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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들의 노예야~"

개요
《곡성》(哭聲, The Wailing)은 2016년 5월 12일 개봉한 대한민국의 미스터리·공포·스릴러 영화로, 추격자와 황해를 연출한 나홍진 감독의 세 번째 장편영화다. 곽도원, 황정민, 천우희, 쿠니무라 준 등이 출연했다.
갓홍진 감독의 신작이다.
5월 6일 평론가 평이 올라왔는데 올해 개봉한 쓰레기같은 한국영화들과는 다르게 반응이 매우 좋다.
현재 스크린을 독점하고 있는 시빌워에 대항하려는 영화다.
엑스맨한테 개발릴줄 알았는데 엑스맨이 평가가 좆망하면서 개봉하면 당분간 1위는 이게 될듯 시빌워는 슬슬 끝나가고.
결국 시빌워를 반달하는데 성공했다.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된 영화다. 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아가씨와 비경쟁 부문에 초청된 부산행과 같이 칸영화제 입성.
1년에 3개나 초청된건 확실히 대단한거다.
실제로 《곡성》은 제69회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초청돼 2016년 5월 18일 상영됐다. 나홍진 감독은 앞서 《추격자》와 《황해》도 칸 영화제에 초청받은 바 있어, 장편 연출작 세 편이 연속으로 칸에 소개되는 기록을 세웠다.
상영시간은 156분으로 일반적인 공포영화에 비해 긴 편이지만, 단순히 귀신이 튀어나오는 장면을 반복하는 영화는 아니다. 평범한 시골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을 통해 의심, 공포, 종교적 믿음과 인간의 무력함을 다룬다.
특히 누가 선이고 누가 악인지 쉽게 판단할 수 없도록 정보를 배치했다는 점에서 관객의 추리와 해석이 중요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무엇인고?
야 근데 고어틀은 왜 달려있는거냐 딱히 고어틱하진 않는데.
종교성(굿판질)이 가미된 미스테리 공포 스릴러물이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작품인데 명작이라고 찬양하거나 거지같은 영화라고 까거나 관객들이 매우 극단적인 반응을 보인다.
보는 내내 "아니 시발 대체 뭔 소리여 이건?" 하겠지만
사실 답은 다 나와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안 무서우니까 걱정마라. 니가 새가슴이거나 초딩이면 다르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무섭다기보단 기분 나쁘다 라는 표현이 적절하다.
상영 시작할때 제공사가 20세기 폭스로 나왔다고 "어 뭐야, 잘못들어왔나?" 하는 놈들 있는데 제대로 찾아 온거 맞으니까 앉아있어라 좀.
《곡성》은 당시 20세기 폭스의 한국영화 제작·배급 사업을 통해 만들어진 작품이다. 미국 회사의 로고가 나온다고 할리우드 영화관에 잘못 들어온 것은 아니다.
영화는 귀신과 악마를 비롯한 초자연적 존재를 다루지만, 그 존재를 과학적·논리적으로 설명하기보다는 인물들이 무엇을 믿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기독교의 악마와 부활, 한국의 무속신앙, 일본의 전통적인 요괴 이미지가 뒤섞여 있으며, 각 문화의 상징을 알고 보면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많다.
사실은 코미디물이다
사실은 코미디물이다.
번개에 쳐맞아도 평소에 고라니 달여 쳐먹으면 살 수 있으며.
ㄴ 라는데 실제로 벼락맞는다고 반드시 뒤지는건 아니다.
딸래미의 신변이 위급한 순간에 앰창이라는 개드립을 날리는 우정에서 우리는 폭소를 할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뭣이 중한디라는 대사가 나와서 한동안 관련드립이 지속되었다.
무거운 분위기의 공포영화임에도 중간중간 예상치 못한 코미디 장면이 나온다. 특히 곽도원이 연기한 종구의 어설픈 행동과 주변 인물들의 대화는 긴장감을 완화하면서도 사건의 비극성을 더욱 강조한다.
그중 효진의 대사인 뭣이 중헌디!는 영화의 대표적인 유행어가 됐다. 영화 자체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이 대사를 따라 할 정도로 널리 퍼졌다.
다만 이런 코미디가 영화를 가볍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평범하고 우스꽝스러운 일상을 보여준 뒤 공포스러운 사건이 일어나기 때문에 더욱 불쾌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형성된다.
