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feed xmlns="http://www.w3.org/2005/Atom" xml:lang="ko">
	<id>https://novawiki.app/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A%B9%EC%A0%95%EC%9B%90%EC%9D%BC%EA%B8%B0</id>
	<title>승정원일기 - 편집 역사</title>
	<link rel="self" type="application/atom+xml" href="https://novawiki.app/index.php?action=history&amp;feed=atom&amp;title=%EC%8A%B9%EC%A0%95%EC%9B%90%EC%9D%BC%EA%B8%B0"/>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C%8A%B9%EC%A0%95%EC%9B%90%EC%9D%BC%EA%B8%B0&amp;action=history"/>
	<updated>2026-04-18T18:04:5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generator>MediaWiki 1.41.1</generator>
	<entry>
		<id>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C%8A%B9%EC%A0%95%EC%9B%90%EC%9D%BC%EA%B8%B0&amp;diff=69527&amp;oldid=prev</id>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link rel="alternate" type="text/html" href="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C%8A%B9%EC%A0%95%EC%9B%90%EC%9D%BC%EA%B8%B0&amp;diff=69527&amp;oldid=prev"/>
		<updated>2026-01-08T09:11: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클라스}}&lt;br /&gt;
{{알림 상자&lt;br /&gt;
|배경색=#FFFFFF&lt;br /&gt;
|테두리색=#000000&lt;br /&gt;
|제목색=#0000FF&lt;br /&gt;
|제목=&amp;lt;big&amp;gt;이 문서는 내용이 존나 긴 책을 다룹니다.&amp;lt;/big&amp;gt;&lt;br /&gt;
|본문=이 문서에서 다루는 책은 내용이 어마무시하게 방대합니다.&lt;br /&gt;
&lt;br /&gt;
너무 방대해서 읽다보면 너는 죽게됩니다.&lt;br /&gt;
|왼쪽 그림 = 장문.png&lt;br /&gt;
|왼쪽 그림 크기 = 180픽셀}}&lt;br /&gt;
[[조선왕조]] 기록문화의 끝판왕. &lt;br /&gt;
&lt;br /&gt;
[[조선왕조실록]]도 승정원일기가 다 번역되는 그 순간부터 조선후기사 연구에는 승정원일기에 자리를 내줘야 할 정도로 내용이 많다. 근데 글자 수만 2억 4천만자가 &lt;br /&gt;
&lt;br /&gt;
이거 어느 세월에 다 번역할지는 미지수. 게다가 이게 현대로 따지면 속기록이랑 비슷한 거라서 흘러 쓴 초서체가 많아 조선왕조실록보다 번역이 더 어렵다. &lt;br /&gt;
&lt;br /&gt;
거기다 지금은 쓰지 않는 사어가 워낙에 많아서 번역이 더 어렵다. &amp;#039;싸이에서 파도타고 들어가서 일촌맺었다.&amp;#039;를 400년 뒤에 인간들이 보면 무슨말인지 못 알아처먹는거랑 마찬가지다. &lt;br /&gt;
&lt;br /&gt;
중간중간 태워먹은거랑 없앤 기록을 다 합쳐도 이 정도이다. 조선왕조실록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들어간다.&lt;br /&gt;
&lt;br /&gt;
[[인조]] 즉위 때부터 [[순종]] 때까지 총 287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다. 그 전 기록은 왜놈들과 뙈놈들이 처들어오는 바람에 다 날려 먹었다.&lt;br /&gt;
&lt;br /&gt;
현재까지 번역된 왕은 인조와 고종 정도고 이제 영조 시기를 번역하고 있다.&lt;br /&gt;
&lt;br /&gt;
이걸 얼마나 집요하게 기록했냐면 왕이 신하들이 했던 말 토씨 하나 안 빼먹고 다 기록하는 수준이다. &lt;br /&gt;
&lt;br /&gt;
정조임금 시절에 죽은 사도세자 명예회복 시켜달라고 유교충들 1만명이 시위했을떄 그놈들의 이름을 죄다 적어놨다. &lt;br /&gt;
&lt;br /&gt;
그날 당직선놈 이름쓰다 뒤졌을듯.&lt;br /&gt;
&lt;br /&gt;
이제 한 3100권 정도 남았다고 한다. 이거 번역한다고 첨단 기술 써서 총 번역할때 27년 단축할거라 한다. 앞으로 18년만 더 번역하면 끝장을 볼 수 있을거라고. 이것도 중간에 태워먹고 남은거다. 한권도 소실 안됐으면 백년은 훌쩍 넘었을거다.&lt;br /&gt;
&lt;br /&gt;
== 조선왕조실록과의 비교 ==&lt;br /&gt;
    임금이 말씀하시길&lt;br /&gt;
    &amp;quot;저번에 광충교를 보니 금년 들어 더욱 흙이 메워져 있다. 가히 걱정이 된다.&lt;br /&gt;
    홍봉한이 말하길&lt;br /&gt;
    &amp;quot;하천 도랑의 준설이 매우 시급합니다. 만약 홍수를 만나면 강가의 집들은 대부분 떠내려 가는 화를 입을 것입니다&lt;br /&gt;
