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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생년월일 1898년 11월 21일
사망일 1967년 8월 15일
국적 벨기에
출생지 벨기에 레신
학력 브뤼셀 왕립미술학교
직업 화가
장르 초현실주의


르네 프랑수아 길랭 마그리트(René François Ghislain Magritte, 1898년 11월 21일 ~ 1967년 8월 15일)는 벨기에의 화가이자 초현실주의를 대표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다. 파이프를 그려놓고 그 아래에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써버린 《이미지의 배반》, 얼굴을 사과로 가린 남자를 그린 《인간의 아들》, 하늘에서 중절모 쓴 남자들이 비처럼 떨어지는 《골콩드》 등으로 유명하다.

마그리트의 그림은 살바도르 달리처럼 녹아내리는 시계나 기괴한 생물을 앞세우는 방식과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너무 평범하고 정돈된 사물들을 아주 현실적으로 그려놓고, 그 사물들의 관계만 이상하게 꼬아버리는 경우가 많다. 파이프는 파이프처럼 생겼고, 사과는 그냥 사과고, 양복 입은 남자는 정말 양복 입은 남자인데 그게 있어야 할 장소가 아니거나, 크기가 말도 안 되거나, 서로 논리적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 보면 “이 정도면 나도 그리겠는데?” 싶다가 잠깐 뒤에 “근데 왜 이렇게 기분이 이상하지?”가 된다.

마그리트는 사물을 괴물로 바꾸지 않고도 현실을 이상하게 만드는 법을 보여준 화가였다. 그의 작품은 회화뿐 아니라 광고, 패션, 앨범아트, 영화, 그래픽디자인 등 현대 시각문화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생애

어린 시절과 미술 공부

마그리트는 1898년 벨기에 레신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재단사이자 섬유 관련 일을 했고, 어머니는 모자 제작 관련 일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집안은 중산층에 가까웠지만 가족생활이 안정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유명한 사건은 마그리트가 13세였던 1912년 어머니가 강에 몸을 던져 사망한 일이다.

이 사건과 관련해 오랫동안 마그리트가 어머니의 시신을 직접 봤는데 얼굴이 옷으로 덮여 있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졌고, 후대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얼굴을 가린 인물과 연결시키면서 “아 어머니 시신 본 트라우마 때문에 얼굴 가린 사람을 그렸구나.”라고 설명하곤 했다.

문제는 이 이야기가 확실한 사실인지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마그리트 자신도 이런 식의 정신분석적 해석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의 그림에 얼굴을 가린 사람이 나온다고 해서 어머니 사망 → 트라우마 → 얼굴 천이라고 너무 간단하게 연결하는 것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마그리트는 작품에 숨겨진 개인적 상징을 심리학적으로 해석하는 것보다, 그림 그 자체가 만들어내는 모순과 사고의 충돌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마그리트는 청소년기부터 미술에 관심을 보였고 1916년 브뤼셀 왕립미술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는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배웠지만 교육방식 자체에는 크게 만족하지 못했다.

초기에는 인상주의와 미래주의, 입체주의 등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1920년대 초 작품을 보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중절모 + 사과 + 구름 마그리트와는 꽤 다르다.

한동안 벽지 디자인과 광고 그래픽 작업도 했다.

즉 처음부터 미술관에서 존나 철학적인 그림만 그리며 살았던 화가는 아니고, 생계를 위해 상업디자인 일을 상당히 오래 했다. 이 경험은 나중에 그의 작품에도 영향을 줬다.

마그리트 그림은 구도가 깔끔하고 사물이 매우 명확하게 보이며, 광고 이미지처럼 즉각적으로 시선을 잡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그림을 한 번 보면 잘 안 잊힌다.

초현실주의와 파리 시절

마그리트의 방향을 크게 바꾼 작품은 이탈리아 화가 조르조 데 키리코의 그림이었다.

데 키리코는 텅 빈 광장, 이상하게 긴 그림자, 고전 조각과 기차 같은 서로 어울리지 않는 요소들을 한 화면에 배치하는 형이상학적 회화를 그렸다.

마그리트는 데 키리코의 작품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고, 여기서 잘 그리는 것보다 서로 상관없어 보이는 것들을 어떻게 만나게 하느냐가 훨씬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926년 무렵부터 본격적인 초현실주의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1927년 브뤼셀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하지만 평가는 좋지 않았다.

이후 아내 제제트와 함께 파리로 이주했고, 1927년부터 1930년까지 앙드레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초현실주의 그룹과 교류했다.

이 시기에 막스 에른스트, 호안 미로, 살바도르 달리 등 여러 초현실주의 작가들과 접촉했다.

