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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프리드리히 파울루스 - 편집 역사</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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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4-14T20:26:39Z</updated>
	<subtitle>이 문서의 편집 역사</sub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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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NovaAdmin: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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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2026-01-08T08:32:55Z</updated>

		<summary type="html">&lt;p&gt;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lt;/p&gt;
&lt;p&gt;&lt;b&gt;새 문서&lt;/b&gt;&lt;/p&gt;&lt;div&gt;[[파일:파울루스.jpg]]&lt;br /&gt;
&lt;br /&gt;
프리드리히 빌헬름 에른스트 파울루스&lt;br /&gt;
&lt;br /&gt;
&amp;#039;&amp;#039;Friedrich Wilhelm Ernst Paulus&amp;#039;&amp;#039;&lt;br /&gt;
&lt;br /&gt;
&amp;#039;&amp;#039;1890.9.24 ~ 1957.2.1&amp;#039;&amp;#039;&lt;br /&gt;
&lt;br /&gt;
스탈린그라드 전투엣니 패배하고 소련에 항복한 독일군 원수이다. 사실 원수도 그냥 히틀러가 항복하지 말고 자살하라는 의미로 올려준거다. 그래서 원수로써의 실권, 계급장, 원수봉 그런거 1도 없다.&lt;br /&gt;
&lt;br /&gt;
능력과 별개로 국방군답지않게 전쟁범죄에 연루되지는 않았고 오히려 그런 행위를 막았다.&lt;br /&gt;
&lt;br /&gt;
나무위키에선 이 인간 똥꼬를 헐도록 빨아재낀다. 지휘관으로써의 결함 때문에 패전한 스탈린그라드를 히틀러와 만슈타인 탓으로 돌리고 우리 반 히틀러 세력인 과울루스는 아무 잘못 없거든요? 빼애애액을 실천 중이다.&lt;br /&gt;
&lt;br /&gt;
ㄴ파울루스를 옹호하는편이긴 한데 파울루스한테도 책임이 있다는건 인정햐던데.&lt;br /&gt;
==전쟁 전==&lt;br /&gt;
&lt;br /&gt;
헤센에서 교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원래는 해군이 되고 싶었지만 받아주질 않아서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법공부를 했다. 근데 중퇴하고 육군에 갔다.&lt;br /&gt;
&lt;br /&gt;
1910년 2월에 소위로 제111연대 참모가 되어서 군 생활을 시작했다. 1914년에 부상으로 잠깐 쉬었고 대위로 종전을 맞았다.&lt;br /&gt;
&lt;br /&gt;
바이마르 공화국 당시 4000명 밖에 남지 않은 장교들 중 한 명으로 남았기 때문에 엘리트 취급을 받으며 살았다.&lt;br /&gt;
&lt;br /&gt;
==폴란드전==&lt;br /&gt;
&lt;br /&gt;
파울루스의 상관인 구데리안은 그를 똑똑하고, 영리하고, 일도 열심히 하고 재능도 있어! 라고 평가했지만 동시에 인성, 우유부단함, 지휘력 부족등을 같이 지적했다.&lt;br /&gt;
&lt;br /&gt;
그리고 이 지적은 정확히 파울루스를 잡아먹는다.&lt;br /&gt;
&lt;br /&gt;
어쨌든 1939년 소장으로 진급한 파울루스는 제10 야전군 참모로 부임하여 폴란드전에 참전했다.&lt;br /&gt;
&lt;br /&gt;
폴란드전 이후 제10군은 제6군으로 이름이 바뀌고 벨기에로 배치됐다.&lt;br /&gt;
&lt;br /&gt;
1940년 8월 중장으로 승진한 파울루스는 바르바로사 작전을 검토하는 임무를 맡았다.&lt;br /&gt;
&lt;br /&gt;
==스탈린그라드==&lt;br /&gt;
&lt;br /&gt;
1942년 1월. 발터 폰 라이헤나우는 원수로 승진하며 제6군을 떠났고 파울루스는 기갑대장으로 승진했다.&lt;br /&gt;
&lt;br /&gt;
라이헤나우가 제6군 사령관으로 있었을 당시 게으르지만 결단력과 카리스마가 있는 라이헤나우와 우유부단하지만 성실한 파울루스는 죽이 잘 맞았다. 그 덕분에 라이헤나우가 공을 많이 세우고 원수로 진급한거고.&lt;br /&gt;
&lt;br /&gt;
