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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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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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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38: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4단원-1}}&lt;br /&gt;
Marcus Antonius&lt;br /&gt;
&lt;br /&gt;
고대 [[로마]]의 정치가이자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오른팔로 2차 삼두정치를 통해 로마의 대권을 노렸으나 자신의 능력 한계로 인해 [[옥타비아누스]]에게 패하고 역사속으로 사라진 인물이다.&lt;br /&gt;
&lt;br /&gt;
안토니우스 가문은 영향력은 작았지만 역사는 긴 가문으로, 공화정 초기 이후로 기록이 남지 않은 귀족집안 친척들과 달리 평민 출신들은 호민관 재임 등으로 꾸준히 역사에 이름을 남기다가, 본격적으로 중앙 정계에서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건 마르쿠스의 할아버지가 집정관을 맡으면서부터였다.&lt;br /&gt;
&lt;br /&gt;
어머니는 카이사르 가문 출신으로 외삼촌이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6촌인 루키우스 카이사르라 카이사르와는 매우 먼 친척관계다. 친아버지가 어렸을 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젊은 시절에 매우 방황했다고 한다. 계집질에 도박, 술먹고 패싸움은&lt;br /&gt;
기본이었고 호민관에 선출되기 위해 귀족의 신분을 버리고 평민의 양자로 들어갔던 클로디우스의 정치깡패로도 활동하는가 하면 전설상 로마의 건국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에게 젖을 먹였다는 암늑대를 숭배하는 컬트의 사제 노릇도 했다.&lt;br /&gt;
&lt;br /&gt;
그러다가 양아버지인 렌툴루스 수라가 카틸리나 사건에 휘말려 목숨을 잃고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판국이 되자 공부도 할겸 20살 때 그리스로 건너갔다. 동방에 있던 시절에 군인으로서의 경력을 쌓게 되는데 첫 상관은 폼페이우스의 막료인&lt;br /&gt;
아울루스 가비니우스였다. (가비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내전 때는 카이사르 편으로 종군했으며 병사했다) 유대 왕국과 이집트에서 기병 대장으로 복무하면서 간덩이를 전당포에 맡겨놓은 듯한 용맹을 떨쳐 이름을 높였다.&lt;br /&gt;
&lt;br /&gt;
카이사르가 갈리아 전쟁을 일으키자 이쪽이 전도유망하다고 판단했는지 전출을 신청해 카이사르 밑으로 들어갔고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나가며 승승장구했다. 다만,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를 &amp;#039;군단장으로는 차고 넘치지만 총사령관으로는 부족하다.&amp;#039;는 평을 남겼다. 훗날 최고 권력자의 자리를 노릴 때 벌인 뻘짓들을 생각하면 정확한 판단이었다. 트레보니우스나 데키무스 브루투스 등과 달리 갈리아 전쟁 막바지에 들어왔기 때문에 군단장급 인재들 중에선 막내의 처지였다. 그런데 카이사르의 내전 때 시칠리아와 아프리카를 점령하기 위해 책무를 맡겼던 쿠리오가 아프리카 전쟁에서 전사하여 그 빈자리를 채우게 되었고 클로디우스의 아내인 풀비아와 결혼하여 그의 세력도 손에 넣어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할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어쨌든 카이사르의 도움으로 기원전 52년에는 재무관, 49년에는 호민관으로 선출된다. 호민관 재임 시절에는 원로원파들을 상대로 거부권을 행사하는 등 버텼으나 원로원 최종 권고가 발동되자 로마를 떠나 카이사르에게 합류했다. 이후 벌어진 내전에서&lt;br /&gt;
계속해서 카이사르 쪽에서 싸웠고(파르살루스 전투 때는 좌익을 맡았다) 폼페이우스 암살 후에는 부독재관으로서 로마의 통치를 맡았다. 하지만 이 때 뇌물과 여색을 너무 밝혀서, 어느 정도는 봐주는 경향이 있던 고대에도 욕먹을 정도라 카이사르에게 실망을 샀고 한동안 정치쪽에서는 중용되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이후 2년 간 조용히 지내다가 카이사르의 동료 집정관으로 선출되었는데, 그에게 왕관을 바친 에피소드가 이 때 있었고 사람들의 싸한 분위기를 읽은 카이사르가 왕관을 다시 돌려줬다.&lt;br /&gt;
&lt;br /&gt;
카이사르가 죽은 후에는 삼두정을 하지만 클레오파트라를 만난 뒤 이집트를 위하겠다는 얼탱이없는 짓을 했다가 민심을 다 잃고 전쟁에서도 졌고 클레오파트라가 죽었다는 오보를 듣고 자살한다.&lt;br /&gt;
&lt;br /&gt;
[[분류:역사 속의 인물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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