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약 주변에 이러한 사람들이 있다면 바로 붙잡혀서 노예체험을 하게 될 수도 있으니 당신이 정상이라면 빨리 자리를 피하십시오.
하지만 당신의 목엔 이미 개목걸이가 채워졌습니다. Take it boy♂ Ah♂ Thank you, sir♂
이 문서 보고 쓰레기 생각한 당신, 당장 쓰레기한테 사과해.
잘못했습끄윽끅 살려주세어옼꼬로록

개요
마약사범신고는 국번없이 127마약사범신고는 국번없이 127
Smoke weed everydaySmoke weed everyday
만약 이 내용에 낚여서 피해를 보게 될 경우 원 작성자를 굴다리로 불러내서 존내 패버릴 것을 추천합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약을 팔아?"
대한민국에서 좆같이 유명한 마술사, 물리치료사
헝가리에는 해리 후디니가 있고 러시아에 막심 마르친케비치, 미국에 데이비드 카퍼필드, 조지프 매카시가 있다면, 헬조선에는 이근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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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은 예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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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요서울 인터뷰 중 남긴 희대의 명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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ㄴ 아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냐? 이 새끼가 말해서 그렇지, 아무나 박근혜를 고문해놓고 이렇게 말하면 존나 빨겠지.
활동 시기는 1981~1987년으로 지나가던 사람을 설렁탕 한 그릇과 볼펜심 하나만 사용하여 고향을 북한으로 바꾸는 요술이 주특기다. 이 요술로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그의 이름을 걸지 않은 마술 쇼는 향상 뉴스 일면을 차지했다고 한다. 오죽하면 오늘 문어 대가리 각하께서 그의 요술을 보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시었으며 안기부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요술을 배우라는 지시를 내렸을 정도다. 그의 가장 유명한 마술은 김근태 병신 만들기, 부림 쇼 등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이보다 더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마술사를 은퇴하고 먹사로서 휼륭한 삶을 계속하고 있으며 가끔 언론에 나와서 마술사 활동에 관해 인터뷰하는 정도다. 그의 마술은 애국보수들의 추억이 되었으며 지금도 대한민국 마술사 대부분은 그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진실
쿠쿡...크..으윽... 잠들었던 흑염룡이..!! 아아아아아아아악!!!!
ㄴ내용에 워해머 40k 드립이 섞여있길래 한번 틀 달아봄
대학도 못 나온 고졸 출신 무지랭이 순경이다. 이 새끼 집 서울시 서대문구 쪽인데 누가 찾아가서 안 죽임?
본명은 이근안. 1938년 경기도 양주 출생으로 경찰에 들어간 뒤 대공수사 분야에서 오래 활동했다. 계급 자체는 높지 않았지만 대공수사 쪽에서는 고문 기술로 악명이 높았고, 당시에는 '고문 기술자'라는 별명까지 붙었다.
특히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활동하면서 민주화운동 인사와 시국사범들을 상대로 수사를 벌였다. 문제는 그 '수사'라는 게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과 가혹행위가 포함된 경우가 많았다는 것. 결국 민주화 이후에는 대한민국 국가기관이 저지른 인권침해를 상징하는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반도에서 태어난 이단심문관로 본명은 인퀴지터 리(Inquisitor Lee)다. 뛰어난 심문 기술 덕분에 당시 반도를 지배하던 반인반신 황제 폐하와 이단심문소 요인들의 총애와 신임을 듬뿍 얻었다고 하는, 이단 심문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반도의 민주화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수많은 운동권 인사들이 이 자에게 카오스 이단으로 몰리고 이단 심문을 당해서 장애인이 되거나 폐인이 되어서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사람을 딱 죽기 직전까지만 괴롭히는 그의 이단심문술은 누구나 인정하는 유니크 스킬이라서 남영동 이단심문소 이외의 기관에 출장 심문도 많이 다녔다고 한다. 그가 자랑하는 심문 기술로는 정석적인 물 고문, 전기 고문, 거꾸리부터 코에 짬뽕 국물 붓기, 요도에 볼펜심 꽂기 같은 창의적인 기술도 있었다고 한다.
이근안에게 정말 죽지 않을 정도로 고문당한 대표적인 인물로 故 김근태 장관이 있다. 1985년 9월 4일부터 20일까지 약 16일을 이 놈에게 고문 당하면서 보냈다고. 그 후유증으로 파킨슨 병과 심혈관계 질환을 달고 살았지만 수술대나 진료용 의자에 누우면 당시 고문하던 기억이 떠올라서 치료도 제대로 못 받았다고 한다.
김근태는 당시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사건으로 연행되어 서울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다. 훗날 본인이 당시 고문을 구체적으로 증언하면서 이근안의 이름 역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이 사건은 단순히 "옛날 군사정권 때 좀 심하게 수사했다"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라, 국가기관이 정치적 목적의 수사 과정에서 조직적으로 고문을 사용했다는 대표적인 사례로 남았다. 김근태가 이후 정치인이 된 뒤에도 고문 후유증을 오랫동안 겪었기 때문에 이근안이라는 이름도 한국 현대사의 고문 문제와 거의 세트로 따라다닌다.
