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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쓰지 데쓰로
和辻哲郎
생년월일 1889년 3월 1일
사망일 1960년 12월 26일
국적 일본
출생지 효고 현 히메지시
학력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철학과
직업 철학자, 윤리학자, 문화사학자
경력 교토제국대학 교수
도쿄제국대학 교수
일본윤리학회 초대 회장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 1889년 3월 1일 ~ 1960년 12월 26일)는 일본의 철학자, 윤리학자, 문화사학자다.

근대 일본 철학에서 니시다 기타로, 다나베 하지메, 니시타니 게이지 등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며, 특히 윤리학풍토론으로 유명하다. 교토학파와 밀접하게 활동했지만, 니시다처럼 순수 철학체계를 만드는 쪽보다는 인간관계, 사회, 문화, 역사, 기후와 환경이 인간 존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대표작은 《풍토》, 《윤리학》, 《인간의 학으로서의 윤리학》, 《일본윤리사상사》, 《고사순례》 등이 있다.

그의 철학에서 가장 유명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간가라(間柄, あいだがら), 즉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다.

와쓰지에게 인간은 혼자 떨어져 있는 개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하는 인간이었다.

그래서 인간을 이해하려면 개인의 내면만 들여다봐서는 안 되고, 가족·사회·국가·문화·자연환경까지 함께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점에서 근대 서양철학의 강한 개인주의적 인간관을 비판하면서 일본과 동아시아적 관계론을 철학적으로 정리하려 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생애

와쓰지 데쓰로는 1889년 3월 1일 효고현 히메지 인근 니부노 지역에서 태어났다.

집안은 대대로 마을 의사를 하던 비교적 유복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지역 주민들을 진료하는 의사였고 와쓰지는 그런 환경에서 성장했다.

어릴 때부터 문학을 좋아했다. 특히 서양문학에 강하게 끌렸으며 한때는 조지 고든 바이런 같은 시인이 되고 싶어했다고 한다.

히메지중학교를 거쳐 1906년 제1고등학교에 입학했고, 1909년 도쿄제국대학 문과대학 철학과에 진학했다.

철학을 전공했지만 젊은 시절의 관심은 상당히 문학적이었다. 소설과 희곡을 쓰기도 했고 문예잡지 활동에도 참여했다.

당시 일본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주던 프리드리히 니체, 쇠렌 키르케고르 등 유럽 철학자에게 관심을 가졌으며, 초기 저술 역시 서양철학 연구가 중심이었다.

1914년 《니체 연구》, 1915년 《키르케고르》를 출간했다.

이 시기만 보면 그냥 서양철학 존나 열심히 공부하던 일본 청년이었다.

그런데 점차 관심이 일본 고대문화와 불교, 미술, 사상사 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한다.

일본문화로의 전환

와쓰지의 사상적 방향을 크게 바꾼 계기 가운데 하나는 일본 고대문화와 불교미술을 다시 발견한 것이었다.

젊은 시절 그는 서양문학과 철학을 거의 압도적으로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점차 일본의 고대사와 불교미술을 연구하면서 일본 전통문화에도 상당한 철학적 깊이가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1919년 출간한 《고사순례》는 이런 전환을 대표하는 책이다.

나라 지역의 고찰과 불상, 고대 미술품 등을 돌아본 여행기 형식의 책인데 단순 관광기가 아니라 일본 고대문화와 종교미술을 철학적·미학적으로 해석했다.

책은 상당한 인기를 끌었고 와쓰지를 대중적으로 알려진 지식인으로 만들었다.

이후 《일본고대문화》, 《일본정신사연구》 등을 발표하면서 일본문화사 연구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도겐의 철학에도 주목했다.

오늘날 도겐이 일본 철학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되는 데에는 와쓰지를 비롯한 근대 연구자들이 그의 사상을 철학적으로 재평가한 영향도 컸다.

교토제국대학

1925년 와쓰지는 니시다 기타로 등의 권유를 받아 교토제국대학 문학부 윤리학 강좌에 부임했다.

이 시기부터 그의 관심은 본격적으로 윤리학으로 이동했다.

불교윤리사상과 서양윤리학을 함께 연구하면서 인간 존재를 관계 속에서 이해하는 독자적인 윤리학을 만들기 시작했다.

