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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덕수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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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6T03:45:0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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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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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31:3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애국지사}}&lt;br /&gt;
{{빛과어둠}}&lt;br /&gt;
{{친일파}}&lt;br /&gt;
{{벌집핏자}}&lt;br /&gt;
&lt;br /&gt;
인품도 좋고 머리도 비상하고 인생 전반에 걸쳐서 &amp;#039;헌신&amp;#039;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인생을 살았지만, 강점기 말년부에 오야코동을 맛보고 친일 경력을 지낸 것이 그의 흠이 되고 있다.&lt;br /&gt;
&lt;br /&gt;
[[동아일보]] 기자 출신 인물의 한 사람이며, 미국 유학파 출신의 정치학자이자 광복 직후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다.&lt;br /&gt;
&lt;br /&gt;
[[한민당]]의 두 번째 당수로서, [[김성수]]와 [[송진우]]의 친구가 된다.&lt;br /&gt;
&lt;br /&gt;
두 형과 함께 동아일보 기자로 활동했는데 둘째 형 장덕진은 임정의 행동 대원으로 활동하면서 자금 모금을 하던 중 카지노장 한 곳을 털다가 사살 당한다.&lt;br /&gt;
&lt;br /&gt;
첫째 형 장덕준은 동아일보 만주 지역 특파원으로 파견되어 취재하다가 의문의 암살을 당했다.&lt;br /&gt;
&lt;br /&gt;
살아남은 장덕수는 [[미국]] 유학을 다녀온 뒤 대학교수로 활동했다. &lt;br /&gt;
&lt;br /&gt;
중일전쟁 이전만 해도 나름대로 활발한 항일 활동을 펼쳤지만 흥업구락부 사건 이후 사상 보국 연맹, 국민총력조선연맹, 야마토주쿠 등 일제의 각종 어용 단체에 참여하면서 그 단체에서 주관했던 강연에 적극적으로 나섰고 [[내선일체]]를 찬양하는 수없이 많은 글을 기고하거나 발표하는 등 적극적인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했다. 덕분에 훗날 1980년대 친일파 연구가 임종국이 쓴 『한국의 친일파 99인』에 수록되었고, 민족 문제 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었다.&lt;br /&gt;
&lt;br /&gt;
광복 후 [[김성수]], [[송진우]]와 함께 한민당 창당에 참여했다.&lt;br /&gt;
&lt;br /&gt;
송진우가 신탁 통치를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 받아들이자는 취지로 발언했다가 찬탁 인사로 몰려서 갑자기 암살 당했고 그 이후로 [[한민당]]을 떠맡게 됐다.&lt;br /&gt;
&lt;br /&gt;
그는 미소공위에 적극적인 참가와 [[김구]] 중심의 보수 정당 단일화를 반대, 소극적이었던 김성수에 대해 합당은 한민당을 통째로 임정에게 바치는 거라고 반대한다. 이 일로 [[김구]]와 만난 뒤 고성이 여러 번 오고 갔다.&lt;br /&gt;
&lt;br /&gt;
1947년 12월 8일 집에 있었던 중에 박광옥, 초등교사 배희범 등 한국독립당원 5명이 쏜 총에 맞고 죽었다.&lt;br /&gt;
&lt;br /&gt;
{{뒤바뀜}}&lt;br /&gt;
{{예토전생}}&lt;br /&gt;
73년 후 그는 예토전생하여 오징어게임에 참가하지만 논개가 빙의한 한미녀에 의해 운지하고 만다.&lt;br /&gt;
&lt;br /&gt;
== 뒷이야기 ==&lt;br /&gt;
[[김구]]는 [[이승만]]에게 가서 자신이 암살한 게 아니니 미군정에 소환되는 일을 막아달라고 했지만 [[이승만]]은 거절한다.&lt;br /&gt;
&lt;br /&gt;
[[송진우]] 암살 직후, 반탁건으로 미군정 사령부에 끌려가서 경고 먹었는데 송진우 건으로 또 경고를 받고&amp;lt;ref&amp;gt;(김구, 도진순 엮고 보탬, 돌베개, 2007.11) 67페이지&amp;lt;/ref&amp;gt; 그 다음에는 [[여운형]] 암살의 유력 용의자 중 한 사람으로 지목되기도 했다. 다만 당내 라이벌인 [[박헌영]]도 유력 용의자로 의심되기도 한다.&lt;br /&gt;
&lt;br /&gt;
그런데 장덕수 암살사건이 터지고 현장에서 잡힌 한독당 당원 외에 한독당 간부인 조상항, 김석황 등이 줄줄이 끌려가면서 빼도박도 못하고 김구도 미군정 재판정에 출석. 다만 최대한 예우해서 증인이라는 명분으로 심문을 했다. 이때부터 [[김구]]는 [[이승만]]에게 등을 돌리게 된다.&lt;br /&gt;
&lt;br /&gt;
장덕수 암살의 이유 중에는 장덕수가 일제말 기고문을 날린 것, 그 전에는 [[공산당]] 좌파쪽 이론가였다는 게 그 이유다.&lt;br /&gt;
&lt;br /&gt;
조소앙도 끌려가서 재판을 받았다.&amp;lt;ref&amp;gt;서중석, 《한국현대민족운동연구》 (역사비평사, 1992) 592페이지&amp;lt;/ref&amp;gt; 김구가 상하이에 있을 때 [[한인애국단]] [[이봉창]], [[윤봉길]] 등에게 줄 폭탄을 구해준 인물이 [[김홍일]]과 함께 조소앙이긴 했다.&lt;br /&gt;
&lt;br /&gt;
[[허정]]은 [[김구]]에게는 차마 못 가고 조소앙한테 가서 장덕수 암살 가지고고 따지고 책임추궁을 했다.&amp;lt;ref&amp;gt;허정 회고록&amp;lt;/ref&amp;gt;&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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