하지만 마그리트는 성격이나 작품세계 모두 파리 초현실주의자들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브르통을 중심으로 한 프랑스 초현실주의는 꿈, 무의식, 자동기술법, 프로이트 정신분석에 강하게 영향을 받았다. 반면 마그리트는 무의식의 이미지를 그냥 쏟아내는 것보다 사물과 언어의 관계, 이미지와 현실의 차이,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정말 무엇인가 같은 철학적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같은 초현실주의자라고 해도 달리와 마그리트는 상당히 다르다.

달리가 꿈속에서 본 이상한 걸 존나 정밀하게 그리기라면, 마그리트는 일상적인 걸 존나 정상적으로 그린 뒤 논리 하나만 박살내기에 가깝다.

전쟁기와 후기

제2차 세계대전 중 마그리트는 갑자기 화풍을 바꾼 적이 있다.

이른바 르누아르 시기다.

1943년경부터 밝고 화사한 색채와 인상주의적인 붓질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전쟁으로 유럽 전체가 어두워진 상황에서 일부러 밝고 즐거운 이미지를 그리려 했다고 설명된다.

기존 마그리트의 차갑고 정확한 그림과 비교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 작품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응은 별로 좋지 않았다. 사람들이 원하는 마그리트는 기괴한 현실이었지 예쁜 인상주의 그림이 아니었다.

1947~1948년에는 또 한 번 이상한 시기를 보냈다. 이른바 바슈(Vache) 시기다.

강렬한 색채와 만화 같은 형태, 거친 표현을 사용했고, 당시 파리 미술계와 초현실주의 내부 분위기를 조롱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스타일을 만들었다는 해석이 많다.

쉽게 말하면 “그래? 니들이 예술 가지고 존나 진지하게 굴지? 그럼 내가 일부러 개판으로 그려준다.”에 가까운 시기였다.

둘 다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고, 결국 마그리트는 다시 우리가 아는 깔끔하고 차가운 화풍으로 돌아왔다.

1950년대 이후 마그리트는 국제적으로 점점 더 유명해졌다. 뉴욕과 런던 등에서 전시가 열렸고 미국 미술계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특히 1960년대 팝아트가 등장하면서 마그리트의 단순하고 명확한 이미지가 새롭게 주목받았다.

1967년 마그리트는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향년 68세.

브뤼셀의 스하르베크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작품 세계

이미지와 현실

마그리트의 작품을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주제는 그림은 현실 그 자체가 아니다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작품이 1929년의 《이미지의 배반》이다.

그림에는 누가 봐도 파이프가 그려져 있다.

그런데 아래에는 프랑스어로 Ceci n'est pas une pipe. /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혀 있다.

처음 보면 “뭔 개소리임. 파이프 맞잖아.”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마그리트 말이 맞다.

그림 속 파이프는 진짜 파이프가 아니다. 담배를 넣을 수도 없고 불을 붙일 수도 없다. 그냥 파이프를 그린 그림이다.

이 작품은 사물 / 그 사물을 그린 이미지 / 그 사물을 가리키는 단어 이 셋이 서로 같지 않다는 점을 보여준다.

우리는 평소 그림 속 사과를 보면 그냥 사과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사과가 아니라 물감으로 만들어진 사과 이미지다.

마그리트는 이런 너무 당연한 사실을 일부러 이상하게 만들어서 다시 생각하게 했다.

언어와 기호

마그리트는 그림에 문자를 넣는 작업을 자주 했다.

사물과 단어를 일부러 엉뚱하게 연결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신발 그림 아래에 이라고 적는 식이다.

그러면 보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그림과 단어가 충돌한다.

인간은 사물을 볼 때 그냥 눈으로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알고 있는 언어와 개념을 통해 해석한다.

마그리트는 이걸 일부러 망가뜨렸다.

“네가 보는 게 진짜 사물임? 아니면 네 머릿속 이름표임?”이라고 묻는 셈이다.

이런 관심은 훗날 철학과 기호학에서도 자주 언급됐고, 특히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글을 통해 마그리트 작품을 분석하기도 했다.

반복되는 이미지

마그리트 작품에서는 몇몇 이미지가 계속 반복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중절모 남자다.

검은 중절모와 양복을 입은 남자가 얼굴을 가리고 있거나 뒤돌아 있고, 때로는 같은 모습의 남자가 수십 명씩 반복된다.

이 인물은 마그리트 본인의 모습과도 어느 정도 닮아 있다. 실제로 마그리트 자신도 평범한 양복과 중절모를 즐겨 입었다.

다만 단순한 자화상이라기보다는 특징 없는 현대인의 익명성을 보여주는 이미지에 가깝다.

