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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아시가루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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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15:05:17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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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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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42:5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일본]]의 전국시대에 존재했던 일반 보병을 칭한다. 통일된 국가 권력이 붕괴하고 여러 다이묘들이 난립하는 전국시대가 되자 이전과 달리 병력을 대규모로 모집할 필요가 있었고 대놓고 일반 농민을 병사로 징집하는 게 금지였던 일본의 중세 문화 때문에 탄생한 개념이다.&lt;br /&gt;
&lt;br /&gt;
대규모 병력이 필요한 다이묘가 각 마을의 고쿠다카(1년의 쌀 생산량)와 인구수에 따라 일정 비율로 아시가루를 모집했는데 그러면 각 마을에서는 먼저 아시가루로 참전한 경험이 있는 자을 먼저 뽑았고, 그 다음에는 지원자를 받았고, 그래도 요구 숫자를 못 채우면 &amp;#039;징집&amp;#039;했다. 이들은 복무 기간 동안 봉록(월급이다)을 대가로 받았기 때문에 서양의 용병대와 유사하지만, 평상시에는 원래 하던 생업에 종사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lt;br /&gt;
&lt;br /&gt;
그리고 아시가루로 큰 공을 세운다면 아시가루의 우두머리인 아시가루코가시라까진 승진할 수 있었고 거기서 더 공을 세우면 아예 사무라이로 신분 상승하는 사례도 있었다. 다케다 신겐의 부하 장수들 중 사천왕으로 뽑히는 장수 중 1명인 코사카 마사노부가 그 실례로 평범한 농민 출신이었으나 아시가루코가시라-아시가루다이쇼를 거쳐 사무라이가 됐다.&lt;br /&gt;
&lt;br /&gt;
진군 순서는 조총병이 맨 앞에 서고 그 뒤로 궁병 - 창병 - 검병 - 기병 - 지휘관 순으로 진군한다. 적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땐 조총병이 공격하고 적이 접근해오면 궁병이 공격하고 더 접근하면 창병이 공격하는 식으로 순차적으로 공격했다. 착용했던 갑옷은 사무라이가 사용하던 갑옷을 간략히 한 오카시구소쿠로 다이묘에게 빌려쓰는 갑옷으로 투구인 진가사(임진왜란을 다룬 매체에서 흔히 보이는 삿갓이다), 가슴, 팔, 정강이 방어구로 구성되었다. 주로 사용한 무기는 창과 활이었는데 조총은 전문병이 사용했고 칼은 비쌌기 때문에 장수들만 쓸 수 있었다.&lt;br /&gt;
&lt;br /&gt;
그러나 아시가루의 목숨은 매우 저렴해서 [[도자기]] 한 병이 아시가루 3명의 목숨보다 비쌌다. 당연히 아시가루가 도자기를 깨면 즉석에서 [[참수]]당했다.&lt;br /&gt;
&lt;br /&gt;
일본놈들이 어찌나 도자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지 현대 일본인들한테 [[임진왜란]] 왜 일으켰나고 물어보면 &amp;#039;&amp;#039;&amp;#039;조선에 가서 도자기를 훔치려고 일으켰다&amp;#039;&amp;#039;&amp;#039;고 대놓고 답변한다.&lt;br /&gt;
&lt;br /&gt;
그래서 임진왜란을 일본인들끼리는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부른다.&lt;br /&gt;
&lt;br /&gt;
실제로도 조선산 도자기는 존나 최고의 명품으로 취급되어 오늘날 &amp;#039;&amp;#039;&amp;#039;Made in Italy&amp;#039;&amp;#039;&amp;#039;가 찍힌 명품 이상의 대우를 받았다.&lt;br /&gt;
&lt;br /&gt;
그래서 임진왜란에서 왜군들이 철수할 때 수많은 도자기 기술자들을 납치해갔다.&lt;br /&gt;
&lt;br /&gt;
다이묘들은 도자기 기술자들을 일본으로 납치해와서는 의식주 문제를 최고의 예우를 갖춰 대우해주고 자기 딸내미를 아내로 내줘서 사위로 만들어 놓은 뒤 하루에 도자기 한 개씩만 뽑아주면 아주 큰 절까지 해가면서 귀하게 모셨다. 에도 막부 초기에 조선과 일본의 외교 관계가 정상화되면서 이렇게 납치된 도공들 중 많은 수가 귀국했지만 그냥 일본에 눌러앉아버린 사람들도 있었다.&lt;br /&gt;
&lt;br /&gt;
[[분류:군대]]&lt;br /&gt;
&lt;br /&gt;
[[분류:센고쿠 시대]]&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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