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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원삼국 시대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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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8T23:56:33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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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C%9B%90%EC%82%BC%EA%B5%AD_%EC%8B%9C%EB%8C%80&amp;diff=55112&amp;oldid=prev</id>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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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50: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한국사의 시대 구분}}&lt;br /&gt;
&lt;br /&gt;
원삼국 시대는 한국사 교과서 기준으로 초기국가 파트에서 다루는 그 기간이다.&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위만조선]]의 우거왕이 [[한무제]]한테 깝치다가 1년만에 gg 치고 망한다.(왕검성 함락)&lt;br /&gt;
&lt;br /&gt;
그리고 한나라는 야 씬난다~ 한 4군 설치해서 지배해야징 히힛~하면서 내려온건 좋았는데 짱깨가 재수없었던 토착인들이 개극딜을 시전했다.&lt;br /&gt;
&lt;br /&gt;
한나라 정부도 ㅄ은 아니기 때문에 8조개에 불과했던 법을 60개조로 늘린다. 고로 세상이 매우 흉흉해 졌다. 사실 세상이 흉흉해졌다기 보다는, 법체계가 좀더 정교화 될만큼 인구가 늘었다고 보는편이 더 옳지 않나 싶다.&lt;br /&gt;
&lt;br /&gt;
그리고 한나라도 독립 세력을 지근지근 밟는다.&lt;br /&gt;
&lt;br /&gt;
이때 위만조선 멸망으로 발생한 유이민이 [[진]] 지역으로 이주함에 따라서 본격적인 삼한시대가 열렸다.&lt;br /&gt;
&lt;br /&gt;
아직 삼국이 고대국가(중앙집권 국가)로 진입하지 못하고 연맹왕국 단계에서 헤매던 기간이다.&lt;br /&gt;
&lt;br /&gt;
솔직히 이 시기 중국 입장에선 오랑캐로 보였으며, [[로마]]인들이 [[게르만족]] 보듯 했을 것이다.&lt;br /&gt;
&lt;br /&gt;
==특징==&lt;br /&gt;
&lt;br /&gt;
&lt;br /&gt;
왕권은 미약하고 부족장 세력이 강하다. 날씨가 가물어도 왕 탓이니 왕을 몰아내고 새 왕을 뽑았다. ([[부여]]의 경우)&lt;br /&gt;
&lt;br /&gt;
여기서 왕의 제사장적인 성격과, 더불어 존나 약한 왕권을 유추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이 때 당시 왕실은 돌아가며 하거나 부족장 세력의 대표정도에 불과했다. 중앙에서 관리들을 파견하지 못하고 지방자치를 했었다.&lt;br /&gt;
&lt;br /&gt;
대신 전쟁나면 부족장들이 자비로 말과 무기를 장만해 싸우러 나가야만 했다. 평민들은 주로 보급임무에 종사했지 싸우진 않은 것으로 보인다. 실제 르네상스 시대 지배층이 [[시민군]]을 굉장히 부정적으로 봤는데, 이유는 피지배층에게 무기를 쥐어줬다가는 폭동을 일으킬 것이라고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lt;br /&gt;
&lt;br /&gt;
&lt;br /&gt;
&lt;br /&gt;
수저놀음의 시초인 신분제는 이미 갖추어 있어서 지배계급은 부족 대표인 왕, 싸우는 사람인 부족장 세력, 피지배 계급으로는 생산자인 평민들 그리고 부채나 전쟁 포로, 죄수 가족 출신인 [[노비]]가 있었다.&lt;br /&gt;
&lt;br /&gt;
==이 시대의 대표적 나라들==&lt;br /&gt;
그냥 마을 촌장이나 동네 통장반급 어르신들이 한 나라의 왕이라고 자처하던 안습한 시대였다.&lt;br /&gt;