등장인물
종구
곽도원이 연기한 주인공으로, 곡성의 경찰관이다.
평범한 시골 경찰이지만 마을에서 잇따라 발생하는 살인사건을 조사하면서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린다.
특히 딸 효진에게 이상 증세가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경찰관으로서의 판단력과 아버지로서의 감정이 충돌한다.
영화의 핵심은 종구가 특별히 똑똑하거나 멍청한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신이 가진 정보로 최선의 판단을 내리려고 하지만, 상대가 인간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면 그 판단 자체가 무의미해질 수 있다.
일광
황정민이 연기한 무당이다.
종구는 딸의 이상 증세를 해결하기 위해 일광을 불러 굿을 진행하지만, 그가 진정으로 누구를 위해 행동하는지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중요한 의문으로 남는다.
일광은 자신이 영적인 존재와 싸우고 있다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여러 장면은 그의 진짜 목적을 의심하게 만든다.
특히 외지인과의 관계, 일본식 속옷, 희생자들의 사진 등이 주요한 해석의 단서로 사용된다.
무명
천우희가 연기한 정체불명의 여성이다.
마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며 종구에게 경고하지만, 정작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종구는 무명의 말을 믿어야 할지, 일광의 말을 따라야 할지 갈등한다.
무명이 실제로 마을을 보호하는 존재인지, 아니면 또 다른 방식으로 종구를 현혹하는 존재인지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존재한다.
외지인
쿠니무라 준이 연기한 일본인 남성이다.
마을에 나타난 뒤 기이한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주민들의 의심을 받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행동, 외딴집에 보관된 사진, 기묘한 의식 등이 밝혀지면서 사건의 중심인물로 떠오른다.
영화 후반부에는 인간의 모습을 벗어난 악마적 형상이 등장한다. 다만 작품에서 누가 무엇을 믿었고 어떤 장면이 객관적 사실이었는지를 해석하는 문제는 별도로 남는다.
흥행
《곡성》은 2016년 5월 개봉 이후 강력한 할리우드 영화들과 경쟁하면서 흥행에 성공했다.
당초에는 어렵고 음산한 영화라는 점에서 대중적인 흥행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지만, 입소문과 영화 해석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지면서 예상보다 많은 관객을 모았다.
최종 누적 관객은 약 688만 명으로, 나홍진 감독의 당시 최고 흥행작이 됐다.
반달한 영화들
참고로 개봉 하루치 성적이다.
이날도 물론 시빌워가 5000회 이상의 상영횟수로 영화계를 휘어잡고 있었지만
곡성은 1500회 정도의 상영횟수로 10만관객 이상을 동원했고
반면에 시빌워는 75000정도 밖에 못나왔다.
5월 12일 기준으로 스크린수와 상영 횟수가 시빌워를 돌파했다.
아포칼립스 개봉이후 반달당했지만
6월 7일에는 곡성이 아포칼립스를 반달했다.
ㄴ 위의 기록은 2016년 개봉 당시 실시간 박스오피스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영화별 상영횟수와 관객 수는 날짜에 따라 달라지며, 최종 누적 흥행 순위와는 구별해야 한다.
흥행의 특징
《곡성》은 일반적인 대중영화보다 해석하기 어렵고 어두운 분위기를 가지고 있음에도 상당한 흥행을 기록했다.
특히 결말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오히려 온라인에서 영화에 관한 토론을 활성화했다.
관객들은 외지인과 일광의 관계, 무명의 정체, 굿의 목적, 사진의 의미 등을 분석하며 서로 다른 해석을 제시했다.
이처럼 관객이 영화를 본 뒤에도 계속 이야기를 나누게 만들었다는 점은 《곡성》의 흥행에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였다.
스포일러 관련 여담
어떤 병신이 페이스북에 범인은 OOO이다 라고 존나 큰글씨로 대놓고 스포해서 많은 사람들이 발광했다.
스포한 이유가 CGV의 매출을 낮추기 위해서라고(?).
당연히 욕 바가지로 머금. 덧글보면 그딴 논리로 스포 왜하냐 식이다.
근데 황정민이 범인 맞냐?
황정민 역할은 굳이 필요 없는데 말이지.
