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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우장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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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6T13:30:2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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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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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37: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역사 속의 인물}}&lt;br /&gt;
{{천재}}&lt;br /&gt;
{{성인}}&lt;br /&gt;
{{고인드립}}&lt;br /&gt;
&lt;br /&gt;
{{인용문|이 벼! 끝을 보지 못하고 내가 죽어야 하다니...}}&lt;br /&gt;
&lt;br /&gt;
&lt;br /&gt;
{{인용문|우장춘은 대마도와도 바꿀수없다}}&lt;br /&gt;
&lt;br /&gt;
&lt;br /&gt;
대의를 한 평생 지켜낸 애국자&lt;br /&gt;
&lt;br /&gt;
동시에 [[이휘소]]와 더불어 [[노벨상]]을 받을수 있으셨던 세계적인 과학자&lt;br /&gt;
&lt;br /&gt;
&lt;br /&gt;
그는 한국인 중 가장 커다란 &amp;#039;학문적 업적&amp;#039;을 일군 과학자였다&lt;br /&gt;
&lt;br /&gt;
그는 한평생 개인의 이기가 아닌 조국의 안녕이란 가장 숭고한 가치를 지켜낸 애국자였다&lt;br /&gt;
&lt;br /&gt;
그는 대한민국 개량농업에 지대한 공헌을 한 농학자였다&lt;br /&gt;
&lt;br /&gt;
그리고 그는,&lt;br /&gt;
&lt;br /&gt;
태어난 나라가 아닌 본인이 선택한 나라를 위해 살다 간 대한민국 국민이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 한국인 우장춘 ==&lt;br /&gt;
&lt;br /&gt;
만약 당신이 1950년의 우장춘이라 가정해보자&lt;br /&gt;
&lt;br /&gt;
당신은 한국과 일본 중 한나라를 택해야하는 상황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나라를 선택하겠는가?&lt;br /&gt;
&lt;br /&gt;
&lt;br /&gt;
우장춘의 상황은 다음과 같다&lt;br /&gt;
&lt;br /&gt;
* 아버지는 친일파요&lt;br /&gt;
&lt;br /&gt;
* 어머니는 일본인이요&lt;br /&gt;
&lt;br /&gt;
* 태어나서 50년 넘게 평생 살아간 나라는 일본이요 &lt;br /&gt;
&lt;br /&gt;
* 당연히 모든 삶의 터전도 일본 &lt;br /&gt;
&lt;br /&gt;
동시에&lt;br /&gt;
&lt;br /&gt;
* 친일파 아버지의 짐을 짊어져야하며 &amp;lt;ref&amp;gt;실제로 몇 정치인들은 우범선의 그림자에서 우장춘을 떨치지 못했고 진작에 문화포장을 받았어야했지만 우범선의 그림자때문에 우장춘이 죽기 3일전에야 문화포장을 수여했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모친과 생이별해야하며 &amp;lt;ref&amp;gt;끝끝내 노모의 임종을 지키지못했다. 우장춘은 한국에서 어머니의 위령제를 지낸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한번도 가본적 없고 말도 글도 낯선 한국, &amp;lt;ref&amp;gt;우범선은 우장춘의 유년기에 사망하였다. 우장춘이 한국에 오기전까지 한국말도 잘 못하고 한글을 읽지 못하는것은 당연한 일이었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 부귀영화는 언감생심 어쩌면 신변마저 위험할수도 있는 한국 &amp;lt;ref&amp;gt;우장춘은 1950년에 귀국하였고 1950년 6월 25일은...&amp;lt;/ref&amp;gt;&lt;br /&gt;
&lt;br /&gt;
&lt;br /&gt;
아마 많은 이들이 일말의 주저없이 일본을 택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맞는 선택이다. 명분도 실리도 모두 일본을 택할수있었고, 일본을 택하는게 합리적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우장춘 역시 일말의 주저없이 한 나라를 선택했다. &lt;br /&gt;
&lt;br /&gt;
이유는 간단하지만 명료했다.&lt;br /&gt;
&lt;br /&gt;
&lt;br /&gt;
&amp;#039;조국&amp;#039;이 그를 부르기 때문에&lt;br /&gt;
&lt;br /&gt;
&lt;br /&gt;
일본 정부는 이런 훌륭한 세계적 석학을 곱게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lt;br /&gt;
