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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쌍령전투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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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20T01:26:2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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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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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42:2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거짓}}&lt;br /&gt;
병자호란 중 일어났던 전투 중 하나로&lt;br /&gt;
&lt;br /&gt;
어중이 떠중이 4만명 VS 정예소수 팔기군 300명 결과는?&lt;br /&gt;
&lt;br /&gt;
청나라 승&lt;br /&gt;
&lt;br /&gt;
이래서 군대의 질이 중요한것이다. 현대전도 마찬가지&lt;br /&gt;
&lt;br /&gt;
 허완: 내...내가 패전이라니!! 내가 패전이라니!!!!!!!!&lt;br /&gt;
&lt;br /&gt;
동북아시아 최고의 갓흥국 킹조선 다운 진정한 전투 갓흥국 답게 차세대 무기인 조총을 든 조총병이 주축이던 &lt;br /&gt;
4만의 군사로 청나라 기병 300한테 처발린 &lt;br /&gt;
&lt;br /&gt;
씹레전드 전투... ㅆㅅㅌㅊ 쨕쨕쨕 필자는 이 전투에 대해 알아보는 도중에 충격을먹고 곧바로 앉아있던 자리에서 일어나 서랍 한가운데에 구겨넣었던 태극기를 꺼내들고 갓국의 백성들이 많이 활보하는 부산머학교 대학로로 뛰쳐나가 태극기를 사방으로 찢으면서 울부짖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 전투 이후 인조는 한달 채 지나지 않은 1월 30일 삼전도에서 대가리 쾅쾅 지어박으면서 굴복.&lt;br /&gt;
&lt;br /&gt;
ㄹㅇ 킹조선 동북아시아의 주인.. 인정합니다..ㅕㅠㅛㅑ&lt;br /&gt;
&lt;br /&gt;
&lt;br /&gt;
{{진실}}&lt;br /&gt;
는 위에는 역알못 새끼들이고 정확히는 청군의 수는 3000명이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싸우지도 못하고 기병이 돌격해오니 밀리다 뒤에 있는 화약을 지들끼리 밟고 자폭한거에 가깝다&lt;br /&gt;
&lt;br /&gt;
&lt;br /&gt;
근데 청나라에선 지들이 졌다고 기록해놓았다.&lt;br /&gt;
뭐지 시발?&lt;br /&gt;
&lt;br /&gt;
사실 청군 300명한테 조선군 4만이 털렸다는건 그냥 야사에나 나오는 얘기고 당시 조선군의 상황을 생각해보면 쌍령에 4만이 모였다는 얘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쌍령전투에 참여한건 경상도 근왕군이였는데 경상도 관찰사가 인조한테 보고한 내용을 보면 경상도에 있는 속오군 다 합쳐도 2만4천명 수준이였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당시 기록들을 보면 경상도 근왕군은 근왕 명령 받은지 5일만에 출발했는데 상식적으로 당시의 행정력과 교통 상태를 볼 때 이들이 5일만에 다 모여서 출발하는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기록을 보면 좀 멀리 있는 고을의 군사는 반도 안 소집된 상태로 출발했다. 이건 사실 인좇 잘못인게 인좇이 포위된 남한산성은 인좇의 삽질 때문에 군량이 얼마 없어서 오래 버틸 수가 없는 상황이였고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군사 다 소집되기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lt;br /&gt;
&lt;br /&gt;
또 소집된 군사들 중 일부는 경상도에 남아야 했다. 상황이 급하긴 하지만 임진왜란이 끝난지 40년도 안 되었는데 만에 하나 일본과의 전쟁이 다시 터질 경우 최전선이 될 경상도를 완전히 비워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이렇게 이런저런 이유로 군사들이 빠지다보니 실제로 남한산성을 향해 북진한 경상도 근왕군은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8천명 정도였다. 그리고 이 병력이 전부 다 쌍령전투에 참여한게 아니라 경상도 관찰사 심연 휘하의 부대는 후방에 있었고 이 외에도 빠른 행군속도 때문에 도착하지 못한 군사들이 꽤 있었다. 여기에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쌍령 전투의 전사자 수가 구체적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약 2천 정도가 전사한 험천 전투와 전사자 수가 비슷했다고 기록된 것과 쌍령 전투 지휘관들도 거의 다 전사할 정도로 전투가 처절했던 것을 감안해보면 2,3천 정도가 쌍령 전투에 참여한 조선군의 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lt;br /&gt;
&lt;br /&gt;
사실 청군과 조선군들의 군 숫자는 큰차이도 없었고 서로 지휘관이 사망하는등 치열한 전투였음.&lt;br /&gt;
[[분류:전투]]&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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