황정민이 마을 사람, 딸내미, 주위 인물들을 무뇌충으로 만든것도 아니다. 또 그런 황정민을 죽일라카는 무명의 정체마저 밝혀진게 별로 없다.
ㄴ 내가 보기에도 황정민은 굳이 필요없는 존재는 맞음.
ㄴ 감독이 직접 해석에 의견이 많이 갈릴 수 있다고는 말했지만 황정민이 필요없는 존재라는것에는 동의 못하겠다. 이 영화의 주제가 오컬트적인 요소를 짬뽕시켜놓은건데 우리나라 토속신앙을 대표하는 황정민이 안나왔다면 영화에 구멍뚫린듯이 상당히 부족했을것이다.
근데 황정민의 정체는 마지막 황정민이 상자를 떨구는데 그 상자에는 지금까지 모아둔 사진들이 수두록한걸 보아, 타지역에서 이지랄을 한것으로 예상되며 무명이 황정민 보고 여긴 왜 왔냐는 소리를 한 것도 황정민은 외지인과 같은 악마고 그냥 다른 지역에서 했던거 뿐임 황정민 팬티하고 외지인 팬티가 비슷한거 같은데 악마들은 팬티 그렇게 입나봄ㅋ.
ㄴ 훈도시입고 배우 생긴것도 도깨비스럽게 생긴거 보면 일본 오니 이미지다. 설정도 오니고.
황정민 역할필요없다거한것도 무뇌충이다 걔가있어서 관객들이 혼란과 추리를 하게끔만드랴는게 감독의도다 황정민은 귀신의 추종자 같은걸로 의심된다 도망칠라할때 나방같은가 존나 날라와서 도망못가게했거든 악마가 ㅇㅇ.
ㄴ 그건 천우희일 수도 있다.
위에글 삭제하고싶다 개멍청하다 황정민이 가지고있던사진은 악마가 가지고있던 사진이다 븅신아.
원래 각본이야기 #
스포일러가 특히 문제가 되는 이유
《곡성》은 범인이 누구인지 밝히는 일반적인 추리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관객은 종구와 함께 외지인, 일광, 무명에 관한 정보를 얻으며 각자의 정체를 추리하지만, 새로운 장면이 등장할 때마다 이전의 판단을 수정하게 된다.
따라서 특정 인물이 선인지 악인지 미리 알고 영화를 보는 것과 아무런 정보 없이 관람하는 것은 감상에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다만 결말을 알고 보더라도 작품에서 사용한 종교적 상징과 복선, 배우들의 연기를 새롭게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다.
스토리 정리


사건의 시작
전라남도 곡성의 한 마을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살인사건이 연이어 발생한다.
사건의 가해자들은 평소와 전혀 다른 기이한 행동을 보여주고, 피부에 이상 증세가 나타나는 등 일반적인 범죄사건과는 다른 모습을 보인다.
마을 사람들은 사건의 원인이 외지에서 온 일본인 남성과 관련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경찰관 종구는 처음에는 주민들의 미신과 소문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사건을 조사할수록 설명하기 어려운 현상들을 직접 경험한다.
효진의 이상 증세
종구의 딸 효진에게도 마을의 다른 피해자들과 비슷한 이상 증세가 나타난다.
종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외지인을 찾아가기도 하고, 무당 일광을 불러 굿을 진행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행동들이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종구는 경찰관이지만 사건에 관한 객관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며, 아버지로서의 절박함 때문에 점점 비합리적인 판단을 내리게 된다.
굿과 외지인의 정체
일광이 굿을 진행하는 장면과 외지인이 고통받는 장면이 교차 편집되면서, 관객은 일광이 외지인을 공격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동시에 효진 역시 고통받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굿의 실제 대상이 누구인지 의문이 생긴다.
여기에 무명이 개입하면서 종구는 더욱 혼란스러운 상황에 빠진다.
결말
영화 후반부에서 외지인은 기독교적 악마를 연상시키는 형상으로 등장한다.
일광이 가지고 있는 사진들은 그가 외지인과 연관된 인물이라는 해석을 뒷받침한다.
반면 무명은 종구에게 일정한 조건을 지키라고 경고하지만, 종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결국 그 말을 따르지 않는다.
영화는 모든 사건의 인과관계를 완전히 해명하기보다 종구의 선택과 그 결과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끝난다.
