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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천거. 이거 하나만으로도 조선 역사 HR팀 GOAT 후보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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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원균도 같이 천거했다는 점에서 빛이 강하면 그림자도 짙다는 걸 보여준다. 틀:한국사 틀:임진왜란

개요

류성룡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재상. 호는 서애(西厓). 본관은 풍산 류씨이며, 오늘날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과도 깊게 연결되는 인물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 정권의 핵심 실무자였고, 이순신, 권율, 원균 등을 천거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결과만 놓고 보면 이순신은 SSR급 치트공, 권율은 육군 상타 장수, 원균은 역사상급 폭탄 카드였으니 인사 평가표가 매우 다이내믹하다.

한마디로 말하면 임진왜란 때 조선 조정에서 그나마 정신 붙잡고 있던 몇 안 되는 인간이다. 선조가 런각을 재고, 조정은 우왕좌왕하고, 장수들은 터지고, 백성들은 갈려나가는 와중에 류성룡은 재상으로서 전쟁 수습, 인재 등용, 명나라 원군 요청, 군제 개편, 전쟁 기록까지 다 떠안았다.

그래서 별명 붙이면 조선의 주술사 내지는 마법사. 탱힐법 다 된다. 다만 화룡을 소환하거나 적을 마인드 컨트롤하지는 못했다. 그랬으면 부산포 앞바다에서 왜군이 갑자기 자기들끼리 배틀로얄 찍었을 것이다.

생애

류성룡은 1542년에 태어났다. 조선 중기 사림 정치가 본격적으로 커지고, 동인과 서인으로 붕당이 갈라지던 시기의 인물이다.

젊은 시절부터 학문이 뛰어났고, 퇴계 이황의 학맥과도 연결된다. 그냥 책만 읽는 샌님이 아니라 현실 정치 감각도 있었고, 사람 보는 눈도 꽤 좋았다. 이순신을 알아본 것만 해도 설명 끝이다.

관직에 오른 뒤에는 여러 요직을 거치며 중앙 정계에서 활동했다. 이후 동인 계열의 핵심 인물이 되었고,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는 조선 조정의 전쟁 수습 담당자 비슷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문제는 이 전쟁이 그냥 전쟁이 아니라, 조선 왕조 역사상 최대급 국가붕괴 이벤트였다는 것. 게임으로 치면 초반 빌드 잘못 짜서 수도 털리고, 왕은 도망가고, 지방은 불타고, 바다에서는 적 수송선이 계속 들어오는 판이었다.

그런데 이 와중에 류성룡은 행정, 군사, 외교, 인사, 기록까지 전부 건드렸다. 문관인데 전투력 있는 무관들보다 존재감이 더 큰 이상한 캐릭터가 되어버린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순신 천거

류성룡 인생 최대의 업적을 하나만 꼽으라면 당연히 이순신 천거다.

당시 이순신은 지금처럼 충무공 니뮤 소리 듣는 국민영웅이 아니었다. 능력은 있었지만 크게 출세한 장수도 아니었고, 오히려 이전에 백의종군까지 한 적이 있던 인물이었다. 그런데 류성룡은 이순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전라좌수사로 천거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냥 조선왕조 인사추천 역사상 최고 잭팟이다.

조선이 임진왜란에서 완전히 멸망하지 않은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는 이순신이 바다에서 왜군의 보급과 이동을 계속 조져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순신을 중요한 자리에 올리는 데 류성룡의 천거가 있었다.

물론 원균도 천거했다는 점에서 류성룡의 사람 보는 눈이 완전무결했다고 하기는 어렵다. 이순신 하나로 나라를 살리고, 원균 하나로 속을 뒤집어놓았으니 인사평가가 천국과 지옥을 오간다.

권율과 원균

류성룡은 권율도 천거했다. 권율은 행주대첩으로 유명한 인물이고, 육전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 권율까지 보면 류성룡의 인재 추천은 확실히 대성공 라인이다.

문제는 원균이다.

원균은 조선 수군 역사에서 이름만 들어도 혈압 오르는 인물이다. 이순신이 쌓아놓은 수군을 칠천량에서 시원하게 말아먹었고, 조선 해군사에 지워지지 않는 대형 사고를 남겼다.

그래서 류성룡의 천거 라인업은 이렇게 요약된다.