 (중략, 이후로도 계속 홍봉한하고 하천 관리 관련으로 말이 끝없이 이어진다)&lt;br /&gt;
    임금이 말씀하길&lt;br /&gt;
    &amp;quot;서울의 백성들을 불러 물은 후에 실시하는 것이 옳은 듯 하다. 설령 하천을 준설한다 해도 모래와 흙을 둘 곳이 없지 않은가?&amp;quot;&lt;br /&gt;
    홍봉한이 말하길&lt;br /&gt;
    &amp;quot;어떤 이는 배로 운반한다고 하고, 어떤 이는 수레나 말로 실어 나른다고 하는데, 한번 시험해 보면 알맞은 방도가 있을 것입니다.&lt;br /&gt;
    임금이 웃으며 말씀하시길&lt;br /&gt;
    &amp;quot;한성 안으로 배를 들일 수 있는가?&amp;quot;&lt;br /&gt;
    홍봉한이 말하길&lt;br /&gt;
    &amp;quot;배로 운반한다는 것은 큰비가 내린다면 가능한 방법인 듯 합니다.&amp;quot;&lt;br /&gt;
    임금이 말씀하시길&lt;br /&gt;
    &amp;quot;사관들은 의견이 다를 수도 있으니 각자 소견을 말해 보라.&amp;quot;&lt;br /&gt;
    ㅡ 《승정원일기》 영조 34년 5월 2일.&lt;br /&gt;
&lt;br /&gt;
    임금이 준천의 가부를 물었다.&lt;br /&gt;
    ㅡ 《조선왕조실록》 영조 34년 5월 2일.&lt;br /&gt;
&lt;br /&gt;
&lt;br /&gt;
    (홍국영이 &amp;quot;자객이 새나 짐승이 아니면 궁궐 담장을 넘지 못했을 터이니, 대궐 안을 두루 수색하길 청합니다.&amp;quot;라고하자)&lt;br /&gt;
&lt;br /&gt;
    임금이 말씀하시길&lt;br /&gt;
    &amp;quot;조금 전에 별감들에게 먼저 차비문 안밖을 수색하게 하였는데 경의 말이 매우 옳다. &lt;br /&gt;
 경은 금위대장도 맡고 있으니 금군 20명을 인솔하여 승헌문에서부터 무덕문에 이르기까지 두루 수색하고, &lt;br /&gt;
 또 연화문에 숙직하는 군사 20명에게 궁궐의 담장 안을 순검하게 하는 것이 좋겠다.&amp;quot;&lt;br /&gt;
    홍국영이 말하길&lt;br /&gt;
    &amp;quot;그러면 연화문에 숙직하는 군사는 표신을 풀어 보냅니까?&amp;quot;&lt;br /&gt;
    임금이 말씀하시길,&lt;br /&gt;
    &amp;quot;일이 급박하니 지체할 수 없다. 경이 영전으로 인솔하면 되겠다.&amp;quot;&lt;br /&gt;
    ㅡ 《승정원일기》 정조 1년(1777) 7월 28일&lt;br /&gt;
&lt;br /&gt;
    (홍국영이 &amp;quot;자객이 새나 짐승이 아니면 궁궐 담장을 넘지 못했을 터이니, 대궐 안을 두루 수색하길 청합니다.&amp;quot;라고하자)&lt;br /&gt;
&lt;br /&gt;
    임금이 그것을 옳게 여겼다.&lt;br /&gt;
    ㅡ 《조선왕조실록》 정조 1년 7월 28일.&lt;br /&gt;
&lt;br /&gt;
== 기타 ==&lt;br /&gt;
{{인용문|이른 아침에 김류, 이홍주, 최명길이 청대하였다. 주상이 침전(寢殿) 안으로 들어올 것을 명하여 밀담을 나누었는데,&amp;lt;br&amp;gt;&lt;br /&gt;
승지와 사관은 문 밖에 있었으므로 밀담을 기록하지 못하였다. 상이 이경직에게 명하기를,&amp;lt;br&amp;gt;&lt;br /&gt;
&amp;#039;&amp;#039;&amp;#039;“오늘 한 말은 중요한 일이 아니니, 사책에는 쓰지 말라.”&amp;#039;&amp;#039;&amp;#039;&amp;lt;br&amp;gt;&lt;br /&gt;
하였다. 주상이 이르기를,&amp;lt;br&amp;gt;&lt;br /&gt;
“눈앞의 위급한 일은 인보(印寶)와 가도(椵島)에 관한 일이다.”&amp;lt;br&amp;gt;&lt;br /&gt;
하니, 최명길이 아뢰기를,&amp;lt;br&amp;gt;&lt;br /&gt;
“인보를 잠시 가지고 가서 말하기를, ‘엄한 위엄에 몰려 어쩔 수 없이 가져오긴 했지만 조종(祖宗)에서 전해 온 구물(舊物)을 차마 하루아침에&amp;lt;br&amp;gt;&lt;br /&gt;
마멸할 수가 없으니, 조묘(祖廟)에 보관해 두고 새로 새 인보를 받기를 원한다.’라고 한다면 저들도 혹 옳게 여길 것입니다.”&lt;br /&gt;
하였다. 주상이 이르기를,&amp;lt;br&amp;gt;&lt;br /&gt;
“백관들이 여울물을 건널 수 없으니, 오늘 가는 것은 반드시 배가 있어야 가능할 듯하다.”&amp;lt;br&amp;gt;&lt;br /&gt;
하니, 최명길이 아뢰기를,&amp;lt;br&amp;gt;&lt;br /&gt;
“어제 이미 말했지만 오늘도 청하겠습니다.”&amp;lt;br&amp;gt;&lt;br /&gt;
하였다. 최명길이 아뢰기를,&amp;lt;br&amp;gt;&lt;br /&gt;
“척화한 사람은 지금 이영달(李英達)을 시켜 보내되 저들과 수작하는 일이 반드시 처리되기를 기다렸다가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amp;lt;br&amp;gt;&lt;br /&gt;
하였다. &amp;#039;&amp;#039;&amp;#039;밀담이므로 기록하지 못하였다.&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그러하다고 한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ntry>
</fe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