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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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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8T04:45:1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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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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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38:3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진지}}&lt;br /&gt;
{{화가}}&lt;br /&gt;
&lt;br /&gt;
{{천재}}&lt;br /&gt;
{{위백}}&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class=&amp;quot;wikitable&amp;quot; border=&amp;quot;1&amp;quot;&lt;br /&gt;
|colspan=2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white;background-color:black;&amp;quot;| &amp;lt;big&amp;gt;&amp;#039;&amp;#039;&amp;#039;Michelangelo di Lodovico Buonarroti Simoni&lt;br /&gt;
미켈란젤로 디 로도비코 부오나로티 시모니&amp;#039;&amp;#039;&amp;#039;&amp;lt;/big&amp;gt;&lt;br /&gt;
|-&lt;br /&gt;
&lt;br /&gt;
|colspan=2 align=&amp;quot;middle&amp;quot;|[[파일:Michelangelo Buonarotti.jpg|500픽셀]]&lt;br /&gt;
|-&lt;br /&gt;
| colspan=2 height=&amp;quot;10&amp;quot; style=&amp;quot;background-color:black&amp;quot;|&lt;br /&gt;
|-&lt;br /&gt;
|width=&amp;quot;50&amp;quo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white;background-color:black;;&amp;quot;|국적&lt;br /&gt;
|width=&amp;quot;250&amp;quot;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black;background-color:white;&amp;quot;|[[이탈리아]]&lt;br /&gt;
|-&lt;br /&gt;
|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white;background-color:black;;&amp;quot;|직업&lt;br /&gt;
|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black;background-color:white;&amp;quot;|[[화가]], [[조각가]], [[건축가]]&lt;br /&gt;
|-&lt;br /&gt;
|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white;background-color:black;;&amp;quot;|장르&lt;br /&gt;
|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black;background-color:white;&amp;quot;|[[천재]]&lt;br /&gt;
|-&lt;br /&gt;
|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white;background-color:black;;&amp;quot;|출생&lt;br /&gt;
| align=&amp;quot;middle&amp;quot; style=&amp;quot;color:black;background-color:white;&amp;quot;|1475년 3월 62일 [[이탈리아]], [[카프레세]]&lt;br /&gt;
~1564년 2월 18일 [[이탈리아]], [[로마]]&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인용문|천재를 믿지 않는 자들, 천재란 무엇인지 모르는 자들은 미켈란젤로를 보라!|로맹 롤랑}}&lt;br /&gt;
                                                                    &lt;br /&gt;
&lt;br /&gt;
{{인용문|조각이란 덜어내기의 예술이다.|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조각, 회화, 건축을 아우르는 르네상스 거장 그리고 시인&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미켈란젤로의 작품 생애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는, 1475년 3월 6일 피렌체 공화국 외각에서 5자녀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lt;br /&gt;