  • 이순신: 치트키
  • 권율: 정상 작동하는 상급 카드
  • 원균: 뽑으면 안 되는 저주받은 카드

승률로만 보면 나쁘지 않은데, 실패작 하나가 너무 크다. 주식으로 치면 삼성전자랑 애플은 맞췄는데, 중간에 레버리지 원균코인을 풀매수한 느낌이다.

임진왜란 이전의 경고

류성룡은 임진왜란 전부터 일본의 움직임을 완전히 가볍게 보지는 않았다. 특히 일본이 조총을 사용한다는 점에 관심을 가졌다.

그는 신립에게 일본군의 조총을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신립은 조총을 장전 느린 고철덩어리 정도로 봤다. 쉽게 말하면 “그거 한 발 쏘고 다시 장전하는 동안 우리 기병이 밀면 끝 아님?” 같은 판단이었다.

그런데 현실은?

왜군은 조총을 대량 운용했고, 교대 사격으로 장전 속도 문제를 어느 정도 해결했다. 그리고 탄금대 전투에서 신립의 기병은 조총 앞에 갈려나갔다.

류성룡이 “아무래도 저거 좀 연구해야 되는 거 아님?” 하고 본능적으로 찝찝해했던 게 맞아떨어진 셈이다. 물론 조선 전체가 제대로 대비하지 못했으니 류성룡 혼자 미래예지자였다고 빨아줄 수는 없지만, 최소한 문제의식은 있었다.

선조 피난과 명나라 망명 저지

임진왜란이 터지자 선조는 북쪽으로 피난했다. 여기서 조선 조정은 거의 멘탈이 터졌다. 한양은 버려지고, 왕은 도망가고, 백성들은 “이게 나라냐”를 조선시대 버전으로 외치게 되었다.

이때 선조는 상황이 더 나빠지면 명나라로 넘어가는 것까지 생각했다. 이건 그냥 피난이 아니라 사실상 국가 포기 버튼에 가까웠다. 왕이 국경 넘어 명나라로 들어가면 조선의 독자적 전쟁 수행 의지는 박살나고, 명나라 입장에서도 조선을 완전히 종속된 전쟁터 정도로 다룰 수 있었다.

류성룡은 이걸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선조를 따라 피난하면서도 명나라 망명만은 막으려 했고, 조선 조정이 최소한 “아직 조선은 살아있다”는 모양새를 유지하게 했다.

이건 이순신 천거만큼 드라마틱하지는 않지만 굉장히 중요하다. 전쟁에서 왕이 도망치는 것과, 왕이 아예 외국으로 넘어가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전자는 병신짓이고, 후자는 나라 접는 행위다. 류성룡은 최소한 후자는 막은 셈이다.

전쟁 중 행정 담당

임진왜란 당시 류성룡은 단순히 책상 앞에서 “아이고 큰일났네” 하고 앉아있던 사람이 아니다. 조정의 핵심 재상으로서 전쟁 행정 전반에 관여했다.

당시 조선은 전쟁 준비가 허술했고, 군사제도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지방군은 종이 위에만 있고, 실제로는 병력도 장비도 훈련도 엉망인 경우가 많았다.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마자 북상 속도가 미친 듯이 빨랐던 것도 이 때문이다.

류성룡은 이런 상황에서 군제 개편과 전쟁 수습에 힘썼다. 대표적으로 훈련도감 설치와 군사 체제 정비에도 관여했다. 훈련도감은 조총, 창, 검 등 다양한 무기를 다루는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한 조직이었다.

물론 이것도 만능 해결책은 아니었다. 조선이 이미 너무 털린 뒤였고, 재정도 인력도 부족했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성리학적으로 왜군이 나쁘다”만 외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이순신 구명 논란

류성룡을 깔 때 자주 나오는 부분이 이순신 구명 문제다.

선조가 이순신을 의심하고 잡아들였을 때, 류성룡이 정탁처럼 아주 적극적으로 나서서 “전하 미쳤습니까?” 수준으로 막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친구라면서 왜 더 세게 안 막았냐”는 비판이 있다.

일단 이 비판은 어느 정도 이해된다. 이순신 입장에서 보면 억울하게 잡혀가고 고문까지 당했는데, 자기와 가까운 류성룡이 더 강하게 막아줬으면 좋았을 것이다.

다만 정치 현실을 보면 류성룡이 대놓고 이순신 편을 들기 어려운 면도 있었다. 류성룡은 이미 이순신을 천거한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이 너무 노골적으로 감싸면 선조 입장에서는 “역시 둘이 한패네?” 하고 더 의심할 수 있었다.