교토에는 당시 니시다 기타로를 중심으로 훗날 교토학파라고 불리게 되는 철학자들이 모여 있었다.

와쓰지도 이들과 긴밀하게 교류했기 때문에 흔히 교토학파 주변 인물 또는 넓은 의미의 교토학파 철학자로 분류된다.

다만 니시다나 다나베와 달리 와쓰지의 연구 중심은 형이상학보다는 윤리학과 문화사였다.

그래서 교토학파인데 약간 다른 방향으로 간 인간 정도로 보는 편이 편하다.

1927년에는 독일 유학을 떠났다.

유럽에서 마르틴 하이데거의 철학을 접했고, 특히 인간 존재를 시간성 중심으로 설명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 큰 자극을 받았다.

그런데 와쓰지는 여기서 “인간이 시간 속에 존재하는 건 알겠는데 공간은?” 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이 의문이 나중에 대표작 《풍토》로 발전한다.

풍토

1935년 출간된 《풍토 - 인간학적 고찰》은 와쓰지의 가장 유명한 저서 가운데 하나다.

여기서 말하는 풍토는 단순히 기후만 뜻하지 않는다.

기온, 습도, 계절, 지형, 바람, 자연환경과 그 환경 속에서 형성된 인간의 생활방식과 문화 전체를 포함하는 개념이다.

와쓰지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고 봤다.

사람이 어떤 지역에 살고 어떤 기후를 경험하는지가 생활방식뿐 아니라 문화와 사고방식에도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그는 세계의 풍토를 크게

  • 몬순형
  • 사막형
  • 목장형

등으로 구분했다.

몬순형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처럼 습하고 비가 많은 지역, 사막형은 중동처럼 건조한 지역, 목장형은 유럽의 비교적 온화한 지역을 가리킨다.

그리고 각각의 자연환경 속에서 다른 인간관계와 문화가 형성된다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몬순 지역에서는 인간이 거대한 자연의 힘에 순응하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고, 사막에서는 자연과 대립하며 살아가는 태도가 강해진다고 설명했다.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이런 분류가 너무 거칠고 환경결정론적으로 보이는 부분도 많다.

실제로 “기후가 이러니까 이 민족 성격은 이렇다” 식으로 읽으면 상당히 위험한 논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와쓰지가 말하려던 핵심은 인간을 순수한 정신이나 개인으로만 이해하면 안 되고, 인간이 살아가는 공간과 자연환경까지 인간 존재의 일부로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하이데거가 인간 존재의 시간성을 강조한 데 대한 일종의 보완이자 비판이었다.

인간과 간가라

와쓰지 윤리학의 핵심 개념은 인간(人間)이라는 단어 자체에 있다.

일본어의 人間은 한국어로도 인간이라고 읽는데, 한자를 그대로 보면 사람 人 + 사이 間 이다.

와쓰지는 이 점을 철학적으로 파고들었다.

인간은 단순히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존재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한 개념이 간가라(間柄)다.

한국어로는 관계, 사이, 관계성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

가족, 친구, 직장, 지역사회, 국가처럼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혼자 존재하는 것처럼 보여도 언어부터 생활방식까지 이미 다른 사람과 사회로부터 받은 것이다.

그래서 와쓰지에게 윤리학은 “개인이 어떻게 착하게 살 것인가?” 만을 연구하는 학문이 아니라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가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 를 연구하는 학문이었다.

이게 그의 윤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개인과 공동체

그렇다고 와쓰지가 개인을 없애고 집단만 중요하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그의 인간관에서 인간은 동시에 개인이면서 공동체의 구성원이다.

개인이 공동체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과정과, 다시 공동체와 관계를 맺는 과정이 반복된다고 봤다.

와쓰지는 이것을 일종의 부정의 운동으로 설명했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태어나지만 사회에 완전히 녹아 없어지는 존재도 아니고, 사회와 아무 관계 없이 완전히 독립된 존재도 아니다.

이 두 방향 사이를 계속 오간다.

그래서 그의 윤리학을 단순하게 일본인은 집단주의라서 개인보다 사회가 중요함 정도로 요약하면 꽤 많이 잘라먹는 셈이다.

