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포의 경우는 총포소지허가증 없이 소지하면 불법이고, 도검류의 경우 도검소지허가증이 없으면 불법으로 간주되니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한복 한글 김치 태권도와 더불어 한민족의 자랑거리.
이 문서에서 국궁이라함은 고대 한반도 및 만주 일대에서 생활하던 예맥-한 계통의 민족으로 부터 내려오는 전통 활과 그 활을 이용하는 궁술을 총칭한다.
현재 일반적으로 통하는 '국궁'은 조선 후기 양식의 각궁을 이르나, 각궁의 모양을 본따 만들어진 개량궁 역시 국궁이라 부른다.
개요
한민족이 사용하던 활은 목궁, 죽궁, 복합목궁, 목장궁 등 다양한 양식이 존재했으나, 그중 가장 유명하고 현재까지 '국궁'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는 활은 '각궁'이다.
각궁은 전형적인 북방민족식 합성궁이다. 대나무와 뽕나무를 기반으로 한 활채에 수우각 (물소뿔), 어교 (물고기부레풀) 등 다양한 재료를 활용하여 탄력을 한계까지 끌어내어 높은 성능을 보였다.
몽골활과 유사한듯보이나 외형, 크기나 성능면에서 차이가 있다. 크기는 시위를 걸지않았을때 110cm 가량에서 125cm내외이고 시위를 걸었을때 100cm~115cm 정도로 휴대성이 좋다. 또한 활채 탄력성이 좋아 크기에 비해 비거리가 긴 편이다.
일반적인 국궁 과녁은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다. 145m는 과녁 크기가 아니라 사대에서 과녁까지 거리고, 대한궁도협회 규격 과녁 자체는 폭 2m, 높이 2.667m다.
단점
각궁의 경우, 다양한 재료를 사용한 탓에 온도차가 크거나 습기가 찰 경우에는 각 (물소뿔 부분)이 틀어지거나, 어교가 풀어져서 활이 망가지는 일이 잦아 '마누라 윗목에 재워도 활은 아랫목에 재운다'는 말이 있을정도로 관리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조선후기 실학자들은 '적이 화창한 날에만 오냐?'며 조선의 각궁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 문제는 위화도회군의 명분중 하나가 될 정도로 심각했으며, 임진왜란 당시에도 왜군이 조총을 사용하기 힘든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여름은 조선군의 난기였다.
군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전장에서는 '정량궁'(혹은 육량궁)이라는 활을 사용했다. 활채를 끈으로 감아 마무리하고 체간 (활의 두께)을 아주 두껍게 설정하였으며 크기를 160cm 이상까지 키운 활로, 여섯냥 (6냥을 기준으로 정량이라 부름), 즉 정량의 화살을 쏜다하여 정량궁이라 하였다.
또한 조선에는 살지도 않는 물소뿔이 주재료로서 생산단가와 자재 수급이 대단히 어려웠다. 몽골활의 경우에는 본디 유목민족이기에 그들이 기르는 아이벡스의 뿔을 쓰면 되지만 조선은 저 멀리 동남아, 유구 (오키니와)까지가서 수입을 해야했다.
활쏘기
국궁이라고 하면 활 자체만 떠올리기 쉽지만 실제로는 활을 만드는 기술뿐만 아니라 쏘는 방법과 사정 문화까지 세트로 이어져 내려왔다. 전통 활쏘기는 2020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지금도 전국의 사정에서 각궁이나 개량궁을 들고 145m 떨어진 과녁을 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존나 많다.
현대 국궁 경기의 사정거리는 사대 중심에서 과녁 중심까지 145m인데, 양궁의 올림픽 거리인 70m보다 두 배 넘게 멀다. 대신 양궁처럼 과녁 정중앙을 맞혀야 높은 점수를 받는 방식이 아니라 과녁 어디든 맞으면 한 발을 맞힌 것으로 계산한다. 대한궁도협회 시설규정에서도 사대 중심에서 관저 중심까지 145m로 정하고 있으니 그냥 옛날 사람들이 대충 "저 산 밑까지 쏘자" 하고 만든 거리는 아니다. (kungdo.or.kr)
그래서 처음 국궁장 가서 과녁 보면
| “ |
씨발 저게 과녁이라고? |
” |
싶다.
사람 눈으로 보면 멀리 조그맣게 박혀 있는데 거기에 화살을 날려 맞히는 거다. 대신 과녁 자체는 가로 약 2m, 세로 약 2.67m로 상당히 크며 화살이 맞으면 양궁처럼 꽂히기보다는 튕겨나오도록 되어 있다.
쏘는 방법
한국 전통 활쏘기는 일반적으로 엄지손가락에 깍지를 끼우고 시위를 당기는 이른바 몽골리안 드로 계통의 사법을 사용한다. 서양 장궁이나 현대 양궁처럼 검지·중지·약지 세 손가락으로 시위를 당기는 방식과는 손 모양부터 다르다.
