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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발미 전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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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1:06:0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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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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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9:09:4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참교육}}&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파일:battle of Valmy.gif|700픽셀]]&lt;br /&gt;
&lt;br /&gt;
Battle of Valmy&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1792년 9월 20일에 벌어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연합군과 [[프랑스]] 혁명정부 간의 전투.&lt;br /&gt;
&lt;br /&gt;
==배경==&lt;br /&gt;
때는 [[프랑스 혁명]] 초기. [[루이 16세]] 이 [[찐따]] 새끼가 가만히 있으면 온건파가 [[쉴드]]라도 쳐줬을텐데 도망치다 걸린다. 이게 바렌느 사건&amp;lt;ref&amp;gt;바렌느 도주 또는 바렌느 배신 사건이라고도 불린다&amp;lt;/ref&amp;gt; 째다 걸린 루이 16세 일가는 유폐되었다.&lt;br /&gt;
&lt;br /&gt;
아무튼 안 그래도 무지랭이들이 [[왕]]을 끌어내린것도 맘에 안들었는데 유폐까지 했다는 사실에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는 불쾌해 한다. 혁명의 영향이 자국 내에도 올까봐 걱정된 것. 결국 양국은 1791년 8월에 이른바 &amp;#039;필니츠 선언&amp;#039;을 한다. 선언의 내용은 왕에게 털 끝이라도 손 대면 파리를 [[통구이|불 태워버리겠다는]], 한마디로 프랑스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다는게 골자였다.&lt;br /&gt;
&lt;br /&gt;
씨발 이쯤이면 지렸겠지라고 생각한 프로이센과는 달리 프랑스인들은 빡이 단단히 쳤고, 한편으로 혁명정부는 생존을 위해 싸워야 할 상황에 처했다고 인식한다. 혁명정부는 의용군을 소집하고, 다음해 92년 양국에 선전포고를 했다. &lt;br /&gt;
&lt;br /&gt;
==전개==&lt;br /&gt;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 양국에 선전포고를 날린건 좋았는데... 브라운 슈바이크 [[공작]]의 지휘 아래 [[국경]]을 넘어 침공해 오는 7만의 프-오 연합군을 상대로 파죽지세로 [[개발살]] 나는 쪽은 프랑스 군이었다. 이럴 수 밖에 없었던건 당시 군사 교육을 받고 지휘를 하던 [[장교]]들을 [[귀족]]이라는 이유로 [[머가리]]에 [[죽창]]을 꽂아버렸기 때문이다. 이러니 남은건 혁명에 찬성했던 소수의 귀족 장교+군대완 관계도 없는 씹초보들. 군사령관 자리에 이발사가 앉는 꼬라지가 벌어지던게 당시 혁명군의 상황이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한가.&lt;br /&gt;
&lt;br /&gt;
아무튼 [[파리]] 근교까지 들이닥친 상태로 그야말로 절체절명, 풍전등화의 위기.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레알 기적이 벌어진다. 혁명군이 이겨버렸다.&lt;br /&gt;
&lt;br /&gt;
프랑스 승리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혁명정부가 소집한 의용군들은 사기가 높았다. &amp;#039;&amp;#039;&amp;#039;조국이 위기에 쳐해있습니다&amp;#039;&amp;#039;&amp;#039; 라는 멘트가 약빨이 잘 먹혔고, 고등한 군사훈련은 못받았지만 [[돌격|닥돌]]은 잘했던게 승리의 요인. &lt;br /&gt;
&lt;br /&gt;
아무튼 연합군이 물러감으로 전투는 혁명 정부의 승리로 돌아갔다.&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그야말로 혁명을 구한 전투.&lt;br /&gt;
&lt;br /&gt;
전체 피해는 프랑스측이 300여명, 오프 연합군은 100여명으로 사실 크게 박터진 전투도 아니다. 다만 결과적으로 프랑스는 승리했고, 혁명의 가치를 온존할 수 있었다는게 가장 큰 영향. 발미에서 패배했다면 파리가 함락되었을 거고, 루이 16세가 복권되면 [[공화국]]이 성립이나 됐을까? 잘해봐야 [[입헌군주제]]로 퉁쳤을 확률이 높다.&lt;br /&gt;
&lt;br /&gt;
==이후==&lt;br /&gt;
바렌느 사건과 더불어 프-오 연합군의 침공으로 루이 16세 일가는 미운털이 잔뜩 박혔다. 국왕이 외국의 군대와 손잡고 자국민을 죽이려했다는게 이유. 안그래도 위태위태하던 루이16세는 침공 과정에서 탑에 유폐되었고, 발미 전투 승리 후 혁명 정부의 왕정 폐지 선언과 더불어 머가리가 날아가게 된다. 공화국이 성립된 것이다.&lt;br /&gt;
&lt;br /&gt;
혁명 정부는 이 전투의 승리로 자신감을 회복한다. 특히 의용병이 주축이 된 시민군이 훈련된 타국군, 용병들을 물리쳤다는 사실은. 안그래도 바게뜨들 DNA에 전통적으로 흐르는 국뽕을 치사량까지 축적시켰다. &lt;br /&gt;
&lt;br /&gt;
결국 왕 머가리 날리며 성립된 신생 프랑스 공화국은 대외적으로도 &amp;#039;우리처럼 왕 머가리 날리고 정부 뒤엎을 색휘들아, 횽이 휫자쏜다&amp;#039; 라고 선언했고, 사보이와 니스, 벨지움을 합병한다. 그리고 이어서 네덜란드, 영국,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한다. 바야흐로 혁명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lt;br /&gt;
&lt;br /&gt;
==여담==&lt;br /&gt;
현재의 프랑스 국가 [[라 마르세예즈]]는 이때 소집된 남 프랑스 마르세예즈 지역의 의용군들이 부른 노래다. 노래 가사가 살벌한데, 가사에 외국의 용병들이 어쩌구 나오는건 이 전투가 배경이기 때문. &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분류:유럽사]]&lt;br /&gt;
[[분류:전투]]&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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