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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19세기 관련 문서 20세기
19th Century / 19世紀 / 1801년~1900년
국가
사건 세계사
한국사
대표 인물 에이브러햄 링컨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 나폴레옹 2세 · 루이 18세 · 샤를 10세 · 루이 필리프 · 나폴레옹 3세 · 아돌프 티에르 · 클레멘스 폰 메테르니히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빌헬름 1세 · 빌헬름 2세 · 주세페 마치니 · 카밀로 벤소 카보우르 · 주세페 가리발디
관련 작품

파일:나폴레옹.jpg

대륙 봉쇄령(Continental System)은 1806년 나폴레옹영국을 경제적으로 말려 죽이겠다며 내린 무역 금지 정책이다.

쉽게 말하면 "유럽 놈들 전부 영국이랑 거래하지 마."였다.

왜 했냐

당시 프랑스는 육군은 최강이었지만 바다는 트라팔가 해전에서 영국에게 개털렸다.

그래서 "해군으로는 못 이기겠으니 경제를 조져버리자."는 발상으로 나온 것이 바로 대륙 봉쇄령이다.

영국 상품의 수입을 금지하고 영국 선박의 입항도 막아서 영국 경제를 붕괴시키려 했다.

한마디로 경제제재의 조상님 같은 정책이다.

결과

처음에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영국은 세계 최강의 해군을 이용해 남미, 인도, 북미 등 다른 시장과 계속 무역을 했다.

반대로 유럽 대륙이 더 고통받았다.

영국 공산품이 안 들어오니까 물건값이 오르고 밀수가 폭증했다.

ㄴ 영국은 생각보다 안 죽고 유럽이 먼저 골골댔다.

나폴레옹이 점령한 국가들도 슬슬 말을 안 듣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러시아 제국알렉산드르 1세는 경제가 너무 박살나자 영국과의 무역을 다시 시작했다.

이에 빡친 나폴레옹은 "배신했냐?" 하며 1812년 러시아 원정을 감행한다.

그리고...

러시아 원정으로 대육군이 사실상 괴멸하면서 나폴레옹도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영향

대륙 봉쇄령은 근대 최초의 대규모 경제전쟁으로 평가받는다.

오늘날 국가 간 경제제재나 무역봉쇄도 기본적인 발상은 이 정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물론 성공 사례는 아니었다.

영국은 버텼고 유럽 경제만 피폐해졌으며, 결국 나폴레옹 본인도 러시아 원정이라는 자충수를 두게 되었다.

여담

청나라천계령과 자주 비교된다.

둘 다 적을 굶겨 죽이려고 무역을 끊었다는 점은 같지만,

천계령은 비교적 목표를 달성한 반면 대륙 봉쇄령은 영국보다 자기 편이 먼저 힘들어져 실패했다.

경제를 무기로 쓰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