&lt;br /&gt;
제천행사는 추석의 유래가 되었다는데 암기할때 팁은 [[부여]]의 영고 혼자 12월이고 나머진 추수가 끝나는 10월이다. &lt;br /&gt;
&lt;br /&gt;
단 삼한의 경우 5월에 한번 더 놀았다. 씨뿌리고 나서 수릿날을 한번 더지냈다. 이것은 단오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부여===&lt;br /&gt;
&lt;br /&gt;
고조선 다음으로 오래된 왕국이지만 고조선 못지 않게 기록이 없다.&amp;lt;ref&amp;gt;사실 삼국시대 이전에는 기록이 대부분 부실하다.&amp;lt;/ref&amp;gt; 기원전 5세기 부터 왕의 칭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lt;br /&gt;
&lt;br /&gt;
형사취수제와 12월 영고의 풍습으로 보아 수렵이나 유목민족의 습속이 아직 많이 남아 있었다. 성곽과 궁전 감옥을 보유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우가, 저가, 마가, 구가라는 왕을 뽑을 수 있는 선제후 세력인 4가加가 있었고, 이 가들은 사출도를 다스렸다. 이 사출도와 더불어 왕이 다스리는 지역을 합쳐 중앙 5부라고 불렀다.&lt;br /&gt;
&lt;br /&gt;
왕권이 약하던 시기로, 애초에 선제후들이 왕을 뽑은대다가, 흉년이 들면 왕의 모가지를 따버렸다. 여기서 왕의 제사장적인 성격 역시도 유추 가능하다.&lt;br /&gt;
&lt;br /&gt;
말, 주옥, 모피를 생산했다. &lt;br /&gt;
&lt;br /&gt;
1책 12법&amp;lt;ref&amp;gt;1을 훔쳤다가 걸리면 12로 갚는 법&amp;lt;/ref&amp;gt;과 우제점법&amp;lt;ref&amp;gt;전쟁 터지면 소 잡아서 소 발굽으로 점 치던 것&amp;lt;/ref&amp;gt;으로 유명하고 역법으로 은력(은나라의 달력)을 썼다. [[순장]]과 [[후장]]의 풍습이 있었고 죽은 사람에게 옥갑을 넣어주었다고 전한다.&lt;br /&gt;
&lt;br /&gt;
계급은 왕과, 그 밑의 가. 그리고 그 밑에 부유층인 호가 있었으며 그 밑에 하호라는 피지배층과 노비가 있었다.&lt;br /&gt;
&lt;br /&gt;
법체계는 고조선의 8조법과 유사했다고한다.&lt;br /&gt;
&lt;br /&gt;
기원후 3세기 경에 [[선비족]]에게 개털리고 반쯤 망했다가 고구려한테 기원후 6세기 초쯤에 합병당해 완전히 망했다.&lt;br /&gt;
&lt;br /&gt;
기록은 별로 없지만, 이후 삼국시대의 2개 국가인 고구려와 백제가 스스로를 부여의 계통이라고 자처했던 만큼, 한국사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고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더불어 언어학적으로 [[고립어]]인 [[한국어]]의 원본이 되는 말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언어적 계통 상으로 고구려, 백제를 거쳐 일본어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되며 &lt;br /&gt;
&lt;br /&gt;
이 때문에 일부 학자들은 [[일본제어]]와 [[한국어]]를 묶어서 부여어족이라는 어족을 주장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고구려===&lt;br /&gt;
&lt;br /&gt;
부여계가 남하해서 졸본에 도읍을 정하였다. 산지가 많고 땅이 척박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그래서 성정이 사납다고 짱개들이 삼국지 위지 동의전에서 뒷담을 까고 있다.&lt;br /&gt;
&lt;br /&gt;
부동산 재벌 라이즈라고 보면 된다.&lt;br /&gt;
&lt;br /&gt;
반면 한나라와 좇목중이던 부여는 좋게 평가하였다. 국동대혈에서 일년에 한번씩 제사지내고 놀았다. 그것이 제천행사인 동맹이다.&lt;br /&gt;
&lt;br /&gt;
특산물로 맥궁이라는 활을 생산했다.&lt;br /&gt;
&lt;br /&gt;
정치체제나 풍습이 부여와 유사했다. 당연하다. 이시기엔 고구려를 졸본부여라 불렀을 정도였으니. 사실 부여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 세운나라이기도 하고.&lt;br /&gt;
