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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서주대학살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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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5:37:26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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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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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12:1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심플/극혐}}&lt;br /&gt;
&lt;br /&gt;
{{인용문|[[조조|태조 무황제]]의 칙어(勅語) : 서주는… 어… 그거는 [[조숭|황고(皇考)]]&amp;lt;ref&amp;gt;임금의 죽은 아비&amp;lt;/ref&amp;gt; 를 장명(戕命)&amp;lt;ref&amp;gt;남의 애비나 임금을 죽인 건 시해가 아니라 장戕이라고 한다.&amp;lt;/ref&amp;gt; 한 하나의 폭동이야. &amp;lt;br /&amp;gt; 근데 그니까 짐이 아들이기 때문에 아들로써 위벌을 시행하지 않을 수 없잖아?}}&lt;br /&gt;
&lt;br /&gt;
== 서주 대학살 ==&lt;br /&gt;
백성을 너무나도 사랑한 후한의 충신 [[조조]]가 서주에서 악덕군주 [[도겸]]에게 고통받는 수십만 주민을 강물이 막혀댈때까지 자비롭게 쳐죽인 사건.&lt;br /&gt;
&lt;br /&gt;
조조빠 새끼들은 이 사건마저도 &amp;quot;아버지가 죽은 분노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amp;quot; 실드치더라. 아니 그럼 문제를 벌인 [[도겸]]만 조지라고.&lt;br /&gt;
&lt;br /&gt;
여담으로, 이 사건으로 원래 서주에 살았던 [[제갈량]]네 가문이 형주와 강남으로 이주하게 됐다. &lt;br /&gt;
&lt;br /&gt;
뿐만 아니라 이 때 서주에 있던 명사와 인재들이 형주나 동오로 흘러들어가서 나중에 조조의 남방정벌을 파토내는 데 한몫한다. &lt;br /&gt;
&lt;br /&gt;
길게 내다보면 사실상 조조가 천하통일을 못하게 된 것도 이 사건이 원인.  &lt;br /&gt;
&lt;br /&gt;
짧게 봐도, 서주에서 이 지랄 하느라 [[진궁]]하고 [[여포]]가 통수의 진수를 보여주게끔 빌미를 제공해서 이거 진압하느라 한 삽질.&lt;br /&gt;
&lt;br /&gt;
위빠들의 입을 다물게할 마법의 단어다. 촉빠, 오빠들은 숙지하도록&lt;br /&gt;
&lt;br /&gt;
화북인의 대규모 강남이주 스타트가 이거때문에 발생했다. 상기한대로 서주에서 조조새끼가 강물이 막혀대고 쥐새끼조차 종범할정도로 학살쳐해대자 수십만의 서주사람들이 동오, 형주로 내려온거. 광릉국의 확실히 10만이 조조새끼를 피해 내려온게 확인된다.&lt;br /&gt;
&lt;br /&gt;
사람을 어찌나 많이 죽여댔는지 장안에서 [[삼보의 난]]을 일으킨 [[이각]] [[곽사]] 똥새끼들과 비견되는 대량학살이었고 가는 곳마다 시체가 워낙 많아서 강이 막혀서 흐르지 못하고 마을 전체가 썩는내로 아주 골이 아플 정도로 진동했다고 한다. 그리고 서주에 살던 [[제갈량]]네 집은 장남인 [[제갈근]]만 평소에 친분이 있던 [[손책]]한테 가서 일하게 되었고 제갈량이 제갈씨 가문의 당주가 되어 일족을 이끌고 형주로 피난갔다. 이후 제갈근은 매달 받은 녹봉 중 일부를 떼어다 제갈량에게 배달하게 된다. 그리고 그 동네 살던 [[노숙]] 역시 도망친 이후 [[주유]]를 따라 [[손권]]의 부하가 된다. 문관뿐이 아니라 당대의 맹장 중 하나인 [[태사자]]에 대해서는 애초에 조조가 [[황건적의 난]]이 발발하기 전부터 태사자에게 [[고구려]]산 [[당귀]]를 선물로 주고 갖은 아양을 떨었는데 그 태사자가 [[공융]]의 휘하로 들어가서도 조조는 태사자 꼬시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조조가 이 서주대학살을 벌이니 태사자는 유요가 망하자 손책의 휘하로 들어가고 조조한테 학살자 좆까를 외치며 그대로 손책 휘하로 말뚝박게 된다.&lt;br /&gt;
&lt;br /&gt;
이와 같이 조조는 서주대학살을 벌인 게 선악을 떠나 엄청난 자충수가 되었는제 제갈근, 제갈량 형제와 노숙, 태사자 등 재야의 재주꾼들을 모조리 얻지 못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자기가 쳐발릴거 알고도 황제폐하에게 충성을 보이겠다고 [[서영]]과 맞붙었던 그 조조와는 왜 그것과는 정반대의 짓거리를 저지른 것일까? 아무리 아버지가 죽었기로서니 꼭 학살을 해야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이 사람, 호리행이라는 시를 지은 적이 있었는데 서주학살과 이후 학살을 비교해서 보면 참 돌I였구나 싶을거다.&lt;br /&gt;