&lt;br /&gt;
그의 가문은 상인 가문으로 정계에까지 진출했던 가문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정계에서의 영향력을 잃어갔고&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가 태어났을 때쯤에는 그의 가문은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lt;br /&gt;
&lt;br /&gt;
6년 뒤인 1481년에는 급기야 미켈란젤로의 어머니인 프란체스카가 사망하기까지 한다.&lt;br /&gt;
&lt;br /&gt;
그의 아버지인 로도비코 부오나로티는 아들 미켈란젤로가 미술을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학교에서 수업 중 몰래 그림을 그리다가 선생님에게 들켜 환쟁이(미술가를 비하하는 단어)라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lt;br /&gt;
&lt;br /&gt;
그래서 미켈란젤로는 성공한 이후 죽을 때 까지 가족들에게 돈 달라는 소리를 듣고 살게 된다.&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는 회화보다는 조각을 선호했는데 회화를 못 그린건 아니다. 단지 회화가 조각에 비해 사실감이 떨어져 더 열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 &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은 매우 역동적이고 우람하고 강렬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정적이고 부드러운 느낌의 다 빈치와는 비교된다. 그럴 것이 다 빈치는 소묘를 매우 꼼꼼하게 하였고 일부러 흐리게 색을 칠하는 스푸마토 기법을 적극 활용했는데 비해 미켈란젤로는 소묘는 대충하고 색칠에 집중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는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얕잡아보거나 업신여기는 버릇 때문에 친구 트리치아니의 그림을 보고 비웃었다가 아구창을 얻어맞았고 트리치아니에게 받은 상처가 평생 트라우마로 남았다고 한다. 즉, 자업자득.&lt;br /&gt;
&lt;br /&gt;
&lt;br /&gt;
==메디치 가문, 그리고 도나텔로==&lt;br /&gt;
[[파일:Michelangelo, centauromachia, 1492 ca., 01.JPG|400픽셀|섬네일|왼쪽|켄타우로스의 전투, 84.5cm×90.5cm, 1492년&amp;lt;ref name=&amp;quot;creativecommons.org&amp;quot;&amp;gt;By Sailko (자작)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amp;lt;/ref&amp;gt; ]]&lt;br /&gt;
[[파일:미켈란젤로 마돈나.JPG||250픽셀|설명|By Sailko (자작)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섬네일|오른쪽|계단 위에 성모, 56.7&amp;amp;nbsp;cm×40.1&amp;amp;nbsp;cm, 1490~1491년&amp;lt;ref name=&amp;quot;creativecommons.org&amp;quot;/&amp;gt;]]&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는 일찍이 미술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화가이자 스승이었던 기를란다요 밑에 들어가 견습 생활을 시작한다.&lt;br /&gt;
&lt;br /&gt;
3년 동안의 견습 생활 끝에, 미켈란젤로에게 일생일대에 순간이 찾아오는데, 바로 메디치 가문과 디 조반니와의 만남이었다.&lt;br /&gt;
&lt;br /&gt;
메디치 가문은 당시 피렌체 공화국 정치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가문이며, 르네상스 미술에 크나큰 후원자였던 엄청나게 잘 나가는 가문이었다.&lt;br /&gt;
&lt;br /&gt;
디 조반니는 르네상스의 또 다른 거장이었던 도나텔로의 제자였다. 그런 디 조반니는 메디치 가문과 함께 견습생들을 가르치고 있었고,&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는 디 조반니 밑에서 도나텔로의 작품들 모작하며 실력을 키워나갔다&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가 만든 최초의 조각품은 [http://image.invaluable.com/housePhotos/sothebys/21/287021/H0046-L16178135.jpg &amp;#039;판의 얼굴&amp;#039;] 로 추정되는데, 이 조각품을 본 로렌초 데 메디치는 늙은 판&amp;lt;ref&amp;gt;제우스와 님프 사이에 나온 목신&amp;lt;/ref&amp;gt; 치고는&lt;br /&gt;
&lt;br /&gt;
