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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총력전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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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7T13:49:25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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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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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7:37:28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위백}}&lt;br /&gt;
{{어려운 게임}}&lt;br /&gt;
{{경제}}&lt;br /&gt;
{{밀덕}}&lt;br /&gt;
&lt;br /&gt;
Total War&lt;br /&gt;
&lt;br /&gt;
==개요==&lt;br /&gt;
[[원기옥]] 현실판. [[근대]] 이후 [[국가]]가 쓸 수 있는 초필살기. 그냥 국가삭빵전이다.&lt;br /&gt;
&lt;br /&gt;
==상세==&lt;br /&gt;
국가의 모든 자원을 쥐어짜서 [[전쟁]]을 수행하는 체계 및 그러한 전쟁 자체를 이르는 단어다.&lt;br /&gt;
&lt;br /&gt;
모든 자원이란, 단어 뜻대로 ㄹㅇ &amp;#039;모든&amp;#039;이다. [[경제]], [[문화]], [[사회]]기반, [[국민]] 모두가 전쟁을 수행하기 위한 자원으로 동원된다. 총력전 체제 하에서 국가의 모든 생산수단은 군수시설이 되고, 국가의 모든 교통시설(도로, [[철도]], [[항구]], [[공항]])은 군의 전략시설로 전환되며, 국가 구성원은 모두 예비전투병으로 분류된다. 처음엔 건장한 [[남성]] 청년, 다음엔 장년, 그것도 모자르면 [[아동]][[청소년]]과 [[노인]]들. [[여성]]들은 처음엔 군수물자 생산에, 나중엔 군인으로 징병된다. [[언론]]과 문화는 국가 구성원들의 전의를 고취시키고 적국에게 [[프로파간다]]를 수행하기 위한 수단으로 전환된다.  &lt;br /&gt;
&lt;br /&gt;
==기원==&lt;br /&gt;
[[동양]]과 [[서양]]은 좀 차이가 있다.&lt;br /&gt;
&lt;br /&gt;
===동양의 경우=== &lt;br /&gt;
현대 총력전 체계와는 다르긴해도, 원시적인 총력전 체제를 [[춘추전국시대|기원 전부터]] 갖추었다. 이는 정치체계의 발달과 지리기후적 요소가 겹친 결과로, [[쌀]]을 위시한 곡물로 인구 부양력이 높으며, [[유교]]적 문화로 일찍부터 중앙집권체제를 갖출수 있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즉, &lt;br /&gt;
&lt;br /&gt;
* 중앙집권제는 곧 [[관료제]]의 정비며 이는 국가 구성원을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는 소리다. 당연히 효율적인 징병을 할 수 있는 제도적 바탕이 된다. &lt;br /&gt;
&lt;br /&gt;
* 풍부한 강수량을 바탕으로 대량 생산에 적합한 쌀, 보리 등 곡물의 존재는 인구수 증가와 더불어 회복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기에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 지역은 일찍부터 전시 동원병력수가 서양에 비해 높았다.&lt;br /&gt;
(예를들어 당장 한국사만봐도 11세기초 [[고려]]는 [[거란]]과의 전쟁을할때 작은반도국에서 20만이라는 그당시로서는 대규모의 징병을통해 전쟁을치뤘는데 사실 이숫자는 말그대로 고려의 인적자원을 모두짜낸것으로 사실상 이때 고려는 원시적인 총력전에 돌입했다할수있겠다.)&lt;br /&gt;
&lt;br /&gt;