&lt;br /&gt;
아래가 그 시.&lt;br /&gt;
&lt;br /&gt;
關東有義士 (관동유의사) 관동에서 의병을 일으켰던 이유는, &lt;br /&gt;
&lt;br /&gt;
興兵討群凶 (흥병토군흉) 간악한 무리(동탁)를 토벌코자 함이었고, &lt;br /&gt;
&lt;br /&gt;
初期會盟津 (초기회맹진) 처음 맹진에 모여 의기투합한 것은, &lt;br /&gt;
&lt;br /&gt;
乃心在咸陽 (내심재함양) 단숨에 함양을 정복하기 위함이었네. &lt;br /&gt;
&lt;br /&gt;
軍合力不齊 (군합력부제) 많은 군/대 모이고 보니 생각도 제각각이요, &lt;br /&gt;
&lt;br /&gt;
躊躇而雁行 (주저이안행) 머뭇거리기만 할 뿐 앞장서 싸우려 하질 않네. &lt;br /&gt;
&lt;br /&gt;
勢利使人爭 (세리사인쟁) 자신들의 이익만 내세워 다투더니, &lt;br /&gt;
&lt;br /&gt;
嗣還自相? (사선자상장) 얼마되지 않아(嗣還) 서로 치고받고 마네. &lt;br /&gt;
&lt;br /&gt;
淮南弟稱號 (회남제칭호) (연합군은 해체되어) 회남의 원술(袁術)은 황제를 참칭(僭稱)하고, &lt;br /&gt;
&lt;br /&gt;
刻璽於北方 (각새어북방) 북방의 원소(袁紹)는 몰래 옥새를 새기는데, &lt;br /&gt;
&lt;br /&gt;
鎧甲生?? (개갑생기슬) 병사의 갑옷엔 이가 득실거리고, &lt;br /&gt;
&lt;br /&gt;
萬姓以死亡 (만생이사망) 백성들은 다 죽어 가는 구나. &lt;br /&gt;
&lt;br /&gt;
白骨露於野 (백골노어야) 온 들판에 백골이 뒹굴고, &lt;br /&gt;
&lt;br /&gt;
千里無?鳴 (천리무계명) 천리에 닭 울음소리 끊겼으니, &lt;br /&gt;
&lt;br /&gt;
生民百遺一 (생민백유일) 살아남은 사람은 백에 하나나 될까... &lt;br /&gt;
&lt;br /&gt;
念之斷人腸 (염지단인장)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지누나&lt;br /&gt;
&lt;br /&gt;
백성 죽어나간다고 가슴 찢어진다고 하는데 정작 본인이 학살자 ㅋㅋ&lt;br /&gt;
&lt;br /&gt;
== 왜 학살극을 벌였는가 ==&lt;br /&gt;
보통은 아버지가 죽었다! 백성 다 죽어!로 묘사되지만 이것도 확실한 설은 아니다. &lt;br /&gt;
&lt;br /&gt;
과거 중국또한 마을과 마을이 행정망으로 이어져 있었고 적이 쳐들어오면 행정망을 이용해 병사징집을 하여 적을 막아내는것이었다.&lt;br /&gt;
&lt;br /&gt;
조조는 이걸 이용해 각 마을의 행정망을 학살이라는 방법으로 차례차례 끊어 서주성 본진을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만들어버렸다. 이 방식은 나중에 칭기즈칸이 써먹는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서주는 조조가 통치해야 할 곳이었고 학살로 민심을 잃은데다 학살에 실망한 진궁, 장막이 여포 불러와 반란까지 일으키니 말 그대로 실패한 계책이었다.&lt;br /&gt;
&lt;br /&gt;
결국 조조는 10만명을 도륙냈는데도 정작 서주를 얻지 못하고 이 사건의 수혜를 귀큰놈과 강동 소패왕이 다 받게 된다.&lt;br /&gt;
&lt;br /&gt;
유비는 이를 막으려고 노력하다 보니 반쯤 구세주 대우를 받게 되었고 손책은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제갈근 등 서주 유랑민들이 손책의 밑으로 알아서 들어오는 바람에 인재들이 장난 아니게 빵빵해지게 된다.&lt;br /&gt;
&lt;br /&gt;
== 도겸 ==&lt;br /&gt;
&lt;br /&gt;
조조가 도겸한테 개쳐발리고 있었는데 마침 도겸의 지원군으로 여포,유비,황건적등 을 불렀고 더욱 조조는 궁지에 몰렸다.&lt;br /&gt;
&lt;br /&gt;
갈수록 전황이 불리해지자 서주의 보급을 씹창내기위해 서주를 피바다로 만든다. 도겸을 궁지에 몰아붙이지만 개쳐발리고.&lt;br /&gt;
&lt;br /&gt;
돌아가던중 장막,진궁과 결탁한 여포에 의해 연주성도 뺏긴채 영혼까지 털린다. 조조는 이기기위해 뭐든하는 인물이다.&lt;br /&gt;
&lt;br /&gt;
충분히 비난 받을 일이나 사사로운 원한이 아니라 불리한 전황을 돌리기위한 발악으로 행한일이니 조조의 인성을 탓하자&lt;br /&gt;
&lt;br /&gt;
베트남전에서도 비슷한 전략을 애용했다. 상당히 비정하고 미친놈 같지만 효율적인 전술이라는 걸 알수있다.&lt;br /&gt;
&lt;br /&gt;
애초에 조조는 물량이 아니라 소수정예의 기병을 휘몰아 단기전을 선호하는 인물인데 도겸이 장기전으로 끌고&lt;br /&gt;
&lt;br /&gt;
조조의 영혼을 탈곡시킨거 보면 이 인간도 평범한 놈은 아니다.&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lt;br /&gt;
[[도겸]]&lt;br /&gt;
&lt;br /&gt;
[[분류:중국사]]&lt;br /&gt;
[[분류:삼국지]]&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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