치아가 너무나 튼튼해 보인다는 지적을 하자, 미켈란젤로는 그 자리에서 판의 이빨을 부수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lt;br /&gt;
&lt;br /&gt;
이때부터, 로렌초 데 메디치는 어린 미켈란젤로의 재능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lt;br /&gt;
&lt;br /&gt;
이후에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에게 사정없는 거친 후빨을 받기 시작하는데, 메디치 가문과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가 하면,&lt;br /&gt;
&lt;br /&gt;
메디치 가문을 찾아왔던 수많은 철학자와 시인들과도 자연스레 담소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가 거장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런 훌륭한 환경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일 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는 개뿔 1492년 4월 그의 후빨러였던 로렌초가 돌연 사망하면서 그의 이런 행복한 시절도 끝이 나며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간다.&lt;br /&gt;
&lt;br /&gt;
1494년 스피리토 수도원 병원에서 인체 해부학에 대해 깊이 있게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때 습득한 해부학 지식들은 미켈란젤로 화풍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lt;br /&gt;
&lt;br /&gt;
1494년부터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바람에 베네치아로 갔다가 볼로냐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그는 볼로냐 대성당에 있는 야코포 델라 퀘르차의 조각상에 영향을 받았으며,&lt;br /&gt;
&lt;br /&gt;
볼로냐 대성당 재단에 올려놓을 3개의 조각상 성 프로콜루스, 성 페트로니우스, 촛불을 든 천사를 제작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사기꾼 미켈란젤로==&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여기저기서 미술 실력을 키우던 미켈란젤로는 메디치 가문에게 다시 부름을 받아  피렌체로 돌아온다&lt;br /&gt;
&lt;br /&gt;
그곳에서 그는 메디치 가문의 새로운 후계자였던 로렌초 디 피에르의 의뢰로 잠자는 큐피드를 만들게 되는데,&lt;br /&gt;
&lt;br /&gt;
이때 미켈란젤로는 잠자는 큐피드를 고대 그리스 조각이라고 속여 비싼 값에 다른 사람들에게 팔아버리려는 계획을 세우게 된다. &lt;br /&gt;
&lt;br /&gt;
당시 고대 그리스 조각은 갑부들 사이에서는 큰 인기를 끌던 수집품이었기에 미켈란젤로는 잠자는 큐피드를 만들자마자 &lt;br /&gt;
&lt;br /&gt;
정으로 쳐 금이 가게 하고 땅 속에 묻어 색이 바래게까지 하여 진짜, 고대 그리스 조각인 것처럼 속여 팔아버렸다.&lt;br /&gt;
&lt;br /&gt;
이 잠자는 큐피드를 구입한 인물은 당시 추기경이었던 리아리오 디 산 조르조였는데,&lt;br /&gt;
&lt;br /&gt;
성공할 것 같았던 이 사기극은 미술에 학식이 높았던 리아리오 추기경의 의심으로 결국 발각되었다.&lt;br /&gt;
&lt;br /&gt;
리아리오는 바로 사람을 피렌체에 보내 미켈란젤로에게 따지려 하였다 그런데,&lt;br /&gt;
&lt;br /&gt;
따지려고 보냈던 측근들이 미켈란젤로의 작품들을 보고 그만 매료되어 그대로 돌아와 버린 것...&lt;br /&gt;
&lt;br /&gt;
==굴욕의 바쿠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Michelangelo Bacchus.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바쿠스(Bacchus), &lt;br /&gt;
1497년, 높이203cm, 바르젤로 미술관]]&lt;br /&gt;
&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가 범상치 않은 실력을 가진 조각가라는 걸 들은 리아리오 추기경은 미켈란젤로를 로마로 불러들인다.&lt;br /&gt;
&lt;br /&gt;
아이러니하게도, 사기극 덕분에 로마에 입성하게 된 미켈란젤로는 리아리오 추기경의 의뢰를 받아&lt;br /&gt;
&lt;br /&gt;
야심 차게 비쿠스를 제작하게 된다. 그러나&lt;br /&gt;
&lt;br /&gt;
추기경은 술에 취한 듯한 바쿠스의 비대칭적인 모습에 놀라고, &lt;br /&gt;
&lt;br /&gt;
대리석 안에 있어 미쳐 발견할 수 없었던 잔금들이 비쿠스 얼굴에 그대로 드러난 모습에 두 번 놀라 구입을 거절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야심에 차있던 미켈란젤로는 보기 좋게 거절당하며 인생의 크나큰 굴욕을 맛보게 된 것이다. &lt;br /&gt;
&lt;br /&gt;