===서양의 경우=== &lt;br /&gt;
근대 이전까지 전쟁에서 동원된 총 병력 수가 15만을 넘지 않았다. [[로마제국]] 멸망 이후 [[중세]] 서양의 정치제는 [[봉건제]]를 기초로 두었으며, 이 시기엔 왕이라 해도 봉신들의 병력을 마음대로 동원하지 못했다. 계약관계라는 독특한 관계와 더불어 그 근간이 [[장원제도]]라는 체계에 묶여있었기 때문이다. 중세가 지나 근세에 이르러도 여전히 병력규모가 크질 못했는데, [[용병]]들이 각국 군대의 근간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국가의 지배자는 용병을 &amp;#039;고용&amp;#039;해 전쟁을 수행했으니, 돈이 아무리 많아도 이런 군 체계로는 대규모 [[상비군]]을 유지할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ㄴ단 발칸은 사정이 달랐다. 1453년에 콘스탄티노플이 따먹히고 오스만이 등장하면서부터 발칸은 땅따먹기가 아니라 정말로 생존을 위한 전쟁으로 돌입했고 이때부터 발칸 내에서는 서유럽식이 아닌 대규모 전투가 자주 벌어졌다.&lt;br /&gt;
&lt;br /&gt;
하지만 [[프랑스 대혁명]]부터 서양 군사사상에 일대전환이 일어난다. [[루이16세|왕 모가지]]를 [[단두대|날려버리고]] 세워진 [[공화국]]의 전쟁이란, 왕들의 전쟁이 아닌 &amp;#039;&amp;#039;&amp;#039;국민들의 전쟁&amp;#039;&amp;#039;&amp;#039;이 되버린다. [[징병제|국민 개병제]] 개념이 등장했고, 시민의 의무의 하나로서 국가의 수호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이전에 비해 훨씬 저렴하게 대규모 병력을 항시 보유할 수 있는 기반이 등장한 것이다. [[프랑스]]에 맞서는 국가들도 이에 맞서기 위해선 대규모 병력을 유지해야 했고, [[영국]]과같은 [[입헌군주제]]국가는 [[왕권신수설]]이라는 개념을 버린지오래라 국민개병제로 빠르게 갈아탈수있었고 [[프로이센]]도 늦지만 어느정도 신분평등과같은 국민의권리를 인정해주면서 자연스레 국민개병제가 정착하게되었다. 결국 서구의 전쟁규모는 이전시기와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다.&lt;br /&gt;
&lt;br /&gt;
그리고 또 한편으론 [[산업혁명]]으로 생산력이 급증했다는 점을 들수있다. 생산력의 증가는 [[군대]]의 [[무기]]와 보급을 더 저렴하게 할 수있는 기반을 제공했다.&lt;br /&gt;
&lt;br /&gt;
==현대 총력전의 시작: [[천조국]]의 [[남북전쟁]]==&lt;br /&gt;
미 남북전쟁은 정치사회적 영향이 크지만, 군사사史적으로는 현대 총력전의 개념을 제시했다는 중요성을 지닌다. 특히 북군의 장군인 [[윌리엄 테쿰세 셔먼]]&amp;lt;ref&amp;gt;2차 대전 당시 돌머리탱크 셔먼의 그 셔먼이다.&amp;lt;/ref&amp;gt;이 이끄는 군단의 기동은 지나치는 남부 지역의 산업기반을 초토화 시키는 방법을 시행했다.&amp;lt;ref&amp;gt;이른바 &amp;#039;셔먼의 바다로의 행진&amp;#039;. 사람만 제외하고 전쟁에서 쓸 수 있다고 여겨지는 모든 것을 다 파괴하고 불태웠다. 특히 철도의 파괴는&lt;br /&gt;
 남군의 병력 및 병참수송에 큰 악영향을 주었다.&amp;lt;/ref&amp;gt; 남군과 북군의 지휘관들이 모두 전투를 승리하기 위해 싸웠다면, 셔먼은 남부의 전쟁수행을 가능케하는 기반을 파괴하기 위한 전투를 했다는 것이 그 특징으로, 셔먼의 전략기동으로 입은 남부의 피해는 1억달러에 육박했다. 현대기준으로 환산하면 100억 달러 이상. 전쟁 종결 이후 남부가 이때 입은 피해를 복구하는데만 십년이 넘게 걸린다.&lt;br /&gt;
&lt;br /&gt;
아무튼 상대방 전력의 파괴뿐만 아니라 전쟁수행기반을 파괴한다는 개념, 그리고 그 개념을 적극적으로 작전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현대 총력전의 효시로 볼 수 있다.&lt;br /&gt;
&lt;br /&gt;
==현대 총력전의 완성: 양차대전==&lt;br /&gt;
&lt;br /&gt;