깍지는 시위가 엄지에 직접 파고드는 걸 막아주는 물건인데, 활 장력이 약하면 그냥 손가락으로 어찌어찌 할 수도 있겠지만 강한 활을 여러 번 쏘면서 맨엄지로 버티려고 하면 며칠 뒤에 엄지손가락이 먼저 독립선언을 할 것이다.
또 현대 양궁처럼 조준기나 안정기 같은 장비를 덕지덕지 붙이지 않고 활과 화살, 깍지 정도를 사용하기 때문에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이는데, 막상 쏴보면 자세부터 힘 배분까지 존나 까다롭다. 활이 작다고 장난감이 아니다.
각궁
현재 국궁의 상징이라고 하면 결국 각궁이다.
각궁은 하나의 나무를 깎아서 만든 단순한 활이 아니라 서로 성질이 다른 재료를 합쳐서 만든 복합궁이다. 국가유산청에서도 전통 각궁의 재료로 뽕나무, 뿔, 소힘줄, 민어 부레로 만든 풀 등을 설명하고 있으며, 이렇게 여러 재료의 장점을 합쳐 작은 크기에서도 강한 탄성을 얻는다. (heritage.go.kr)
활의 배 쪽에는 압축에 강한 뿔을 붙이고 등 쪽에는 잡아당기는 힘을 버티는 힘줄을 붙이는 식이라, 그냥 나무 하나 휘어놓은 활보다 만드는 과정부터 존나 복잡하다. 재료 붙이고 말리고 다듬고 다시 균형 맞추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며, 완성된 뒤에도 활 상태를 계속 관리해야 한다.
그 대신 제대로 만들어진 각궁은 작은 크기에 비해 상당히 강한 활을 만들 수 있었다.
휴대성 챙기고 화력도 챙긴 대신 관리 난이도에 몰빵했다.
한국처럼 말을 타고 활을 쓰던 전통이 있었던 지역에서는 이런 짧은 복합궁이 상당히 유용했다.
개량궁
요즘 국궁장에 가면 모든 사람이 수우각에 민어부레풀 붙인 전통 각궁을 들고 있는 건 아니다.
현대에는 유리섬유나 합성수지 등의 재료로 각궁의 형태와 성능을 재현한 개량궁도 널리 쓰이며, 관리가 쉽고 가격도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입문자나 일반 궁사들이 많이 사용한다. 비 맞는다고 바로 활 들고 울면서 집에 뛰어갈 필요도 없고 온습도 관리도 각궁보다 훨씬 편하다.
전통 각궁:
| “ |
습도 확인했냐? 활 상태 봤냐? 관리 잘해라. |
” |
개량궁:
| “ |
일단 쏴. |
” |
그래서 전통 제작기술 자체를 즐기거나 각궁 특유의 손맛을 좋아하면 각궁으로 넘어가고, 그냥 국궁을 배우고 싶다면 개량궁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사정
국궁을 쏘는 장소를 보통 사정(射亭)이라고 한다.
그냥 활 몇 번 쏘고 집에 가는 체육시설이라기보다 옛날부터 지역 사람들이 모여 활을 쏘고 친목질도 하고 예절도 배우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나름의 문화가 형성되어 있다. 지금도 전국 각지에 사정이 있으며, 오래된 사정 중에는 수백 년의 역사를 주장하는 곳도 있다.
그래서 처음 가면 생각보다 분위기가
| “ |
자 활 쏘러 왔습니다. |
” |
보다는
| “ |
신입 왔냐? 일단 여기 앉아봐. |
” |
에 가까울 수도 있다.
국궁이 단순히 무기를 다루는 기술에서 현대 스포츠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사정 문화가 계속 유지됐기 때문이다.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활쏘기 역시 단순한 발사기술 하나만이 아니라 세대를 거쳐 전승된 전통문화라는 점이 중요하게 평가됐다. (heritage.go.kr)
편전
만약 게임에서 이걸 골랐다면 다른 놈들까지 다 이걸 고르거나 너프를 먹거나 할 것입니다.
조선 활 이야기할 때 빼놓으면 섭섭한 물건이 편전이다.
일반 화살보다 훨씬 짧은 화살을 통아라는 보조기구에 넣어서 쏘는 방식인데, 짧은 화살을 그냥 활에 걸면 당길 길이가 안 나오므로 통아가 가상의 화살대 역할을 해준다. 이렇게 하면 비교적 가벼운 화살을 강한 활로 날릴 수 있어서 속도와 사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적 입장에서 더 좆같은 점은 화살이 짧아서 날아오는 게 잘 안 보이고, 상대가 주워도 통아와 사용법을 모르면 자기 활에 걸어서 그대로 되쏘기도 힘들었다는 것이다.
적군:
| “ |
화살 주웠다! 다시 쏴야지. |
” |
편전:
| “ |
응 안 걸려. |
” |
일종의 전용탄이다.
조선군 궁술이 그냥 긴 활 들고 화살 날리는 수준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활과 화살을 상황에 따라 운용했다는 걸 보여주는 대표적인 무기다.
기병과 활
한반도와 만주에서 활이 중요했던 이유 중 하나는 기마전과도 관계가 있다.
