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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순장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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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11:50:18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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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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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40:1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1단원}}&lt;br /&gt;
{{미개}}&lt;br /&gt;
{{악법}}&lt;br /&gt;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장례 방식.&lt;br /&gt;
&lt;br /&gt;
{{인용문|[[우동측|장군이 죽으면 사은품으로 전속부관도 같이 죽여드리겠습니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lt;br /&gt;
[[권력층]]이 죽었을 때, 권력층이 소유했던 물건들을 비롯하여 노비와, 아내(정실은 거르고 주로 첩 들을 묻었다고 한다) 등을 무덤에 함께 생매장하는 미개한 관습을 뜻한다.&lt;br /&gt;
&lt;br /&gt;
좀 자비롭게(?) 묻는답시고 죽여서 묻는 경우도 많긴 했는데, 엎어치나 메치나 지랄은 지랄.&lt;br /&gt;
&lt;br /&gt;
ㄴ 정말 자비롭게 묻는 방법은 얕게 파서 허접하게 묻어주는 것이다. 지들이 흙을 파내서 탈출하기 편하게 말이다. 아니면 무덤 뒤로 통로를 만들어줘서 도망치기 좋게 하는 것도 정말 자비롭게 순장하는 방법이다.&lt;br /&gt;
&lt;br /&gt;
의외의 사실인데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이런 구조다. 피라미드는 무덤인데도 밖에서 드나들 수 있게 만들었다&lt;br /&gt;
&lt;br /&gt;
ㄴ 오오~ 이 시대의 참 천재!&lt;br /&gt;
&lt;br /&gt;
[[청동기]] 시절 세계 각지에서 볼수 있는 풍습이지만 특히 [[똥양]]에서 크게 발달했다.&lt;br /&gt;
&lt;br /&gt;
이 미개한 제도의 원인이야 여러가지겠지만 경제적인 원인을 따지자면, 생산력이 안습이던 시절에 한 지배자가 죽으면 그 지배자에게 붙어있던 군입을 없애는 것이 목적이었다고 추측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더불어 이전 권력자의 측근들을 한방에 싸그리 숙청하는 추가적인 이득을 볼 수 있었으니, 이딴 미개한 제도가 오랫동안 존속한 것이겠지.&lt;br /&gt;
&lt;br /&gt;
하지만 생산력이 증대되고, 그에 따라 노동력의 수요가 많아짐에 따라서 점차적으로 이 관습은 사라지게 되었다.&lt;br /&gt;
&lt;br /&gt;
한반도의 경우 [[가야]]가 그중에서 특히 [[대가야]]가 최후까지 이 미개한 관습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옆동네 신라, 금관가야, 아라가야 등은 많게는 최소 6명이 같이 묻힌 반면 대가야는 무려 수십명씩 묻힌 덧널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그곳에서 나온 유물 덕분에 가야사를 연구하는데 있어 현대에는 덕을 보기는 하지만 문제는 빌어먹을 도굴꾼들이 왕이 묻힌 덧널은 도굴 해버린 경우가 많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이 때문에 후반기 가야 맹주인 대가야의 왕사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면이 있다.&lt;br /&gt;
&lt;br /&gt;
더불어 한반도의 순장풍습은 좀 묘한 부분이 있는데, 다른 문화권에서는 주로 권력자의 하급자를 함께 껴묻은 것에 비해서, 한반도의 경우 같은 지배층이 같이 껴묻어진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주로 [[부여]], [[가야]], [[신라]]의 풍습이 이랬는데, 이 때문에 이들이 같은 문화권을 공유했을 것이라는 어찌보면 당연한 추측을 할 수 있다. &lt;br /&gt;
&lt;br /&gt;
웃긴건 헬조선에서 없어진 순장은 짱깨들은 계속 가지고 있어서 조선시대에도 뒷담화를 했을정도라고 한다.&lt;br /&gt;
&lt;br /&gt;
중국의 경우는 중간에 한번 없어졌지만 똥송한 거란 여진 몽고의 영향으로 다시 부활했다가 청나라 중기 넘어가면서 없어졌다.&lt;br /&gt;
&lt;br /&gt;
[[삼국지]]에도 몇 번 나온다. [[조조]]의 무덤에서는 40살 정도의 여자와 20살 정도의 여자의 유골이 같이 발견되었으며 [[진무]]가 [[장료]]에게 사살당하자 [[손권]]은 진무의 애첩을 죽여 진무와 같이 안치했다.&lt;br /&gt;
&lt;br /&gt;
고대 이집트에서는 초기왕조 시절에 존재했으나 제2왕조의 초대 파라오인 헤텝세켐위 때부터 순장을 폐지하고 대신 [[샤브티]]를 만들어 무덤에 묻는 것으로 대체했다.&lt;br /&gt;
&lt;br /&gt;
[[북한]]은 21세기에도 여전히 하고 있는데 [[장성택]]이 죽자 [[우동측]]을 장성택 무덤에 같이 순장시켰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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