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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삼두정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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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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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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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38: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4단원-1}}&lt;br /&gt;
{{3}}&lt;br /&gt;
&lt;br /&gt;
[[고대]] [[로마]] 공화정에서 나타난 정치형태.&lt;br /&gt;
&lt;br /&gt;
1차는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lt;br /&gt;
&lt;br /&gt;
2차는 [[옥타비아누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lt;br /&gt;
&lt;br /&gt;
단, 1차 삼두정치는 어디까지나 저 3사람의 야합이었고 공식적인 관계는 아니었다. 반면 2차 삼두정치는 레피두스의 주선 아래 모여 &amp;#039;국가 재건을 위한 3인 위원회&amp;#039;를 출범시켜 탄생했기에 공식적인 모임이었다.&lt;br /&gt;
&lt;br /&gt;
구도가 비슷하다고 여겨지기 쉽지만 (실무담당자였던 카이사르/옥타비아누스, 함대를 거느렸던 폼페이우스/안토니우스, 빠르게 몰락한 크라수스/레피두스) 뜯어보면 크라수스와 레피두스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lt;br /&gt;
기사계급을 통제하고 있었고 로마의 최고 거부로 유명했던 크라수스는 당시 사람들의 평가에서 폼페이우스와 함께 중요인물로 여겨졌지만, 군사적인 능력이나 업적이 카이사르, 폼페이우스에 비해 떨어지는 편이라 &lt;br /&gt;
점차 위치가 낮아지면서 카이사르의 갈리아 전쟁이 거의 끝날 즈음에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간의 완충지대 정도로 지위가 내려간 상태였다. 이걸 만회하겠다고 벌인 게 파르티아 원정인데....결과는 카르헤 전투에서&lt;br /&gt;
평균적인 로마 장군의 지휘력에도 못 미치는 개삽질을 해서 본인은 목숨을 잃고 4만명 중 2만명이 전사하고 1만명은 포로로 잡혔으며 군단기를 빼앗기는 대참패를 당했다.&lt;br /&gt;
&lt;br /&gt;
반면, 레피두스는 처음에 2차 삼두정치를 주선했다는 점에서 볼 수 있듯이 초반에는 세력이 가장 강성했다. 레피두스의 임지였던 스페인과 갈리아 지역에 있는 현역/퇴역병 군단이 7개였기 때문이었다. &lt;br /&gt;
반면 삼두정치 초반 옥타비아누스는 사재를 탈탈 털어 긁어모은 퇴역병 2개 군단에 역시 돈으로 낚은 안토니우스 쪽 2개 군단이 있었을 뿐이고 안토니우스는 친위부대인 종달새 군단을 옥타비아누스에게 뺏길 뻔 했다 겨우 지켜냈고 &lt;br /&gt;
그나마도 무티나 전투 때 패하는 바람에 세가 줄어들어 차이가 많이났다. &lt;br /&gt;
&lt;br /&gt;
하지만 필리피 전투 이후로 정치 만렙의 고단수인 옥타비아누스에게 레피두스의 세력은 줄어들어 삼두라곤 해도 사실상 옥타비아누스 대 안토니우스의 2강 구도가 형성되었다.&lt;br /&gt;
레피두스는 이걸 만회하기 위해 시칠리아 전쟁에 2만명의 병력을 이끌고 참전해 옥타비아누스가 고전하는 사이에 섹스투스 최후의 거점인 메사나를 함락시키고 8개 군단의 항복을 받아내는 공을 세웠지만, &lt;br /&gt;
옥타비아누스가 대담하게 레피두스의 캠프에 들어와 군단병들에게 배반을 권유하자 전부 옥타비아누스에게 붙는 사태가 발생해 은퇴하게 되면서 삼두는 붕괴된다.&lt;br /&gt;
&lt;br /&gt;
지금 디시위키도 하고있다.&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유럽사]][[분류:정치]]&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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