&lt;br /&gt;
우장춘 박사의 한국 귀국을 막기위해 회유와 협박등의 갖가지 수를 동원했고 감옥에 가둬 귀국을 막으려는 수까지 꺼내들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이에 우장춘 박사는 더욱 강한 강수로 응답했다. 제 발로 쓰시마 섬의 조선인 강제수용소로 들어간 것. &lt;br /&gt;
&lt;br /&gt;
그렇게 우장춘은 한국인 신분증을 제시하며 송환선에 탑승, 한국으로 귀국하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 귀국 후 ===&lt;br /&gt;
{{영웅}}&lt;br /&gt;
&lt;br /&gt;
우여곡절 끝에 귀국한 우장춘에게 한국 정부는 약 10억원의 이적비를 지불하였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우장춘은 이 돈을 개량농업에 쓸 우량 종자를 구입하는데 전부 사용하였다.&lt;br /&gt;
&lt;br /&gt;
&lt;br /&gt;
우장춘은 쉴틈없이 한국 개량농업의 기틀을 다졌다.&lt;br /&gt;
&lt;br /&gt;
당장의 주식인 벼와 감자, 김치의 재료인 배추를 개량하였다. 그 유명한 &amp;#039;무추&amp;#039;가 바로 우장춘 박사의 작품 &lt;br /&gt;
&lt;br /&gt;
&lt;br /&gt;
제주도 지역의 감귤 산업을 연구하여 감귤산업에 지대한 공로를 세우셨다. 이 연구의 씨앗은 오늘날 제주도를 감귤 산업의 메카로 만든다.&lt;br /&gt;
&lt;br /&gt;
&lt;br /&gt;
진작에 문화포장을 수여해야 했지만 박사님이 돌아가시기기 3일전에야 정부로부터 문화포장을 받게 된다. &lt;br /&gt;
&lt;br /&gt;
우장춘은 &amp;quot;조국이 드디어 나를 인정해 주는구나&amp;quot; 눈물을 흘렸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리고 죽는 그날까지도 미처 끝내지못한 개량농업을 염려하였다.&lt;br /&gt;
&lt;br /&gt;
그렇게 우장춘은 한국에서 뜻을 펼친지 고작 9년만에 하늘의 부름을 받게 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왜 그가 한국을 선택하게 되었나 ===&lt;br /&gt;
&lt;br /&gt;
그의 아버지 우범선은 을미사변에 연관된 대표적인 친일파였다. &lt;br /&gt;
&lt;br /&gt;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우장춘이 한민족이라는 자각과 조국의 발전에 기여해야한다는 애국심을 갖추는데 결정적인 트리거가 됐다.&lt;br /&gt;
 &lt;br /&gt;
&lt;br /&gt;
전혀 가본 적 없는 한국이지만 그의 민족의식은 매우 투철했다. &lt;br /&gt;
&lt;br /&gt;
일본에서 개량농학을 연구할때도 우씨 성을 끝까지 고집해 &amp;#039;스나가&amp;#039;라는 성 대신 &amp;#039;우&amp;#039; 성을 기록한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 과학자 우장춘 ==&lt;br /&gt;
{{전설}}&lt;br /&gt;
&lt;br /&gt;
배추와 양배추 사이의 잡종인 유채를 실험적으로 만들어 자연적 합성종을 입증,&lt;br /&gt;
&lt;br /&gt;
그 유명한 &amp;#039;우스 트라이앵글&amp;#039;로 &amp;#039;종의 분화는 자연선택의 결과&amp;#039; 라는 다윈의 진화론을 전면 수정하게 되었다.&lt;br /&gt;
&lt;br /&gt;
&lt;br /&gt;
그의 논문은 아직도 십자화과 연구에 무조건적으로 인용되고 세계 모든 교과서에 이론 창시자로 늘 언급되는 유일한 한국인이기도 하다.&lt;br /&gt;
&lt;br /&gt;
 &lt;br /&gt;
감이 잘 안 온다면 고등학교 이과 생물시간에 식물의 중간유전을 이 분이 유채로 증명해냈다고 알아들으면 된다.&lt;br /&gt;
&lt;br /&gt;
살아계셨으면 100% 노벨상을 수상했을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 씨없는 수박 창시자? ==&lt;br /&gt;
&lt;br /&gt;
이상하게 한국에는 &amp;#039;씨 없는 수박 창시자&amp;#039;로 알려져있는데&lt;br /&gt;
&lt;br /&gt;
우장춘 박사는 이 씨 없는 수박 개발에 1도 관여되어있지않다&lt;br /&gt;
&lt;br /&gt;
&lt;br /&gt;
거짓말 1도 안보태고 지나가는 국민 100명에게 물어봐도 진실을 알고 있는 자는 손에 꼽을것이다. &lt;br /&gt;
&lt;br /&gt;
&lt;br /&gt;
다만 한국에 와 개량농업의 위력을 설명하고자 할때 씨 없는 수박을 교재로 활용하였다. &lt;br /&gt;
&lt;br /&gt;
아마 이 부분이 와전되었을것이다.&lt;br /&gt;
&lt;br /&gt;
&lt;br /&gt;
상기의 내용을 보면 알겠지만 진실은 &amp;#039;씨 없는 수박&amp;#039; 개발과는 비교조차 할수없는 학업성과를 이룩하셨다.&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분류:인물]]&lt;br /&gt;
&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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