&lt;br /&gt;
감옥이 없어서 부족회의에서 석방 아님 사형 둘중 하나만을 결정했다고 한다. 부경이라는 약탈물 창고를 보유했다.맥궁을 생산했고 옥저나 동예를 조공 셔틀로 삼아 빨아먹었다.&lt;br /&gt;
&lt;br /&gt;
서옥제라고 데릴 사위제를 하였다. 사위가 장인에게 첫 아이를 볼때까지 노예노동을 하는 것이다. 오늘날 갓구려의 후손들은 여자가 취집을 갔지만 갓구려는 반대였던 거다! 거기디가 혼수따윈 안해갔다. 딸 팔아먹는 파렴치한 짓이라고 존나게 그켬했다고 한다.이는 옥저와 다른점이다.&lt;br /&gt;
&lt;br /&gt;
한사군과 옥저나 동예를 처묵처묵 하면서 훗날 중집국가까지 발전해 신라, 백제와 함께 삼국시대의 주역이 된다,&lt;br /&gt;
&lt;br /&gt;
아까 어떤놈이 중국과 공유랬는데 구라까지 말자.&lt;br /&gt;
&lt;br /&gt;
===삼한===&lt;br /&gt;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여러 군장국가들과 연맹왕국의 집합체다. 대체로 철이나 쌀을 생산해 먹고살기는 좋았다고 한다.&lt;br /&gt;
&lt;br /&gt;
정교 분리의 사회로 [[천군]]이 지배하는 소도라는 신성지역이 치외법권이었다. &lt;br /&gt;
&lt;br /&gt;
신지,견지/읍차,부례로 족장에도 격이 있었다. &lt;br /&gt;
&lt;br /&gt;
제천행사는 5월 수릿날, 10월 계절제로 1년에 두 번했다. &lt;br /&gt;
&lt;br /&gt;
무덤은 독무덤이나 주구움무덤(주구토광묘)&amp;lt;ref&amp;gt;매장주체부와 분구를 만들고 그 주변에 주구(周溝: 도랑)를 두른 무덤 양식. 마한 지역에서 많이 쓰였다.&amp;lt;/ref&amp;gt;, 널무덤(목관묘), 덧널무덤(목곽묘)이다.&lt;br /&gt;
&lt;br /&gt;
====마한====&lt;br /&gt;
삼한중 하나이다. 54개의 소국 10만호 규모로 추정되며 주로 경기, 충청, 전라도 지방에 분포했다. 마한 목지국 왕이 마한왕을 자처하는 짱이었다. 왕명은 진왕으로 불린다. 하지만 3세기 경부터 차근차근 백제에 통합당했다.&lt;br /&gt;
&lt;br /&gt;
=====백제=====&lt;br /&gt;
이때는 마한의 소국 중 하나였다. 부여계 집단들이 남하해 송파구 일대에 자리잡아 세워졌다. 하지만 고고학적으로는 부여계 문화의 영향이 미미한 편이다.&lt;br /&gt;
&lt;br /&gt;
최상의 위치선정으로 가장 빨리 중집국가에 도달했다. 목지국과 마한의 짱자리를 놓고 대결을 펼쳐 승리한다. 낙랑인지 한사군도 한번 찔러보기도 했다.&lt;br /&gt;
&lt;br /&gt;
서울에 일찍부터 하수도를 갖추고 중원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여 삼국중 가장 먼저 차를 마시며 ㅂㅅ같은 고구려 새끼들 찐따 신라놈들이라며 까대며 문화생활을 영위했다.&lt;br /&gt;
&lt;br /&gt;
====진한====&lt;br /&gt;
삼한 중 하나이다. 12개 소국 5만호 규모로 추정되며 주로 경북 위주로 있던 국가였고, 이 진한의 소국 중 하나였던 신라가 진한 지역을 모두 통합한다.&lt;br /&gt;
&lt;br /&gt;
=====신라=====&lt;br /&gt;
삼국사기에 따르면 경상북도 경주 근처에 고조선 유민 출신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육촌장이 박혁거세를 추대해 [[사로국]]이란 나라를 세웠다고 한다. 이 기록은 고고학적으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 기원전 2세기~기원전 1세기에 한반도 서북지방의 청동기 문화가 유입되었음이 밝혀지면서 사실임이 입증되었다.&lt;br /&gt;
&lt;br /&gt;
2015년 유럽의 인류고고학 학자들과 국내 연구진들이 합동 조사연구한 결과 유라시아대륙을 횡단하여 한반도로 이주한 스키타이 세력이라고 결론내렸다. 국립경주박물관의 황금보검과 각종 금관, 세공품 양식들이 스키타이유물과 일치한다고 발표함.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참조)&lt;br /&gt;
&lt;br /&gt;
박혁거세의 신화에도 반영되어 있는데, 육촌장이 사로국이란 나라를 세웠는데 영문을 알 수 없는 알을 왕으로 추대했다는대서 이런 정황이 포착된다.&lt;br /&gt;
&lt;br /&gt;