다행히 바쿠스는 자코포 갈리라는 은행가에게 팔리게 되는데, 갈리는 바쿠스를 통해 미켈란젤로의 미숙하지만 아직 폭발하지 않은 재능을 알아차리고&lt;br /&gt;
&lt;br /&gt;
계속해서 작품을 의뢰한다. 덕분에 미켈란젤로는 계속해서 작품을 이어갈 수 있었으며 후에 갈리는 미켈란젤로의 보증인을 자처하기까지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바쿠스의면상.jpg|300픽셀|섬네일|왼쪽|바쿠스 오른쪽 눈 주위에 검은 잔금들을 확인할 수 있다.&amp;lt;ref&amp;gt;By Miguel Hermoso Cuesta (자작) [CC BY-SA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피에타==&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파일:Michelangelo&amp;#039;s Pietà, St Peter&amp;#039;s Basilica (1498–99).jpg|800픽셀|섬네일|왼쪽|&lt;br /&gt;
피에타(Pietà), 1499년, 174&amp;amp;nbsp;cm × 195&amp;amp;nbsp;cm, 성 베드로 성당&amp;lt;ref&amp;gt;By Juan M Romero (자작) [CC BY-SA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5Commons&amp;lt;/ref&amp;gt;]]&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조각상&amp;#039;&amp;#039;&amp;#039;&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약 13세기 경, 독일에서는 &amp;#039;저녁 기도상&amp;#039;이라고 하여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2/Regensburg%2C_Vesperbild_aus_dem_Domkreuzgang%2C_Di%C3%B6zesanmuseum_St._Ulrich%2C_Stein%2C_um_1350.jpg &amp;#039;베스퍼빌트&amp;#039;]&amp;lt;ref&amp;gt;Vesperbild&amp;lt;/ref&amp;gt; 를 만드는 전통이 있었는데,이 전통은 머지않아 프랑스, 이탈리아에까지 전해지게 된다, 이탈리아에서는 이것을 바로 &amp;#039;피에타&amp;#039;라고 부른다. &lt;br /&gt;
&lt;br /&gt;
피에타의 뜻은 이탈리아어로 &amp;#039;슬픔, 비탄&amp;#039;인데, 기독교에 있어서 대표적인 예술 주제이며 주로 조각으로 예술품이 많이 존재한다.&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 본인 또한 성 베드로 성당의 피에타를 제외하고 다른 피에타 작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게 론다니니의 피에타, 피렌체의 피에타.&lt;br /&gt;
&lt;br /&gt;
1498년, 미켈란젤로에게 또 다른 기회가 찾아온다. &lt;br /&gt;
&lt;br /&gt;
빌레르 드 라그롤라 추기경은 자신의 무덤에 쓰일 조각상을 의뢰하면서 &amp;quot;이 시대에 가장 아름다운 조각&amp;quot;&amp;lt;ref&amp;gt;이 조건의 보증을 한 사람도 자코포 갈리이다&amp;lt;/ref&amp;gt; 이여한다는 조건까지 달았다. &lt;br /&gt;
&lt;br /&gt;
근근이 살아가던 미켈란젤로에게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으며, 굴욕적이던 바쿠스 사건을 만회하고 일어설 기회였다.&lt;br /&gt;
&lt;br /&gt;
바쿠스 조각상처럼 대리석에 숨어있던 잔금이 걱정되었던 미켈란젤로는 이번에는 직접 채석장까지 가서 대리석을 심사숙고해서 고르고 &lt;br /&gt;
&lt;br /&gt;
운반하기까지 과정을 졸졸 따라다니며 직접 감독하기까지 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피에타 조각에 착수한지 &amp;#039;&amp;#039;&amp;#039;단 1년여 만&amp;#039;&amp;#039;&amp;#039;에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조각 상이자 인류의 유산인 피에타를 세상에 내놓았다&lt;br /&gt;
&lt;br /&gt;
피에타를 보면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성모 마리아의 크기이다, 여성인데도 몸집이 무척 거대하게 제작되었다.&lt;br /&gt;
&lt;br /&gt;
이것은 여성이었던 마리아의 작은 체구에, 남성이었던 예수를 가로로 안고 있는 모습이 부자연스러워 보일까 봐 일부러 마리아 몸집을 크게 만들어 안정감을 준 것.&lt;br /&gt;
&lt;br /&gt;
또한 정면에서 봤을 때 성모 마리아가 왼쪽으로 살짝 돌아가있는데 성모 마리아가 왼손을 가지런히 핌으로써, 보는 이를 하여금 자연스레 예수에게 시선이 가도록 하였다.&amp;lt;ref&amp;gt;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삼각 구도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즉, 미켈란젤로는 자연스러운 연출을 위해 이러한 구도 또한 고려해서 제작하였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마리아가 예수 어머니임에도 얼굴이 굉장히 어려 보이는데 동정녀였던 마리아를 상징하는 부분으로 해석된다&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가 만들다 손가락이 남아나지 않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옷주름이 정밀하게 조각되어 입체감을 더하며&lt;br /&gt;
