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제갈량이 최후를 맞이한 곳. 현재 중공기준으로 섬서성 보계시 기산현 오장원진 남쪽에 있다. 사진에서 배모양으로 둘러싸인 구릉지대가 오장원이다.
원래 제갈량은 생전 마지막 북벌때 부풍군 미현의 위수이남까지 올라간다음 위수 프리패스로 장안을 조질 생각이었지만 위나라군에게 바로 갔다가 좆될 수 있으니 진령산맥과 가까운 곳에 베이스캠프를 세우기로 했고 그 베이스 캠프로 선정된 땅이 그 오장원이었다.
면적이 대략 7km^2정도인데 서울 종로구의 평창동이 8km^2정도니 거의 한국의 동수준에 해당하는 경작지를 가지고 있는데다 남쪽에는 한중으로가는 퇴각로인 야로곡, 동쪽 사수를 건너면 관중평야가 있어서 진격에도 좋고 구릉자체도 높아서 촉나라가 베이스캠프로 삼기에는 딱 좋은 곳이었다.
여기서 제갈량은 계속 사마의가 지키고 있던 위나라 진영을 계속 슴만튀를 하면서 계속 100여일간 공격을 했었고 나중에 위군에게 제대로 죽빵하나 갈길 수 있는 타이밍에.....
故 제갈량이 사망한다.
오장원 전투
때는 234년, 제갈량의 제5차 북벌이자 마지막 북벌이었다.
촉군은 오장원에 진을 치고 사마의가 이끄는 위군과 위수를 사이에 두고 100일 넘게 대치했다.
제갈량은 사마의를 어떻게든 끌어내려고 도발했지만 사마의는 이전 북벌에서 제갈량과 싸워본 짬이 있었는지 수비에 틀어박혀 나오질 않았다.
제갈량 입장에서는 장기전으로 가면 머나먼 한중에서 군량을 계속 끌고 와야 하는 촉군이 불리했기 때문에 현지에서 둔전까지 실시하며 버텼다.
그러나 결국 위군을 제대로 박살내기도 전에 제갈량의 몸이 먼저 버티지 못했고 오장원에서 병사했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
제갈량이 죽은 뒤 촉군이 철수하자 사마의가 이를 추격했는데, 촉군이 다시 진형을 갖추고 반격할 것처럼 나오자 사마의가 물러났다는 일화가 있다.
여기서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는다
라는 유명한 말이 나왔다. 중달은 사마의의 자다.
정작 제갈량은 이미 죽어있는데 사마의는 제갈량이 뭔 수작을 부리는 건가 의심했던 셈.
삼국지연의에서는 아예 제갈량이 자기 목상을 만들어 놓아 사마의를 낚는 것으로 각색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제갈량 사후 중국 공산화 초기부터 한동안 중공군의 훈련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제갈량이 죽었던 곳이라 충분히 관광지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그냥 농사짓고 민속신앙 졸라믿고 사는 깡촌 오장원진으로 남아있다고 한다. [1]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없는 논밭은 아니고 현재는 제갈량을 모시는 오장원 제갈량묘가 있으며 삼국지 관련 유적지로 관광객도 찾는다.
제갈량이 여기서 죽기는 했지만 묻힌 곳은 아니다. 유언에 따라 시신은 한중의 정군산에 안장되었다.
그러니까 제갈량 최후의 전장은 오장원, 무덤은 정군산이다. 헷갈리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