스키타이니 흉노니 고고학으로 반박된 지 오래되었다. 오히려 토착계 유물도 많이 나와서 현재는 고구려의 영향이거나 교류의 흔적으로 보는 중. 신라의 금세공품의 편년은 아무리 빨라봐야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초반 정도이다. 그전에는 옥만 장신구로 썼다.&lt;br /&gt;
&lt;br /&gt;
실제로 신라 초기에 왕자리를 돌려먹었던, 석씨&amp;lt;ref&amp;gt;[[석탈해]]가 시조&amp;lt;/ref&amp;gt;와 김씨&amp;lt;ref&amp;gt;[[김알지]]가 시조&amp;lt;/ref&amp;gt; 역시도 토착인들이 아닌 멀리서 온 도래인으로 묘사된 대서 근거가 강화된다.&lt;br /&gt;
&lt;br /&gt;
어쨋건 이 시기에 박석김 세 성이 왕을 교대로 해먹었고 대족장이나 대제사장 정도로 취급당하며 안습의 나날을 보냈다. 장자세습조차 제대로 확립되지 않아서 왕위를 삼촌이나 사위가 왕위를 계승하는 경우도 잦았다.&lt;br /&gt;
&lt;br /&gt;
병신들이 이 시기 신라를 단순히 왜에 털리던 약소국으로만 알고 있는데, 탈해 이사금 시절부터 지금의 울산 지역인 우시산국과 부산 지역인 거칠산국을 합병하는 등 정복전쟁도 활발히 하는, 진변한 지역에서는 나름대로 침 좀 뱉던 국가였다. 괜히 안라국이 포상팔국한테 털리니까 신라에게 도와달라고 한 게 아니다.&lt;br /&gt;
&lt;br /&gt;
====변한====&lt;br /&gt;
삼한 중 하나이다. 12개 소국 5만호 규모로 추정되며 김해 마산지역에 주로 분포했고, 소국 중 하나였던 가야가 주도권을 가지면서 가야에 흡수되었다. 철이 주 생산품으로 여러지역, 특히 왜와 교류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변한 지역의 철은 당시 국제 무역에서 기축통화로서의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lt;br /&gt;
&lt;br /&gt;
===옥저, 동예===&lt;br /&gt;
군장국가 단계에서 기원후 3세기경 태조왕때 고구려한테 합병당했다. 안습 ㅠㅠ&lt;br /&gt;
&lt;br /&gt;
둘다 북한 동해안 지방에 있었던 나라로 강원도 북부에서 함경도 지역에 있었다고 한다.&lt;br /&gt;
&lt;br /&gt;
고구려랑 같은 예맥족이라서 기록했던 짱개들이 구분을 못했던듯.&lt;br /&gt;
&lt;br /&gt;
====옥저====&lt;br /&gt;
곡물과 어염을 생산했고 고구려에게 바쳤다. 초기부터 고구려 빵셔틀 노릇이나 하다가 결국 고구려에게 복속당했다.&lt;br /&gt;
&lt;br /&gt;
어린 여자아이를 시집보내는 민며느리제로 유명하다. 이 페도놈들. &lt;br /&gt;
&lt;br /&gt;
결혼할때 신부집에서 신랑으로부터 지참금을 받는다. &lt;br /&gt;
&lt;br /&gt;
이 전통은 오늘날 헬센에 결혼할때 남자가 100중 80 해가는(혹은 집을 해가는) 문화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lt;br /&gt;
&lt;br /&gt;
대신 머한시대에는 조혼풍습이 기피되면서 신부의 나이가 올라갔을 뿐이다.&lt;br /&gt;
&lt;br /&gt;
가족묘에 장사지냈고 세골장이라는 장례 풍습을 지녔다고 한다.&lt;br /&gt;
&lt;br /&gt;
====동예====&lt;br /&gt;
양잠,단궁, 과하마, 반어피를 생산했고 고구려에게 바쳤다.&lt;br /&gt;
&lt;br /&gt;
제천행사는 [[무천]]이다. 이것도 10월.&lt;br /&gt;
&lt;br /&gt;
특히 방직 기술이 발달했다.&lt;br /&gt;
&lt;br /&gt;
다른 부족의 영역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을 금했으며 침범할 경우 노비와 소, 말로 변상하게 했는데 이것을 책화라고 한다.&lt;br /&gt;
&lt;br /&gt;
책화와 족외혼의 풍습은 신석기 씨족사회의 유풍이다.&lt;br /&gt;
&lt;br /&gt;
==이견==&lt;br /&gt;
원삼국 시대 그딴거없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당장 한국사 교과서만 펼쳐도 그런말은 없고 걍 초기국가라고 말하고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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