{{인용문2|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그것은 그쪽 정부와 함께 우리와 싸우는 [[민중]]들이고 우리는 무장한 적군하고만 싸우는것이 아니다. 그래서 소위 죄 없는 방관자를 죽이는 것을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lt;br /&gt;
&lt;br /&gt;
{{인용문2|[[일본]]의 도시란 이런 모양이다. [[공장]]이 있다. 그 옆에 민간인들이 살고 있고, 그 사람들은 자기네 집에서 조그만 부품들을 만든다. 그걸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수 있겠지. 스즈키네는 64호 볼트를 만들고, 옆집 하루노보네는 64호, 65호나 63호 너트나 다른 잡동사니를 만드는 식이다. 그러면 키타가와 씨가 그걸 정리해다가 공장으로 가져가는 거다.}} &lt;br /&gt;
&lt;br /&gt;
위 인용문은 둘다 인류사 최고의 [[통구이]] 셰프 [[커티스 르메이|르메이 성님]]의 발언이다. 이 문장에 현대 총력전의 본질이 다 들어있다. &lt;br /&gt;
&lt;br /&gt;
근대에서 [[현대]]로 넘어오면서 산업화 체계는 더 정밀해졌다. [[제국주의]] 시대를 주무르던 [[열강]]들이란, 특이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 고도의 공업화를 이룩한 국가들이다. 넘치는 생산성이 자국 경제에 악영향을 주지않기 위해 시장을 개척하고 자원확보를 위해 [[아프리카]]와 동양 곳곳을 [[식민지]]로 삼았던 국가들이다.&lt;br /&gt;
&lt;br /&gt;
또한 관료제도 고도로 발달한다. 이제 각국은 언제든지 국내의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징병해 병력을 확충할 수 있다. 한편 철도의 발달은 대규모 수송을 가능케 했는데, 이제 규격만 맞는다면 계획된 시간에 인적 물적 수송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슐리펜 계획|아니 될 것이라고 믿어졌다]].&lt;br /&gt;
&lt;br /&gt;
따라서 전쟁의 규모가 미친듯이 커지게 된다. 총력전 체계가 본격적으로 작동한 것은 [[1차대전]]이다. 전쟁에 참가한 모든 국가들은 &amp;#039;효율적&amp;#039;으로 자국의 자원을 쥐어짜서 전쟁을 수행했다. 답도 없이 [[참호|철조망+기관총+참호]]에다가 병력을 꼴아박아서 문제지. 1차대전의 종결은 독일제국의 전투병력이 모두 손실되서 항복한 것이 아닌 끌어다 쓸 자원이 바닥난 독일 내부의 반발 때문라는 사정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아무튼 이걸로 학을 뗀 유럽국가들은 한동안 전쟁을 할 엄두를 못낸다. 그러나 다시금 독일에서 [[나치즘|낙]][[히틀러|지]]가 등장하고, 이번엔 아시아 [[일본제국|섬원숭이]]까지 날뛰면서 두번째로 세계규모의 전쟁을 치루게 된다. 바로 [[2차대전]]의 시작이다.&lt;br /&gt;
&lt;br /&gt;
2차대전은 [[항공기]]의 전력화와, 그로인한 [[전략폭격]]이 본격화 되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1차대전에도 [[독일 제국|독일]]이 [[체펠린 비행선|비행선]]을 이용한 [[영국]] 폭격을 시도했지만 그리 효율적이진 못했다. 그러나 발달된 항공기는 어마어마한 양의 [[폭탄]]을 투하할 수 있었고, 항속거리도 비행선에 비하면 훨씬 길어졌다. 이것은 전선에 상관없이 상대방 공업지대를 공격하여 전쟁수행기반을 파괴 혹은 일시적 마비시킬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또한 군수공장의 경우, 비록 그곳에서 일하는 인원이 민간인이라 할지라도 전쟁수행을 돕는 &amp;#039;&amp;#039;&amp;#039;직접적&amp;#039;&amp;#039;&amp;#039;으로 돕는 &amp;#039;인적자원&amp;#039;이기 때문에 [[드레스덴 폭격|폭격에 휘말려도]] [[도쿄 대공습|죄를]] [[히로시마|묻지]] [[나가사키|않았다]]. 한마디로 [[SCV]]나 [[드론]]은 공격해도 민간인 [[학살]]이 아니라는 점이다. &lt;br /&gt;
&lt;br /&gt;
