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여닫기
환경 설정 메뉴 여닫기
개인 메뉴 여닫기
로그인하지 않음
만약 지금 편집한다면 당신의 IP 주소가 공개될 수 있습니다.
NovaAdmin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1월 8일 (목) 10:06 판 (DCWiki 복구: 최신본 이식)
(차이) ← 이전 판 | 최신판 (차이) | 다음 판 → (차이)
주의! 이 문서에서 서술하는 인물은(는) 존나 셉니다.
이 문서는 노오오력충도 따라갈 수 없는 초인적인 전투능력을 가진 인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으니 처맞기 싫으면 뒤로가기를 누르세요. 이 인물에개 개겨서 개같이 처맞아도 디시위키는 일절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중국 수나라의 장수. 산동의 수호자

양제 즉위 후, 수나라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규모 토목공사와 고구려 원정의 실패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졌다. 하지만 양제는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다시 원정을 준비하며 대규모 징발을 일삼았는데, 이에 전국 각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대규모의 도적떼가 발호하고 반란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특히 산동 지역은 고구려와 가까운 만큼 많은 고통을 받았는지 처음부터 대규모 반란군 무리가 수도 없이 등장했는데,613년에는 이미 왕박과 맹양, 곽방예, 장금칙, 학효덕, 격겸, 손선아 등이 각기 적게는 수만에서 많게는 10만에 달하는 무리를 끌고 할거하며 사방을 약탈했다. 군현의 관리들은 싸움 경험이 없어 싸울 때마다 패배하기 일쑤였다.

이 때 유일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얻어 반란군을 격파해내던 것이 바로 장수타였다. 먼저 태산에서 왕박을 격파한 장수타는 왕박의 패잔병을 추격해 임읍에서 다시 격파했고, 왕박이 손선아, 학효덕의 무리 10만과 연합해 장구를 공격하자 보기 2만으로 크게 격파했다. 배장재가 2만 병사를 끌고 성을 급습하자 장수타는 병사를 모을 겨를도 없어 5명의 기병을 이끌고 맞서싸웠는데, 적들이 장수타를 100겹으로 포위해 몸의 여러 곳에 상처를 입었지만 끝까지 꺾이지 않았고, 성 안에서 지원군이 도착해 적들이 포위를 풀고 물러나자 바로 공격해 격파했다. 이때 참고로 이때 이 양반 나이가 49세였다. 곽방예가 대군을 이끌고 북해를 함락시키자 정예군을 이끌고 배의 속도로 나아가 공격해 대파하고 수만 급의 목을 베었다.

장수타 밑에는 나사신이라는 인물이 있어 홀로 적진에 뛰어들어 무쌍을 찍고 적들의 코를 베어와 적을 얼마나 죽였는지 증명했는데 장수타는 그를 보고 감탄해 상을 내린 뒤 자신의 곁에 두었다. 개쩌는게 뭐냐면 이때 나사신의 나이는 고작 14살이었다. 이후 적들과 싸울 때는 장수타가 앞장서고 그 뒤에 나사신이 따르며 나란히 무쌍을 찍었다고 한다. 양제 역시 사자를 파견해 장수타를 위무했다.

614년에는 좌효우가 10만 무리를 끌고 준구산에 주둔하자 병력을 끌고 그를 압박해 항복시켰다. 이에 그의 위엄이 수나라 동부 전체에 떨쳤다고 한다. 노명월이 무리 10만을 이끌고 축아에 주둔하자 장수타는 1만 병력으로 그와 대치했는데 군량이 떨어져 퇴각하게 되었다. 이때 별동대에 자원한 나사신과 진경에게 병사 1천을 이끌고 갈대숲에 매복하게 한 뒤 퇴각을 시작하니 노명월이 모든 병력을 끌고 추격해왔는데, 나사신과 진경은 그대로 적의 빈 군영을 습격해 목책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이때 둘의 무용담도 경악스러운데, 목책의 문이 닫혀있자 둘이 누각으로 뛰어올라가 적들을 죽이고 군영의 문을 부숴서 바깥의 병사들을 맞이했다고 한다. 노명월이 되돌아가자 장수타 역시 군사를 돌려 힘껏 공격해 적들을 대파, 노명월은 고작 기병 수백을 거느리고 도망가서 숨었다.

616년, 와강의 반란세력인 적양이 크게 세력을 불리고 금제관을 깨뜨린 뒤 형양의 여러 현을 함학시켰다. 형양태수인 양경이 이를 막아내지 못하자 양제는 장수타를 형양통수로 삼아 적양을 치게 했다. 장수타는 이전에 적양을 몇차례 격파한 적이 있으므로 그를 가볍게 보았는데, 문제는 당시 적양의 참모가 그 유명한 이밀이었다는 것이다. 원래 양현감의 참모였던 이밀은 양현감이 자신의 계책을 따르지 않아 실패했을 때 진압군의 포로가 되었으나 탈출에 성공한 뒤 여러 반란세력을 전전하며 입지를 쌓다가 드디어 적양에게 중용되어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이밀은 복병을 이용해 장수타를 공격해 격파하고 적양과 서세적(후일 당나라의 명장이 되는 이세적), 왕백당 등과 함께 그를 포위했는데, 장수타는 이때도 포위를 무너뜨리고 빠져나오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의 수하들 상당수는 여전히 포위망에 갇혀있는 상태였고, 이에 장수타는 말을 타고 다시 포위망에 뛰어들어 병사들을 구하고 빠져나오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전사하고 만다. 그가 거느리던 병사들은 며칠 동안 소리내어 울기를 그치지 않았고, 황하 이남의 군현들은 장수타의 죽음을 듣고는 사기를 잃어버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