&lt;br /&gt;
정말 방금 죽은 듯이 자연스럽게 누워있는 예수의 모습과 인자한 성모 마리아의 인상 때문에 저절로 경건한 마음이 들게 만든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서명과 오타===&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미켈란젤로 피에타 이름.png|350픽셀|섬네일|왼쪽| &amp;#039;&amp;#039;&amp;#039;MICHAEL. ANGELUS. BUONAROTUS. FLOREN. FACIEBA &amp;#039;&amp;#039;&amp;#039;&lt;br /&gt;
피렌체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가 만들다.&amp;lt;ref&amp;gt;By Juan M Romero (자작) [CC BY-SA 4.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sa/4.0)], via Wikimedia Commons&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우여곡절 끝에 만들어진 피에타를 보며, 대단히 흡족하였는지 유일하게 작품 중앙에 서명을 넣었다.&lt;br /&gt;
&lt;br /&gt;
그것도 성모마리아에게 가슴 팍에  대 놓고 띠처럼 만들어 보는 사람들이라면 시선을 지나칠 수 없게끔 만들었다...&lt;br /&gt;
&lt;br /&gt;
이 서명 중에는 오타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amp;quot;FACIEBA&amp;quot; 원래는 &amp;#039;만들다&amp;#039;라는 뜻의 &amp;quot;FACIT&amp;quot;가 맞지만&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 이전 시대의 예술가들은 서명에 &amp;quot;FACIT&amp;quot; 대신에 일부러 &amp;quot;FACIEBAT&amp;quot; 라는 단어를 만들어 써 오타를 냈다.&lt;br /&gt;
&lt;br /&gt;
이렇게 오타를 냄으로써  &amp;#039;&amp;#039;&amp;#039;예술에 있어서 완전함, 완성은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여기에 한술 더 떠 미켈란젤로는 철자 T를 빼어버려  &amp;quot;FACIEBA&amp;quot; 라고 쓴 것,  예술에 대한 미켈란젤로의 경의의 표시로 보면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다비드==&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amp;#039;David&amp;#039; by Michelangelo JBU0001.JPG|500픽셀|섬네일|왼쪽|&lt;br /&gt;
다비드(David), 1501년~1504년, 높이 5.17m, 피렌체 아카데미 미술관&amp;lt;ref&amp;gt;By Jörg Bittner Unna (자작)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amp;lt;/ref&amp;gt;]]&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amp;#039;&amp;#039;&amp;#039;자유 시민의 다비드&amp;#039;&amp;#039;&amp;#039;&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일약 스타가 된 미켈란젤로는 시에나 성당과 두오모 성당에서도 작품을 조각하기 시작한다.&lt;br /&gt;
&lt;br /&gt;
조각상 하나를 완성하는데 적어도 1년 이상의 장시간이 소요되는데도 불구하고, 미켈란젤로는  다중으로 계약하면서 조각을 하고 있었던 것.&lt;br /&gt;
&lt;br /&gt;
후에 이 작품들은 피렌체 시의회가 의뢰한 작품 때문에 미완성으로 남아버리게 된다.&lt;br /&gt;
&lt;br /&gt;
당시 피렌체는 시민들의 봉기로 권력을 장악했던 메디치 가문을 몰아낸 뒤였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미켈란젤로에게 다비드 상을 의뢰한 것이었는데,&lt;br /&gt;
&lt;br /&gt;
거인이었던 골리앗을 물리친 다비드의 모습이 권력에 맞서싸운 피렌체의 시민들을 상징하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시의회가 부탁한 다비드 상에 쓰일 대리석은 아고스티노 디 두초라는 조각가가 작업을 하다가 포기하고 방치된 대리석 덩어리이었는데&lt;br /&gt;
&lt;br /&gt;
당시 그 대리석은 높이 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에 오랫동안 방치된 터라 상태가 전혀 좋지 않았다.&lt;br /&gt;
