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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장충단 집회 방해사건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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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01:01:2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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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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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34:00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심플/극혐}}{{심플/미개}}{{심플/헬조선}}{{깡패}}&lt;br /&gt;
{{youtube|NBcxK5g7QXY}}&lt;br /&gt;
&lt;br /&gt;
1957년 5월 25일에 있었던 장충단 잡회 방해사건. 일찍이 이처럼 대규모 집회에 정치주먹이 끼어든 사건은 지금까지도 그 예를 찾아볼 수가 없다. 민주주의와 자유가 주먹에 의해 무참하게 짓밟히는 이 엄청난 역사의 현장은 언뜻 보기엔 자유당과 정치주먹들의 승리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다. 오히려 이 사건으로 인해 큰 덕을 단단히 본 쪽은 야당이었던 것이다. 김두한의 생각처럼 핍박받는 야당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본 국민들은 벌떼처럼 일어나 야당을 동정하고 여당을 규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1957년 5월 25일, [[자유당 (1951년)|자유당]]의 실정에 염증이난 [[조병옥]], [[장택상]], [[민관식]], [[김두한]]&amp;lt;ref&amp;gt;야당쪽 호위를 맡았다고 함.&amp;lt;/ref&amp;gt;등의 야당인사들이 장충단 집회에서 자유당의 독재를 규탄하는 시국 강연회를 열었다가 [[정치깡패]]들에게 털려서 강연회가 취소된 사건이다. &lt;br /&gt;
&lt;br /&gt;
==상세==&lt;br /&gt;
야당이던 민주당의 국회의원들은 장충단공원에서 자유당의 실정과 독재를 비판하는 시국강연회를 주최했다. 이 강연회에는 20만~30만이 넘는 서울시민들이 모였는데, 당시 서울인구가 116만명정도였던 것을 생각해보면 사람이 졸라 많이 모인 것이었다. &lt;br /&gt;
&lt;br /&gt;
이렇게 많은 인파가 모인집회답게 [[자유당 (1951년)|자유당]]이 알아챘고, 자유당은 동대문깡패들에게 집회를 좆망시키라는 지령을 내렸다. &lt;br /&gt;
&lt;br /&gt;
야당의원들이 차례대로 시국강연을 하고 있을때 [[조병옥]]이 강연을 시작하는 시점부터 [[유지광]]의 지령&amp;lt;ref&amp;gt;자유당이 흑막이긴했지만 이사건을 일으킨 실질수괴는 이새끼였다. &amp;lt;/ref&amp;gt;을 받은 깡패들이 조병옥슨상님께 온갖 쌍욕과 비난을 쏟아붓기 시작했고, 급기야 스피커를 불태우는 상황에까지 갔다. 시국강연을 하던 의원들은 김두한의 경호아래 피신하는데 성공은 했다만, 조병옥 슨상님이 깡패새끼가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 큰 부상을 입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lt;br /&gt;
&lt;br /&gt;
이깡패새끼들이 민주주의를 쓰레기통에 집어넣는 미개한 상황에서 호위로 나온 경찰들은 조금도 터치하지 않았고 오후 4시30분에 깡패때문에 집회는 종료되었고 깡패들도 떠났다. &lt;br /&gt;
&lt;br /&gt;
이때가 되야지 중부경찰서 서장이 나타나고, 결국 범인이 나오긴 했지만, 이사건의 표면적인 수괴였던 유지광만 솜방망이 차벌을 받게 되는등 경찰이 깡패를 대놓고 지원해주는 미개한 사건들이 터지게 되면서 여론은 자유당에 완전히 척을지게 되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이사건 터지기 전에도 깡패라는 말이 심심찮게 쓰였지만, 이사건에 대해 보도한 한 신문기사에서 &amp;#039;깡패&amp;#039;라는 말을 쓰면서 깡패라는 말이 보통명사로 완전히 정착하게 된다.&lt;br /&gt;
&lt;br /&gt;
==야인시대에선==&lt;br /&gt;
집회방해사건과 관련된 본질은 역사그대로 나온다.&lt;br /&gt;
&lt;br /&gt;
이 드라마에선 진작에 동대문파에게 영역과 인원들을 뜯겨나가서 이를 갈고있던 [[이화룡]]의 명동파가 동대문파에 대한 민심이 매우 악화된 것을 감지하고 &amp;#039;요오오오시&amp;#039;하면서 동대문파를 공격했다가 [[곽영주]]가 보낸 경찰에게 조직이 공중분해당한다.(충정로 도끼사건.)&lt;br /&gt;
&lt;br /&gt;
그리고 위에 나온 영상에서 눈치깠겠지만 [[중앙극장]]에서 도망치던 [[심영(야인시대)|심영]]이 [[고자총]]을 맞기직전부터 등장하는 브금이 등장한다.&lt;br /&gt;
&lt;br /&gt;
[[분류: 한국사]]&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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