이때 관객 역시 종구와 마찬가지로 어떤 정보가 진실인지 확신하기 어렵다는 점이 중요하다.
영화의 주제
낚시 당하지 말라. 실제로 영화상에서 악마와 한패인 황정민이 곽도원보고 미끼를 물었다라고 표현한다.
근데 자기 딸이 뒤질려고 하는데 차분히 낚시인지 아닌지 판단할수 있는 애비가 몇이나 될까?
영화 초반에 외지인이 낚시를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또한 극중에서도 황정민이 낚시에 관련된 이야기를 해준다.
'왜 하필이면 자네딸이냐고? 그 어린것이 뭔죄가있다고~? 자네는 낚시할적에 뭐가 걸릴건지 알고 미끼를 던지는가? 그놈은 미끼를 던진것이여, 자네 딸은 그 미끼를 확 물어분것이고.'
즉 영화는 왜 외지인이 곡성에 와서 주민들에게 저주를 걸어 죽이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그래서 영화가 끝나면 사람들이 황당해 한다. 왜냐면 외지인이 왜 여기에 왔고 황정민은 어떻게 외지인과 같은패가 됐는지
마지막에 사진찍고 곽도원과 그 딸은 어떻게 됐는지가 안나오기 때문이다.
물론 사진이 찍힌다음엔 죽었던 다른 피해자들처럼 곽도원도 죽을것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여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중요한게 아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낚시대에 걸려서 물에 내려온 미끼를 보고 저건 진짜인가 아닌가 혹시 날 낚으려는건가 아닌가라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고민하다가 결국 낚시대의 미끼를 덥석 물고 낚이는 물고기인 곽도원을 보여주는 영화다.
이미 미끼를 문 물고기의 운명따위 안봐도 비디오 아닌가? 그래서 그 물고기가 매운탕이 됐든. 회가 쳐져서 먹히든
중요한건 그게 아니라 그 과정이다. 즉 곽도원이 끊임없이 의심하고 현혹 당하는 과정이 영화의 주된 주제인것이다.
관객은 마지막엔 외지인이 왜 곡성에 왔고 무슨 이유로 사람들을 저주해서 죽이는지 밝혀지겠지 하고 기대하지만
감독은 그 이유를 보여주지 않는다. 애초에 이유 따위가 없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에 곽도원이 황정민에게 왜 하필이면 우리딸이냐고 물어본다.
위에 적어놨듯이 아무 이유없다. 미끼에 걸리는 물고기가 인간에게 잡힌담에 왜라고 물어볼수 있다면
과연 낚시꾼이 뭐라고 대답할까? 아마 대답 못하거나. 니가 그걸 물었잖아 라고 대답할 것이다.
결국 영화는 외지인과 황정민 천우희 사이에서 끊임없이 의심하고 현혹되는 무기력한 곽도원을 보여주며
끝내 미끼를 물고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여줄뿐이다.
거기엔 이유가 없다.
마치 낚시바늘에 걸려 낚인 물고기처럼.
낚시와 미끼의 상징
영화에서 낚시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라 매우 중요한 상징으로 사용된다.
낚시꾼은 어떤 물고기가 미끼를 물지 미리 알 수 없으며, 물고기 역시 자신이 먹으려는 것이 먹이인지 함정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이러한 구조는 외지인과 종구의 관계에 대응된다.
종구는 딸을 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정보를 모으지만, 자신이 수집한 정보가 실제로는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던진 미끼일 수도 있다.
특히 악이 반드시 합리적인 이유를 가지고 특정한 사람을 공격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영화의 공포를 더욱 강화한다.
악한 존재가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를 알 수 없다면, 피해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알지 못한 채 고통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업보와 종교적 해석
반대로 천우희는 그 이유를 제시한다.
"네 딸 애비가 죄를 지었기 때문에" "네 딸 애비가 남을 의심하고 죽일려 하고 결국에 죽여버렸기 때문에" 피해자가 된 것이라 곽도원에게 알려준다.
따라서 네가 피해자가 된건 네 업보 때문이라고 곽도원에게 말하는 것이다.(불행이 업보로 인해 찾아온다는 것은 기존 종교의 입장을 대변함)
이는 인과관계가 도치된 개소리이므로 관객과 곽도원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 (따라서 기존 종교를 비판한다고 볼 수도 있음.)