와쓰지가 비판한 것은 개인 그 자체보다 개인을 사회관계와 분리해서 절대적인 존재처럼 보는 인간관이었다.

《윤리학》

와쓰지의 철학적 주저는 1937년부터 1949년 사이 세 권으로 출간된 《윤리학》이다.

이 책에서 그는 인간 존재의 관계성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윤리학 체계를 구축했다.

와쓰지가 말하는 윤리는 단순한 도덕규칙 목록이 아니다.

가족과 친구, 경제조직, 국가 등 여러 인간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관계를 맺는지를 분석하는 학문이다.

개인은 공동체를 부정하면서 독립하지만, 결국 다시 다른 사람과 관계를 형성한다.

이 반복되는 과정의 기반을 와쓰지는 공(空) 또는 절대적 부정과 연결했다.

여기에는 불교철학의 영향이 상당히 강하다.

서양 윤리학, 마르틴 하이데거, 불교, 일본 전통사상을 한 냄비에 넣고 자신만의 인간관계론을 만든 셈이다.

도쿄제국대학

1934년 와쓰지는 도쿄제국대학 문학부 교수로 옮겼다.

이곳에서 윤리학 강좌를 담당했고 이후 그의 대표적인 철학 저술들이 본격적으로 완성됐다.

도쿄대학 윤리학 연구의 기반을 확립한 인물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며, 그의 학문적 영향은 이후 일본 윤리학계에 상당히 오래 남았다.

전후인 1950년에는 일본윤리학회가 창설되면서 초대 회장을 맡았다.

1955년에는 일본 정부로부터 문화훈장을 받았다.

일본윤리사상사

와쓰지는 일본 사상사 연구에도 큰 업적을 남겼다.

대표작 《일본윤리사상사》에서는 고대부터 근대까지 일본인의 윤리의식과 사회관계가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분석했다.

천황제, 무사사회, 불교, 유교 등 일본사회의 여러 사상적 요소를 윤리학의 관점에서 해석했다.

와쓰지는 일본을 단순히 서양보다 뒤늦게 근대화한 국가로 보지 않고, 일본 안에도 독자적인 윤리사상의 역사적 전통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이 연구는 일본 사상사 연구에서 큰 영향을 미쳤지만 동시에 와쓰지 철학이 가장 많이 비판받는 지점과도 연결된다.

전쟁과 국가주의 논란

와쓰지를 평가할 때 피하기 어려운 문제가 일본 제국의 전쟁과 국가주의에 대한 태도다.

1930~1940년대 일본이 군국주의와 전쟁으로 치닫던 시기에 와쓰지는 일본의 전통적 공동체와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윤리를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글을 썼다.

특히 도쿄제국대학에서 담당한 국민도덕론 강의와 일본윤리사상 연구에서 존황사상과 천황제를 일본 윤리의 중요한 축으로 다뤘다.

문제는 이런 논리가 당시 국가주의와 쉽게 결합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개인보다 관계와 공동체를 강조한 그의 철학도 국가가 개인에게 희생을 요구하던 전시체제에서는 “개인은 국가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 는 논리를 정당화하는 데 이용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전후에는 와쓰지의 윤리학이 일본 제국주의와 국가주의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한 것 아니냐는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이건 단순히 후대 사람들이 억지로 시비 건 문제가 아니라 와쓰지 연구에서 지금도 중요한 논쟁거리다.

반대로 그의 철학 전체를 군국주의 이론으로만 환원하는 것도 지나치다는 견해가 있다.

와쓰지가 개인의 자율성을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며, 그의 관계론과 풍토론에는 현대의 공동체론, 환경철학, 문화철학으로 확장할 수 있는 부분도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결국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냈는데 시대가 하필 제국 일본이었다 정도로 끝낼 수 없는 복잡한 문제다.

그의 철학 자체가 당대 국가주의와 실제로 어디까지 연결됐는지는 지금도 계속 연구되고 있다.

전후

1945년 일본의 패전 이후 와쓰지는 자신의 국가관과 일본문화론을 다시 검토해야 했다.

전후에도 연구와 집필을 계속했으며 정치와 현대사회에 대한 관심을 유지했다.

1950년에는 《쇄국》을 발표했다.

이 책에서는 일본의 근세 쇄국정책과 대외관계를 문화사적 관점에서 분석했다.