도피와 처벌
민주화 이후 고문 피해자들의 고소가 이어지자 이근안은 1988년 잠적했다.
그리고 그냥 며칠 숨어 있었던 수준이 아니라 무려 11년 동안 도피생활을 했다. 경찰 출신 고문기술자가 경찰 수배망을 10년 넘게 피해다녔다는 점 때문에 당시에도 상당한 논란이 되었다.
결국 1999년 자수하면서 긴 도피생활이 끝났다. 이후 김근태 고문 사건 등에 대한 재판을 받아 징역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재미없는 현실을 한 줄로 요약하면
사람을 잡아다 고문하던 경찰 → 수배자가 되어 11년간 숨어다님 → 결국 감옥 감
이라는 기막힌 인생 테크를 탔다.
후에 대한예수교 장로회에서 목사안수 받고 진짜 목사가 되어 활동했다. 헬조선이 이상한 건지 개독 놈들이 이상한 건지 하여튼 참으로 판타스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목사로 일할 당시 신도들에게 설교 중 김근태를 고문하던 이야기를 하면서 "밧데리를 들이대면서 겁을 줬더니 쫄아서 빌빌대더라." 같은 말을 자랑스럽게 한 적이 있다고 한다. 결국 제명 당하긴 했지만. 기독교는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용서하라는 교리를 가르치는 종교 아니었나요?? 사실 황제교 프리스트였다 카더라.
간혹 이 인간을 애국자라고 커버 치는 머가리가 노릇노릇하게 익어버리다 못해 소련제 전차 포탑 사출 되듯이 날아간 놈들이 진짜로 존재하는데, 이근안이 니 잦이에 볼펜심을 박는다고 한 번 생각해보길^^;
목사 활동
출소 이후에는 신학을 공부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또 한번 사람들을 벙찌게 만들었다.
문제는 단순히 과거를 참회하고 조용히 종교생활을 한 것이 아니었다. 이후 인터뷰와 강연 등에서 과거의 고문 행위에 대해 피해자들이 기대할 만한 수준의 반성보다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듯한 발언을 여러 차례 하면서 다시 논란이 되었다.
특히 자신을 '애국자'로 여기거나 당시 대공수사를 국가를 위한 행동이었다는 식으로 주장하면서 피해자 측과 인권단체의 거센 비판을 받았다.
결국 소속 교단에서도 문제가 되었고 목사직에서 제명되었다.
고문 피해자가 살아 있는데 가해자가 목사가 되어 자기 행동을 정당화하고 있었으니 한국 현대사의 블랙코미디가 따로 없다.
억울한 이근안
이근안만큼의 네임드는 아니더라도 군사정권에서 비슷하게 대공수사 전문이었으며 수사 중의 가혹행위 관련하여 문제가 된 검사, 경찰 간부가 여럿 있었다. 대부분 민주화 이후 고소, 고발을 당하고도 무혐의 등으로 처벌을 받지 않았다. 빽 없는 순경 출신 이근안은 억울해서 우럭다고 한다.
- ㄴ전형적인 디씨 좆문가 새끼의 헛소리다. 실제론 이 사람이 빽 없다고 짖어대는 그 이근안을 법정에 세우기 위해 유족들과 시민 단체가 십수 년을 싸워야 했다. 게다가 결국 그것도 모조리 실패했음. 빽이 없긴 씨발.
- ㄴ실제로는 공소시효가 다 지나갈 때까지 여러 사람 빽으로 숨어 지내다가, 공소시효가 연장된다고 하니까 방법을 바꿔서 자수하고 양형 받아서 일찍 풀려난 거다. 염병...
- ㄴ이근안 외에도 그 짓거리 한 작자들 적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대표적으로 갑제옹 고문해서 주화입마시킨 정X근...), 이근안이 빽이 없었다는 건 개가 토할 소리지.
이 틀의 오른쪽 새끼가 이근안이다. 씹극혐.
ㄹ황
물론 그 근황은 좋을 수도 있고 안 좋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 지금 보고 있는 내용보다 더 최신의 소식을 알고 계신다면 문서에 서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디시위키가 섭종하는 바람에 이 틀은 영원히 승리 출소 짤로 고정될 예정입니다.
퇴직금 반환 소송걸었는데 패소했다.
퇴직 이후에도 과거 경찰 재직 당시의 고문 행위 때문에 국가가 피해자에게 지급한 배상금과 관련한 구상권 문제 등이 계속 따라다녔다.
한편 본인은 자신에게 지급되지 않은 퇴직금을 돌려달라는 소송도 냈지만 패소했다.
결국 이근안은 단순히 "옛날에 악명 높았던 경찰 한 명" 정도가 아니라, 군사정권 시절 대공수사기관의 고문과 국가폭력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로 이름을 남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