네가 피해자가 된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고 주장하는 황정민.
네가 피해자가 된 이유는 네 업보 때문이라는 천우희.
이 두 주장 사이의 대비가 영화의 주제가 아닐까?
이 해석은 불행의 원인을 설명하는 서로 다른 두 관점을 대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한쪽에서는 고통에 특별한 이유가 없다고 설명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인간의 의심과 행동에 책임을 묻는다.
그러나 영화에서 제시되는 모든 종교적 상징을 하나의 일관된 교리로 해석하기는 어렵다.
특히 종구의 딸이 피해를 입게 된 사건의 출발점과 종구가 이후에 저지른 행동을 엄밀하게 구분하면, 피해자가 고통받는 이유를 전부 종구 자신의 업보로 설명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무명의 말을 불행의 직접적인 원인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할지, 아니면 종구가 이후에 내린 선택에 대한 경고로 이해할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감독의 제작 동기
이를 뒷받침하는 감독의 인터뷰를 퍼왔다.
가까운 가족이 죽었다. 죽지 않아야 할 상황이었는데 죽었다. 당시 '황해'가 끝나고 난 뒤였는데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뭔가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너무 선한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세상을 떠났으니깐. 장례식에서 예배를 드리고 스스로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확장하고 확장했다. 그렇게 찾은 이유를, 시선을 부감으로 와이드해서 봤더니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나홍진 감독은 가까운 사람의 죽음과 그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경험이 영화의 출발점이었다고 설명했다.
왜 선한 사람에게도 불행이 찾아오는지, 세상에 악이 존재한다면 신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등의 질문을 작품 속에 담으려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곡성》은 단순히 일본인 악마가 마을을 공격하는 영화로만 볼 수 없다.
인간은 이해할 수 없는 불행을 만났을 때 그 원인을 찾으려 하고, 때로는 원인을 설명해 주는 사람을 무조건 믿거나 반대로 아무도 믿지 못하는 상태에 빠진다는 점이 중요한 주제다.
의심과 믿음
이 영화가 관객에게 반복적으로 묻는 질문은 누구의 말을 믿을 것인가?이다.
종구는 외지인을 의심하고, 일광을 믿으려 하고, 무명의 말을 듣고 다시 갈등한다.
그런데 어느 인물도 자신이 가진 모든 정보를 종구에게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관객 역시 종구가 가진 정보만으로 각 인물의 정체를 판단하려고 한다.
특히 마지막에 무명이 종구에게 요구하는 행동은 객관적인 증거를 확인하고 싶어 하는 인간의 태도와 충돌한다.
종구는 자신의 눈으로 확인해야 믿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 확인 자체가 치명적인 선택일 수 있다.
결국 《곡성》은 악마의 정체를 밝히는 이야기인 동시에 믿음과 의심이 인간의 판단을 어떻게 바꾸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로 해석할 수 있다.
영알못들을 위한 간단한 요약
왜 시발 하필 곡성에서 귀신들르고 쳐죽이고 개판이 났죠? = 윗놈말처럼 걍 이유가 없다. 굳이 추리하지마라.
일본 할배는 정체가 뭐죠? = 마지막 장면처럼 악마형상(사람들의 보편적 기준으로)을 한 인간이상의 존재다.(귀신) 지금 곡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온갖 괴현상의 주체다.
중간중간 환각버섯 떡밥은 뭐죠? = 맥거핀이다. 감독 말을 빌리자면 우리가 접하는 뉴스 그 이면에 있는 일들에 대해 좀 더 생각해보길 바랬다고 한다.
황정민은 정체가 뭔가요? = 일본 할배 따까리다. 옷갈아입을때 훈도시 입고 있었고 마지막 사진 촬영 및 일본인이 불태웠다고 말한 희생자들 사진 가지고 있음.
그럼 시발 사진은 왜 찍는데? = 옛날옛날 동서양을 불문하고 사진 찍으면 영혼을 뺏어간다는 미신이 있었다. 비슷한 의미의 오컬트적 장치라고 생각하면 된다.
황정민이 굿판 벌리면서 말뚝 박을때 일본 할배가 몸 비틀면서 엌엌거리던데 같은 편 맞음? = 일본 할배가 엌엌한건 전라도 처녀귀신이 와서 깽판친거고 황정민이 말뚝질할때 주인공 딸년도 엌엌거리고 사지 비틀어짐. 한마디로 굿판 자체가 마을에 살 뿌리는거다.
