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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세기 7세기 관련 문서 8세기
7th Century / 7世紀 / 601년~7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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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작품
대한민국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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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6년에 벌어진 나당전쟁의 최종결전. 당나라가 쳐발려서 신라의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를 기점으로 신라의 통일신라 시대가 개막되었다.

전반적으로 신라의 해군 운용 능력이 양호해서 신라가 이겼을 것이라고 평가받는다.

다만 처음부터 신라 수군이 당나라 수군보다 강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최초 교전에서는 신라가 패배했고 당 수군의 함대 운용 능력도 상당했다. 이후 신라군이 전술을 바꾸고 기벌포 일대에서 계속 싸움을 이어가며 22차례의 교전 끝에 승리했다는 점에서 신라 수군의 대응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쪽에 가깝다.

기벌포는 지금의 충남 서천 장항이다. 장항선이 지나가는 곳이자 국립생태원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금강의 하류로 다리만 넘으면 전북 군산이 나온다.

배경

백제고구려를 같이 멸망시킬 때까지만 해도 신라당나라는 동맹이었지만, 당나라가 옛 백제와 고구려 땅을 그대로 처먹으려고 하면서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다.

결국 670년부터 나당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신라는 백제·고구려 유민까지 끌어안으면서 당나라를 상대로 싸우게 된다.

초반에는 당나라의 국력이 워낙 넘사벽이라 신라도 상당히 고생했지만 675년 매소성 전투에서 당나라군을 크게 격파하면서 전세가 신라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당나라도 서쪽에서 토번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라 한반도에 계속 대규모 병력을 꼴아박기도 부담스러워졌다.

전투

676년 11월 당나라 장수 설인귀가 이끄는 수군과 신라 장수 시득이 이끄는 수군이 기벌포에서 맞붙었다.

근데 의외로 첫판은 신라가 졌다.

시득의 신라 수군이 설인귀의 당 수군과 처음 싸웠다가 패배했는데, 여기서 그대로 GG를 치지 않고 전열을 정비해서 계속 달라붙었다.

이후 크고 작은 전투가 무려 22번이나 이어졌고 결국 신라군이 당나라군을 격파했다. 《삼국사기》에는 이 과정에서 신라군이 당군 4천여 명의 목을 베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번 지고도 계속 들이박아서 결국 이긴 셈.

특히 기벌포는 금강 하구에 있어서 백제의 옛 수도인 부여로 들어가는 관문이면서 동시에 서해의 제해권과도 직결되는 요충지였다. 여기서 당 수군을 쫓아내면서 신라는 서해 방면의 주도권까지 확보하게 된다.

결과

대한민국의 승리!
이 문서는 대한민국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펄럭-

신라 승리.

기벌포 전투를 마지막으로 나당전쟁의 대규모 전투는 사실상 끝났다.

당나라는 이미 안동도호부를 평양에서 요동으로 옮기는 등 한반도에서 발을 빼기 시작한 상태였고, 기벌포에서도 패하면서 한반도 남부에 대한 군사적 영향력을 유지하기 어려워졌다.

덕분에 신라는 백제의 옛 영토와 대동강 이남의 고구려 영토를 확보하면서 흔히 말하는 통일신라 체제를 완성하게 된다.

다만 이것을 현대적인 의미에서 한반도 전체의 완전한 통일이라고 보기는 애매하다. 고구려의 옛 영토 상당 부분은 신라 영역에 들어오지 않았고 이후 북쪽에서는 발해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담

기벌포의 정확한 위치에는 약간의 이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지금의 금강 하구,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 일대로 본다.

그리고 이곳은 16년 전인 660년에도 역사의 무대가 된 적이 있다. 당시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공격할 때 당나라 수군이 금강 하구를 통해 들어왔는데, 불과 16년 뒤에는 그 신라와 당나라가 같은 지역에서 서로 죽어라 싸우게 된 것이다.

어제의 동맹이 오늘의 적이 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