /&gt;
&lt;br /&gt;
{{망함}}&lt;br /&gt;
&lt;br /&gt;
대금업을 하던 집안에서 태어났던 오페르트는 홍콩에서 장사를 시작했는데 쫄딱 망했다. 그래서 도굴 해적질로 전업을 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리고 오페르트는 동양에 관심이 있던 사람이었고, 동양 국가들을 상당기간 독자연구했다. 물론 그당시의 조선에 대한 연구 또한 마찬가지다.&lt;br /&gt;
&lt;br /&gt;
잠시 머물다 가는 척 사람들과 안면을 터두기도 했고, 의외로 한국인에 대해서는 주변국보다 긍정적으로 봤다. &amp;#039;&amp;#039;&amp;#039;조선인(한국인)은 주변 중국인, 일본인 같은 동양인보다 키가 훨씬 크고 피부색이 하얀데, 동쪽으로 갔었다던 백인이나 유대인의 지파 중 하나일 수 있다.&amp;#039;&amp;#039;&amp;#039; 라고 평가함.&lt;br /&gt;
&lt;br /&gt;
인종주의와 식민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에 동아시아 인종 중 가장 백인스럽다는 이런 평가는 [[한국인]]종이 실제로 당시 동아시아인들 중 키가 크고 피부색이 밝은 색인 걸 떠나서도 꽤 고평가를 한 거다. &lt;br /&gt;
&lt;br /&gt;
&lt;br /&gt;
문제는 오페르트는 개인연구를 하기 이전에 이미 &amp;#039;&amp;#039;&amp;#039;도굴꾼으로 전업&amp;#039;&amp;#039;&amp;#039;을 한 상태.&lt;br /&gt;
&lt;br /&gt;
 조선인, 조선을 동양 국가들중에서 백인(문명인)에 가깝다고 &amp;#039;&amp;#039;&amp;#039;고평가&amp;#039;&amp;#039;&amp;#039; &amp;lt;br /&amp;gt;&lt;br /&gt;
 = 상대가 &amp;#039;&amp;#039;&amp;#039;가치가 있다&amp;#039;&amp;#039;&amp;#039; &amp;lt;br /&amp;gt;&lt;br /&gt;
 = (장사가 쫄딱 망하고나선 해적 도굴단으로 전업한 오페르트 입장에서) &amp;#039;&amp;#039;&amp;#039;털면 나올 것이 있어보인다.&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이런 &amp;#039;&amp;#039;&amp;#039;도굴꾼 사고회로&amp;#039;&amp;#039;&amp;#039;가 돌아가게 된다. &lt;br /&gt;
&lt;br /&gt;
&lt;br /&gt;
때문에 동양에서 살면서 장사도 하고,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면서 돈을 벌려던 그는 조선이라는 국가의 집정자인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묘를 파는 계획과 드림팀을 꾸리게 된 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2. 동업자는?&lt;br /&gt;
&lt;br /&gt;
오페르트는 [[외국]]에서 [[용병]]들을 고용해서 다국적 드림팀을 짰다. 이 팀은 도굴클랜 수괴 유대인 오페르트, [[필리핀]] 인부들, [[한국인]] [[천주교]]도들, [[중국인]] 100여 명으로 구성됐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대장인 오페르트는 당연히 도굴질로 돈을 벌려고 했고 중국 애들도 그냥 돈 주니까 따라온 거였다. 문제는 천주교인데, 이놈들은 조선의 천주교 박해를 막기 위해서 조선과 협상을 하려 했고 그 협상 도구로 [[흥선대원군]] 아버지(남연군)의 시체를 쓴다는 천주교 교황과 대주교들이 물구나무서기를 할 기상천외한 발상으로 도굴작업에 참여했다. 분명 부모 시체를 금쪽으로 여길 조선인일 텐데 천주교뽕 빨고 [[시체팔이]]로 전직한 것을 보면 새삼 종교의 힘을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3. 왜 실패하였는가?&lt;br /&gt;
&lt;br /&gt;
{{돌}}&lt;br /&gt;
&lt;br /&gt;
 [[시멘트|앙 딴딴띠~]]&lt;br /&gt;
&lt;br /&gt;
그리하여 왁자지껄한 다국적 병신들은 지금의 [[충청도]] [[서해대교]] 방면으로 진입하여 묘를 파헤쳤다. 그런데 그들이 예상치 못한 문제가 있었다. 몇 시간의 생지랄 끝에 무덤 상단에 쌓아놓은 흙은 대충 치웠는데 시체가 들어있는 관이 [[석회]]로 코팅이 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서 [[시멘트]]가 쳐져 있었던 것. 공구리질 덕분에 100명이 넘는 초호화 도굴팀이 생 난리를 쳐도 관뚜껑을 열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야사에서는 흥선대원군이 언젠가 아버지 무덤이 파헤쳐질 거라는 소리를 듣고 시멘트를 발랐다고 하는데 당시 조선 양반 집안에선 매장할 때 석회로 공구리를 치곤 했다. 무덤에 물이 들어가면 부정을 탄다나?  치밀하고 권력욕이 있었던 흥선대원군의 성격상 혹시몰라서 아버지 묘를 조금 더 깊게 파묻고 석회질을 딴딴하게 해댔을 순 있었겠다. 실제로 나중에 보니까 1미터가 넘는...정말 비정상적일만큼 두꺼운 쎄멘트질이 되어있었다. 100여명의 인력과 화약 조금 정도로는 당연히 시체건 부장품이건 도굴할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아무튼 두꺼운 석회는 깨질 기미가 안 보이고 날은 밝아오고 [[썰물]] 때가 다가오고 충청감사의 파병 병력이 거의 도착했다는 소식에 오페르트 팀은 무덤을 두고 철수했다. &lt;br /&gt;
&lt;br /&gt;
&lt;br /&gt;
4. 이후&lt;br /&gt;
&lt;br /&gt;
이렇게 끝냈으면 그냥 병신으로 역사에 남았을 텐데 돌아가기는커녕 뻔뻔하게 흥선대원군에게 [[편지]]를 썼다. 그런데 그 내용이 &amp;quot;니 애비 시체 굴묘편시 할 각이었는데 내가 인심 써서 봐줬다. 그러니까 나한테 감사하는 마음에서 우리 나라랑 [[수교]]해라.&amp;quot;였어서 흥선대원군에게 쫒겨났다. 이에 빡친 오페르트는 화풀이를 한답시고 [[영종도]]를 침공했다. 그런데 거기 관리의 총질에 필리핀 인부 둘이 죽자 나머지는 광속으로 도주했다.&lt;br /&gt;
&lt;br /&gt;
이후 오페르트는 [[미국]] 법정에서 욕 먹고 독일에서는 자국 망신이라고 욕 먹고 덤으로 유대인들에게도 욕 먹었다. 독일 내 유대인들이 같은 유대인이라고 욕 먹자 원흉인 오페르트를 깠기 때문이었다. &lt;br /&gt;
&lt;br /&gt;
[[프랑스]] 선교사, 중국인들, 필리핀인들은 알아서 잘 튀었으나 한국인 천주교도들과 영종도에서 죽은 두 필리핀 놈들은 모가지가 썰려서 저잣거리에 내걸렸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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