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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마민주항쟁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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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03:34:0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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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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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08:2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lt;br /&gt;
{{알림 상자&lt;br /&gt;
|제목색=#0100FF&lt;br /&gt;
|색 =#0100AA&lt;br /&gt;
|배경색=#FFBB00&lt;br /&gt;
|제목=&amp;lt;font size=5&amp;gt;[[정의구현|정의가 구현되었습니다!!]]&amp;lt;/font&amp;gt;&lt;br /&gt;
|본문=이 문서에서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정의를 존나 드물게도 현실에 구현해낸 보람찬 사건을 설명하고 있습니다.&amp;lt;br&amp;gt;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lt;br /&gt;
|왼쪽 그림 = 혁명재규.jpg&lt;br /&gt;
|왼쪽 그림 크기 = 150픽셀&lt;br /&gt;
}}[[분류:정의구현]]&lt;br /&gt;
{{영웅}}&lt;br /&gt;
{{신의 한 수}}&lt;br /&gt;
{{빛}}&lt;br /&gt;
{{민주화운동}}&lt;br /&gt;
{{인용문|부산과 마산은 그... 총기를 들고 일어선 하나의 폭동이야. 그러니까 긴급조치 중인데 진압하지 않을 수는 없잖아?|반인반신}}&lt;br /&gt;
&lt;br /&gt;
{{youtube|nvI-UGtx5kY}}&lt;br /&gt;
== 개요 ==&lt;br /&gt;
[[1979년]] [[10월 16일]]에 부산과 마산(現 경상남도 창원시 서남쪽)에서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대대적으로 유신 체제에 반대하며 발발한 사건.&lt;br /&gt;
&lt;br /&gt;
유신 종말의 기폭제가 되었으며, 국민들은 엘리트 군부의 완벽한 철권 통치보다 자유민주주의를 더 열망한다는 걸 잘 드러냈다는 의의가 있다.&lt;br /&gt;
&lt;br /&gt;
== 원인 ==&lt;br /&gt;
=== 경제 불황으로 인한 민심 악화 ===&lt;br /&gt;
여기에서 짚고 넘어갈 점은, 70년대에는 영남 지역이 각종 개발과 공업화로 경제적인 꿀을 빨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는데 석유 비축은 생각도 않고 중화학에 마구 돈 퍼부은 경제정책 때문에 경공업이고 중공업이고 중소기업들 대부분이 대출에 허덕이다가 줄줄이 도산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당시 중화학 공업의 기수는 울산, 포항, 여수였고 부마항쟁의 중심인 부산과 마산은 경공업 중심이었다. 돈이 아예 돌지 않았던 그 지역은 대공황에 준할 만큼 혼파망이었다는 것이다.&lt;br /&gt;
&lt;br /&gt;
결국 1978년 2차 오일 쇼크로 공업을 위해서 석유가 반드시 필요했던 부산 지역의 경제가 완전히 무너졌고 부산 시민들은 유신 정권에 불만이 쌓여갔다.&lt;br /&gt;
&lt;br /&gt;
=== 김영삼 제명 사건 ===&lt;br /&gt;
[[파일:YS 제명.jpg]]&lt;br /&gt;
&lt;br /&gt;
1979년 10월 초, 미국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를 통해서 YS가 이딴 병신 같은 독재 국가에 원조를 그만 하라고 얘기한 걸 가리켜 국회의원이 국가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제명해버리자 신민당은 거센 저항을 했다.&lt;br /&gt;