그래서 류성룡은 정탁처럼 전면에서 구명운동을 하기보다는, 이순신의 공적을 인정하면서 큰 벌만은 피하게 하려는 식으로 움직였다. 말하자면 “이순신 죄가 아예 없습니다!”가 아니라 “잘못이 있다 해도 그동안 세운 공이 있으니 죽이지는 마시죠” 쪽이었다.

정탁이 하드캐리한 것은 맞다. 류성룡은 이 문제에서 주인공은 아니다. 하지만 완전히 손 놓고 친구를 버렸다고만 보는 것도 단순화다.

이순신이 백의종군에서 풀려난 뒤 류성룡 집에 들러 밤새 이야기를 나눴다는 일화도 있다. 둘 사이가 완전히 박살난 것은 아니었다고 볼 수 있다.

이일과 신립 평가

류성룡은 이일신립을 좋게 보지 않았다.

이일은 북방에서 활동한 무장이었지만, 이순신을 모함한 전적 때문에 류성룡에게 좋게 보일 수가 없었다. 류성룡은 이일이 인사를 해도 대놓고 무시했다는 식의 일화가 전해진다. 쉽게 말하면 “지는 도망치고, 이긴 장수를 모함한 놈이 뭔 말을 하냐” 모드였다.

신립의 경우는 조총 문제에서 갈렸다. 류성룡은 일본군의 조총을 가볍게 보면 안 된다고 봤지만, 신립은 조총을 크게 위협적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리고 탄금대에서 조선군은 왜군의 조총 운용에 크게 당했다.

신립이 무조건 바보였다는 뜻은 아니다. 신립은 여진족을 상대로 기병전을 해본 경험이 있는 장수였고, 조선식 전투 경험에서는 나름 자신감이 있었다. 문제는 일본군이 전혀 다른 방식의 전쟁을 들고 왔다는 점이다. 류성룡은 그 변화의 냄새를 맡았고, 신립은 기존 경험을 믿다가 망했다.

징비록

류성룡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책이 바로 징비록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의 원인, 전개, 조선 조정의 실책, 전쟁 중의 혼란, 일본군의 침략, 명나라 원군, 조선 장수들의 활약 등을 기록한 책이다. 제목의 뜻은 대충 “지난 일을 반성해서 뒤의 일을 경계한다”는 의미다.

이게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기 때문이다. 징비록은 임진왜란을 직접 겪은 최고위 관료가 남긴 기록이다. 전쟁 당시 조정 내부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조선이 왜 그렇게 털렸는지, 어떤 인물들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볼 수 있는 핵심 자료다.

쉽게 말하면 류성룡은 전쟁 끝나고 “아 시발 힘들었다” 하고 드러누운 게 아니라, “우리가 왜 처맞았는지 기록으로 남겨야 후손들이 덜 처맞는다” 하고 반성문 겸 매뉴얼을 쓴 것이다.

물론 후손들이 그걸 읽고 항상 잘 배웠느냐 하면 그건 또 별개의 문제다. 인간은 원래 시험 전날에도 오답노트를 안 본다.

정치적 한계

류성룡이 완벽한 인물은 아니었다.

우선 동인, 남인 계열의 정치인이었기 때문에 붕당 정치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조선 조정의 당파 싸움은 임진왜란 와중에도 사라지지 않았고, 류성룡도 그 정치판 안에 있었다.

또한 전쟁 전 조선의 대비 부족에서 완전히 책임이 없다고 할 수도 없다. 류성룡 혼자 나라를 운영한 것은 아니지만, 고위 관료였던 이상 조선이 전쟁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책임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다만 흔히 나오는 “율곡 이이의 10만 양병설을 반대했다”는 이야기는 조심해서 봐야 한다. 10만 양병설 자체가 후대에 과장되거나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지적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걸 가지고 “류성룡이 10만 대군을 막아서 임진왜란이 터졌다!” 식으로 몰아가는 건 너무 유치한 국사만화식 해석이다.

류성룡의 진짜 한계는 초능력자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임진왜란이라는 재난은 이미 조선 사회 전체의 누적된 문제, 군사제도의 부실, 정치적 오판, 일본 정세 오판, 선조의 무능, 지방 방어 체계 붕괴가 한꺼번에 터진 결과였다. 류성룡 혼자 손가락 튕겨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파직과 말년

류성룡은 전쟁 중 엄청난 역할을 했지만,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정치적 공격을 받고 물러났다. 조선 조정은 전쟁이 끝나기도 전에 책임론과 당쟁이 다시 불타올랐다. 언제나 그렇듯 진짜 고생한 사람은 욕먹고, 뒤에서 입만 턴 놈들은 평가질을 했다.