&lt;br /&gt;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피렌체의 자유시민들을 기리기 위해 계약을 수락하게 된다. &amp;lt;s&amp;gt;메디치 가문의 뒷통수를 후렸다&amp;lt;/s&amp;gt;&lt;br /&gt;
&lt;br /&gt;
그렇게 1501년 시작된 조각은 3년여만인 1504년에 완성되었다.&lt;br /&gt;
&lt;br /&gt;
당당하면서도 여유로운 자세에 과하지 않으면서 균형 있게 다부져진 몸매는 아름답기까지 하였으며 5m에 달하는 거대한 크기는 보는 이들을 압도했다.&lt;br /&gt;
&lt;br /&gt;
얼굴의 크기와 표정은 과장되어있는데 다비드상의 거대한 크기 때문에 아래에서 목이 빠져라 쳐다보아야 할 관람객들의 시점을 고려해 얼굴을 크게 만들었고&lt;br /&gt;
&lt;br /&gt;
표정을 과장시켜 잘 볼 수 있도록 하였다.&lt;br /&gt;
&lt;br /&gt;
당시 피렌체 시의회는 이 걸작을 두고 어디에 설치할지에 대해 한동안에 토론이 벌어지기도 하였는데 원래는 대성당 상부에 놓일 예정이었으나,&lt;br /&gt;
&lt;br /&gt;
너무나 큰 크기 때문에 옮길 엄두도 내지 못 했다. 결국은 토론 끝에 피렌체 시청 입구에 있던 도나텔로의 &amp;quot;유디트&amp;quot;를 옮기고 그 자리에 설치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아이러니하게도 어릴 적 도나텔로의 작품들을 보며 꿈을 키워나갔었던 미켈란젤로는 시간이 흘러 다비드상으로써 도나텔로의 작품을 밀어내&lt;br /&gt;
&lt;br /&gt;
거장의 반열에 올랐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다비드와 헤라클레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Hercule et Cacus Bandinelli Florence Signoria.jpg|300픽셀|섬네일|왼쪽|&lt;br /&gt;
헤라클레스와 카쿠스(Hercules and Cacus), 반디넬리, 1534년, 높이 5.05m, 피렌체 광장]]&lt;br /&gt;
&lt;br /&gt;
[[파일:Donatello-Judith and Holofernes-Palazzo Vecchio.jpg|300픽셀|섬네일|오른쪽|&lt;br /&gt;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Judith and Holofernes), 도나텔로, 1460년, 높이 236&amp;amp;nbsp;cm, 피렌체 광장]]&lt;br /&gt;
&lt;br /&gt;
&lt;br /&gt;
다비드상이 설치된 후에 일화도 흥미로운데, 당시 피렌체 시민들의 봉기에 의해 물러났던 메디치 가문은 머지않아 다시 피렌체를 장악하게 된다.&amp;lt;ref&amp;gt;1513년 즉위한 교황 레오 10세가 바로 메디치 가문 출신으로 당시 메디치 가문의 권력은 막강했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1527년에 시민들은 다시 한번 봉기하였고 이때에 여파로 성난 시민들에 의해 다비드 상이 피해를 입기도 하였지만 미켈란젤로의 제자였던 바사리가 &lt;br /&gt;
&lt;br /&gt;
수리하였다.&lt;br /&gt;
&lt;br /&gt;
아무튼, 메디치 가문이 다시 피렌체를 장악함으로써, 시민들의 편에 섰었던 미켈란젤로의 입장은 난처해지고 만다.&lt;br /&gt;
&lt;br /&gt;
메디치 가문이 장악한 피렌체 정부는 미켈란젤로가 아닌, 친 메디치파 였던 &amp;#039; 반디넬리&amp;#039; 조각가에게  &amp;#039;헤라클레스&amp;#039; 조각상을 의뢰하였고,&lt;br /&gt;
&lt;br /&gt;
힘의 상징인 &amp;#039;헤라클레스&amp;#039; 조각상을 다비드상 옆에 나란히 세움으로써 메디치 가문의 건재함을 과시하였다.&lt;br /&gt;
&lt;br /&gt;
지금도 피렌체 광장에가면 다비드상 모작품과&lt;br /&gt;
헤라클레스 조각상이 함께 있다.&lt;br /&gt;
&lt;br /&gt;
=시스티나 대성당 프레스코화=&lt;br /&gt;
&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amp;#039;&amp;#039;&amp;#039;미켈란젤로의 암흑기&amp;#039;&amp;#039;&amp;#039;&lt;br /&gt;
&amp;lt;/center&amp;gt;&lt;br /&gt;
&lt;br /&gt;
1505년 명성이 자자했던 미켈란젤로는, 권력의 끝판왕이었던 교황 율리우스 2세에 부름을 받게 된다.&lt;br /&gt;
&lt;br /&gt;
교황 율리우스 2세의 요청은 자신이 죽으면 세울 무덤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그것도 보통 무덤이 아니라 전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없을 무덤을 만들어 줄 것을 요구했다. &lt;br /&gt;
&lt;br /&gt;
이에 회답하기 위해 미켈란젤로는 &amp;#039;&amp;#039;&amp;#039;3층 구조의 석조물&amp;#039;&amp;#039;&amp;#039;에 &amp;#039;&amp;#039;&amp;#039;40여개에 조각상&amp;#039;&amp;#039;&amp;#039;을 배치한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lt;br /&gt;
