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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때 일본 장수를 끌어안고 투신해 동반자살하신 분.

정확히는 1593년 제2차 진주성 전투에서 진주성이 함락된 뒤 왜장을 유인해 촉석루 아래 남강으로 함께 뛰어들어 죽었다고 전해지는 인물이다.

오늘날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의기(義妓)로 추앙받고 있다.

다만 논개에 대한 기록은 사건 당시 바로 작성된 것이 아니다. 현재 가장 이른 구체적인 기록으로 꼽히는 것은 유몽인의 《어우야담》으로, 진주성 함락 약 30년 뒤인 1620년대에 기록됐다. 여기에서는 논개를 진주의 관기로 소개하고, 몸단장을 한 뒤 왜장을 유인해 함께 강물로 뛰어들었다고 적었다.

그래서 논개가 실존하지 않았다고 볼 이유까지는 없지만, 오늘날 알려진 생애 전체가 당시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도 아니다.

장수군과 진주시가 서로 자기네들 성녀라고 주장한다.

진주는 논개가 실제로 순국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이고, 《어우야담》에도 진주 관기로 기록되어 있다. 반면 장수에서는 논개가 장수 출신의 주논개이며 당시 장수현감을 지냈던 최경회의 부실이었다는 전승을 강하게 밀고 있다.

장수에는 논개 생가지와 의암사가 있고 진주에는 촉석루 아래 의암과 논개를 모신 의기사가 있다.

ㄴ 그러니까 장수 입장에서는 "우리 동네에서 태어남", 진주 입장에서는 "우리 동네에서 역사에 이름 남김"인 셈이다.

다만 주씨 성, 1574년 장수 출생, 최경회와의 관계 같은 구체적인 내용은 《어우야담》보다 훨씬 뒤의 문헌과 지역 전승에서 나타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논개의 출생연도를 미상으로 두고 있다.

논개가 끌어안고 죽은 왜장의 정체 역시 확실하지 않다. 흔히 게야무라 로쿠스케라는 이름이 나오지만 초기 기록인 《어우야담》에는 그냥 왜장으로만 나온다.

또 열 손가락에 가락지를 끼고 왜장을 놓치지 않게 했다는 유명한 이야기도 후대에 덧붙은 전승이다.

다들 어렸을 때 들어봤던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가사에도 나온다.

“

황금을 보기를 돌같이 하라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 이어지는 논개의 충절

”

알까기 할 때 내 돌하고 상대 돌하고 같이 꼬라박는 전술이 있는데 이걸 논개타법이라고 부른다.

상대를 잡으면서 자기도 같이 죽거나 손해를 감수하는 플레이를 논개에 빗대어 부르는 표현이 여기저기서 쓰인다.

어어 논개야 와이라노 안지마라

기록과 평가

논개의 이야기는 진주성 함락 직후부터 지역에서 구전된 것으로 보이며, 1620년경 유몽인이 《어우야담》에 기록하면서 문헌에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런데 당시에도 논개를 국가적으로 기리는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임진왜란 당시 충신·효자·열녀를 선정해 만든 《동국신속삼강행실도》에는 논개가 빠졌다. 기생을 국가가 공식적인 열녀로 표창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유교적 신분 인식이 영향을 준 것으로 설명된다.

진주 사람들은 논개가 뛰어내린 것으로 전해지는 바위를 의암(義巖)이라 부르고 글자를 새겨 추모했다.

이후 조선 후기에 논개의 순국이 점점 널리 알려졌고, 국가에서도 논개를 기리는 제향을 지원하면서 대표적인 임진왜란 여성 인물로 자리잡았다.

다만 후대로 갈수록 논개의 출신과 가족관계, 최경회와의 관계, 죽인 왜장의 이름 등에 여러 전승이 붙었기 때문에 어디까지가 1593년 당시의 사실인지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가장 보수적으로 정리하면

“

1593년 진주성 함락 당시 논개라는 여성의 왜장 동반 투신 이야기가 지역에 전해졌고, 약 30년 뒤 문헌에 기록됐다.

”

정도까지는 비교적 이른 기록으로 확인된다.

논개제

경남 진주시에서 개최하는 논개를 기린다는 행사다.

진주성 전투에서 순국한 논개와 민·관·군을 추모하고 진주의 전통 교방문화를 재현하는 축제로, 의암별제와 각종 전통공연·체험행사 등이 열린다.

그런데...

논개 순국 체험행사랍시고 어린이들에게 대놓고 동반자살을 체험시키는 막장행사를 진행해 욕을 오지게 얻어먹었다.

2011년 제10회 진주 논개제에서 실제로 진행된 행사다.

어린이들이 왜장 모양 인형을 끌어안고 약 2m 높이의 인공 의암에서 아래에 설치된 에어매트로 뛰어내리는 방식이었다.

이틀 동안 600여 명의 어린이가 참가했다.

당시 논개제 측은 논개의 순국정신을 가르치기 위한 "순국 체험"이며 안전장치도 마련했다고 설명했지만, 사진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

아무리 논개를 기린다지만 애들한테 왜장 인형 끌어안고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체험을 왜 시키냐

”

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어린이 대상 체험학습에서 투신 장면을 놀이처럼 재현하는 것이 교육적으로 적절하냐는 논란이 컸다.

이걸 일본인이 본다면 국제망신 그 이상도 아닐 듯.

ㄴ 일본인 문제가 아니라 한국인이 봐도 "이걸 굳이 애들한테 직접 시켜야 하나" 싶긴 하다.

행사 관계자는 당시 "투신 체험이 아니라 순국 체험"이라고 해명했지만 이름을 뭐라고 붙이든 애가 왜장 인형 안고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는 그림 자체가 너무 강렬했다.

결국 2011년 논개제의 대표적인 흑역사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