특별한 영웅이나 귀족이 아니라 어디서나 볼 법한 평범한 중산층 남자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지거나 얼굴이 사과에 가려져 있다.

평범함과 비정상적인 상황이 동시에 존재하면서 마그리트 특유의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사과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가장 유명한 것은 《인간의 아들》로, 중절모를 쓴 남자 얼굴 앞에 초록색 사과가 떠 있다.

마그리트는 인간이 항상 무언가를 보고 싶어 하지만 보이는 것 뒤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는 식의 설명을 남겼다.

또 다른 대표 이미지가 하늘과 구름이다.

마그리트 그림에서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은 엄청 자주 나오는데, 문제는 그 하늘이 정상적인 장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방 안에 하늘이 들어가기도 하고, 새의 몸 안이 하늘로 채워지기도 하고, 밤 풍경 위에는 낮의 밝은 하늘이 떠 있기도 한다.

구름이 피투성이거나 폭풍치는 게 아니라 그냥 존나 평화로운 하늘인데 존재하는 장소가 틀렸다.

마그리트 특유의 초현실성이 바로 이런 방식이다.

화풍

마그리트 작품은 기술적으로 보면 의외로 전통적이다.

붓질이 엄청 과격한 것도 아니고 형태를 입체주의처럼 분해하지도 않는다.

사물은 대부분 알아보기 쉽게 그린다.

그래서 초현실주의자 가운데서도 특히 대중 접근성이 높다.

달리 그림을 보면 “이게 대체 뭐임?”부터 나오는데, 마그리트 그림은 “사과네. 사람네. 구름이네. 근데 왜 저기 있음?”이 된다.

이 차이가 상당히 중요하다.

마그리트는 그림을 어렵게 만들기 위해 사물을 이상하게 그린 게 아니라, 익숙한 사물을 익숙하지 않은 관계로 배치했다.

예를 들어 방 안에 있는 빗이 건물만큼 커지거나, 새의 몸 안이 하늘이 되거나, 사람 얼굴 앞에 사과가 떠 있는 식이다.

현실의 문법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문장 하나에서 단어 하나만 바꿔서 전체 의미를 이상하게 만드는 방식과 비슷하다.

주요 작품

《이미지의 배반》

1929년 제작.

파이프 그림 아래에 Ceci n'est pas une pipe.라고 적혀 있다.

마그리트 작품 가운데 철학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작품이다.

한국어로는 《이미지의 배반》, 《이미지의 반역》 등으로 번역된다.

이 작품 때문에 “이것은 ○○가 아니다”라는 표현 자체가 현대 디자인과 대중문화에서 수도 없이 패러디됐다.

《연인들》

1928년 작품.

남녀가 키스하고 있는데 두 사람 모두 얼굴 전체가 흰 천으로 가려져 있다.

굉장히 로맨틱한 상황인데 얼굴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동시에 불편하고 답답한 느낌을 준다.

이 작품은 마그리트의 어머니 죽음과 연결해 해석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 연관성은 확정된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가까이 있어도 상대를 완전히 알 수 없다 같은 관계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자주 해석된다.

《잘못된 거울》

거대한 인간의 눈을 화면 가득 그린 작품이다.

그런데 홍채 부분에 푸른 하늘과 구름이 펼쳐져 있다.

눈은 세상을 바라보는 기관이지만 그림에서는 오히려 눈 자체 안에 세계가 들어 있다.

마그리트의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이라는 주제를 매우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골콩드》

1953년 작품.

도시 건물 앞 하늘에 중절모와 코트를 입은 남성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떠 있다.

마치 사람이 비처럼 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각 인물은 거의 비슷하게 생겼지만 자세와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현대사회의 획일성과 익명성을 연상시키지만 마그리트는 특정한 정답을 작품에 붙이는 것을 피했다.

그냥 사람이 비처럼 떠 있음이라는 불가능한 상황 자체가 작품의 핵심이다.

《빛의 제국》

마그리트가 여러 버전으로 제작한 연작이다.

화면 아래에는 가로등이 켜진 어두운 밤의 집과 나무가 있고, 그 위 하늘은 대낮처럼 밝고 푸르다.

그림의 각 요소는 전부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집도 정상이고 나무도 정상이고 하늘도 정상이다.

그런데 밤 + 낮이 한 화면에 동시에 있다.

마그리트가 얼마나 적은 조작만으로 현실을 비현실적으로 만들 수 있었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 가운데 하나다.

《피레네의 성》

바다 위 허공에 거대한 바위가 떠 있고, 그 위에 작은 성이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는 절대 가능하지 않은 장면인데 그림 자체는 매우 차분하게 그려져 있다.