한 줄 요약 = 일본귀신이 곡성에 와서 깽판치고, 평범한 주인공이 여기에 휘말려 여기저기 현혹되는 무력함 속에 곡성 토박이귀신이 어찌저찌 막아보려 했으나, 황정민이라는 무당의 탈을 쓴 일본귀신 꼬봉 덕분에 저지하지 못한다. 끝!
ㄴ 위의 해석은 영화의 복선과 결말을 근거로 한 유력한 설명이다. 다만 모든 장면의 의미가 감독에 의해 공식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므로, 특히 무명의 정체와 굿의 작용 방식 등은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다.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인가?
밑에 이해 무새들은 영화자체가 이해못할 이유를 알수없는 종교적 행위들로 가득차있는데 뭘 이해하란건지 걍 병신들 어그로니까 무시하면되고 이 영화가 말하고싶은건 종교 자체가 악마적 성격을 가졌다는거 정확히 말하면 예수쟁이들 까는거지.
영화 보기 전에 예수 까는 영화라는 말 듣고 보면 예수를 악마로 표현했네로 마무리 되겠지만 종교에 1도 관심없고 공포영화 보러 온 사람들은 그래서 이게 뭔데 씹덕아 할수밖에 없는 영화.
니들이 믿는 성경에 나오는 예수는 죽었다가 부활한 악마라고 볼수있잖냐?로 끝나는데 예수쟁이들 기겁할 내용임.
실제로 영화 후반부에는 기독교의 예수와 악마를 연상시키는 시각적 상징이 사용된다.
특히 상처를 보여주고 자신의 존재를 믿으라고 하는 장면은 성경의 부활 이야기와 비교해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을 사용했다고 해서 영화의 주제가 기독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나홍진 감독은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앙과 악의 존재에 대한 질문이 영화 제작에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따라서 《곡성》은 종교를 단순히 조롱하기보다, 신의 존재와 악의 문제, 인간이 무엇을 믿을 수 있는지에 관한 의문을 제기하는 작품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평가
긍정
씹덕 + 급식일 경우(혹은 그냥 머가리가 비었거나) 이해하기 힘든 영화다. 둘중에 하나만 포함되면 그렇게 어렵진 않을수도...
ㄴ 곡성 이해했다고 부심부리냐 ㅋㅋ.
ㄴ 너 빼고 다 이해한다 ㅅㄱ.
일본 매체들은 영화, 드라마 애니 안가리고 메시지나 교훈, 신파를 주려고 애를 쓰는데다(중견, 원로 작가들은 그나마 덜하다) 너무 대사 등의 직접적인 방식으로 설명하려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데, 아무래도 외국인한테는 그게 너무 우습고 병맛으로 느껴진다.(해외에서 일본 영화가 유치하다는 평가를 당하는 이유 중의 하나다.)
그런 것들만 편식적으로 접한 오덕들은 애초에 머리 비우고 여캐들 하하호호 하는거 감상만해도 대사나 연출로 주제를 쉽게쉽게 표현해주는 방식이 익숙하다. 그러다 보니 연출이 은유적이고 복잡한 매체를 알아먹기가 힘들다. 일본 만화 전반을 자세히 꿰고있고 애니의 주제의식이나 메세지를 탐구해서 논문이나 평론도 쓸 정도의 전문가라면 몰라도.
곡성이 마침 그런영화인데 유명세가 있으니 보러갔는데 자기 머가리로는 이해를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요즘엔 워낙 무당이니 뭐니 하는게 대중매체에 나오지도 않고 무당 믿는 틀딱들도 거의다 뒤져서 세대교체가 되는 시대다 보니 주변에서 이런걸 보고 듣는거 없이 자란 급식들은 이 영화를 더더욱 이해하기 힘들다.
ㄴ 는 무당믿는 틀딱 아직있다. 것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
그래서 밑에놈마냥 떡밥회수를 좆나게 못했네 어쩌네 하는 개소리만 찍찍싸고 있지.
그래도 확실한건 떡밥회수 제끼고 배우연기력이나 연출은 쩔었음. 취향에 따라 갈릴진 몰라도 몰입력은 다들 쩐다고 하더라.
