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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부여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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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6T01:47:24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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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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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53:52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일뽕}}{{깡촌}}{{충청남도행정구역}}&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lt;br /&gt;
[[충청남도]]에 위치한 작은 동네이다.&lt;br /&gt;
&lt;br /&gt;
[[롯데]]가 터를 잡고 발전시키고 있는 곳이고 각종 리조트 및 아울렛 등이 들어섰다.&lt;br /&gt;
&lt;br /&gt;
[[맥도날드]], [[버거킹]], [[KFC]] 등 주요 패스트푸드점은 하나도 없으나 그래도 [[롯데리아]]는 쓸데없이 두 곳이나 있는 동네.&lt;br /&gt;
&lt;br /&gt;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lt;br /&gt;
&lt;br /&gt;
[[백제]]가 마지막으로 도읍을 정한 사비성이 위치한 곳으로 삼천궁녀가 단체 익사했다고 알려진 부소산성, 그 유명한 [[정림사지]] 오층석탑, 그리고 금동대향로의 실물이 보존된 부여역사박물관 등이 위치하고 있다. 근데 박물관 관리는 진짜 좆도 안함. 박물관에 나와서 관리하는 사람이 한 10명은 될까? 어쨋든 후진 동네임은 틀림없다.&lt;br /&gt;
&lt;br /&gt;
백마강을 가로지르는 백마교를 건너가다 보면 거대한 성문이 보이는데 [[고증]] 따윈 좆도 안 해놨다. 위치선정도 병신. 그리고 거기 지나면 당시 백제의 궁전을 재현한 실물 크기의 모형도 있는데, 위치며 모양새며 다 [[주작]]이고, 심지어 판타지이다. 그대로 믿지 마라. 그 옆에는 각 지방의 찌질이들을 모아놓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위치하고 있다.&lt;br /&gt;
&lt;br /&gt;
[[김종필|JP]]가 이곳 최고의 아웃풋이다.&lt;br /&gt;
&lt;br /&gt;
백제 멸망 이래로 계속 깡촌이었지만 [[백제]]를 역대 백제왕들 후장이 헐어버릴 정도로 빨아주던 미개한 [[일본인|좆본인]]들에겐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라, 일제시대에 서울 남산에 지어진 신궁보다 더 큰 규모로 신궁을 지으려고 했다. 심지어 이 신궁 공사에 [[덴노]]도 개입했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물론 완공되기도 전에 해방되서 걍 철거 &lt;br /&gt;
&lt;br /&gt;
== 읍면 ==&lt;br /&gt;
=== 舊 부여현 지역 ===&lt;br /&gt;
==== 부여읍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扶餘邑&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58.86㎢&lt;br /&gt;
&lt;br /&gt;
본래 소부리(所夫里)라고 불리던 깡촌이었지만 538년 [[성왕]]에 의해 백제의 수도가 되었다. 하지만 백제가 멸망하고 671년부터 686년동안 소부리주가 세워지고 나서는 개좆망했다. &lt;br /&gt;
&lt;br /&gt;
[[부군면 통폐합]]시기 부여군 현내면, 대방면, 몽도면을 합하여 만들어졌고 지금의 이름은 1917년 10월 1일 현내면에서 부여면으로 개명되면서 만들어졌다. &lt;br /&gt;
&lt;br /&gt;
지금도 부여군의 중심지로 읍내에서 1키로 정도 걸어가면 마치 문명에서 벗어난 듯 미개한 농촌의 공간이 펼쳐진다. 읍내는 해발고도 28m 이상으로 건물을 올리지 못하게끔 고도제한이 걸려있다.&lt;br /&gt;