1942년 1월 17일. 라이헤나우가 뇌경색으로 사망했다. 여기서 문제가 시작된다.&lt;br /&gt;
&lt;br /&gt;
1월 20일. 파울루스가 제6군 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대대까지밖에 지휘해 본 적 없는 주제에.&lt;br /&gt;
&lt;br /&gt;
히틀러는 동남 공격을 위해 부대를 둘로 나눴고 스탈린의 이름을 딴 도시를 공략할 부대로 제6군을 지명했다.&lt;br /&gt;
&lt;br /&gt;
상병놈 히틀러가 짠 작전답게 제6군은 측면 가드도 없이 스탈린그라드로 달렸고 온 여름을 시가전에 소비했다.&lt;br /&gt;
&lt;br /&gt;
히틀러는 11월 8일 뵐게르트브라우켈러에서 라디오 연설을 통해 스탈린그라드의 거점적 중요성을 말했다. &amp;quot;스탈린의 이름이 붙어있어서 점령하려는 것은 아니다!&amp;quot; 라고 말했지만 누가 그 말을 믿었겠는가. 물론 T-34의 주요 생산거점의 하나였으니 틀린 말은 아님.&lt;br /&gt;
&lt;br /&gt;
육군본부에서 히틀러가 스탈린그라드 한복판에 파란 색연필로 전선을 그었다. 하지만 실제론 건물 하나를 점령하기 위해서 몇 개월이 걸리는 힘든 싸움이었다.&lt;br /&gt;
&lt;br /&gt;
그 때문에 병력 손실이 많아졌고 겨울이 왔을 때 보다 유연한 작전을 벌일 수 없었다.&lt;br /&gt;
&lt;br /&gt;
===포위===&lt;br /&gt;
&lt;br /&gt;
소련군은 천왕성 작전으로 스탈린그라드를 포위했고 파울루스는 히틀러에게 퇴각요청을 보냈다. 그리고 대차게 거절당했다. &amp;lt;ref&amp;gt; 나무위키에선 이 당시 히틀러가 퇴각하지 말랬다고 했다고 파울루스를 있는 힘껏 쉴드치는데 파울루스 재량으로 얼마든지 퇴각할 수 있었다. 루마니아에서 프리스너도 명령을 무시하고 퇴각했고 바그라티온 작전 당시 티펠스키르히 &amp;quot;대장&amp;quot;도 히틀러를 무시하고 퇴각했는데?&amp;lt;/ref&amp;gt;&lt;br /&gt;
&lt;br /&gt;
생존에 필요한 명령은 퇴각이었다. 그러나 퇴각은 일어나지 못했고 만슈타인의 겨울폭풍 작전이 실패로 돌아간 뒤에, 구출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분명해지자 히틀러는 파울루스에게 &amp;#039;프로이센 원수는 포로가 되지 않는다.&amp;#039;며 원수로 명예진급을 시켜줬다. 그러나 파울루스는 &amp;quot;보헤미안 상병 주제에 누구한테 명령이야?&amp;quot; 그러면서 진급 다음 날 소련군에게 항복했다.&lt;br /&gt;
&lt;br /&gt;
그래도 스탈린그라드에서 후퇴도 항복 안하고 존버한 덕분에 클라이스트가 지휘한 A집단군은 가까스로 탈출했음. 결국 6군은 항복했지만.&lt;br /&gt;
&lt;br /&gt;
==남은 전쟁 동안==&lt;br /&gt;
&lt;br /&gt;
포로가 된 독일군 원수는 신문에 대서특필됐다. 독일쪽에도 선전용으로 좀 뿌렸고.&lt;br /&gt;
&lt;br /&gt;
파울루스는 갇혀 지내면서도 딱히 소련군에 협조하진 않았다.&lt;br /&gt;
&lt;br /&gt;
그러나 1944년 히틀러 암살미수 사건이 터지자 소련이 만든 자유독일국가위원회를 맡아 공산주의의 따까리로 라디오 방송에 충실하게 참여했다.&lt;br /&gt;
&lt;br /&gt;
{{인용문|히틀러는 평화시에 정복과 약탈이라는 전쟁을 일으켰다. 전 세계 역사상 전례 없는 잔인한 방법을 사용했다! -1944년 8월 8일 파울루스의 선전 방송}}&lt;br /&gt;
&lt;br /&gt;
종전 후엔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 참석하는데, 전범 입장이 아니라 검찰측 증인으로 참석했다.&lt;br /&gt;
&lt;br /&gt;
나무위키에선 카이텔, 요들에게 불리한 증언을 끝끝내 거부했다고 하는데 사실과는 정 반대다. 괴링, 카이텔, 요들의 유죄를 강력히 주장했고 자신의 부하들만 쉴드쳤다. 세놈 다 목이 매달려도 싼놈들이긴 하지만.&lt;br /&gt;
https://youtu.be/KVVTg3tVqvQ?t=35m39s&lt;br /&gt;
&lt;br /&gt;
심지어 억류도 아니다. 소련에 있는 자기 집에서 요리사와 하인까지 있는 아주 윤택한 생활을 즐겼다.&lt;br /&gt;
&lt;br /&gt;
스탈린이 가지마 ㅠㅠ 했다고 안 간게 억류라면 할 말은 없지만.&lt;br /&gt;
&lt;br /&gt;
==종전후 인생==&lt;br /&gt;
독일이 패전책임을 물어 동독과 서독으로 잘렸다.&lt;br /&gt;
&lt;br /&gt;
파울루스는 동독에서 살게 되었는데 군인 그만두고 경찰 최고위 간부로 여생을 보냈다. 한국으로 따지면 치안감 이상이다.&lt;br /&gt;
&lt;br /&gt;
{{각주}}&lt;/div&gt;</summary>
		<author><name>NovaAdmin</name></auth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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