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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양호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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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9:57:41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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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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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9:54:27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분류:삼국지 인물]]&lt;br /&gt;
&lt;br /&gt;
{{거짓}}&lt;br /&gt;
{{존잘}}&lt;br /&gt;
{{어둠}}&lt;br /&gt;
&lt;br /&gt;
삼국시대 위나라, 서진을 섬긴 [[게이]]&lt;br /&gt;
&lt;br /&gt;
적군 오나라 도독인 육항과 사랑을 나누었다. 서로 서릉에서 대치할 때 적이었지만 서신을 주고받으며 감정을 확인하고 허공에 딸을쳤다.&lt;br /&gt;
&lt;br /&gt;
육항이 병들어 아프다고 하자 양호가 약을 보내주었고 그것을 의심없이 먹은 육항은 건강해져 더욱 더 양호를 생각하며 딸딸이를 열심히 쳤다고 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진실}}&lt;br /&gt;
&lt;br /&gt;
육항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감동적인 일화를 만든 것은 사실이나,당시 양호나 육항은 서로의 적국의 백성이나 병사, 장수에게도 관대함을 내비쳤는데, 이것은 자신의 도량이 넓음을 어필하기 위한 전략에 가까운 행동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양호는 사마소가 정권을 잡을 무렵 등장하였다.&lt;br /&gt;
&lt;br /&gt;
아버지 양신(羊茞)은 상당태수를 지냈으며 후한의 학자 채옹의 사위로, 즉 양호는 채옹의 외손자이자 채염의 외조카다. 거기에 신비의 딸 신헌영의 조카였고, 하후패의 딸을 아내로 맞았다. &lt;br /&gt;
&lt;br /&gt;
양호가 뛰어난 사람임을 알아본 소인배 [[종회]]는 항상 양호를 헐뜯을 생각에 눈이 벌개졌었다고 서술되어 있을만큼 뛰어난 사람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진 건국후 양호는 위장군에 올랐다.&lt;br /&gt;
&lt;br /&gt;
도독형주제군사에 임명되어 양양에 주둔하며 형주 북부를 지켰다.&lt;br /&gt;
&lt;br /&gt;
농지 8백여 경를 개간하여 10년치 군량을 마련하고 형북 일대의 민심을 수습하며 오나라 포로 중 고국을 그리워하는 자가 있으면 기꺼이 보내주는 등 너그러운 정책으로 신망을 얻었다.&lt;br /&gt;
&lt;br /&gt;
한편으로는 오의 석성 태수가 자주 양양을 침공하자 계책을 써서 그를 파면시키는 등 군략에서도 빈틈이 없었다. &lt;br /&gt;
&lt;br /&gt;
오 지방 사람들은 감복해서 그를 양공(羊公)이라 칭하고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다.&lt;br /&gt;
&lt;br /&gt;
&lt;br /&gt;
인덕있는 덕장으로 매우 유명했으며, 두루두루 사람을 쓰는 정치를 행했고 시야가 넓은 인재였다. &lt;br /&gt;
&lt;br /&gt;
진이 오를 정벌할 적에 군 태세와 장비 등등 여러가지 양면으로 기초를 쌓은 것이 양호다.&lt;br /&gt;
&lt;br /&gt;
군재가 뛰어났다고는 함부로 말하기가 어려운 것이, 서릉에서 육항에게 더 많은 군세를 가지고도 패했다. 그리고 뚜렷한 공적 기록이 많이 없다.&lt;br /&gt;
&lt;br /&gt;
애초에 형주 부근에 배치가 되어서 전장이 고착화 됨에 따라 공적을 얻기는 힘들 수 밖에 없었다. 가장 공을 세우기 어려운 시기를 타고 난 인물이라고 평가받는다.&lt;br /&gt;
&lt;br /&gt;
&lt;br /&gt;
277년에 [[두예]]를 [[사마염]]에게 천거하고 병사한다.&lt;br /&gt;
&lt;br /&gt;
집안 인맥이며 개인 능력, 인격 어느 면에서도 당대 흠결이 없을 정도였으나, 오히려 그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종회, 가충, 순욱, 풍담, 왕융 등 수많은 이들에게 정적으로 간주되어 생애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시기와 견제를 당했고 스스로도 그런 입장이 난감했는지 육항 사후 오 정벌의 건의가 좌절되자 &amp;quot;천하의 일 중 사람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열 중 일곱여덟이구나(天下不如意 恒十居七八)&amp;quot; 라고 탄식했을 정도였다(김용의 무협소설 신조협려에서 주인공 양과가 양호의 이 말을 가장 좋아한다고 나온다. 정말 인생이 꼬일 대로 꼬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또 개인사적으로는 후사도 보지 못했으며, 그나 사마준, 사마유 등 몇몇 능력자들의 활약을 가정한다 하더라도 서진 정권의 문제점은 보다 근본적인 부분에 위치했기에 과연 미래가 달라질 수 있었을지 의문의 여지가 크다. 그래도 후임자는 잘 봐뒀다. 두예는 말할 것도 없고, 양호의 뒤를 이어 형주를 담당한 유홍, 그 뒤를 이은 도간 모두 매우 뛰어난 인물들이라 팔왕의 난과 5호의 침입으로 전국토가 개박살이 나는 와중에도 형주는 조금이나마 더 평화로울 수 있었다. 물론 이후 헬게이트가 열린 건 마찬가지...&lt;br /&gt;
&lt;br /&gt;
[[분류:삼국지 인물/위]]&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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