중력 하나만 무시했을 뿐 나머지는 너무 현실적이다.

이게 마그리트다.

《인간의 아들》

1964년 작품.

중절모와 코트를 입은 남자가 바다 앞에 서 있고 얼굴 앞에는 초록색 사과가 떠 있다.

아마 일반 대중에게 가장 유명한 마그리트 이미지다.

원래는 친구의 요청을 받아 제작한 자화상 성격의 작품에서 출발했다.

하지만 얼굴이 사과에 가려져 있기 때문에 사실상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없다.

이 이미지는 이후 영화, 광고, 패션, 음반 디자인 등에 셀 수 없을 정도로 패러디됐다.

마그리트를 몰라도 얼굴 앞에 사과 떠 있는 아저씨는 본 사람이 많다.

개인사와 기타 활동

상업미술

마그리트는 순수미술만 했던 사람이 아니다.

젊은 시절 오랫동안 광고와 그래픽디자인 작업을 했다.

포스터, 광고, 악보 표지 등의 디자인을 제작하며 생계를 유지했고, 초현실주의 화가가 된 뒤에도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상업작업을 계속했다.

덕분에 그의 작품에는 현대 광고와 상당히 잘 맞는 특성이 있다.

사물이 명확하고, 구도가 단순하고, 한눈에 알아볼 수 있으며, 이미지 하나가 매우 강하다.

그래서 마그리트 작품은 훗날 광고업계가 존나 좋아했다.

이미 그림 자체가 카피 한 줄 붙이면 바로 광고처럼 생긴 경우가 많다.

아내 제제트

마그리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아내 제제트 베르제였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 처음 만났고 이후 다시 만나 1922년 결혼했다.

제제트는 마그리트의 모델로 자주 등장했고, 그의 작품활동을 오랫동안 지원했다.

두 사람의 결혼생활이 항상 완벽했던 것은 아니다.

마그리트에게 다른 여성과의 관계가 있었고, 제제트 역시 다른 관계를 가졌던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결국 두 사람은 평생 부부관계를 유지했다.

제제트는 마그리트가 사망할 때까지 함께했고, 사후에도 작품 보존과 유산 관리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정치와 논란

마그리트는 정치적으로 좌파 성향이 강했다.

벨기에 공산당에 가입하기도 했고 전쟁 전후로 여러 차례 공산주의 활동에 관여했다.

하지만 당 조직과의 관계는 지속적으로 원만하지는 않았다.

마그리트는 예술을 정치선전 도구로만 사용하는 태도를 싫어했고, 당의 문화정책과 충돌하기도 했다.

결국 공산주의자는 맞는데 당에서 시키는 대로 그림 그릴 생각은 없음이라는 상당히 예술가다운 관계였다.

마그리트 생애에는 위조 논란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 마그리트와 그의 동료들이 유명 화가 작품의 위작 제작에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피카소·브라크·키리코 등의 작품을 모방한 위작을 만들었다는 증언과 연구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에는 가짜 지폐 제작과 관련된 일화도 알려져 있다.

세부범위와 직접적인 참여 정도에는 자료마다 차이가 있지만, 철학적인 초현실주의 거장 이미지만 보다가 이런 이야기를 접하면 상당히 당황스럽다.

영향과 평가

마그리트의 영향은 미술계 밖에서 오히려 더 쉽게 볼 수 있다.

광고와 그래픽디자인에서 얼굴을 사물로 가리기, 평범한 물체를 비정상적으로 크게 만들기, 하늘과 실내를 섞기, 현실적인 사물을 불가능한 위치에 배치하기 같은 방식은 이제 너무 흔해서 원조가 누구인지 신경도 안 쓸 정도가 됐다.

영화와 뮤직비디오에서도 마그리트적인 이미지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중절모를 쓴 남자, 사과로 가린 얼굴, 구름이 들어간 실루엣 같은 요소는 거의 하나의 시각언어가 됐다.

마그리트 작품을 직접 본 적 없는 사람도 마그리트식 이미지는 이미 수백 번 봤을 가능성이 높다.

대중문화에서도 《인간의 아들》의 얼굴 앞 사과 이미지는 광고, 영화포스터, 잡지표지, 음악앨범 등에서 수도 없이 변형됐고, 《이미지의 배반》의 이것은 ○○가 아니다 문구 역시 거의 밈 수준으로 사용된다.

영화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에서도 마그리트 이미지가 직접적으로 활용됐고, 여러 뮤직비디오와 패션화보에서도 그의 작품을 연상시키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심지어 인터넷 밈에서 이것은 밈이 아니다 같은 문장만 봐도 사실상 마그리트 후손이다.