ㄴ 난 솔직히 별로.. 영화 나름 신경써서 만들긴 한거 같은데 딱히 재미가 없었다...
연출과 분위기
《곡성》의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히는 것은 나홍진 감독 특유의 긴장감 있는 연출이다.
영화 초반에는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기이한 사건들을 비교적 현실적인 방식으로 보여주다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사건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상황으로 관객을 몰아넣는다.
특히 굿판과 외지인의 행동을 교차 편집하는 장면은 관객의 판단을 의도적으로 혼란스럽게 만든다.
관객은 화면에 나타나는 장면들을 인과관계로 연결하려 하지만, 그 연결이 실제로 올바른 것인지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연출은 단순히 귀신이 등장하는 장면보다 더욱 강한 심리적 공포를 만들어낸다.
배우들의 연기
주연 배우들의 연기 역시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
곽도원은 평범한 경찰관이 점점 공포와 절망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황정민은 무당 일광의 기묘한 행동을 통해 영화의 불길한 분위기를 강화한다.
천우희는 상대적으로 적은 설명과 대사로도 무명의 신비로운 분위기를 유지한다.
쿠니무라 준 역시 외지인이 단순한 노인인지 초자연적인 존재인지 알 수 없도록 여러 가지 표정을 보여준다.
특히 배우의 표정이나 말투만으로 인물의 의도를 확정할 수 없다는 점이 영화의 미스터리를 강화한다.
해외 평가
《곡성》은 2016년 칸 영화제 비경쟁 부문에 공식 초청됐으며, 해외 언론과 영화평론가들에게도 상당한 관심을 받았다.
특히 한국적인 무속신앙과 기독교적 상징, 일본의 오컬트 이미지를 결합한 독특한 분위기가 주목받았다.
해외에서는 《The Wailing》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됐다.
부정
떡밥 회수를 종나게 못했다. 그저 반전에만 집착한 영화 아직도 황정민은 뭐하는 인간인지 알 수가 없다.
영화 결말을 보고 하는 자동적으로 '뭐야'가 나올 것 이다 결말도 존나 허무함.
기대치 이하라는 사람들이 많다. 범인이 누군지 알고보는 사람들도 모르고봐도 재미없을 것이라고 빈번히 말함.
너무 명작이라 일반사람들이 재미를 못느끼는 건지 국뽕이라 그런건지..
ㄴ 물론 결말이 존나 허무하고 반전에 과도하게 집착한건 ㅇㅈ하지만 떡밥회수 존나 못했다는건 동의못함. 어디까지나 약간의 종교적 이해가 필요해서 그렇게 보이는 것 뿐이다. 아마 두번 보면 이해 가능할듯.
황정민 누구냐고 구러는데 뇌가없지않는이상 알수밖에 없다 아이큐딸리면 그냥 글쓰지마라 뇌없는 인증 하는거다 영화속 의미부여를 전혀이못한놈들은 걍 시빌워나 오벤져같은 단순한거만 쳐봐라.
근데 어느 똑똑한 양반이와도 이 영화의 의미가 이것이다~ 하진 못할 것같다. 한가지 의미를 이해하고 나면 다른 부분에서 의문이 생기는 구조다. 감독이 설정에 대해 정확히 밝힌게 손에 꼽히는데 자기가 이해한게 맞는지 어떻게 확신하냐?
딴건 몰라도 영화 다 보고 나서도 황정민이 누군지 몰랐다면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 외지인이 악마의 모습으로 고라니를 쌩으로 씹어먹을때 훈도시를 입고 있었다. 황정민 또한 옷 갈아입을때 훈도시를 입은걸 의도적으로 보여줘서 외지인과 황정민은 둘다 나쁜놈 이라고 감독이 보여줌.
또한 사진기로 희생자 사진을 외지인과 같이 황정민이 찍는걸 보여줘서 외지인과 황정민이 둘다 같은패인걸 보여준다.
어느것 하나 확실하게 믿지 못하면서 초월적인 무언가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반대로 자신을 도와주길 바라는 영화 속의 주인공은 영화 밖의 관객들도 해당되지 않을까?
ㄴ 니미 씨발 의미부여 개오지네.
2016년 6월 25일 현재 660만이 돌파했다고 하는데 아무리 봐도 700만 가까이 볼 영화는 절대 아니다.