&lt;br /&gt;
또한 YH무역 여공 파업 당시 신민당 당사를 빌려 썼는데 이 파업을 진압하기 위해 신민당 당사를 개작살낸 것까지 화근이 되어 신민당 국회의원들이 &amp;#039;그래 어디 니 새끼들끼리 열심히 해먹어라&amp;#039; 하면서 국회의원 배지를 줄줄이 내려놓는 형국이 되었다.&lt;br /&gt;
&lt;br /&gt;
이게 박정희한테는 더 좋은 일 아니겠느냐고 볼지도 모르지만, 실제로 대놓고 일당 독재 하면 누가 봐도 북괴 새끼들과 판박이인 느낌이 나고, 당시 박정희는 &amp;#039;우리는 북괴와는 다르다&amp;#039;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했으며 안 그래도 코리아게이트 사건으로 미국과 사이가 더럽게 나빠졌는데 대놓고 독재하면 밥줄 아예 끊겨버리겠다 싶어서 박정희 패거리에게도 상당한 위기로 다가왔다.&lt;br /&gt;
&lt;br /&gt;
=== 학생들의 유신 반대 ===&lt;br /&gt;
시위의 중심이 된 곳은 부산대이다. 당시 부산대 학생들은 유신의 눈치를 살피며 시위를 하지 않는다며 다른 학교로부터 유신대학교라며 까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또한 경남 기반의 김영삼이 제명 당하자 학생들도 딥빡이 밀려왔다.&lt;br /&gt;
&lt;br /&gt;
결국 날 잡고 부산대 운동장에서부터 시위를 일으켰으며 안 그래도 살림살이 좆망해서 낙동강 온도 재러 가던 경남의 민심이 폭발하고 죽을 각오로 시위에 뛰어들었다.&lt;br /&gt;
&lt;br /&gt;
첫날 10월 16일 시위는 학생 위주의 시위였으나 다음날부터 경기 불황으로 불만 쌓인 시민들의 참여가 더욱 두드러졌다.&lt;br /&gt;
&lt;br /&gt;
이 사건으로부터 불과 4년 전인 1975년 4월에 있었던 제2차 인혁당 사건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각하 심기 잘못 건드리는 순간 빨갱이 되고 모가지 날아가는 건 식은 죽 먹기였던 시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 아니면 도의 상황을 맞은 경남 주민들은 대대적으로 길거리에 뛰쳐나왔다.&lt;br /&gt;
&lt;br /&gt;
== 전개 ==&lt;br /&gt;
=== 학생들의 시위 ===&lt;br /&gt;
[[파일:부마항쟁.jpg]]&lt;br /&gt;
&lt;br /&gt;
10월 16일 부산대학교에서 대학생들이 선언문을 낭독하며 길거리로 뛰쳐나왔다. 이들은 파출소를 습격해 점거했으며 민주주의 회복을 외쳤다. 그리고 당일 백 명 이상의 학생들이 연행되었다.&lt;br /&gt;
&lt;br /&gt;
=== 시민들의 참여 ===&lt;br /&gt;
대학생이 살짝 시위하고 런하는 게릴라전을 반복하다가 그날 저녁부터 미래가 없던 동-똥수저(직장인, 짱깨집, 노숙자, 그 외)들이 대학생들의 시위에 호응해서 죽창을 들었다. &lt;br /&gt;
&lt;br /&gt;
이들은 당시 여당이었던 민주공화당, 경찰, 어용언론 건물을 까부수면서 죽창을 들었고 다녔고 부산에서 시작된 시위는 존나 빠르게 마산까지 확산되었다.&lt;br /&gt;
&lt;br /&gt;
[[파일:부마항쟁 진압.jpg]]&lt;br /&gt;
&lt;br /&gt;
물론 각하는 왜 이런 사태가 생겼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계엄령부터 터뜨려서 강경 진압을 한다. 그리고 따까리라는 [[차지철|강철 수레]] 새끼도 박수 치면서 무조건 박정희가 옳습니다만 외쳤다.&lt;br /&gt;
&lt;br /&gt;
=== [[10.26 사태]] ===&lt;br /&gt;
{{참조|10.26 사태}}&lt;br /&gt;
몽둥이로 끝내지 말고 총으로 전부 죽여버리자는 차지철의 궤변에 반인반신이 동조하다가 재규어한테 총 맞고 사망한다. 반신반인이 이 항쟁이 악화되면 200만 명 정도 죽이려다가 그 말 듣고 빡친 쌍도 출신 갓슬레이어 김재규한테 대신보구를 맞고 사망한다.&lt;br /&gt;
&lt;br /&gt;
사실 이건 김재규가 법원에서 얘기한 게 전부고, 실제 조사 결과로는 (당시 궁정동에서 생존한 경호원에 따르면) &amp;quot;신민당이고 학생이고 간에 전부 전차로 깔아뭉게버립시다.&amp;quot;라고 말한 것이 들렸다고 한다. 200만 죽이자는 얘기는 진실인지 아닌지 딱히 알 수 없다.&lt;br /&gt;
&lt;br /&gt;
이후 박정희가 죽고 나서 잦아들었던 부산 민심은 훗날 부산 출신의 박종철이 고문치사 사건으로 사망하자 [[6월 민주 항쟁|한 번 더 터져 나온다.]]&lt;br /&gt;