긴 장궁은 보병이 서서 쓸 때는 강력하지만 말 위에서 방향을 바꿔가며 쏘기에는 불편하다. 반면 각궁처럼 짧은 복합궁은 말 위에서 앞, 옆, 뒤쪽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쏘기 상대적으로 편했고, 고대 고구려 벽화에서도 말을 타고 활을 쏘는 모습이 등장할 정도로 한반도 북부와 만주 지역에서 기마궁술은 오래된 전통이었다.
이런 전통은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졌으며 조선 무과에서도 기사와 기추 같은 기마궁술 능력을 평가했다.
즉 조선의 활쟁이는
| “ |
가만히 서서 과녁 맞히는 사람 |
” |
만 있었던 게 아니라 말을 몰면서 활까지 쏴야 했다.
요즘 기준으로 생각하면 운전하면서 FPS 하는 거다. 하지 마라.
활의 민족
한국사 기록을 보면 활은 정말 질리도록 나온다.
고대 중국 기록에서도 한반도 및 만주 일대 사람들의 궁술을 언급하는 경우가 있고, 고구려, 백제, 신라,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도 활은 계속 핵심 무기로 사용됐다. 특히 조선은 화약무기가 보급된 이후에도 활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조총, 화포 등과 함께 상당히 오랫동안 운용했다.
그래서 현대 한국에서
| “ |
우리 민족은 원래 활을 잘 쐈다. 그래서 양궁도 잘한다. |
” |
라는 국뽕성 설명이 자주 나오는데, 전통 궁술이 오랫동안 중요했던 건 사실이어도 현대 양궁 국가대표가 존나 잘 쏘는 직접적인 이유를 고구려까지 연결해버리면 유전자 드립이 되어버리니 적당히 듣자.
고구려인이 활 잘 쐈다고 1500년 뒤 김우진이 10점을 쏘는 건 아니다.
현대 한국 양궁이 강한 건 체계적인 선수 육성, 치열한 국내 선발전과 훈련 시스템의 영향이 훨씬 직접적이다.
그래도 세계 최강 수준의 현대 양궁 국가에서 전통 활 문화까지 아직 살아 있다는 건 나름 재밌는 부분이다.
국궁과 양궁
둘 다 활로 과녁 맞히는 스포츠지만 직접 해보면 생각보다 차이가 크다.
양궁은 현대 스포츠 장비답게 조준기, 안정기, 클릭커 등 다양한 장비를 사용하고 일정한 자세와 정밀한 조준을 통해 과녁 중심을 노린다. 반대로 국궁은 전통 활의 구조와 사법을 유지하면서 훨씬 먼 145m 거리의 큰 과녁 자체를 맞히는 것이 중심이다.
양궁에서 화살이 과녁 바깥쪽에 맞으면
| “ |
아 씨발 7점. |
” |
국궁에서는
| “ |
맞았다! |
” |
가 된다.
대신 145m니까 그 큰 과녁조차 처음에는 더럽게 안 맞는다.
둘 중 뭐가 우월하다는 이야기는 의미가 없다. 애초에 현대 경기 규칙과 장비, 목표 자체가 다른 종목이다.
현재
국궁은 활쏘기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고, 활과 화살을 제작하는 궁시장 역시 별도의 국가무형유산으로 전승되고 있다. 궁시장은 활을 만드는 궁장과 화살을 만드는 시장을 합쳐 부르는 말이다. (heritage.go.kr)
따라서 국궁은 박물관에 걸린 옛날 무기가 아니라 지금도 실제 활을 만들고, 실제로 쏘고, 전국대회를 여는 살아 있는 전통무예이자 스포츠다.
문제는 양궁처럼 올림픽에서 금메달 쓸어담으며 전국민이 보는 종목은 아니다 보니 관심 없는 사람은
| “ |
국궁? 경복궁 같은 건가? |
” |
할 정도로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전국에 사정이 꽤 많이 남아 있고 나이 먹어서도 계속 할 수 있는 운동이라 조용히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한복 입고 활 쏘는 관광체험만 국궁의 전부는 아니다.
기타
전통 활과 화살을 만드는 기술인 궁시장은 국가무형유산이다.
전통 활쏘기 역시 2020년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됐다. (heritage.go.kr)
현대 대한궁도협회 규격의 사정거리는 145m다. (kungdo.or.kr)
국궁 과녁은 중앙을 맞힌다고 추가점수를 주지 않고 과녁에 맞혔느냐가 중요하다.
각궁은 뽕나무, 뿔, 소힘줄, 민어부레풀 등 여러 재료를 합쳐 만든 복합궁이다. (heritage.go.kr)
국궁장에서 쏘는 사람을 흔히 궁사라고 부른다.
멀리 있는 과녁을 맞혔는지 육안으로 확인하기 힘들기 때문에 과녁에 맞는 소리나 신호를 이용해 관중 여부를 확인한다.
옛날에는 무기였지만 현재 국궁장에서 사람이나 동물 쏘면 당연히 국궁이 아니라 범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