적어도 1차대전까지만 해도 후방의 민간인들은 전쟁의 직접적인 위협에서 벗어나 있었다. 1차대전은 총력전이라는 체계가 본격적으로 시동을 건 전쟁이긴 하지만, 여전히 전쟁은 전선과 민간사회로 이분화가 가능했다. 각국은 국가의 모든 자원이 전쟁을 위해 사용할수 있음은 확인했지만, 상대방의 전쟁수행기반 그 자체를 공격할 순 없었다. 전선을 넘을 수 있는 기술도 아직 없었고, 십몇키로를 두고 일진일퇴를 반복하던 참호전 상황에선 더욱 그러했다. 그러나 항공폭격의 등장, 그리고 이를 전략적으로 적극 활용한 2차대전은 이제 상대의 전쟁수행기반 파괴와 더불어 국가 구성원의 전쟁수행의지 그 자체를 공격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총력전이 갖는 명암이 모두 드러난 것이다.&lt;br /&gt;
&lt;br /&gt;
: 이래서 1차대전에서 진 독일이 왜 졌는지 잘 못 느끼고 다시 전쟁한거.  복수심도 그렇고 &lt;br /&gt;
&lt;br /&gt;
==이후==&lt;br /&gt;
[[냉전]] 이후 총력전은 더이상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핵무기]]의 등장으로 &amp;#039;&amp;#039;&amp;#039;총력전=전면 핵전쟁&amp;#039;&amp;#039;&amp;#039;이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냉전기 양극인 미국과 [[소련]]은 이런 전면 핵전쟁의 피해를 감당하기 어렵다고 판단, 국지적인 분쟁은 있을 지언정 양국 모두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전쟁은 벌이지 않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lt;br /&gt;
&lt;br /&gt;
탈냉전시기에도 이런 경향은 마찬가지인데, 일단 강대국들 대부분이 갯수에 상관없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이며, 핵 사용에 강한 거부감을 갖는다.&amp;lt;ref&amp;gt;동시에 새로운 핵보유국이 등장하는 것을 반기지도 않는다. 세력균형이 깨질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amp;lt;/ref&amp;gt;더불어 소련붕괴 이후 대부분의 세계 국가들은 공통된 경제권을 갖게 되었고, 몇몇 국가의 전면전은 곧 전체 세계경제의 위기상황이 되는 시기에 이르렀다. 현재 국가간의 전면전이 좀처럼 발생하지 않는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lt;br /&gt;
&lt;br /&gt;
: 공통된 경제권. 그러니까 니가 중국산 미국산 물건 사고 팔고 하는걸 생각하면된다 &lt;br /&gt;
&lt;br /&gt;
또 다른 이유로는, 현대무기의 고비용화로 인한 부담이다. 군사기술의 진보는 무기의 가격상승을 의미하고, 결국 군비의 급격한 증가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고효율, 고정밀 무기체계의 도입은 군 조직 및 상비군의 축소로 나아갔다.&lt;br /&gt;
&lt;br /&gt;
다만 몇몇 국가는 특수한 사정으로 인해 총력전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한반도]]. 분단상황이라는 군사적 긴장상태가 60년이 넘게 지속되고 있으며, [[헬조선|대한민국]]과 [[북괴|북한]] 양측 모두 총력전 체제를 항시 유지중이다. 뭐, 경제력 폭망한 북한이야 비대칭 무기인 핵에 매달리면서 정작 전쟁나면 총력전이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 되었지만, 대한민국은 총력전 체계를 굴릴 수 있는 경제력과 기술력 모두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lt;br /&gt;
&lt;br /&gt;
== 둘러보기 ==&lt;br /&gt;
{{2015 개정 교육과정 세계사 5단원}}&lt;br /&gt;
&lt;br /&gt;
{{각주}}&lt;br /&gt;
[[분류:군사학]]&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nt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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