&lt;br /&gt;
== 현재 ==&lt;br /&gt;
2013년부터 보상 법안이 제정되며, 진상규명과 보상이 시작되었다.[http://law.go.kr/lsInfoP.do?lsiSeq=206028&amp;amp;efYd=20181224#0000] 하지만 배상금만 조금 주고 있지, 아직 예우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도 나오지 않고 있다.[https://news.joins.com/article/22380993][http://www.assembly.pe.kr/news/articleView.html?idxno=130] 앞으로 국가기념일 제정 등 진상규명과 기념사업에 앞으로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듯하다.&lt;br /&gt;
&lt;br /&gt;
5.18 북한개입설을 미는 쪽에서는 은근슬쩍 이 항쟁에도 북한개입설을 덧씌우려고 밑밥을 깔고 있다. 전파 경로는 주로 노인들 단톡방.&lt;br /&gt;
&lt;br /&gt;
명심하자. 이 항쟁에 기여하신 분들이 진정한 애국자다. 이 분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지금쯤 &amp;quot;어버이 마사오 수령님!&amp;quot;이러고 앉아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대통령제가 왕정제로 바뀌고 [[박지만]]은 [[양녕대군]]이라서 [[ㄹ혜]]가 대한왕국의 여왕으로 취임하여 중남미의 소모싸왕조 시즌2가 동북아에 재현됐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부마민주항쟁 관련 단체가 5.18 기념재단과 본격적으로 연대하기 시작했다. [http://www.newsis.com/view/?id=NISX20190819_0000744675 부산에 공수부대 내려보낸 게 전두환 보안사령관이라는 의혹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접점을 찾은 듯.&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이 항쟁으로 박정희는 사실상 그 수명이 완전히 끝났다. 정치 생명 말고 진짜 생명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하다. 문제는 박정희가 누구의 손에 죽느냐 뿐이었다. 존나 요란하게 너 죽고 나 죽자 식으로 한반도 남쪽에 레드카펫을 쫙 깔고 죽든지 [[10.26 사태|조용히 죽든지]]. 상대가 [[부산]][[경남]] + [[김영삼]] + [[전라도]] + [[김대중]] + [[서울]] + [[미국]](!)이다. 이거 박정희 힘으로 못 이긴다.&lt;br /&gt;
&lt;br /&gt;
박정희 입장에서 보면 [[중앙정보부]]와 [[특전사]]가 사실상 친위대이며, 당시에는 [[해병대]]가 없었다. [[해병대]]가 없어진 대신 해군에 보병, 포병, 기갑 등 육군 병과가 생겨서 그게 해병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전사는 [[전두환]]의 사병(私兵)으로 전락한 지 오래고(아이러니하게도 [[하나회|박정희가 그렇게 만들어줬다.]]) 중앙정보부 역시 중앙정보부장이 [[김재규]]인데 김재규는 평소에 [[차지철]]한테 구타 가혹행위를 당해왔다. &lt;br /&gt;
&lt;br /&gt;
출세가 인생 목표인 전두환은 분명 박정희 본인과 시민군 중 어디가 유리할지 저울질을 할 것이라서 처음에는 시키는 대로 움직이다가 판도가 기울면 배신할 가능성이 높으며 김재규 역시 차지철의 전횡으로 인해 충성을 보증하기 어려운 상태였다. 실제로도 [[10.26 사태|박정희가 김재규한테 죽었으니]] 중앙정보부는 박정희의 병력이 아닌 것이다.&lt;br /&gt;
&lt;br /&gt;
이 항쟁이 터진 순간 박정희의 운명은 이미 결정 난 것이고 누구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짜여진 판이 그랬고 이건 절대 못 피한다.&lt;br /&gt;
&lt;br /&gt;
* 시민혁명&lt;br /&gt;
* 주력군의 저울질&lt;br /&gt;
* [[김재규|최측근 참모]]의 낮은 충성심&lt;br /&gt;
* 천조국과 사이가 매우 나빠서 HELP도 못 때림.&lt;br /&gt;
&lt;br /&gt;
[[분류:한국사]]&lt;br /&gt;
----&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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