또 불교철학과 일본문화, 미술사 연구를 계속하면서 《가쓰라리큐》, 《가부키와 조루리》 등 다양한 분야의 저술을 남겼다.

젊은 시절 니체와 키르케고르에서 시작해 고대 일본문화, 불교, 윤리학, 기후, 건축, 연극까지 다 건드렸다.

철학자라기보다는 인문학 전체를 돌아다닌 인간에 가깝다.

사망

와쓰지 데쓰로는 1960년 12월 26일 도쿄에서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향년 71세.

그가 남긴 저작은 이후 《와쓰지 데쓰로 전집》으로 정리됐으며, 철학뿐 아니라 윤리학, 종교학, 미술사, 일본문화사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다.

오늘날에도 일본 근대철학을 공부하면 거의 반드시 등장하는 인물이다.

특히 풍토간가라 개념은 일본 밖에서도 비교문화론, 환경철학, 인간관계론 등의 맥락에서 계속 논의된다.

평가

와쓰지 데쓰로는 근대 일본 철학자 가운데 비교적 자기 색깔이 뚜렷한 사람이다.

서양철학을 배운 뒤 “서양 철학자 말 번역해서 일본에 소개하겠습니다” 에서 끝난 게 아니라, 그 철학을 이용해 일본과 동아시아의 인간관을 다시 설명하려 했다.

특히 인간을 독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로 본 것은 그의 대표적인 공헌이다.

현대사회에서도 인간이 가족, 직장, 국가, 문화, 인터넷 공동체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문제의식 자체는 여전히 꽤 현대적이다.

풍토론 역시 환경이 인간의 생활과 문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인 면이 있다.

반면 인간관계와 공동체를 강조한 철학이 국가주의로 흘러갈 위험성도 실제 그의 생애에서 드러났다.

공동체가 중요하다는 말은 좋은데 “그럼 국가가 제일 큰 공동체니까 개인은 닥치고 국가에 따라라” 가 붙기 시작하면 갑자기 분위기가 이상해진다.

와쓰지 철학은 바로 이 지점 때문에 높게 평가받으면서 동시에 계속 비판받는다.

그래서 와쓰지를 읽을 때는 관계적 인간관과 풍토론의 독창성전시기 국가주의와의 관계를 둘 다 봐야 한다.

한쪽만 보면 반쪽짜리 평가가 된다.

여담

  • 이름의 일본어 발음은 わつじ てつろう다.
  • 1889년 효고현 히메지에서 태어났다.
  • 아버지는 마을 의사였다.
  • 젊은 시절에는 철학자보다 문학가가 되고 싶어했다.
  • 초기에는 프리드리히 니체쇠렌 키르케고르를 연구했다.
  • 대표작 《고사순례》가 큰 인기를 끌면서 일본 고대문화 연구자로도 유명해졌다.
  • 1925년 교토제국대학 윤리학 강좌에 부임했다.
  • 1927년 독일로 유학해 유럽을 체험한 것이 이후 《풍토》 집필의 중요한 계기가 됐다.
  • 마르틴 하이데거에게 영향을 받았지만 인간 존재에서 시간성만 지나치게 강조한다고 비판했다.
  • 그의 생각은 대충 시간도 중요하지만 인간은 어디서 누구랑 사느냐도 중요하다 정도로 이해하면 감을 잡기 쉽다.
  • 간가라(間柄)는 와쓰지 철학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개념 가운데 하나다.
  • 니시다 기타로와 가까운 학문적 환경에서 활동해 교토학파 계열로 자주 분류되지만, 본인의 독자적인 윤리학 체계가 상당히 강하다.
  • 1934년 도쿄제국대학으로 옮겼다.
  • 일본윤리학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 1955년 문화훈장을 받았다.
  • 1930~1940년대 일본의 천황제와 국가윤리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부분 때문에 전후 상당한 비판을 받았다.
  • 철학만 한 것이 아니라 불교, 일본사, 건축, 미술, 문학, 연극까지 연구했다. 연구범위가 상당히 넓다.
  • 현대에는 그의 풍토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 환경결정론적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철학적으로 제기했다는 점을 높게 평가하는 경우가 많다.

같이 보기

외부 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