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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미 7조약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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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5T22:59:40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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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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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20:46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어둠}}&lt;br /&gt;
{{죽창}}&lt;br /&gt;
ㄴ 이 조약이 체결되면서 군대가 해산되었고 해산된 대한제국 군대는 의병에 합류했다. 그들은 [[남한 대토벌]] 때 대부분 장렬한 최후를 맞이했다.&lt;br /&gt;
{{한국통사}}&lt;br /&gt;
==개요==&lt;br /&gt;
1907년(정미년) 7월 24일, 고종이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한 사건을 빌미로 강제로 퇴위 당하고 순종이 마지막 황제가 된 지 5일 만에 대한제국과 일본국 사이에서 체결된 조약이다. 이 조약을 통해서 외교 기능만 수행하던 통감부는 본격적으로 사법, 입법, 행정 등 대한제국의 내정에 간섭하기 시작했다.&lt;br /&gt;
&lt;br /&gt;
7개의 조항으로 이뤄져서 흔히 &amp;#039;정미 7조약&amp;#039;이라고 부르며, 정식 명칭은 제3차한일협약(第三次韓日協約)이다. 제1차한일협약(1904), [[을사조약|제2차한일협약]]에 이어서 체결되었기 때문이다.&lt;br /&gt;
&lt;br /&gt;
==내용==&lt;br /&gt;
{{인용문|일본국(日本國) 정부와 한국(韓國) 정부는 속히 한국의 부강을 도모하고 한국 국민의 행복을 증진시키려는 목적으로 이하의 조관(條款)을 약정한다.&lt;br /&gt;
&lt;br /&gt;
제1조 한국 정부는 &amp;#039;&amp;#039;&amp;#039;시정(施政) 개선에 관하여 통감(統監)의 지도를 받을 것&amp;#039;&amp;#039;&amp;#039;이다.&lt;br /&gt;
&lt;br /&gt;
제2조 한국 정부의 &amp;#039;&amp;#039;&amp;#039;법령의 제정 및 중요한 행정상의 처분은 미리 통감의 승인을 거칠 것&amp;#039;&amp;#039;&amp;#039;이다.&lt;br /&gt;
&lt;br /&gt;
제3조 한국의 &amp;#039;&amp;#039;&amp;#039;사법 사무는 일반 행정 사무와 구별할 것&amp;#039;&amp;#039;&amp;#039;이다.&lt;br /&gt;
&lt;br /&gt;
제4조 한국의 &amp;#039;&amp;#039;&amp;#039;고등 관리(高等官吏)를 임명하고 해임시키는 것은 통감의 동의에 의하여 집행할 것&amp;#039;&amp;#039;&amp;#039;이다.&lt;br /&gt;
&lt;br /&gt;
제5조 한국 정부는 &amp;#039;&amp;#039;&amp;#039;통감이 추천한 일본 사람을 한국의 관리로 임명할 것&amp;#039;&amp;#039;&amp;#039;이다.&amp;lt;ref&amp;gt;이 조항을 통해서 대한제국 정부의 각 부처마다 차관 자리에 일본인이 앉게 된다.&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제6조 한국 정부는 &amp;#039;&amp;#039;&amp;#039;통감의 동의가 없이 외국인을 초빙하여 고용하지 말 것&amp;#039;&amp;#039;&amp;#039;이다.&lt;br /&gt;
&lt;br /&gt;
제7조 메이지 37년(1904년) 8월 22일에 조인한 한일 협약 제1항&amp;lt;ref&amp;gt;대한(大韓) 정부는 대일본(大日本) 정부가 추천한 일본인 1명을 재정 고문(財政顧問)으로 삼아 대한 정부에 용빙(傭聘)하여 재무에 관한 사항은 일체 그의 의견을 물어서 시행해야 한다.&amp;lt;/ref&amp;gt; 을 폐지할 것이다.&lt;br /&gt;
&lt;br /&gt;
이상을 증거하기 위하여 아래의 이름들은 각각 본 국 정부에서 해당한 위임을 받아서 본 협약에 이름을 적고 조인한다.&lt;br /&gt;
&lt;br /&gt;
광무 11년 7월 24일&amp;lt;br&amp;gt;&lt;br /&gt;
내각 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 훈 2등 [[이완용]](李完用)&lt;br /&gt;
&lt;br /&gt;
메이지 40년 7월 24일&amp;lt;br&amp;gt;&lt;br /&gt;
통감(統監) 후작(侯爵)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lt;br /&gt;
&lt;br /&gt;
== 정미칠적 ==&lt;br /&gt;
{{참조|을사오적}}&lt;br /&gt;
{{노답}}&lt;br /&gt;
{{쓰레기}}&lt;br /&gt;
&lt;br /&gt;
웬일인지 이완용, 박제순을 제외하고는 역사 교과서에 안 나온다.&lt;br /&gt;
&lt;br /&gt;
꼭 외워둬라. [[역센징]]들의 조상님이니까 패드립할 때 써먹기 좋다.&lt;br /&gt;
&lt;br /&gt;
[[정미칠적]]은 이완용, 송병준, 이병무, 고영희, 조중응, 이재곤, 임선준이다. 1907년에 체결된 정미조약에 찬성한 새끼들이다.&lt;br /&gt;
&lt;br /&gt;