결국 류성룡은 관직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돌아갔다. 이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징비록을 남겼다. 말년의 류성룡은 화려한 권력자라기보다는, 전쟁의 폐허와 조선 정치의 한계를 모두 겪은 노재상에 가까웠다.

그는 1607년에 세상을 떠났다.

평가

류성룡은 조선 역사에서 손꼽히는 명재상이다. 특히 임진왜란이라는 초대형 위기 속에서 그나마 조정이 완전히 붕괴하지 않도록 붙잡은 인물 중 하나다.

장점은 명확하다.

  • 이순신을 알아본 인사 감각
  • 권율 등 유능한 인물 등용
  • 선조의 명나라 망명 저지
  • 전쟁 중 행정과 군제 정비
  • 임진왜란 기록인 징비록 저술
  • 조선이 왜 망할 뻔했는지 반성하려는 태도

단점도 있다.

  • 원균 천거라는 대형 흑역사
  • 전쟁 전 대비 부족에 대한 고위 관료로서의 책임
  • 이순신 구명 과정에서의 소극성 논란
  • 붕당 정치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했던 한계

그래도 종합하면 류성룡은 까기보다는 인정해야 할 부분이 훨씬 큰 인물이다. 조선 조정에 류성룡 같은 사람마저 없었다면 임진왜란은 더 처참하게 흘러갔을 가능성이 높다.

조선은 이순신이 바다에서 버티고, 권율이 육지에서 한 방 먹이고, 의병들이 지방에서 일어나고, 명나라가 참전하면서 겨우 살아남았다. 그리고 그 뒤쪽에서 행정과 인사와 기록을 붙잡고 있던 문관 중 하나가 류성룡이었다.

즉 류성룡은 칼 들고 왜군을 베는 타입의 영웅은 아니었다. 대신 사람을 고르고, 제도를 고치고, 왕을 말리고, 기록을 남기는 타입의 영웅이었다.

게임으로 치면 직접 딜량 1위는 아닌데, 파티 전체 생존률을 올려주는 사기 서포터다. 문제는 파티장이 선조였다는 것뿐이다.

후손 관련

류성룡의 후손으로는 여러 인물이 언급된다. 다만 인터넷에서 “누가 류성룡 직계후손이다” 같은 이야기는 은근히 섞여 돌아다니므로 조심해야 한다.

배우 류시원이 류성룡의 직계후손이라는 식의 이야기가 돌기도 했지만, 정확히는 직계후손으로 보기 어렵다는 반박이 있다. 반면 유시민은 풍산 류씨 서애 류성룡 후손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후손이 뭘 했다고 해서 류성룡 본인의 평가가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조상이 류성룡이라고 자동으로 지능 버프 받는 것도 아니고, 후손이 사고쳤다고 류성룡이 원균 되는 것도 아니다. 혈통빨로 역사 평가하면 조선 왕실은 진작 서버 종료다.

여담

대한민국 해군의 세종대왕급 구축함 중에는 서애 류성룡함이 있다. 문관 이름이 이지스함에 붙은 셈인데, 묘하게 잘 어울린다.

류성룡은 칼 들고 돌격하는 장수는 아니었지만, 임진왜란이라는 국가 총력전에서 전략, 행정, 인사, 기록을 담당한 인물이다. 그러니 현대 해군 함정 이름으로 붙어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세종대왕급 구축함은 화력도 좋고 존재감도 큰 배라서, “문관인데 전투력이 이상하게 높아 보이는 류성룡” 이미지와도 은근히 맞는다.

한줄 요약

이순신이라는 치트키를 뽑고, 조선 멸망 버튼을 간신히 막고, 전쟁 끝난 뒤에는 징비록으로 오답노트까지 남긴 조선의 전쟁 수습형 명재상.

원균 천거라는 흑역사가 있긴 하지만, 그래도 류성룡은 임진왜란기 조선 조정에서 몇 안 되는 정상 작동 부품이었다. 조선이 완전히 터지지 않은 이유를 찾다 보면 결국 이순신, 의병, 명군, 권율 같은 이름들과 함께 류성룡도 반드시 튀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