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진군이며, 순욱의 외손자이다. 아버지를 닮아 청렴하였고 능력도 출중한 위나라 금수저 엄친아의 정석이었다.
여기저기서 뇌물과 공물이 들어왔으나 모두 거두지 않고 발신자만 적어둔 다음, 출세한 후 다시 낙양에서 다 돌려보냈다.
곽회 밑에서 강유의 북벌 때부터 등장하여 계속해서 전공을 세운다. 곽회가 사망한 후, 강유의 4차 북벌 때 옹주, 양주의 군권을 모두 이어받게 된다.
그 후 강유가 여러번 북벌을 시도했을 때 훌륭하게 막아내고 사마소에게 신임을 얻는다.
260년, 조모 시해 사건 때 조조의 마지막 직계 핏줄인 조모가 대낮에 길거리에서 창 맞고 죽자(사마소의 명령을 받은 가충이 자기 부하를 시켜서 일어난 짓) 사마씨를 비판하는 입장에 있었다. 사마소가 이 때 문무백관을 소집했는데 진태만 안 왔다. 그래서 외삼촌 순외를 보내 수레에 태워서 데리고 오게 한 뒤 밀실에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겠느냐?'고 묻자 진태는 '오직 가충을 죽여야하니 그렇지 않으면 천하를 향해 사죄할 방법이 없습니다.'고 했다. 사마소 입장에선 지저분한 일을 맡겼던 가충을 죽이긴 그래서 차선책을 생각해보라고 하자 '저는 최선책만을 생각하지 차선책은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거나 '그 이상은 있어도 그 이하는 없습니다.'(가충의 위에 있는 사마소 너님이 책임져라)고 답했다.
정사 삼국지에선 진수가 이 일화를 누락시켰는데 다른 역사서에선 피를 토하고 죽었다느니 자살했다느니 하는 흉흉한 얘기가 나오는걸로 봐선 아무래도 이 일로 찍혀서 그리 편하게 가진 못한듯. 덕분에 역사적으로 보면 사마씨를 비판하고 조가를 옹호하다가 제거당했다는 설이 아주 유력하다.
일반적으로는 사마부가 조위 마지막 충신이라고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이 양반이야말로 조위 마지막 충신이라고 봐도 될 지도.
진태 사후, 후임자로 등애가 대촉 사령관을 맡게 된다.
김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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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아무리 막말을 하더라도 트럼프급 능력자는 아니니 그냥 정계은퇴 하세요
촛불이 바람불면 꺼진다는 분. 횃불을 가져와서 화형을 시켜주자.
우리공화당에는 아직 안 갔다. 안 간거 때문에 박사모와는 적이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