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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육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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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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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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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9:13:1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한파}}&lt;br /&gt;
{{함경도행정구역}}&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六鎭&amp;#039;&amp;#039;&amp;#039;&amp;lt;ref&amp;gt;현지에서는 &amp;#039;&amp;#039;&amp;#039;눅진&amp;#039;&amp;#039;&amp;#039;이라고 말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함경북도]] 북부 끝자락에 위치한 6개 고을을 일컫는다. [[부령군]], [[회령군]], [[경흥군]], [[종성군]], [[경원군]], [[온성군]]이 여기에 속한다. 조선 초기 북진 정책의 목표가 되었던 곳으로, [[세종대왕]] 시기 4군6진 개척으로 조선령으로 들어왔다.&lt;br /&gt;
&lt;br /&gt;
서울에서는 지도 상의 직선 거리로 [[제주도]]보다 먼 지역이며 [[여진족]]들의 잦은 왕래 및 침입, 그리고 혹독한 기후로 악명이 높았다. 그 때문에 사민정책으로 여기에 이주한 남부민들이 큰 고통을 겪었고 조선시대 단골 [[유배]] 코스로 남해안 섬 지역, [[삼수갑산]]과 함께 애용되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조선시대 후기부터 [[두만강]]을 끼고 만주, 연해주 등을 건너가며 만주족이나 청나라 사람들과 밀무역을 하는 이들이 많았으며 20세기 초 일제의 침략과 [[적백내전]] 등으로 혼란스러운 틈을 타 이를 노린 초적들이 활개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이 지역 주민 다수가 [[연변]]이나 [[연해주]] 등지로 대거 이주하였다. 그래서 [[연변]] 일대 [[조선족]] 다수는 해당 지역에 살았던 조상을 두고 있다. &lt;br /&gt;
&lt;br /&gt;
북괴 치하에서는 [[국군포로]]와 [[숙청]] 당한 정계 인사 등을 이곳으로 유배보냈으며 이들에게 강제노역을 시키기 위해 [[아오지 탄광]], 회령 전거리 수용소(12호), 창평 수용소(12호, 폐지), 종성 수용소(13호, 폐지), 회령 수용소(22호, 폐지), [[청진시]] 수성 수용소(25호), 온성노동단련대등의 수많은 [[정치범수용소]]들이 설치되었다. &lt;br /&gt;
&lt;br /&gt;
1990년대 이후에는 회령 등지가 [[탈북]]의 성지로 떠오른 바 있다. 두만강 상류 지역은 겨울에 얼어붙을 경우 국경경비대에 발각되지 않는 한 건너기가 용이할 정도로 폭이 좁은 까닭이다. 하지만 두만강 범람으로 큰 피해를 보는 경우도 잦다.&lt;br /&gt;
&lt;br /&gt;
해당 지역 대부분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중부지방 방언과 현저한 차이가 드러나는 [[육진 방언]]을 사용하며 육진 방언권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은 부령군이나 경흥군, 동해안([[나진]]으로 분리된 지역) 지역도 서울 등지와 큰 차이가 나는 함북 방언이 쓰였다.&lt;br /&gt;
&lt;br /&gt;
== 연혁 ==&lt;br /&gt;
&lt;br /&gt;
본래 단결 - 크로우노프카문화로 대표되는 [[옥저]]계열의 예맥족들이 살고 있었다. 옥저를 정복한 [[고구려]]는 육진중 하나인 [[경원군]]의 강건너에 책성(柵城)을 건설, 그곳을 고구려 동부지방 중심도시로 성장시켜 [[소금]], [[해산물]], [[미녀]], [[쌀]]등을 보급받기위한 곡창지대로 사용했다. 하지만 [[관구검]]의 침공때 현도태수 왕기와 관구검이 옥저의 모든 마을들을 초토화시켜버리고 옥저인들을 학살하면서 크게 황폐화되었다. &lt;br /&gt;
&lt;br /&gt;
비류수 전투이후 고구려는 [[전연]]과 속말부말갈의 침공으로 무너지면서 등장한 [[부여]]계 난민과 목단강, 한카 호, 우수리강일대에서 살던 [[말갈족]]과 고구려계 주민들을 불러들여서 이지역을 재건했고 이때부터 육진에는 고구려인, 부여계난민, 백산말갈이 섞여사는 곳이 되었다. 평양, 요동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있었다보니 고구려가 [[당나라]]에게 망하는 헬게이트에서도 큰 피해없이 남아있었고 30년뒤 세워진 [[발해]]는 육진근처에 중경 현덕부(화룡시 서고성촌), 동경 용원부(혼춘 팔련성. 책성에서 약간 동북쪽에 있다.)를 세우고 육진을 크게 일궜다. 하지만 거란한테 발해가 좆망하면서 같이 망했고 500여년간 [[여진족]]이 차지하게 되었다. &lt;br /&gt;
&lt;br /&gt;
==명소==&lt;br /&gt;
*[[아오지]] (경흥군)&lt;br /&gt;
*[[적도]] (경흥군) : [[이성계]]의 증조부 되시는 이행리가 여진족에 쫓겨 이 섬으로 피난한 바 있어 [[용비어천가]]등에서 언급되었고, [[함경도]] 지역 산수화에서 [[함흥본궁]] 등과 함께 조선 왕실 사적으로 가끔씩 다루어지곤 하였다.&lt;br /&gt;
*[[서번포]] (경흥군)&lt;br /&gt;
*[[난도]](卵島) (경흥군) 웅기읍 앞바다에 있는 작은 섬으로, 물새들이 알을 낳고 둥지를 많이 지어 구경거리가 되곤 하였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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