&lt;br /&gt;
ㄴ요즘 애들은 읍내라고 한다며? 나 어릴때는 부여 아니면 시내라 그랬는데...&lt;br /&gt;
&lt;br /&gt;
금강발 대규모 충적평야로 구성되있다. &lt;br /&gt;
&lt;br /&gt;
==== 규암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窺岩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46.53㎢&lt;br /&gt;
&lt;br /&gt;
본래 금암리에 있는 여울의 이름을 따 천을면이라 했는데 1914년 천을면, 송당면, 도성면이 합해고 규암에서 이름을 따 규암면이 되었다. 금강천이 [[청양군]] 청남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금암리 오천산에서 수목리까지 100m내외의 구릉지대로 되어있으며 금강 대곡류와 금천의 합류지점은 구룡평야의 일부에 해당한다. 현지인들은 이상하리만큼 규암이라 하지 않고 &amp;#039;&amp;#039;&amp;#039;기암&amp;#039;&amp;#039;&amp;#039;이라 부른다. 중심지인 부여읍엔 규제와 유물 때문에 개발이 어려워서 사실상 규암을 신도시 취급한다. 신축 아파트는 거의 규암에 있고, 새로 짓는 시설도 규암 위주로 짓는다. 보령선 역을 규암면에 짓는 이유도 이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 은산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恩山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69.45㎢&lt;br /&gt;
&lt;br /&gt;
1914년 부여군 가좌면, 공동면, 방생면을 합하고 은산봉의 이름을 따 은산면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산지가 많고 하천유역에 평야가 깨작깨작 붙어있는 형태라 [[보리]]농사를 많이 짓는다는듯? [[밤나무]]도 많이 심었다.&lt;br /&gt;
&lt;br /&gt;
각대리 숭각사지, 금공리 + 가곡리 + 신대리에 산재한 고인돌, 가중리 도천사지가 있다. &lt;br /&gt;
&lt;br /&gt;
은산리 산자락에는 귀실복신이 백제부흥운동을 했다는 전승이 전해지는 당산성이 있으며 이 당산성일대에서 당군에게 갈려나간 백제부흥군을 기리는 은산별신제라는 전통의식이 존재한다.&lt;br /&gt;
&lt;br /&gt;
==== 초촌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草村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27.95㎢&lt;br /&gt;
&lt;br /&gt;
1914년 [[논산]]에 합병되는 노성군의 소사면을 흡수하면서 면적이 커졌다. &lt;br /&gt;
&lt;br /&gt;
망월산, 감투봉의 산지를 제외하면 모두 평야지대로 여름철 심심하면 홍수로 털렸지만 초평리 ~ 응평리, 소사리 ~ 진호리간의 제방공사덕분에 안정적인 곡창지대로 탈바꿈했다. &lt;br /&gt;
&lt;br /&gt;
붉은간토기, 검은간토기, 납작한 밑, 긴 달걀형의 몸체, 목이 없이 아가리가 밖으로 약간 꺾인 모습으로 다른 헬반도지역 청동기시대 무문토기와는 완전히 딴판인 토기와 진주 대평리 유적이 남강댐건설로 수몰됨에 따라 한국최대규모의 청동기유적이 된 것으로 유명한 송국리 유적이 초촌면에 있다.&lt;br /&gt;
&lt;br /&gt;
=== 舊 석성현 지역 ===&lt;br /&gt;
==== 석성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石城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백제 진악산현(珍惡山縣)으로 불렸는데 686년 석산현(石山縣)으로 개명되어 부여군의 영현으로 되었다. 940년에 석성현으로 개명되었으며 1414년 이산(尼山)과 합해져 이성현(尼城縣)이 되었다가 다음해에 고다진으로 통하는 요충지라해서 복구되었다. &lt;br /&gt;
&lt;br /&gt;
이 석성군은 1914년 군의 절반인 현내면, 북면, 증산면, 비당면이 석성면으로 개명되어 부여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논산으로 빠져나갔다. &lt;br /&gt;
&lt;br /&gt;
