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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사츠마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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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15:55:1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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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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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29: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국가 정보 | 국기 =Satsuma Domain.jpg| 추가사진 =| 국가명 = 사츠마 번| 영어국가명 = 薩摩藩 / Satsuma Domain |색상코드 = #ffffff | 배경색상코드 = #27a19e| 수도 = 카고시마| 국가 = 일본| 대륙 = [[아시아]]| 면적 =| 인구 =| 지도자 = 초대: 시마즈 이에히사 / 11대: 시마즈 타다요시| GDP = | 언어 = [[일본어]](큐슈어) | 인종 = 일본인(큐슈인)| 종교 = 불교, 신토 | 공식 홈페이지 = }}&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lt;br /&gt;
센고쿠시대 일본 큐슈 남부의 세력가였던 시마즈 가문이 건설한 웅번 중 하나이다. &lt;br /&gt;
&lt;br /&gt;
일본의 천손이 강림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는터라, 메이지 유신 때는 진무천황의 동진을 예를 들어 정통성 입증의 &amp;#039;이미지 마케팅&amp;#039;으로 쓰여지기도 했다. &lt;br /&gt;
&lt;br /&gt;
[[임진왜란]] 당시 사천전투에서 명과 조선의 연합대군을 사츠마군 단독으로 쳐바르는 위엄을 보였으며, &lt;br /&gt;
&lt;br /&gt;
임진왜란 이후에는 류큐를 정벌하고 개화기에는 일본의 토막전쟁의 주역이 되어 근대화의 일등공신이 되기도 했던 번이다. &lt;br /&gt;
&lt;br /&gt;
이 지역 출신들은 폐번치현 이후에도 [[일본 제국]]의 주요 요직을 꿰차 사실상 없어진 후에도 제국의 실세역할을 계속한 번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역사==&lt;br /&gt;
&lt;br /&gt;
===전근대시대===&lt;br /&gt;
&lt;br /&gt;
센고쿠시대 시마즈 세력은 큐슈 남단에서 일대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북큐슈까지 노릴 정도로 막강한 군사력을 거느렸다. &lt;br /&gt;
&lt;br /&gt;
이에 당시 북큐슈의 지방 중 하나인 분고의 다이묘인 오토모 가문은 시마즈 가문의 이러한 기세에 오줌을 지리고 본토의 &lt;br /&gt;
&lt;br /&gt;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SOS를 치게 되는데, 당시 본토를 거의 장악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이 기회에 큐슈의 지방충들을 &lt;br /&gt;
&lt;br /&gt;
제압하기 위해 SOS요청에 호응한다.&lt;br /&gt;
&lt;br /&gt;
따라서 시마즈는 도요토미와 대결하게 되는데, 시마즈는 분전했지만 도요토미의 크고 아름다운 물량을 막아내지 못하고 GG치게 된다. &lt;br /&gt;
&lt;br /&gt;
도요토미는 시마즈를 쳐바르긴 했지만, 시마즈 가문의 포텐을 알아보고 시마즈 가문에 사츠마와 오오시마의 두개 국의 통치권을 주고 &lt;br /&gt;
&lt;br /&gt;
자신의 측근으로 영입한다. 그에 따라 시마즈 가문은 도요토미의 측근들만 참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임진왜란에 4군 선봉장으로 참여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도 도요토미님의 응딩이맛을 잊지 못하고 서군으로 참여했지만 소극적으로 참여한 덕에 원래 영지의 통치권을 &lt;br /&gt;
&lt;br /&gt;
[[도쿠가와 이에야스]]로부터 그대로 인정받는다.&lt;br /&gt;
&lt;br /&gt;
사실 이를 두고 도쿠가와는 내심 뒷통수가 불편했다고 한다. 그래서 뒈질때도 사츠마 쪽을 향하게 묻어달라고 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아무튼 그 덕분에 사츠마는 에도시대에도 강력한 번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된다. 사츠마는 17세기 초반에 석고가 60만석(1석=1인으로 치므로 인구도 대략 그정도이다.)이었으나 &lt;br /&gt;
&lt;br /&gt;
류큐를 정벌하고 류큐를 속국으로 삼음에 따라 류큐의 석고 12만석을 추가하며 72만석의 국주로 자리매김하게 되고, 18세기 전성기에는 석고가 86만석까지 늘어났다. &lt;br /&gt;
&lt;br /&gt;
그러나 에도시대의 거품경제가 꺼지자 사츠마도 상태가 병신이 된다. 오죽하면 덕정령까지 발동했다. 덕정령이 뭐냐면 마을 한복판에서 상인들이 구매한 사츠마 채권을 회수하여 그 채권을 보유했던 상인들이 &lt;br /&gt;
&lt;br /&gt;
