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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정읍발언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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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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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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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20:39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재평가/거꾸로}}&lt;br /&gt;
{{정치}}&lt;br /&gt;
{{흑역사}}&lt;br /&gt;
&lt;br /&gt;
== 개요 ==&lt;br /&gt;
[[파일:정읍발언.png|200픽셀|섬네일|오른쪽|발언하고 있는 [[이승만]]의 모습이다.]]&lt;br /&gt;
[[파일:정읍발언2.png]]&amp;lt;br&amp;gt;&lt;br /&gt;
1946년 6월 3일, 광복으로부터 약 1년 만에 [[이승만]]이 [[정읍]]에서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공식적으로 주장한 사건이다. 1946년 2월부터 이북에서는 이미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를 조직하는 등 북한 단독 정부를 수립하려던 움직임을 보이고 있었다.&lt;br /&gt;
&lt;br /&gt;
모스크바 3상 회의의 결정에 따라 개최되었던 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결렬되고 좌우 합작 운동이 전개될 무렵에, 미군정이 [[남한]] 단독 정부 수립을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 국내에 보도되었다.&lt;br /&gt;
&lt;br /&gt;
그 후로 지방 여행에 나선 이승만은 정읍에서&lt;br /&gt;
{{인용문|무기휴회된 공위가 재개될 기세도 보이지 않으며 통일정부를 고대하나 여의케 되지 않으니,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 혹은 [[위원회]] 같은 것을 조직하여 38이북에서 소련이 철퇴하도록 세계공론에 호소해야 할 것입니다.}}&lt;br /&gt;
라고 발언하고 단독정부 수립에 본격적으로 나섰는데, 그해 12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미국]]으로 건너가서 단독 정부 수립을 촉구하는 외교 활동을 벌이고 돌아왔다. 결국 풀어보면 분단되더라도 단독 정부를 수립해야 하고 [[남한]]에서 [[대통령]]만 하면 상관 없다는 책임감 없는 발언이라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 발언 이후 ==&lt;br /&gt;
1947년에 열린 2차 미소공동위원회도 의견 차이로 결렬되었지만 그 동안에 [[대통령]]은커녕 정부마저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한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한국은 [[UN]]에게 이 문제를 보고했는데, 이때 UN이 제시한 방안이 유엔의 감시하에 인구비례 총선을 통해서 한반도의 국회를 완성하고 즉각 독립시킨다는 것이었다.&lt;br /&gt;
&lt;br /&gt;
하지만 인구상 의석 수가 적게 배분될 것이라고 판단한 소련군정에서는 유엔의 제의를 거부했고 이에 어쩔 수 없이 [[1948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일단 선거가 진행될 수 있는 곳에서만 선거를 진행]]하는 방향으로 이뤄졌다.&lt;br /&gt;
&lt;br /&gt;
== 김구의 저지 시도 ==&lt;br /&gt;
[[UN]]의 결정에 반대했던 [[김구]]와 중도파 등 때문에 [[UN]]은 일단 선거 실시가 가능한 지역에서만 진행하라고 얘기한다. 이것을 막기 위해 [[김구]]는 통일 정부 수립을 주장하던 인사들과 함께 1948년 4월에 김구가 방북, 남북협상(정식 명칭은 &amp;#039;전조선 제정당사회단체 대표자 연석회의&amp;#039;)을 진행하게 된다. 약 80여 명을 이끌고, 그렇게 협상하여 이하의 결정문이 완성되었다.&lt;br /&gt;
&lt;br /&gt;
{{인용문|첫째, &amp;quot;소련이 제의한 바와 같이 우리 강토에서 외국군대가 즉시 철거하는 것이 조선문제를 해결하는 유리한 방법이다.&amp;quo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둘째, &amp;quot;남북정당사회단체지도자들은 우리 강토에서 외국군대가 철퇴한 뒤에 내전이 발생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한다.&amp;quo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셋째, &amp;quot;외국군대가 철퇴한 이후, 다음 연석회의에 참가한 모든 정당사회단체들은 공동명의로써 전조선정치회의를 소집하여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통일적 조선입법기관을 선거하여 통일적 민주정부를 수립해야 한다.&amp;quot;&amp;lt;br&amp;gt;&amp;lt;br&amp;gt;&lt;br /&gt;
넷째, &amp;quot;위의 사실에 의거하여 이 성명서에 서명한 모든 정당사회단체들은 남조선단독선거의 결과를 결코 인정하지 않을 것이며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다.&amp;quot;}}&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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