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만약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바타비아: 두 판 사이의 차이

novawiki
(새 문서: {{거품}} '''바타비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자바 섬에 세운 식민도시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동남아 본진이자, 향신료 빨대 꽂는 총본산이었다. == 개요 == 원래 이 지역에는 '''자야카르타'''라는 항구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즉 VOC가 1619년에 이곳을 점령...)
태그: 2017 원본 편집
 
편집 요약 없음
태그: 2017 원본 편집
1번째 줄: 1번째 줄:
{{거품}}
{{거품}}


'''바타비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가 [[자바 섬]]에 세운 식민도시다.
'''바타비아'''는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가 [[자바 섬]]에 세운 식민도시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동남아 본진이자, 향신료 빨대 꽂는 총본산이었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동남아 본진이자, 향신료 빨대 꽂는 총본산이었다.

2026년 5월 22일 (금) 05:53 판

주의! 여기서 설명하는 대상은 존나 거품입니다.
이 문서는 인기를 끌다가 거품이 다 빠진 대상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정보가 조만간 거품이 되어 사라져도 디시위키는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모두 이 거품을 향하여 X키를 눌러 Joy를 표하고 명복을 버블빔!

"한방에 간다 한방에 간다 그러더니 그 한 방이 어디 갔습니까? 거품입니다, 거품!"

바타비아네덜란드 동인도 회사자바 섬에 세운 식민도시다.

오늘날의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의 옛 이름이다. 쉽게 말하면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동남아 본진이자, 향신료 빨대 꽂는 총본산이었다.

개요

원래 이 지역에는 자야카르타라는 항구도시가 있었다. 그런데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즉 VOC가 1619년에 이곳을 점령하고 도시를 갈아엎은 뒤 새 이름을 붙였는데 그게 바로 바타비아다.

이름은 고대 로마 시대에 네덜란드 지역에 살았다고 여겨진 게르만계 부족 바타비족에서 따왔다. 당시 네덜란드인들은 이 바타비족을 자기들의 조상 비슷하게 여겼다. 그러니까 동남아 남의 땅에 쳐들어가서 도시 세워놓고 자기 조상 이름 붙인 것이다. 식민주의 감성 진짜 낭낭하다.

바타비아는 이후 네덜란드령 동인도의 중심도시가 되었고, 수백 년 동안 네덜란드의 아시아 지배 거점으로 기능했다. 현재는 자카르타가 되었지만, 구도심 일부에는 아직도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흔적이 남아 있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본진

네덜란드 동인도회사는 그냥 무역회사라고 보기에는 좀 많이 이상한 놈이었다. 배 띄우고, 무역하고, 요새 짓고, 조약 맺고, 군대 굴리고, 전쟁하고, 세금 비슷한 것도 뜯었다. 회사라기보다는 주주총회 달린 해적국가에 가까웠다.

바타비아는 그런 VOC의 동남아 본사 같은 곳이었다. 여기서 향신료, 설탕, 커피, 차, 직물 같은 물건들이 모이고, 다시 유럽으로 빠져나갔다. 현대식으로 치면 물류센터 + 식민총독부 + 군사기지 + 회계부서 + 착취 플랫폼이 한곳에 몰려 있는 구조였다.

당연히 도시의 목적은 현지인 복지가 아니었다. 바타비아는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 군도에서 돈을 뽑아먹기 위해 만든 식민지 엔진룸이었다. 겉으로는 운하도 파고 유럽식 도시계획도 하고 나름 근사하게 꾸몄지만, 그 밑바닥에는 향신료 독점과 강제공납과 현지 무역망 파괴가 깔려 있었다.

동양의 여왕

바타비아는 한때 동양의 여왕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듣기만 하면 되게 우아한 항구도시 같지만, 현실은 열대 기후, 전염병, 인종분리, 노예노동, 식민지 수탈이 뒤섞인 동네였다. 네덜란드인 입장에서는 동양의 여왕이었겠지만, 현지인 입장에서는 여왕님이 아니라 세금 뜯는 외국인 두목이었다.

