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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이억기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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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3T09:55:14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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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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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9:05:24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숨은영웅}}&lt;br /&gt;
{{명장}}&lt;br /&gt;
&lt;br /&gt;
전라우수영의 수사로 이순신과 함께 왜구를 때려잡은 명장이다.&lt;br /&gt;
&lt;br /&gt;
이순신과는 전장을 함께해온 전우이다.&lt;br /&gt;
&lt;br /&gt;
왕족 출신으로 전형적인 엘리트 무장이다.&lt;br /&gt;
&lt;br /&gt;
이순신, 원균, 이억기 등의 삼도연합함대 중 가장 많은 함선을 보유하여 조선 수군의 실질적인 주력이 이 사람 소속이었다.&lt;br /&gt;
&lt;br /&gt;
==생애==&lt;br /&gt;
&lt;br /&gt;
1561년 9월 3일 심주군 이연손의 자식으로 태어났다.&lt;br /&gt;
&lt;br /&gt;
어릴 적부터 무예에 능해 17세에 사복시라는 관직에 든 대단한 인물이다. 이미 21세에 종3품의 경흥도호부(지금의 함경북도 경흥군)사에 임명되었으며 [[두만강]]을 넘어 쳐들어온 [[여진족]]을 역관광시키면서 26세에 온성도호부(지금의 함경북도 온성군)사에 임명된다.&lt;br /&gt;
&lt;br /&gt;
31세가 되던 1591년 순천도호부사 겸 순천진병마첨절제사전영장토포사(順天鎭兵馬僉節制使前營將討捕使)를 거쳐 전라우수사까지 폭풍승진을 하였다. &lt;br /&gt;
&lt;br /&gt;
이후 임진왜란이 벌어져 전라 좌수사 이순신, 경상우수사 원균과 합세하 한산도, 옥포, 부산포 등에서 큰 공적을 세운다. &lt;br /&gt;
&lt;br /&gt;
1596년에는 휘하 부대를 이끌고 전라좌·우도 사이를 내왕하면서, 진도와 제주도의 한잔 준비를 하였다. 또한 한산도의 삼도 수군 통제사 이순신의 본영을 응원하였다. 또한 연합함대의 기동 타격군의 역할을.수행했다.&lt;br /&gt;
&lt;br /&gt;
또한 선조가 이순신을 명령불복종죄로 구속 및 파직시키자 이항복 등 조정 대신들에게 친필로 변호문을 작성해 주기도 하였다.&lt;br /&gt;
&lt;br /&gt;
1597년 원균과 함께 칠천량 해전(漆川梁海戰)을 이끌었으나 패하여 원균·충청 수사 최호(崔湖) 등과 함께 전사하였다.&lt;br /&gt;
&lt;br /&gt;
이때 원균새끼가 지만 살고 싶어서 이억기와 최호를 버리고 런하는 바람에 최후까지 항전하다 맨 먼저 전사하는 씁쓸한 최후를 맞는다.&lt;br /&gt;
&lt;br /&gt;
==평가==&lt;br /&gt;
&lt;br /&gt;
사실 이억기는 당대로도 굉장한 명장이었으나 명장 취급을 받는 이순신과 희대의 한심한 인간 원균에 가려져 공기 취급을 받는다. &lt;br /&gt;
&lt;br /&gt;
당시에도 공기나 혹은 그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는데 수군의 작전 통제권을 의논할 때 선조가 이억기는 내가 일찍이 본 적이 있는데, 쓸만한 사람이다라고 하니까 체찰사였던 이정형이 그는 원균만 못 하다 대답해 당시 그의 취급이 얼마나 좋지 못 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lt;br /&gt;
&lt;br /&gt;
사후에는 [[원균]]보다 아래인 선무 2등 공신이 되는 굴욕을 당했다. 왜란 초반에 앞장서 참여하지 않아 그랬다는데 그래도 원균보다 낮은건 좀 이해가 안 간다. [[선조(조선)|선조]] 개객기 해봐.&lt;br /&gt;
&lt;br /&gt;
[[분류:역사]][[분류:한국사]][[분류:인물]][[분류:임진왜란]]&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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