보는 앞에서 채권을 불로 태워버리는 짓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빚은 꺼지지 않았는데 이는 사츠마 지역에 유난히 식충이 사무라이들이 많았던 것에 그 원인이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러한 병신같은 상태는 19세기 초반까지 계속되었으나 11대 번주인 시마즈 타다요시가 번주가 되어 재정개혁을 성공적으로 해내면서 다시 막강한 번으로 날아오르게 된다.&lt;br /&gt;
&lt;br /&gt;
시마즈 타다요시는 갓양의 우수성을 일찌기 깨닫고 서양식 공장을 사츠마에 건설하였다. 그리고 견사산업을 육성하여 이를 재정원천으로 삼았다. 그리고 사츠마가 사실상 독점하고 있던 특산품 중 하나인 설탕 시장&lt;br /&gt;
&lt;br /&gt;
에서 일본 국내유통시장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던 오사카 상인들을 내쫓고 번의 전매화를 추진하면서 여기서 또 막대한 돈을 얻어내게 된다. 이러한 개혁으로 빚을 거의 털어내고 재정자립을 이루게 된다.&lt;br /&gt;
&lt;br /&gt;
===근대시대===&lt;br /&gt;
&lt;br /&gt;
이렇게 사츠마가 다시 날아오르자 에도 막부의 취급 클라스도 올라가게 된다. 에도 막부는 사츠마의 공주를 정실로 맞아들였고 이로 인해 사츠마는 에도 막부와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lt;br /&gt;
&lt;br /&gt;
이와 같은 맥락에서 흑선의 내항이후 일본 내에서 번진 &amp;#039;쇼군빠 VS 천황빠&amp;#039;대전에서 사츠마는 쇼군 편을 들게되고 개항을 제한적으로 하자는 화혼양재론을 지지하게 된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사츠마의 사무라이(라 쓰고 산적수괴 사이고 다카모리와 사이고 다카모리의 산적수하들이라고 읽는다)가 영국상인을 일본도로 쳐죽이(고 물건까지 훔쳐감)는 나마무기(절도 및 살인) 사건이 발생, 영국과 트러블이 생기면서 발생한 사츠마-영국전쟁(사츠에이 전쟁)에서 사츠마가 영국함대와 대결하면서 사츠마의 정치이념 또한 &lt;br /&gt;
&lt;br /&gt;
바뀌게 된다. 사실 사츠마-영국 전쟁에서 사츠마가 결과론적으로 승리했다. 그러나 영국군의 포격으로 마을과 서양식 공장이 타버리자 갓양의 우월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화혼양재론을 폐기하고 근대화를 &lt;br /&gt;
&lt;br /&gt;
추구하게 되며, 막부 지지파에서 천황 지지파로 돌아서게 된다. 이에 같은 이념을 가지고 있던 쵸슈, 토사, 히젠 등의 번과 동맹관계(삿쵸동맹)를 구축하여 막부 토벌전쟁을 일으키는데 이가 무진전쟁(보신전쟁)이&lt;br /&gt;
&lt;br /&gt;
다. &lt;br /&gt;
&lt;br /&gt;
&lt;br /&gt;
이 전쟁에서 사츠마와 동맹군이 승리하면서 에도 막부는 멸망하고 [[일본 제국]]이 새로이 등판하여 일본을 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사츠마를 비롯한 번들은 [[일본 제국]]의 폐번치현 정책으로 통수를 맞고 &lt;br /&gt;
&lt;br /&gt;
폐지된다. 사실 막부 토벌을 주도한 집단이 막부체제를 극혐하는 하급 사무라이들이었고(그와중에도 사이고 다카모리는 도적질만 해댐), 사츠마 같은 번들이 이들을 중용했기 때문이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었다. 대신 일본 정부는 사츠마 번을 뺐는대신 &lt;br /&gt;
&lt;br /&gt;
울지마라고 시마즈 가문을 오등작의 공작 작위에 봉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에 승복한 시마즈 가문과는 달리 위에 언급했듯 사무라이와 병졸 계층이 인구의 25%를 점할 정도로 이들 계층이 많았던 사츠마에서는 일본 제국의 근대개혁에 대한 불만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었고 &lt;br /&gt;
&lt;br /&gt;
ㄴ 는 지들이 무기뺏겨서 도적질 못하게 되니까 땡깡부리는거지.&lt;br /&gt;
&lt;br /&gt;
결국 사이고 타카모리 산적수괴새끼를 수장으로 한 산적떼와 그들과 손잡은 헬조선 민씨일가와 로스케들이 일어섰다. 일본 제국 수립후 최초의 내전이었는데 이를 일본의 서남부에서 일어났다고 하여 서남 전쟁(세이난 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에서 사이고의 &lt;br /&gt;
&lt;br /&gt;
산적떼들은 큐슈 남부를 장악하고 북부로 진공했는데, 과거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 제2군 수장이었던 [[가토 기요마사]]가 건축한 일본의 3대 성인 쿠마모토 성의 어마무시한 방어력에 막혀서 결국 와해되고 &lt;br /&gt;
&lt;br /&gt;
진압된다. 이로 인해 사츠마 번은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된다.&lt;br /&gt;
&lt;br /&gt;
== 여담 ==&lt;br /&gt;
&lt;br /&gt;
*일본에서는 고구마를 &amp;#039;사츠마이모&amp;#039;(줄여서 &amp;#039;오사츠&amp;#039;)라고 부르는데, 그 이유가 전통적으로 사츠마에서 고구마를 많이 먹었고 그래서 고구마로는 이 지방이 유명하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귤을 영문으로 사츠마(Satsuma)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도 귤이 이 지역의 산물인 것과 관계가 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국가]][[분류:일본사]]&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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