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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울의 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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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16:47:0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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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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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41:1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대한민국의 민주화운동}}&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대한민국 제4공화국|겨울 공화국]]이 끝나고 학원가에 찾아온 민주화 열풍을 가리키는 단어. 80년대 학생 운동의 노선을 결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는 사건이다.&lt;br /&gt;
&lt;br /&gt;
이때 미국이 [[신군부|한국 정부]]를 비판하면서 민주화 운동 진영의 손을 들어주었더라면 민주투사들이 반미 빨갱이 집단으로 변하는 일은 없지 않았을까?&lt;br /&gt;
&lt;br /&gt;
== 설명 ==&lt;br /&gt;
[[박정희]]가 총탄에 맞고 사망한 1979년 10월 26일부터 (혹은 최규하가 [[긴급조치]]를 해제한 12월 8일부터) [[5.17 내란]]으로 민주화 시위 세력이 사실상 잠수 타버린 1980년 5월 17일까지, 그동안 있었던 대한민국 전국 각지의 [[민주화]] 열풍을 의미한다. 혹자는 광주 민주화 운동까지 포함해서 5월 27일까지로 보기도 하는데, 둘을 독립적으로 봐야 한다는 시각에서는 여전히 17일로 본다.&lt;br /&gt;
&lt;br /&gt;
&amp;#039;~~의 봄&amp;#039;이라는 명칭을 사용할 때는 그 나라의 수도 명칭을 갖다 붙이기 때문에 꼭 서울에서만 일어난 민주화 시위를 가리키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있었던 일들을 통틀어 가리키게 된다. 쏘오련 빨갱이 새끼들 꺼지라던 [[프라하의 봄]](1968)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전역에서 있었던 사회 운동을 가리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lt;br /&gt;
&lt;br /&gt;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는데, 유신 정국 기간 동안 국회의원 등 정치적 활동이 주 업무인 사람을 제외하고는 일반인이 정치 활동을 한다거나 정치 관련 얘기를 하는 게 법적으로 원천 금지였고, 단체 결성, 집단 활동 같은 거 하려면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대학교에서 동아리, 학생회는 공식적으로 존재하면 안 됐으며 70년대에 학생회, 동아리 같은 거 했다면 불순분자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10.26 사태]]로 [[박정희]]가 사망하자 [[유신 헌법]]의 알맹이가 사라지면서 정치적 활동 제한이 풀렸고 전국적으로 학생회, 동아리가 우후죽순 결성되었으며 자연스레 민주화를 요구하는 집회와 시위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계엄령 상황이었음에도.&lt;br /&gt;
&lt;br /&gt;
그런 상황에 터진 사건이 바로 12.12 군사반란이다.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으면 [[12.12 군사반란]]을 봐라. 10.26 사건이 김재규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 내린 걸 번복하고, 대통령한테 재가 받지도 않은 상황에서 자기 상관인 정승화(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를 공범이라고 엮으면서 끌어내린 사건이다. 이건 그냥 군대 내부의 일인데 언급하는 이유는, 얘네들이 이후 기어이 정권까지 꿀꺽하기 때문이다. 그때 대통령은 최규하였는데요? ㅇㅈㄹ하는 놈들은 병먹금해주면 된다. 을사조약 체결된 건 고종 때 일인데요? 정미7조약 체결된 건 순종 때 일인데요? 이 지랄 하는 놈들과 다를 바가 없다.&lt;br /&gt;
&lt;br /&gt;
5월 15일 서울역에서 서울대생들이 시위를 크게 벌였지만 &amp;#039;시위하면 ㅈ된다&amp;#039;, &amp;#039;이번에 시위했다가는 정말 뒤질지 모른다.&amp;#039; 등 무서운 소문이 학생 운동 진영에 암암리에 퍼졌고 결국 시위 주동자 중 한 명이었던 [[심재철]]은 5월 17일에 서울역 회군을 결정한다. 당시 심재철의 생각이 &amp;#039;서울에서만 이러지 말고 전국적으로 한 번에 들고 일어나야 된다. 그러니까 [[5월 18일|내일]] 다시 하자!&amp;#039;라는 계산이었다고.&lt;br /&gt;
&lt;br /&gt;
그날 자정, 신군부는 전국적으로 시위가 더 크게 터져서 사회적으로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에 대비하고, 제2의 부마사태를 방지한다(쑻)는 차원에서 [[5.17 내란|비상 계엄령 선포 지역에 제주도까지 집어넣어서 전국으로 확대하는 조치]]를 내리게 된다. 계엄령이 전국으로 확산되면 그 순간부터는 전시 체제에 돌입하게 된다. [[5.18 광주 민주화 운동|군인에게 개기면 즉결처분이라도 당할 수 있는]] 그 전시 말이다. 마치 6.25 때처럼.&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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