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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조지훈 (시인)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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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6T00:15:22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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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d>https://novawiki.app/index.php?title=%EC%A1%B0%EC%A7%80%ED%9B%88_(%EC%8B%9C%EC%9D%B8)&amp;diff=71198&amp;oldid=prev</id>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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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9:13:51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참문학가}}&lt;br /&gt;
&lt;br /&gt;
{{성인}}&lt;br /&gt;
{{보수주의}}&lt;br /&gt;
&lt;br /&gt;
[[김수영]]은 문서가 있는데 왜 &amp;#039;&amp;#039;&amp;#039;조지훈&amp;#039;&amp;#039;&amp;#039; 문서는 안만들어놨냐 홍어들아&lt;br /&gt;
&lt;br /&gt;
[[파일:시인 조지훈.jpg]]&lt;br /&gt;
&lt;br /&gt;
김수영과 함께 쌍두마차를 이루며 한국 인문정신의 뿌리가 된 시인이다.&lt;br /&gt;
&lt;br /&gt;
왠지 이분의 얼굴에서 [[의사양반|이분]]이 보이는건 기분탓&lt;br /&gt;
&lt;br /&gt;
경북 영양군 출신으로 정통 보수주의의 뿌리가 되는 분이다.&lt;br /&gt;
&lt;br /&gt;
김수영과 같은 해에 태어나 같은 해에 죽었다. 조지훈은 병으로, 김수영은 교통사고로&lt;br /&gt;
&lt;br /&gt;
조지훈 시인은 격동하는 한국 현대사를 민족 주체의 위기로 보고 민족 주체의식의 확립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그래서 민족 전통을 연구하고 그것을 시로 써냈다.&lt;br /&gt;
&lt;br /&gt;
조지훈은 어릴적부터 서당교육을 받았고 검정고시를 쳐서 혜화전문학교(현 동국대학교)에 합격했으므로 일제식 교육을 일절 받지 않았다. 혜화전문학교를 다닐 때 그 유명한 「승무」를 썼다.&lt;br /&gt;
&lt;br /&gt;
김수영이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적이었다면 조지훈은 그 반대로 세속적인 이해와 타협을 거부했다. 말하자면 과거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lt;br /&gt;
&lt;br /&gt;
그런 그도 3.15 부정선거가 일어나자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다. 이는 그가 쓴 책 「지조론」을 보면 알 수 있다.&lt;br /&gt;
&lt;br /&gt;
{{인용문|지조를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자기의 신념에 어긋날 때면 목숨을 걸어 항거하여 타협하지 않고 부정과 불의한 권력 앞에는 최저의 생활, 최악의 곤욕을 무릅쓸 각오가 없으면 섣불리 지조를 입에 담아서는 안 된다.|「지조론」중에서}}&lt;br /&gt;
&lt;br /&gt;
세속적 문제와 타협하지 않았던 그도 불의를 보자 &amp;quot;우국경세의 붓&amp;quot;을 든 것이다.&lt;br /&gt;
&lt;br /&gt;
그는 과거 친일세력이 광복이 되자 친미세력에 달라붙은걸 혐오했고 그런 자유당을 뒤엎어 버리고 싶어했다. 그래서 4.19 혁명때 앞장서서 학생운동을 지지했고 학생이 앞장서 혁명의 선두가 되기를 요청했다.&lt;br /&gt;
&lt;br /&gt;
{{인용문|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 학문에의 침잠을 방패 삼아 이 참혹한 민족적 현실에 눈감으려는 경향은 없는가? (중략)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여야 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우리는 민족의 지사, 구국의 투사로서 자임해야 할 시기가 왔다.”|조지훈이 고대신문에 기고한 「오늘의 대학생은 무엇을 자임하는가」중에서}}&lt;br /&gt;
&lt;br /&gt;
그러나 4.19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는 시각이 좀 달랐다. 조지훈은 4.19 혁명을 누구보다 지지했고 앞장섰으나 염연히 &amp;quot;민족정신&amp;quot;이라는 기준에 따른것이었다. 3.15 부정선거는 &amp;#039;민족정신&amp;#039;에 어긋나는 &amp;#039;불의&amp;#039;이기에 방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따라서 그는 4.19 혁명 이후 장면 내각에서의 무분별한 학생운동을 &amp;quot;방종과 무질서함&amp;quot;으로 여겼다. 그 학생운동조차 &amp;quot;자유&amp;quot;로 여겼던 김수영과는 정반대되는 입장이었던 것이다.&lt;br /&gt;
&lt;br /&gt;
따라서 조지훈은 5.16 군사정변을 보고 그동안 자율적으로 &amp;quot;방종&amp;quot;에 흘렸던 &amp;quot;자유&amp;quot;를 당분간 제한해야 한다는 자각을 촉구했다. 그러나 김수영에게는 자유의 &amp;quot;제한&amp;quot;은 곧 자유의 &amp;quot;부재&amp;quot;로 받아들였다. 김수영은 자유와 방종은 구분할 수 없으므로 무제한적인 자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lt;br /&gt;
&lt;br /&gt;
이 문제는 김수영의 시 「김일성 만세」로 이어진다. &lt;br /&gt;
&lt;br /&gt;
{{인용문|&amp;#039;김일성만세&amp;#039;&lt;br /&gt;
&lt;br /&gt;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lt;br /&gt;
인정하는 데 있는데&lt;br /&gt;
 &lt;br /&gt;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lt;br /&gt;
 &lt;br /&gt;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lt;br /&gt;
언론의 자유라고 조지훈(趙芝薰)이란&lt;br /&gt;
시인이 우겨대니&lt;br /&gt;
 &lt;br /&gt;
나는 잠이 올 수밖에&lt;br /&gt;
&lt;br /&gt;
 &lt;br /&gt;
&amp;#039;김일성만세&amp;#039;&lt;br /&gt;
&lt;br /&gt;
한국의 언론 자유의 출발은 이것을&lt;br /&gt;
인정하는 데 있는데&lt;br /&gt;
 &lt;br /&gt;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lt;br /&gt;
 &lt;br /&gt;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lt;br /&gt;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lt;br /&gt;
관리가 우겨대니&lt;br /&gt;
 &lt;br /&gt;
나는 잠이 깰 수밖에|김수영 「김일성 만세」}}&lt;br /&gt;
&lt;br /&gt;
김수영은 &amp;quot;김일성 만세&amp;quot;를 외칠 자유 또한 자유이므로 자유를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조지훈에게는 김일성은 민족반역자로 &amp;quot;김일성 만세&amp;quot;라는 표현은 &amp;quot;민족정신&amp;quot;에 어긋나므로 자유가 아닌 방종에 불과하고 제한되어야 하는 자유였던 것이다.&lt;br /&gt;
&lt;br /&gt;
결론적으로 두 의견 중 정답은 없다. 아니, 오히려 둘 다 정답일 수도 있다. 근데 이상하게 현대 인문학계에서는 김수영 주장에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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