잘 보면 알겠지만, [[이완용]]은 나라 팔아먹는 3단계에 전부 참가해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사스가 프로매국노.&lt;br /&gt;
&lt;br /&gt;
==같이 알아두면 좋은 것들==&lt;br /&gt;
#대한제국 군대 해산 → 정미의병&lt;br /&gt;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32954 신문지법] 제정과 그를 통한 언론 탄압&lt;br /&gt;
&lt;br /&gt;
==이야깃거리==&lt;br /&gt;
제1차한일협약에 따라서 이뤄진 통치를 &amp;#039;고문정치&amp;#039;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 정부가 추천한 외국인 고문 1명을 두어서 외교를 그가 담당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때 둔 외국인 고문이 그 악명 높은 [[더럼 스티븐스]]다. 제2차한일협약에 따라서 이뤄진 통치를 &amp;#039;통감정치&amp;#039;라고 부르는데, 이에 대한 설명은 생략한다. 통감부를 설치하면서 대한제국의 외교를 대신 수행했고 이때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사실상 파기되었다.&lt;br /&gt;
&lt;br /&gt;
===왜 하필 차관(次官)이었을까?===&lt;br /&gt;
이 협약에 따라 이뤄진 통치를 흔히 &amp;#039;차관정치&amp;#039;라고 부르는데 이는 일본 제국이 대한제국 정부의 차관 자리를 일본인들로 채워넣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기에서 학창 시절에 역사 교과서 좀 읽어봤다면 다들 한 번쯤은 왜 장관(長官)이 아니라 차관 자리에 앉혔는지 호기심과 의문이 한 번은 생길 만하다. 부처(部處) 업무의 최종 책임자는 결국 장관인데 왜 이런 수고를 했을까? 라고 말이다.&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선한 이미지를 구축하는데 용이했기 때문이다.&amp;#039;&amp;#039;&amp;#039;&lt;br /&gt;
&lt;br /&gt;
정무의 최종 책임을 대한제국 정부에게 &amp;#039;양도&amp;#039;하면서 &amp;#039;정치적 자유를 허용한다&amp;#039;는 이미지를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조선 백셩들의 일본에 대한 경계를 누그러뜨리는데 상당한 도움이 되었다.&lt;br /&gt;
&lt;br /&gt;
*&amp;#039;&amp;#039;&amp;#039;웬만하면 언론에 노출되지 않기 때문이다.&amp;#039;&amp;#039;&amp;#039; 몇몇 심각한 역알못들은 대한제국 때 언론이 있었냐는 얘기를 하는데, 한성순보(1883~1884)&amp;lt;ref&amp;gt;순한문, 박문국이라는 곳에서 최초로 발행한 근대 신문으로 정부의 개화 정책을 홍보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사실상 관보.&amp;lt;/ref&amp;gt;, 한성주보(1886~1888)&amp;lt;ref&amp;gt;국한문 혼용, 박문국에서 매주 발행했으며 최초로 상업 광고가 실렸다.&amp;lt;/ref&amp;gt;, 독립신문(1896~1899)&amp;lt;ref&amp;gt;한글판과 영문판 병존, [[서재필]]이 정부 지원 받고 창간한 최초의 민간 신문이다. 의병 활동을 폭도들이라고 비판한 흑역사가 있다.&amp;lt;/ref&amp;gt;, 제국신문(1898~1910)&amp;lt;ref&amp;gt;한글, 이종일이 발행했으며 싱먼 리가 주필로 있었다. 부녀자를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다.&amp;lt;/ref&amp;gt;, 황성신문(1898~1910)&amp;lt;ref&amp;gt;국한문 혼용, 남궁억이 발행한 것으로, 유림을 주된 독자층으로 삼았다. 장지연의 [[시일야방성대곡]]이 실린 것으로 유명하다. 제국 신문과 마찬가지로 의병들을 폭도로 매도한 흑역사가 있다.&amp;lt;/ref&amp;gt;, 대한매일신보(1904~1910)&amp;lt;ref&amp;gt;한글, 영문, 국한문 세 가지 버전이 있었다. 어니스트 베델과 양기탁이 운영했으며 의병 활동에 호의적으로 보도했다. 국채보상운동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지원했으며 일제의 침략상을 폭로했다.&amp;lt;/ref&amp;gt;, 만세보(1906~1907)&amp;lt;ref&amp;gt;국한문, 천도교에서 발행한 기관지&amp;lt;/ref&amp;gt;, 경향신문(1906~1910)&amp;lt;ref&amp;gt;한글, 천주교에서 발행한 기관지로, 지금 존재하는 경향신문과는 이름만 같을 뿐, 그냥 다른 언론사라고 보면 된다.&amp;lt;/ref&amp;gt; 등의 국내 언론과 해조신문(1908, 연해주)와 신한민보(1909, 미국) 등의 국외에 둔 언론들이 있었다. 이 신문 이름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 때 한 문제 정도는 나오므로 외워두면 좋다. 근데 발행한 연도 순으로 순서 맞추기 문제 내는 학교 슨상은 죽창으로 찔러도 좋다.&lt;br /&gt;
&lt;br /&gt;
정부가 똥을 싸면 1차적으로 십자포화를 맞는 것은 장관&amp;lt;ref&amp;gt;당시 직급의 명칭은 대신(大臣)&amp;lt;/ref&amp;gt; 이고 그 다음은 행정부의 머튽님이다. 차관은 실수를 하더라도 조직 내부에서 내리갈굼 선에서 끝나지, 여론에게 욕을 먹지는 않는다.&lt;br /&gt;
&lt;br /&gt;
차관을 자기네 사람들로 채운다고? [[최순실 게이트|이거 완전...]]{{심플/읍읍}}&lt;br /&gt;
&lt;br /&gt;
{{주석}}&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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