&lt;br /&gt;
이와 별도로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무덤을 설치할 대성당을 신축하기 위해, 바티칸에 있던 옛 대성당을 허물고 신축을 진행한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amp;quot;성 베드로 성당&amp;quot;이다.&amp;lt;ref&amp;gt;성 베드로 성당 이전에도, 4세기에 만들어진 옛 성 베드로 성당이 있었다. 하지만 율리우스는 낡은 옛 성 베드로 성당을 철거하고 다시 지은 것이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교황의 무덤을 의뢰받은 미켈란젤로는 의욕적으로 작업을 진행시킨다. 먼저 채석장에 가 수십 톤이 넘는 대리석들을 심사숙고해 가지고 돌아오게 되는데,,,&lt;br /&gt;
&lt;br /&gt;
교황 율리우스 2세는 성 베드로 성당의 신축에만 온통 관심이 있었지 미켈란젤로는 안중에도 없었다. 이에 크게 실망한 미켈란젤로는 율리우스 2세의 무덤을 만드는 일을 중단한 채 떠나버린다.&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바로 그 순간부터 율리우스 2세와의 악연은 시작되게 된다.&amp;#039;&amp;#039;&amp;#039;  피렌체로 도망쳤던 미켈란젤로는 1년 뒤인 1506년 교황 율리우스 2세에 강압적인 부름에 어쩔 수 없이 다시 교황을 찾아간다.&lt;br /&gt;
&lt;br /&gt;
교황 앞에 당도한 미켈란젤로는 머리를 땅에 숙일 수밖에 없었다. 교황은 그런 미켈라젤로를 꾸짖으며 그에게 형벌 아닌 형벌을 내리게 되는데&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그것이 바로 오늘날에 시스티나 성당의 프레스코화&amp;#039;&amp;#039;&amp;#039;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Michelangelo, Sonnet with a caricature.jpg|섬네일|500픽셀|왼쪽|&lt;br /&gt;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를 그릴 시절 친구에게 보낸 소네트]]&lt;br /&gt;
&lt;br /&gt;
&lt;br /&gt;
{{인용문|나는 이 고문 때문에 갑상선종이 생겼다네,&lt;br /&gt;
&lt;br /&gt;
롬바르디아의 독물 때문에 고양이들이 붓 듯이..&lt;br /&gt;
&lt;br /&gt;
내 수염은 하늘을 향해 있고 짓눌린 내 뒤통수로 뇌가 느껴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그리고, 내 목에는 하피&amp;lt;ref&amp;gt;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죽음의 정령, 미켈란젤로의 목에 있는 갑상선종을 가르킨다.&amp;lt;/ref&amp;gt; 의 가슴이 자라나고 있다네&lt;br /&gt;
&lt;br /&gt;
내 붓의 물감들은 내 얼굴 위로 떨어져&lt;br /&gt;
&lt;br /&gt;
멋진 바닥을 만들어내고 있어&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내 척추는 뱃살을 밀어냈고,&lt;br /&gt;
&lt;br /&gt;
엉덩이는 뒤로 쑥 뺀 체 고정되어 있다네&lt;br /&gt;
&lt;br /&gt;
나는 보이지 않는 무의미한 길을 걷고 있다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내 앞쪽 살들은 팽팽하게 당겨지고,&lt;br /&gt;
&lt;br /&gt;
뒤쪽은 뭉쳐져 매듭이 되었어...&lt;br /&gt;
&lt;br /&gt;
나는 시리아의 활처럼 휘어버렸다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내 마음 속에 여러 가지 생각들이&lt;br /&gt;
&lt;br /&gt;
나를 미치게 만들고 있어&lt;br /&gt;
&lt;br /&gt;
휘어버린 화살 총으로는 그 누구도 맞출 수 없지&lt;br /&gt;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내 그림은 죽어버렸어....&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조반니, 내 명예를 지켜주게&lt;br /&gt;
&lt;br /&gt;
나는 이곳에 있어서는 안돼&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나는 더 이상 화가가 아니야...&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미켈란젤로가 친구인 조반니에게 보내는 소네트로써, &lt;br /&gt;
&lt;br /&gt;
시스티나 성당 프레스코화로 인한 자신의 심정과 처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미켈란젤로는 회화보다는 조각을 만드는 걸 좋아했기 때문.&lt;br /&gt;
&lt;br /&gt;