도시 설계도 유럽식으로 하려고 했다. 운하를 파고, 성벽을 세우고, 행정구역을 나누고, 네덜란드식 질서를 심으려 했다. 문제는 여기가 암스테르담이 아니라 열대 자바였다는 점이다. 운하 만들어놓고 물 관리 제대로 못하면 낭만이 아니라 모기 양식장이다.

그래서 바타비아는 부유한 무역도시이면서 동시에 병든 도시이기도 했다. 돈은 흐르는데 물도 썩고, 상품은 쌓이는데 사람도 죽어나가는 곳. 자본주의 초기버전답게 그래픽은 낡았는데 시스템은 이미 매웠다.

다민족 식민도시

바타비아에는 네덜란드인만 산 것이 아니었다. 자바인, 중국인, 말레이인, 발리인, 포르투갈계 혼혈, 노예, 자유민, 상인, 군인, 선원 등 온갖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항구도시는 원래 잡탕이다. 그런데 바타비아는 그냥 잡탕이 아니라 식민지식으로 강제로 끓인 잡탕이었다. 사람들은 모였지만 평등하게 섞인 게 아니었다. 네덜란드인은 위에 있고, 중국계 상인과 여러 중간집단이 있고, 현지인과 노예는 아래쪽에 놓이는 식의 위계가 있었다.

즉 바타비아는 글로벌 도시의 조상님처럼 보이지만, 요즘 말하는 다양성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문화는 맞는데 평등은 아니었다. 회사가 세계화를 먼저 했고, 인권은 늦잠 잔 케이스다.

중국인 학살

바타비아 역사에서 빼놓기 어려운 사건이 1740년의 중국인 학살이다.

당시 바타비아에는 중국계 주민이 많았고, 이들은 상업과 수공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경제 불안과 식민당국의 통제, 인종적 긴장이 겹치면서 폭발했고, 결국 수많은 중국계 주민이 학살당했다. 이 사건은 바타비아가 단순한 무역도시가 아니라 식민지 폭력의 무대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식민도시는 겉으로는 질서정연해 보인다. 성벽 있고, 관청 있고, 항구 있고, 상점 있고, 장부도 있다. 그런데 그 질서라는 것이 결국 누가 누구를 통제하고, 누가 누구를 쥐어짜는지 정해놓은 질서라서 한 번 무너지면 피가 난다. 바타비아가 딱 그런 도시였다.

자카르타가 되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하면서 바타비아라는 이름은 점점 밀려났다. 이후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과 함께 도시는 자카르타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네덜란드식 이름 바타비아는 식민지 시대의 이름이고, 자카르타는 독립국 인도네시아의 수도 이름이다. 이름 하나 바뀐 게 아니라, 주인이 바뀐 것이다. 물론 이름 바뀐다고 식민지 시절의 흔적이 갑자기 증발하는 건 아니다. 도시는 기억력이 좋아서, 지배자가 떠나도 벽돌과 도로와 항구에 과거가 남는다.

오늘날 자카르타는 거대한 메가시티가 되었지만, 그 뿌리에는 바타비아 시절의 항구도시 구조와 식민지 행정 중심지의 흔적이 있다. 지금은 인도네시아의 수도지만, 과거에는 네덜란드가 동남아를 빨아먹기 위해 만든 식민지 서버실이었다.

평가

바타비아는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영광과 추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도시다.

한쪽으로는 세계무역, 항해, 금융, 회사조직, 물류망의 발전을 상징한다. VOC가 현대 다국적기업의 조상님처럼 취급받는 이유도 이런 데 있다. 그런데 다른 한쪽으로는 독점, 학살, 노예제, 식민통치, 강제공납, 인종분리의 상징이기도 하다.

그러니까 바타비아를 두고 “근대 자본주의의 선구적 도시”라고만 하면 반쪽짜리고, “악마의 식민도시”라고만 해도 반쪽짜리다. 정확히는 둘 다였다. 근대 세계경제는 멋진 회계장부와 피 묻은 항구를 같이 들고 태어났다.

바타비아는 그걸 아주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도시였다.

같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