마그리트는 그림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화가라기보다 이미지를 생각하는 방식을 바꾼 화가에 가깝다.

그는 회화가 현실을 재현하는 창문이라는 전통적인 개념을 계속 의심했다.

파이프를 그린다고 파이프가 되는 것도 아니고, 사람 얼굴을 그린다고 그 사람을 완전히 보여주는 것도 아니다.

그림은 현실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이미지일 뿐이다.

지금은 이런 이야기가 익숙하지만 20세기 초반 회화에서는 상당히 강력한 문제제기였다.

그래서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화가인 동시에 현대 철학, 기호학, 광고, 디자인과 연결되는 작가로 평가된다.

달리가 초현실주의의 미친 꿈이라면,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의 철학 문제에 가깝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림을 어렵게 만들어놓고 “현대미술입니다. 이해하세요.”라고 하는 대신, 누구나 아는 사과와 파이프와 구름을 가지고 사람 머릿속을 꼬아버렸다는 점이 마그리트의 가장 큰 강점이었다.

브뤼셀과 마그리트

마그리트는 파리에서 활동한 기간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생애를 벨기에 브뤼셀에서 보냈다.

프랑스 초현실주의와 깊게 연결되어 있으면서도 끝까지 벨기에 화가라는 정체성이 강했다.

브뤼셀에는 현재 마그리트 미술관이 있다.

벨기에 왕립미술관 단지 안에 있으며 마그리트 작품과 자료를 대규모로 소장하고 있다.

그가 실제 거주했던 집을 활용한 르네 마그리트 박물관도 별도로 있다.

그래서 벨기에 입장에서는 초콜릿, 맥주, 오줌싸개 동상, 그리고 마그리트 정도가 대표 문화상품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여담

  • 본명은 르네 프랑수아 길랭 마그리트다.
  • 1898년 벨기에에서 태어났다.
  • 대표적인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다.
  • 파리 초현실주의 그룹과 활동했지만 생애 대부분은 브뤼셀에서 보냈다.
  • 앙드레 브르통과 교류했다.
  • 조르조 데 키리코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
  • 젊은 시절 광고와 그래픽디자인으로 돈을 벌었다.
  • 중절모를 쓴 남자는 마그리트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반복 이미지 가운데 하나다.
  • 마그리트 자신도 실제로 중절모와 양복을 자주 입었다.
  • 《이미지의 배반》에 적힌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 실제로 그림은 파이프가 아니므로 틀린 말이 아니다.
  • 《인간의 아들》은 얼굴 앞에 초록색 사과가 떠 있는 작품이다.
  • 《골콩드》에는 중절모 남자들이 하늘에 수십 명 떠 있다.
  • 《빛의 제국》은 밤의 거리와 낮의 하늘이 동시에 존재하는 그림이다.
  • 어머니의 죽음과 작품 속 얼굴을 덮은 천을 직접 연결하는 해석은 유명하지만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 마그리트는 자신의 그림을 단순한 심리적 상징으로 해석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 자기 작품에 등장하는 사물 하나하나를 “이건 죽음을 의미한다” 식으로 푸는 것도 싫어했다.
  • 실제로 그림 제목조차 작품 내용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 제목을 지을 때 친구들에게 의견을 묻기도 했다.
  • 1940년대에는 갑자기 인상주의처럼 밝게 그린 르누아르 시기가 있었다.
  • 그다음에는 일부러 조악하고 만화 같은 그림을 그린 바슈 시기도 있었다.
  • 둘 다 일반인이 아는 마그리트 이미지와는 상당히 다르다.
  • 위작 제작에 관여했다는 기록과 증언도 있다.
  •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이 강했고 벨기에 공산당에도 참여했다.
  • 1967년 췌장암으로 사망했다.
  • 현재 브뤼셀에 대규모 마그리트 미술관이 있다.
  • 마그리트 작품은 저작권 보호기간과 국가별 법률 문제 때문에 이미지 사용 시 별도의 확인이 필요하다.
  • 인터넷에서 사람 얼굴에 과일 하나 붙여놓으면 높은 확률로 마그리트 냄새가 난다.

대표작

  • 《이미지의 배반》 (1929)
  • 《연인들》 (1928)
  • 《잘못된 거울》 (1929)
  • 《인간의 조건》 (1933)
  • 《금지된 재현》 (1937)
  • 《시간의 정지》 (1938)
  • 《빛의 제국》 연작
  • 《골콩드》 (1953)
  • 《피레네의 성》 (1959)
  • 《위대한 가족》 (1963)
  • 《인간의 아들》 (1964)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