글 옆에 있는 그림이 바로 천장화를 그리는 미켈란젤로 본인의 모습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천장화는 일반 회화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프레스코 벽화 기법으로 작업해야 했으며, 아무리 천재였던 미켈란젤로라도 할지라도 쓰지 않았던 기법을 능숙하게 사용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amp;lt;ref&amp;gt;어릴 적 디 조반니 밑에서 배우긴 했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았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이를 거부할 권한 따위는 없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이전에 율리우스 2세는 또 다른 형벌로 기마 청동상을 제작하게 하였고 그 뒤인 1508년 천장화는 시작된다.&lt;br /&gt;
&lt;br /&gt;
정면이 아닌 천장을 바라보며 그려야 했기에 특수한 구조물들을 설치하였고 미켈란젤로는 그 위에 선채로 천장만을 보며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무려 4년 동안을...&lt;br /&gt;
&lt;br /&gt;
도중에 자괴감이 들어 몇 번 몰래 탈주했지만 교황이 이잡듯이 뒤져서 그 때 마다 다시 잡아들여 감금시켰다.&lt;br /&gt;
&lt;br /&gt;
그런데 미켈란젤로를 괴롭히는 것은 이것뿐 만이 아니다. 프레스코 기법은 회반죽을 바르고 그것이 마르기 전에 색 안료를 발라 말려 완성하는 것이었는데, 아무래도 천장이다 보니 중력에 의해 회반죽과 안료들이&lt;br /&gt;
&lt;br /&gt;
우수수 떨어지기 일 수였으며, 회반죽 위에 안료를 칠하는데 성공하자 이번에는 곰팡이가 피기 시작한 것이다. 하기도 너무나 싫은데 제대로 되지도 않으니 미켈란젤로는 그야말로 절망에 빠져버린다.&lt;br /&gt;
&lt;br /&gt;
나중에는 교황에게 찾아가 도저히 못하겠으니 라파엘로에게 맡겨달라고 요구까지 하였지만... 교황은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애초에 라파엘로한테 시킬거면 미켈란젤로가 도망칠 때 마다 잡아들이지 않았겠지..&lt;br /&gt;
&lt;br /&gt;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괜히 천재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더디게 진행되던 작업들은 그가 프레스코 기법에 익숙해지고 시간이 흐르자 속력이 붙기 시작했고&lt;br /&gt;
&lt;br /&gt;
1510년 여름 즈음에 거의 절반 밖에 완성되지 않았던 천장화는 1512년에 비로소 완성되어 공개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Cappella sistina, volta 02.jpg|섬네일|1500픽셀|가운데|&lt;br /&gt;
시스티나 대성당 천장 프레스코화, 36m x 13m, 1508년~1512년]]&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시스티나 대성당 프레스코화 세부내용==&lt;br /&gt;
&lt;br /&gt;
[[파일:Cappella sistina, volta 03.jpg|섬네일|1500픽셀|가운데]]&lt;br /&gt;
&lt;br /&gt;
=== 1. 리비아 무녀,  어둠과 빛, 에레미야===&lt;br /&gt;
&lt;br /&gt;
[[파일:Michelangelo - Sistine Chapel ceiling - 1st bay.jpg|섬네일|1500픽셀|가운데| 에레미야 - 어둠과 빛 - 리비아 무녀]]&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amp;#039;LibyanSibyl Sistine Chapel ceiling&amp;#039; by Michelangelo JBU34.jpg|섬네일|500픽셀|가운데|&amp;lt;ref&amp;gt;By Jorg Bittner Unna (Own work) [CC BY 3.0 (http://creativecommons.org/licenses/by/3.0)], via Wikimedia Commons&amp;lt;/ref&amp;gt; 리비아 무녀, 여성이지만 남성 만큼이나 다부진 근육이 돋보인다. 미켈란젤로 그림체의 가장 큰 특징.]]&lt;br /&gt;
[[파일:Michelangelo, Separation of Light from Darkness 00.jpg|섬네일|600픽셀|가운데| 창세기의 시작, 빛과 어둠]]&lt;br /&gt;
[[파일:Michelangelo, profeti, Jeremiah 01.jpg|섬네일|600픽셀|가운데| 에레미야, 고뇌하는 미켈란젤로 본인의 자화상을 그려넣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둘러보기 =&lt;br /&gt;
{{15세기}}&lt;br /&gt;
{{16세기}}&lt;br /&gt;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4단원-1}}&lt;br /&gt;
&lt;br /&gt;
=각주/저작권 표시=&lt;br /&gt;
&lt;br /&gt;
* 저작권 표시가 없는 이미지는 퍼블릭 도메인 입니다.&lt;br /&gt;
[[분류:미술]]&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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