솔직히 곡성 재밌다 역대급이다 해서 봤는데 개소리고 그냥 볼만한 영화 정도지 절대 역대급 영화는 아님.
ㄴ 개인적으로 7번방의선물본후로 국산영화 좆같아서 거의안봤는데 곡성 꽤 볼만했음 뭐 영화란게 정답이없고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니까....
평론가 평점이 무시무시한데 무려 이동진이 만점을 준 영화다. 이동진이 원래 한국 영화에 만점을 잘 안 준다는 걸 생각하면...
지금 유투브에서 곡성치면 풀타임 나온다.
문성훈이 좆됐다씨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내가 개씹새가슴이라 그런거같은데 너무 무섭다... 버스기사님이 틀어주셔서 봤는데 기분도 잡치고 걍 여러모로 좋지 않더라.
TV에 곡성특별판나와서 봤는데 뭐 씨발 변한게없다. 그냥 3류쓰레기영화다. 애초에 떡밥회수가 좆도 안되는 개연성은 좆으로보는 이딴 영화를 사람들이 많이보니 "재밌나?"식으로 봐서 관객수가 많다. 이딴걸 10점주는 이동진 당신은 대체...
ㄴ 네 다음 영알못 인증 니 머리가 딸려서 이해를 못하는걸 영화 탓 하지마라.
모호한 결말에 대한 비판
《곡성》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관객들은 특히 영화가 제기한 의문에 충분한 답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외지인의 정체나 일광과의 관계는 여러 장면을 통해 추론할 수 있지만, 사건이 발생한 근본적인 이유와 무명의 본질 등은 명확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이러한 모호함을 의도적인 연출이라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관객에 따라서는 충분히 설명해야 할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해석을 관객에게 떠넘겼다고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영화의 결말을 이해하지 못했다고 무조건 관객의 지적 능력이 부족하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반대로 모든 사건의 원인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영화가 실패했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결국 《곡성》의 결말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열린 결말과 의도적인 불확실성을 얼마나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종교적 상징의 복잡성
영화에는 기독교, 불교, 무속신앙, 일본의 전통적 오컬트 이미지 등 다양한 종교적 요소가 사용된다.
그런데 이러한 요소들이 명확한 규칙에 따라 작동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종교적 상징에 익숙하지 않은 관객이라면 장면의 의미를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
특히 특정 인물이 무엇을 상징하는지와 실제 이야기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기독교적 상징이 등장한다고 해서 그 인물이 곧 기독교의 특정 존재라고 볼 수는 없으며, 무속적 의식이 등장한다고 해서 실제 한국 무속신앙의 원리를 그대로 따르는 것도 아니다.
이처럼 여러 상징체계가 혼합되어 있다는 점은 작품의 독창성이면서 동시에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다.
여담
제목의 의미
영화 제목인 곡성은 전라남도 곡성군을 배경으로 한다는 의미와 함께, 울부짖는 소리라는 의미의 한자 哭聲을 사용한다.
실제 곡성군의 한자 표기는 谷城으로, 영화 제목의 한자와 다르다.
따라서 영화 제목은 실제 지명과 울음소리라는 의미를 중의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악마와 부활의 이미지
영화 후반부 외지인의 모습은 기독교적인 악마의 이미지와 함께 예수의 부활을 연상시키는 요소를 사용한다.
이러한 연출은 선한 존재의 상징을 악한 존재에게 적용함으로써 관객의 판단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든다.
다만 작품에서 종교적 이미지를 차용한 것과 실제 종교 교리를 그대로 묘사하는 것은 다르다.
곡성이라는 장소
영화는 실제 전라남도 곡성군의 이름을 사용하지만, 영화 속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사건들은 허구다.
실제 지역의 주민이나 문화와 연결해 해석할 필요는 없다.
또한 영화의 주요 촬영지는 곡성군뿐 아니라 전라남도 여러 지역에 걸쳐 있다.
감독의 후속작
나홍진 감독은 《곡성》 이후 오랫동안 장편영화를 연출하지 않았으며, 2026년 신작 《호프》를 선보였다.
《호프》 역시 낯선 존재와 인간의 공포,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반응을 중심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곡성》과 비교되기도 한다.
다만 장르와 구체적인 소재는 서로 다르므로 직접적인 후속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