사비성의 위성요새로 보이는 포곡식 석축산성인 석성산성, 인강사지, 석성군시절 옛 현청인 동헌, 석성향교가 있다. &lt;br /&gt;
&lt;br /&gt;
1973년 현북리가 부여읍으로 이관되었다. &lt;br /&gt;
&lt;br /&gt;
=== 舊 임천현 지역 ===&lt;br /&gt;
==== 임천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林川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임천군의 중심지. &lt;br /&gt;
&lt;br /&gt;
백제에서는 가림군(加林郡)이라 불리며 수도방어선의 핵심으로 엄청난 푸시를 받았다. [[웅진도독부]]로 백제고지를 지배하려 했던 [[당나라]]새끼들의 지원을 받은 백제부흥군이 672년 가림성에서 신라군을 공격했지만 신라한테 털리면서 신라땅이 되었다. 이후 고려시대까지 주현급 마을로 취급을 받아왔지만 고려중후기이후부턴 그냥 깡촌으로 전락. &lt;br /&gt;
&lt;br /&gt;
1914년 임천군 읍내면, 지서면을 스까해 임천면으로 개명되었다. 주머니꼴로 북쪽이 돌출된 평면형 지역이다. 북쪽의 금성산, 남서쪽 무제산발 잔구성 산지를 제외하면 금강본류로 들어가는 여러 지류때문에 충적평야가 크게 발달했다. &lt;br /&gt;
&lt;br /&gt;
구교리 대조사, 칠산리 치산서원, 군사리에 있던 가림성, 임천향교, 만사리 퇴수서원이 있다. &lt;br /&gt;
&lt;br /&gt;
==== 세도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世道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41.92㎢&lt;br /&gt;
&lt;br /&gt;
1914년 임천군 인세면과 초신면이 합하여 만들어졌다. 1973년 장암면 사산리를 병합했다. 금강이 곡류하는 사행천의 보호사면을 이루고 있어서 넓찍한 충적평야를 가지고 있다. &lt;br /&gt;
&lt;br /&gt;
==== 장암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場岩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47.70㎢&lt;br /&gt;
&lt;br /&gt;
임천군 북박면, 내남면, 성백면을 합하고 장암의 이름을 따 장암면이 되었다. &lt;br /&gt;
&lt;br /&gt;
합곡리, 원문리, 석동리는 구룡평야의 일부라 충적평야지대이고 금강 곡류의 보호사면인 정암리, 장하리, 하황리는 홍수가 날때마다 심심하면 털렸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하천부지면적이 군내에서 콩번째로 가장 넓은 면이다. &lt;br /&gt;
&lt;br /&gt;
장하리 흥학당, 부여 장하리 3층석탑, 점상리 [[조신]]묘, 상황리 고분이 있고 정암리 + 북고리 + 합곡리에는 파손된 토성이 즐비해있다. &lt;br /&gt;
&lt;br /&gt;
==== 충화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忠化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37.08㎢&lt;br /&gt;
&lt;br /&gt;
[[성충]], [[계백]]등 백제8명의 충신이 태어난 곳이라는 구전 전설때문에 팔충면(八忠面)이라 불렸는데 1895년 가화면을 합하면서 팔가면이 되었다. 지금의 충화면은 1914년 팔가면에서 개명된 것이다. &lt;br /&gt;
&lt;br /&gt;
북의 금천수계와 남의 금강본류수계로 생활권이 나뉘어 있고 주곡농업을 주로 하며 이외에 양잠, [[염소]]사육등으로 입에 풀칠중이다. &lt;br /&gt;
&lt;br /&gt;
오덕리에 [[선좆]]과 평해공주의 태실비가 있다. &lt;br /&gt;
&lt;br /&gt;
==== 양화면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良花面&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면적 32.78㎢&lt;br /&gt;
&lt;br /&gt;
1914년 임천군 대적면, 홍상면을 합하고 적&amp;#039;&amp;#039;&amp;#039;량&amp;#039;&amp;#039;&amp;#039;과 홍&amp;#039;&amp;#039;&amp;#039;화&amp;#039;&amp;#039;&amp;#039;에서 이름을 따와 양화면이 되었다. 동으로 금강본류가 흐르고 서로 여사천이 합류하기에 충적평야가 발달되있다. &lt;br /&gt;
&lt;br /&gt;
=== 舊 홍산현 지역 ===&lt;br /&gt;
==== 홍산면 ====&lt;br /&gt;
==== 남면 ====&lt;br /&gt;
&lt;br /&gt;
면적 20.99㎢&lt;br /&gt;
&lt;br /&gt;
홍산군의 남쪽이라 남면이라 한 것인데 1914년 상동면의 일부를 흡수했다. 북부는 금천발 충적평야인 남평평야이고 남부는 장암면, 충화면, 옥산면과 자연경계를 이루는 구릉지역이다. &lt;br /&gt;
&lt;br /&gt;
내곡리에 동절사, 삼룡리에 효자정려문이 있다. &lt;br /&gt;
&lt;br /&gt;
==== 옥산면 ====&lt;br /&gt;
{{미개}}&lt;br /&gt;
&lt;br /&gt;
면적 25.37㎢&lt;br /&gt;
&lt;br /&gt;
1914년 홍산군 하서면과 상서면이 합해지고 옥녀봉의 이름을 따 옥산면으로 이름지어졌다. &lt;br /&gt;
&lt;br /&gt;
T자모양의 곡을 이루는 산악지대가 존재하고 서쪽은 옥녀봉, 동쪽의 비홍산, 남쪽의 원진산에 둘러싸인 분지지대이다. &lt;br /&gt;
&lt;br /&gt;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D&amp;amp;mid=sec&amp;amp;sid1=102&amp;amp;oid=022&amp;amp;aid=0003216455 최근에 본 면에서 한 틀딱 여러명이 장의차가 지나가자 통행료를 내라고 협박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가해 주민들은 장례식방해죄와 공갈죄로 곧 경찰조사 들어간다고 한다. 아주 [[신안군]], [[밀양시]]랑 동급인 새끼들이다 씨발 ㅉㅉ&lt;br /&gt;
&lt;br /&gt;
==== 내산면 ====&lt;br /&gt;
&lt;br /&gt;
면적 40.45㎢&lt;br /&gt;
&lt;br /&gt;
본래 성주산, 아미산, 월명산 안쪽에 있다고 산내면이라 했고 지금 내산면의 실질 전신은 1895년 월하산 안쪽을 분리한 내산내면이다. 1914년 대야면의 일부를 흡수했다. 경지율이 19%밖에 안되는 산악지대이다. 주암리 은행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있다. &lt;br /&gt;
&lt;br /&gt;
==== 외산면 ====&lt;br /&gt;
&lt;br /&gt;
면적 56.03㎢&lt;br /&gt;
&lt;br /&gt;
1895년 월하산 바깥이라 하여 외산내면이라 했는데 1914년 내산면의 일부를 흡수했다. 차령산맥이 주맥을 이루는 산악지대이고 그사이에 웅천의 상류가 있다. 경지율은 군내에서 가장 낮은 15.7%고 부여군의 유일한 소방목지인 외산목장이 있다. &lt;br /&gt;
&lt;br /&gt;
장항리에는 갈포를 원료로 하는 벽지공장이 있다. 무연탄이 만수리, 장항리, 수신리, 지선리에서 생산되는데 이 무연탄은 서해화력발전소가 있는 비인쪽으로 간다고 한다. &lt;br /&gt;
&lt;br /&gt;
무량사 , 깁시습 부도, 화성리 오층석탑이 있고 만수리일대 수리바위쪽 협곡지역이 단풍철 ㅆㅅㅌㅊ 랜드마크로 유명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JP]]의 생가가 여기있다.&lt;br /&gt;
&lt;br /&gt;
==== 구룡면 ====&lt;br /&gt;
&lt;br /&gt;
면적 21.86㎢&lt;br /&gt;
&lt;br /&gt;
1908년 홍산군 해안면(海岸面)으로 불리다가 1914년 상동면을 흡수하고 구룡들의 이름을 따 구룡면이 되었다. 북쪽은 망진산을 비롯한 산악지대고 남쪽은 원래 바다였을듯한데 지금은 구룡천과 금천이 합류하며 생기는 충적범람원인 구룡평야로 구성되있다. 이때문인지 금강에 제방이 생기기전까지는 금천의 범람으로 심심하면 침수되던 곳이었다. &lt;br /&gt;
&lt;br /&gt;
태양리 백제석실고분이 있고 구봉리와 논치리에는 백제시대 산성이 있으며 금사리에는 남방식 고인돌과 [[창렬]]사가 있다.&lt;br /&gt;
&lt;br /&gt;
== 아웃풋 ==&lt;br /&gt;
*[[김성진]]&lt;br /&gt;
*[[김종필]]&lt;br /&gt;
*박시후&lt;br /&gt;
*[[이원종]]&lt;br /&gt;
*[[정두홍]]&lt;br /&gt;
*허익범&lt;br /&gt;
*[[황우석]]&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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